블러, 오아시스, 펄프, 벨 앤 세바스찬, 트래비스, 콜드플레이... "네가 좋아하는 영국밴드 들은 누구니?" 라는 물음에 맨처음 거론될 아티스트 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향은 한팀을 더 추가하고자 합니다(몇몇에게는 이미 되어있겠지만). 모리씨가 추구하는 '문학적 취향을 염두에 두는 시니시즘'과 위트와 냉소, 전형적인 영국 보컬(굵고 로맨틱한 - 30년대 스탠다드 팝보컬의 영향 다수) 과 실내악이 조우하는 챔버팝. (좀 우기자면) 현재 영국음악신에서 위트와 낭만을 결합하는데 있어 최고의 밴드일지도 모르는 그(들?). 게다가 스미스는 두 사람(모리씨와 자니 마)이었지만, 디바인 코미디는 한 사람(닐 해넌)입니다. 앨범의 모든 악기를 주도하는 멀티 인스트루멘틀리스트이자, 문학정신으로 무장한 이 비쩍 마른 청년의 마약 없이 취할수 있는 챔버팝의 꽃밭(!)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어느 화창한 햇살, 어린 소년이 꽃밭에서 꽃을 따고 있다(일렉트로닉의 Raise The Pressure을 떠올리자. 다만 이 아이는 옷은 입고 있다) 그러던 아이는 꽃밭에서 이상한 책(씨디?)을 줍는다.
아이 : 저겨~ 이게 뭐예요? 동화책인가여?
어른 : 음... 아니야, 그건... 디바인 코미디 라는 유명한 그룹의 베스트 앨범이란다(주 : Secrect History 의 한정반은 두꺼운 커버의 책 안에 씨디가 들어있음)
아이 : 책인거 같은데여?
어른 : 음... 아니야... 씨디를 보여줄게...
아이 : (보기도 전에) 책 아니네여.
어른 : ㅡ,ㅡ; 너 나 놀린거니...
아이 : 디바인 코미디의 비밀스런 역사라고 되어 있는데... 디바인 코미디가 뭐예여?
어른 : 음... 그거는 말이지...
밴드명 DIVINE COMEDY
단테의 신곡에서 인용한 제목이다. 대단한 독서광이던 닐 해넌 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책을 보던 중 단테의 신곡에서 DIVINE COMEDY 란 단어를 보고 그 발음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의외로 단순하게도 발음이 맘에 든다는 이유 하나로 밴드명을 디바인 코미디로 정한 것. 이후 그는 그 책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Divine Comedy 이전에는 October to The Cherry Orchard 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비교적 요즘 시절의 닐 해넌. 분위기를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아이 : 닐 해넌이 누구예요? 여기 표지에 나와있는 귀 크고 선글라스 낀 귀엽게 생긴 아저씨가 닐 해넌이예여?
어른 : 그래, 그 아저씨가 닐 해넌이란다. 근데 이제 귀... 귀엽다니... 이 아저씨도 서른 한 살이신데...(닐 해넌은 70년 11월 7일생) 너 참 당돌하구나.
아이 : 이 아저씨 얘기도 해주세여.
1970년 11월, 남아일랜드의 런던데리(이 곳은 곧 디바인 코미디의 출신지가 된다)에서 가톨릭교 신부(정확히는 신교도) 의 아들로 출생한 닐 해넌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신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부끄럼을 잘타고, 내성적인 닐 해넌의 어린시절 꿈은 자동차 회사의 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17살때부터 이 열렬했던 꿈은 조금씩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영국 인디팝씬 과 클래식에 동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이 상이한 두 개의 장르는 디바인 코미디 사운드의 중추이다 - 참고로 닐 해넌이 구입한 최초의 팝/록 레코드는 울트라복스의 명반 Vienna 였다) 인디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되었고 피아노를 시작으로 조금씩 악기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꿈을 돌린다(이 때문에 시험을 그냥 넘긴 적도 있다고) 동시에 그는 어떤 한 영화에 큰 영감을 받았었는데, 제임스 아이보리의 [전망 좋은 방] 이었다(후에 Liberation에 수록된 '초인의 죽음'에서는 이 영화의 일부대사가 샘플 되기도 한다)
닐 해넌이 감명받은 영화였던 제임스 아이보리의 85년작 [전망 좋은 방]
아이 : 디바인 코미디는 닐 아저씨 혼자서 하는건가 봐요?
어른 : 아... 그래, 하지만 "백밴드"로 쳐줄 정도의... 닐 아저씨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단다.
조비 탈봇(Joby Talbot)
Promenade 발표 직후에 가입하여 현재까지 닐의 작업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친구이다. 토리 에이모스와 투어를 다닌 경력이 있으며, 디바인 코미디에서는 키보드를 맡고 있다.
Bryan Mills & Ivor Talbot
브라이언은 디바인 코미디의 베이시스트이며, Ivor는 투어 기타리스트. Ivor와 Joby는 형제지간이다.
아이 : 그렇군여... 처음부터 그럼 닐 아저씨 혼자서 했던 거져?
어른 : 아니, 그건 아닌데... 디바인 코미디 처음 시절을 얘기해줄게.
처음에 그가 음악을 시작할 때 염두에 두고 있던 밴드들은 스콧 워커, ELO(Electric Light Orchestra / 후에 닐 해넌의 애청앨범에 소개될것임) 모리씨 등이었다.
이중 스콧 워커는 디바인 코미디를 이해하고자 할 때 필청의 뮤지션이다. 워커 브라더스(Walker Bothers)에서 Scott Angel 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그는 톰 웨이츠가 무색할 굵직하고 음울한 보컬에 프랭크 시나트라가 박수칠만한 현악세션의 스탠다드팝에서 시끄러운 아방가르드 노이즈 록까지-. 극과 극의 스타일의 앨범에서 그 특유의 보컬을 발휘(스탠다드 팝에서는 너무 우울하고, 아방가르드 록에서는 역겨우리만치 굵은 보컬로 노래한다)했던 인물로 이 희대의 인물에 대한 닐 해넌의 관심과 존경은 대단했었고, 닐 해넌의 보컬 스타일은 전적으로 스콧 워커의 보컬 스타일에 의존하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스콧 워커에 비해 닐 해넌은 훨씬 밝은 분위기를 내고 있다는 것 정도(대단히 큰 차이점이군)
60년대 아트팝의 대가 스콧 워커. 팝역사상 가장 기이한 로맨틱 보컬.
1990년, 학교 친구들이던 George McCullagh (bass) 와 Kevin Traynor (drums)를 데려와 결성한 밴드는 첫 EP를 녹음한다. Fanfare For The Comic Muse 란 타이틀이었고, 이것은 전면으로 Sub-R.E.M을 표방한 기타팝/록 앨범이었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같은 남아일랜드 출신의 전설적인 얼터너티브 밴드 Petrol Emotion의 기타리스트 션 오닐. 이 EP 의 발매후 닐 해넌의 Favorite Artist 중 한팀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 이 역시 "닐 해넌의 애청앨범에서 소개될 것임)의 서포트를 맡기도 한다. 후에 John Allen을 리드보컬로 끌어들여 (존 알렌은 닐이 혼자 밴드를 굴려가게 되는 앨범 Casanova 에서도 그 이름을 찾을수 있다) 새로운 EP Timewatch을 녹음한다. 후에 런던으로 옮긴 그들은 스웨이드의 서포트를 맡기도 하는 등, 의외의 행운들을 주워 잡는다(당시 스웨이드도 돌맞던 시기이긴 했지만) 후에 에드윈 콜린스(80년대 초반의 오렌지 주스에서 활동하던 펑크 로커. 솔로로서는 복고로큰롤을 지향하며 A Girl Like You 등을 히트시킴)의 프로듀싱으로 또 하나의 EP 이자 현재 라인업의 마지막 작품인 Europop을 녹음한다. 이 Europop은 Liberation에 수록되어 있는 Europop의 데모 버전인 셈이다. 그러나... 존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며 팀을 관둔다. 이런 흐지부지한 디바인 코미디에 남은 것은 이제 닐 해넌 한사람이었다.
아이 : 혼자라니... 불쌍하네여...
어른 : (미소 지으며) 디바인 코미디의 Secret History는 닐 아저씨가 혼자 밴드를 굴리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거란다. 좀 더 들어보렴.
닐 해넌 최초의 밴드. 정말 못 알아 보겠지만... 가장 왼쪽이 닐 해넌이다. 어떻게 아냐고? 큰 귀는 그의 얼굴 특징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시 런던베리로 돌아와 혼자서 곡을 쓰기 시작한 닐 해넌은 존경하던 REM 스타일을 버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현악 세션과 인디팝을 조화시키는데 몰두한다.
Liberation
닐 해넌의 원맨밴드로 시작하게 되는 디바인 코미디의 인디레이블 데뷔앨범. 데뷔라고는 하나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디바인 코미디 사운드의 전형을 다수 곡에서 발견할수 있음. 워즈워스의 작품을 거의 각색하다시피 한 가사의 Lucy(확실한 기타팝. 스콧 워커가 스미스의 감성과 방식으로 노래한다면?), 70년대 영국 TV 시리즈 Mr. Benn 의 트리뷰트 Festival Road(어쿠스틱 피아노 단 한 대와 함께 노래. 앞으로 가장 강조될 사실중 하나는 디바인 코미디의 가장 주요한 악기는 닐 해넌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안톤 체홉의 작품을 인용한 Three Sisters(댄스 비트에 슬로우 + 멜로우 한 보컬), 피터 행크의 비극 '패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빔 벤더스의 영화에도 동명 타이틀이 있음)에서 제목을 빌어온 The Pop Singer's Fear of the Pollen Count (우리 시대 최고의 팝송), 닐 자신이 '뉴 웨이브 신서팝 + 기타 댄스 튠이라고 밝힌 Europop(닐 해넌 보컬 역사상 주목할 만한 바리톤) 등을 수록. 데뷔앨범부터 일련의 수작트랙들을 싣고 있던 디바인 코미디였고 다음앨범인 Promenade 의 매체의 주목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How can you talk that way On such a lovely day? 영국 인디씬 인텔리전트 팝밴드의 시작. 충분히 즐거운 사랑의 노래들.
아이 : 그래서여? 이제 더 이상 알이엠 이라는 사람들의 음악을 안따라 가게 된거예여?
어른 : 응, 그렇지, 하지만 두 번째 앨범은... 아까 얘기했던 스콧 워커 아저씨를 많이 표방한 앨범이란다.
Promenade
두 연인에 대한 컨셉트 앨범이자, 디바인 코미디의 앨범에서 들려지는 가장 대표적인 특징중 하나인 [닐이 좋아하는 예술적 취향]에 대한 피력이 가장 두드러진 음반. 가장 개인적인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앨범의 커버에서 그는 스콧 워커의 의상과 비슷하게 걸치고 있으며 앨범의 전체 색도 프랑스의 (일반적으로 프렌치팝/샹송으로 알려져 있으나 거의 카바레 뮤직에 가까운) 자끄 브렐과 스콧 워커(특히 스콧 워커의 작품중 가장 스탠다드팝 성향인 3집과 4집의 인상)의 영향 아래에서 펼쳐지는. 사랑없는 세상에 흩뿌리는 12곡의 아름다운 사랑노래.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목록들의 나열 Booklover(한번 몇 명인가 세보았더니 73명이었다. 최근 인디아 아리도 이와 비슷한 곡이 있던데)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애수와 감동의 명곡 The Summerhouse (어린 시절 여름별장에서 지내던 소년과 소녀의 추억)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대사를 샘플링하면서 실은 프랑소와 트뤼포의 '줄 앤 짐'에 대해 이야기 하는 When The Lights Go Out All Over Europe (베스트 앨범에 빠진 것이 매우 안타까운 단순하지만 좋은 곡 구성과 낭만) 등을 싣고 있음. 여전히 문학백과사전 닐 해넌의 지식은 여기저기서 돋보이고 있고 여기에 한수 더하여 영화(특히 프랑스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을 읽을수 있다. Casanova 에 대한 다분히 초석적인 작품(디바인 코미디는 항상 다음 작품에 대한 일련의 흐름을 전작에 미리 배치- 발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 다음앨범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카바레 사운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특히 엄청나게 긴 가사를 지닌 Drinking Song은 닐 해넌 위트의 하이라이트.
아이 : 다음앨범이 뭔데여?
어른 : 응... 카사노바 라고..
아이 : 닐 아저씨, 여자가 한명도 안따라오게 생겼는데여?
어른 : ㅡ.ㅡ;
Cassanova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한 거짓말, 닐 해넌은 당신에게 Songs Of Love를 아주 감미로운 보컬로 들려준다. 어떻게 될것인가. 이에 꿈쩍도 하지 않을수 있을 것인가. '능글맞을' 정도로 아름다운 노래를 담고 있는 디바인 코미디 최고 명작. 후에 등장할 National Express 만큼 화려하지도, Pop Singer's Fear... 만큼 예쁘지도 않은 싱글들(Something for the Weekend, Frog Princess) 임에도 앨범 전체적으로 듣기에 '감동적'이다.(이유? 알수 없다)
조지 오웰의 소설 제목을 따왔지만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대사를 인용하는 묘한 재치의 In & Out In Paris & London (죽죽 늘어지는 보컬 - 나쁘다는 얘기가 아님) 가벼운 키보드와 브라스 섹션을 이어낸 Something For The Weekend (이발소에서 주말에 손님들한테 가장 많이 물어보는 말이라고, 결말부가 죽음으로 멋지다) 마이클 케인의 출세작 Alfie의 대사가 샘플링 된 브로드 웨이 뮤지컬 소품 같은 인상의 Becoming More Like Alfie, 오드리 햅번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영감을 받고 만든 곡 Woman Of The World (아니, 엘튼 존인가?) 등의 곡들을 수록. Theme From Casanova? 물론, 거짓말이라는 거 알고 있다.
아이 : 웅... 그렇군여, 말 안끊을테니까 계속 말해 주세여.
어른 : 그래(너 계속 말 끊으면 나한테 혼났어)
A Short Album About Love
제목이 크지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영화제목에서 따왔을 거라는 의심이 아주 많이 간다. 사실... 확신하고 있다. 말 그대로 'Short Album', 미니 앨범이지만 오아시스의 최고 명곡 Whatever가 EP에만 있듯이 디바인 코미디 최고의 명곡 Everybody Knows (Except You)를 수록하고 있는 미니 앨범. 이것만으로 완성도는 보장됨에도 뭐가 부족한 것인지 국내반에는 정규수록반보다 7곡이 더 수록되어 거의 풀 렝스 수준의 길이를 자랑하고 있고, 수록된 B-Side 트랙들은 디바인 코미디가 발매한 우수한 (싱글) 역사 뒤편의 일면을 감상할수 있다. 소박한 곡구성을 주로 해온 닐 해넌이지만 이 앨범에서는 30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야심에, 사랑에 관한 비틀어진 가사, 그 안에서 영원한 닐의 아이돌 스콧 워커와 세르쥬 갱스부르가 환상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대미의 클라이맥스 Everybody Knows (Except You)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하늘의 별에도 아침해에게도, 부모님께도, 모두에게 얘기했다. 모두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걸 알고 있어, 당신만 빼고), 내가 당신이었다면 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라는 If I Were You (I'd Be Through With Me), 등등 다분히 집착적인 사랑의 노래들을 실고 있음. 마그네틱 필즈의 69 Love Songs 3시간 러닝타임을 견딜수 없다면 이 30분짜리 앨범을 들어라.
...농담이다. 그래도 그 앨범의 축약판인 인상은 확실히 있다.
Fin De Sciel
데뷔앨범부터 그들의 모든 앨범의 발매를 맡았던 Setanta 레이블에서의 마지막 정규 앨범. 디바인 코미디 적이면서 전보다 안정되고 발전된 성질의 트랙들을 수록하고 있다. National Express는 카바레 사운드 지향면에서 봤을 때 단연코 최정점의 보컬과 사운드이고, 디바인 코미디의 최고 인기곡이기도 하다. 다이아나 비의 죽음에 대한 비판적인 유머를 담아낸 Generation Sex, Frog Princess 의 동화적 감수성을 2배 발전시킨 듯한 나직한 음성의 Sweden(여기선 존경하는 스웨덴 예술가들을 나열한다 - 잉그마르 베르히만(스웨덴을 대표하는 명감독중 한명. [7인의 봉인] 등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헨릭 입센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작가이다) - 니나 퍼슨 - 카디건스 - 등이 있다) 대미를 장식하는 3분짜리 발라드(대미를 장식하기엔 너무 짧은데?) Sunrise 등을 수록. Sunrise 는 베스트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당연하겠지만 싱글로 발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곡만으로 본다면 열손가락에 꼽힐 명싱글이다. 변화는 없지만 여전히 좋다. 정말로.
A Secret History: The Best Of...
적절한 제목이다. 새 앨범이 메이저 레이블 Parlophone에서 나오기 직전의 인디 레이블 Setanta 에서의 마지막 앨범. 인디 신에서 다수의 컬트팬을 거느리게 되기까지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야말로 Secret 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메이저 레이블로 들어서면서 사운드가 변화될 것이라는 추측을 동반하는-. '정리적 성격의 컬렉션' 의미도 띤다. 전형적인 디바인 코미디 트랙부터 의외의 트랙까지 고루 담아놓은 수록곡들은 이 앨범 한 장만으로 밴드가 이해가 될 정도로 잘 선곡이 되어 있다. 아니, 아니, 사실 우리가 이 앨범으로 이해해야 할 점은 디바인 코미디가 아니라 왜 그들이 인디씬에서 다수의 추종자들을 거느릴수 있었던가에 관한 것이다. 들으면 이해가 갈 것이다.
Regeneration
디바인 코미디의 메이저 레이블 첫 앨범. 앨범 표지에 항상 닐 해넌 혼자 등장하던 것과 달리 뒷자켓에 앨범에 참여한 모든 멤버들을 등장시킨 점에서부터 알수 있듯, 그리고 닐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디바인 코미디 최초의 밴드지향적 녹음물이다. 아주 좋지만 처음부터 들 생각은 '이거 도대체 누구야?'
정확히는 닐 해넌 Featuring 라디오헤드. 내지는 톰 요크가 닐 해넌 목소리 흉내내며 부르는 것 같다. 팔로폰이 붙여준 프로듀서는 라디오헤드와 트래비스의 녹음을 맡으면서 가장 잘 나가는 프로듀서로 올라선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 혹시 이 앨범이 닐이 의도하는 변화가 아니라 나이젤이 이끌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면 정말 할말 없다.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그들 앨범 중 가장 '낯선' 앨범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이 앨범을 최고로 치는 추종자를 거느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은 자꾸 후자로 기운다. 사운드는 나이젤 고드리치가 지배할수 있겠지만 그의 생각까지는 지배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사가 예전 디바인 코미디와 전혀 다르다는 것인데, 로맨스와 카사노바 같은 농담은 접어둔채, 신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던가(Eye Of The Needle - 바늘의 눈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꿰매겠다는 내용이다) 패션 매거진의 바보같은 상술에 대한 진저리 (Beauty Regime), 자학적인 독백 - 내가 정상이라고 말해줘, 내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해줘 -을 담은 (Mastermind) 등의 가사가 어쿠스틱 or 슬로우 기타와 중얼거리는 나직한 보컬에 실려나온다.
Regeneration, 말 그대로 디바인 코미디 로서 '혁신'적인 사운드이지만 거기에는 닐의 그리고 팬들의 불안감이 동반된다. 인디에서 메이저 영국 팝씬으로 올라선 디바인 코미디가 머물러야 할 자리는? 여기에 '안전하게 안착'하기 위해 (영국 팝/록의 가장 흔한 스타일인) 보편적인 기타팝을 수용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뛰어야 할곳은? 우리가 숨어야 할곳은? 우리의 머리가 쉬어야 할곳은? ...천사 또는 악마도 우릴 돌보지 않는다' 라는 가사는 그(들)를 절대 비난할수 없게 만든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라는 Regeneration의 가사는, 이 앨범에서 보여지는 닐의 감정을 한마디로 대변하고 있다. 메이저에 들어서면서 이런 사운드를 낼것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이 : 닐 아저씨는... 디바인 코미디만 했어여? 다른건 없어여?
어른 : ^_^ 잘 물어봤어, 닐 아저씨가 다른 친구들이 없어 보이니?(닐 아저씨 좀 그만 구박해라!)
아이 : 아녜여...
어른 : 그래 (아니... 요 녀석이 웬일로...)
Stephen Merritt (a.k.a Magnetic Fields)
마그네틱 필즈와 식스스, 퓨쳐 바이블 히어로 등 많은 프로젝트(자신의 진짜 밴드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를 거느리고 있는 현재 미국 인디팝 신 최고의 인기인(하하하. 하지만 사실이다)인 스테픈 메릿에 대한 닐 해넌의 존경과 애정은 각별하다. Love Is Lighter Than Air, The Dead Only Quickly, Famous 등 닐 해넌이 가장 많이 커버한 대상은 스콧 워커가 아니라 마그네틱 필즈였다. 다양한 게스트들을 객원보컬로 기용한 식스스의 두 번째 앨범 Hyacinths and Thistles에서 닐 해넌은 게스트로 참가하여 The dead only quickly를 부르기도 하는데, 이 곡은 Certainty of Chance 싱글의 B-side 트랙이었다.
Volume Nine & Seventeen
CMJ 가 '씨디를 포함한 잡지' 라면 이 볼륨 (시리즈)은 '잡지를 포함한 씨디' 이다. 앨범트랙들도 포함하고 있지만 B-side 트랙들과 미발표 트랙(그것도 상당히 괜찮은)들을 실고 있어 가격은 조금 쎘지만 모던록 팬들에게 매월 한번씩은 충동욕구를 불러일으키던 유명한 잡지 겸용 씨디로(지금은 없어졌다) 디바인 코미디는 이 볼륨 시리즈에서 9와 17시리즈에 등장한 적이 있다. 스크리밍 트리즈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 마크 레너건, 소닉 유스, 크랜베리즈 등 당시에도 꽤 이름값 하던 밴드들 등 사이로 디바인 코미디는 토크 토크 (Talk Talk - 초창기에는 뉴 웨이브 밴드였다가 후에 거의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운 사운드로 돌변. 둘다 잘해냈다. 비록 국내에서는 인기가 꽝이라 본인이 수입을 도전했다가 포기했지만) 의 곡을 커버하고 있다. 17탄에는 Through a Long and Sleepless Night 의 라이브 버전을수록.
50년 전통의 문화비평주간지 (주관적이고 예리하기로는 이 잡지 따라올 곳이 없다)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지의 커버를 인디팝 뮤지션으로서는 최초로 장식한 스테판 메릿. 여태까지 이뤄온 성과물과 그 기간이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대중음악씬의 '가능성 1호' 뮤지션
Tom Jones - Reloaded
'한물 갔지' 정도로 취급받던 탐 존스에게 '느닷 없는' 영국 차트 1위의 영광을 안겨준, 그야말로 '히트'(차트 성공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뒷통수를 쳤다는 점에서) 앨범. 쓰리독 나잇, 파인 영 카니발스 등 올드팝/로큰롤이 인기 후배 뮤지션들의 존경어린 세션과 탐 존스의 힘있고 남성적인 보컬로 멋들어지게 커버되고 있다 (미국과 비교하자면 산타나의 Supernatural?) 스테레오포닉스, 밴 모리슨, 프리텐더스, 포티스헤드(가장 의외의 인물임),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카디건스 등이 참여. 그중 디바인 코미디는 탐 존스와 함께 포티스헤드의 소름끼치는 고음보컬 히트곡 All mine을 커버. 정말 재밌을 뿐만 아니라, 무그 쿡북 이후로 가장 들을만한 커버 앨범이다. 물론 진지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길 조차 주지 않겠지만.
Ute Lemper - Punishing Kiss
독일 출신의 고혹적인(사실 이 한마디 만으로 그녀의 음악, 이미지 모두다 표현된다) 디바 Ute Lemper의 2000년 근작. 오페라적인 보컬에 뮤지컬 튠의(뮤지컬 배우 출신이다) 팝송들은 그녀만의 전매특허. 이 Punishing Kiss 앨범의 프로듀서는 닐 해넌의 영원한 아이돌 스콧 워커이며, 닐 해넌은 백업보컬 수준이 아니라 Tango Ballad, Split 두곡에서 듀엣으로 메인 보컬을 맡아 그녀에게 뒤지지 않는 가창력을 과시한다. 닐 해넌 보컬 스타일 중 가장 이색적이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한마디 더, 닐 해넌이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Ute Lemper 의 유일한 라이벌이 되었을 것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가 절대 아님.
독일 출신이라는게 외모부터 표가 나는 고혹적인 미모의 여가수 Ute Lemper
Smiths is Dead
당시 주목받기 시작하던 영국 밴드들이 모인 스미스 트리뷰트. 제목은 누구나 짐작하다시피 스미스의 대표작 Queen Is Dead 앨범제목의 인용(패러디?)이고, 스미스란 밴드의 트리뷰트이면서 Queen is Dead 앨범 자체의 트리뷰트 이기도 하다(수록곡이 Queen Is Dead 와 일치한다). 부 래들리스, 빌리 브랙, 플라시보(당시에는 완전 신인으로 국내에도 거의 안 알려진 상태였음) 등이 참여. 수퍼그래스의 곡이 특히 돋보인다. 디바인 코미디는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을 커버.
Twentieth Century Blues: The Songs of Noel Coward
50년대 스탠다드 팝 신을 대표했던 뮤지션중 하나인 노엘 코워드의 트리뷰트. 그래서 디바인 코미디의 참여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텍사스, 펫 샵 보이스, 브라이언 페리, 엘튼 존, 스팅, 스웨이드 등 나이에 상관없는 호화출연진이 돋보인다.
현재 모든 영국 인디팝/록의 전신. 스미스. 사진은 모리씨의 2001년 투어중에서.
아이 : 엥... 닐 아저씨는 책 말구 또 뭐뭐 좋아해여?
어른 : 물론... 좋아하는 음반도 많겠지?
어른 : 가르쳐줄까?
아이 : 그럼 안 가르쳐 주실거예여?
어른 : 으으...
Neil Hannon's favourite albums.
1. THE APHEX TWIN - Selected Ambient Works Volume 1, 2.
2. E.L.O.- Out Of The Blue
3. RAVEL- String Quartet In F
4. MY BLOODY VALENTINE - Loveless
5. THE PET SHOP BOYS- Very
6. HENRY MANCHINI- Breakfast At Tiffany's
7. THE BEACH BOYS - Pet Sounds
8. KRAFTWERK - The Man Machine
9. DORIS DAY - Calamity Jane
10. R.E.M.- Green.
에이펙스 트윈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연상이 되지만 닐 해넌은 댄스음악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 ELO 는 닐 해넌이 가장 존경하던 밴드중 하나. Out of the blue 는 국내에서 ELO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히트곡임. 디바인 코미디가 서포트로 뛰어준적 있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최고 명반이자 슈게이징을 거론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일반적인' 마스터피스(고로 찾아보면 더 나온다는 얘기) 펫 샵 보이스의 후기 대표작. Go West는 90년대의 가장 창조적이고 뛰어난 리메이크 곡. 닐 해넌은 클래식 애호가임 (헨리 멘시니) 비치 보이스의 최고명반이자 브라이언 윌슨이 비틀즈에 대항하기 위해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짜내어 만든 스튜디오 레코딩의 결정체. 이 앨범은 특히 현존하는 대표적인 브릿팝 뮤지션들이 자신의 애청앨범으로 비틀즈의 앨범보다 이 앨범을 더 많이 꼽는다(예 -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 닐 해넌도 예외가 아니었던 듯. 일렉트로닉 씬의 선구자이며, 크라우트 록을 얘기할 때 항상 첫손에 꼽히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명반. 실험적이지만 곳곳에 유머가 빛난다. 디바인 코미디는 크라프트베르크의 Radioactivity를 커버하여 싱글 B-side에 실은 적이 있음 (A Short Album About Love 국내반에 실림) 알이엠의 메이저 레이블 데뷔앨범. Orange Crush, Pop Song 89 등의 명곡들을 실고 있는 준작. 재작년에 디바인 코미디는 알이엠의 더블린 공연에서 서포트를 맡음으로서 필생의 소원을 푼 바 있다.
어른 : 자, 모든 이야기가 끝났어. 이제 난 가야겠구나. 그전에 너한테 선물을 주지. 자 '해리 포터' 어때?
아이 : 좋아여, 감사함다. 근데여... 해리 포터도 좋지만 닐 해넌 아저씨의 비밀의 역사책도 가지면 안되여?
어른 : 응... 그래, 줄까...?
아이 : (어른이 책을 주기 전에 휙 채간다) 갈게여!!
(아이, 후다닥 뛰어간다)
어른 : 아... 아니...! 저 녀석이...!!
콜드플레이, 트래비스, 라디오헤드, 플라시보... 그리고... 그리고... 디바인 코미디. 여러분의 영국팝/록의 페이보릿 리스트에 포함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포함이 되지 않더라도, 뭐, 좋습니다. 음악에 강요란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마디. 디바인 코미디를 추가하신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실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닐 해넌이란 이 사람, 참 대단합니다.
글/ 홍수경 (hyangmusic.com)
추신 ; 이글을 쓰기 전까지 Regeneration 앨범을 듣지 않았었습니다. 이 앨범에 대해 하도 후지다는 소문이 팽배해서. 하지만 역시,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