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날 독장수가 독을 지게에 지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나무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 때 소경 거지가 산을 넘으려고 지팡이를 짚고 더듬거리며 오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독장수가 소경한테 물었다.
“이보시오, 무엇이 좋아서 그렇게 싱글거리면서 어디로 가는가?”
소경이 대답했다.
“요 산 너머 김 첨지네 회갑잔치에 가는 중이라네.”
“그런가? 그 환갑잔치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네만 무슨 일로 그렇게 싱글벙글거리는가?
자네는 예쁜 것 한 번 본 적이 없을 텐데 웃을 만큼 좋은 일이 무엇이 있는가?”
소경이 지팡이 끝에 엽전이 한 개 끼어 있는 것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내가 지팡이를 짚고 오다가 엽전 한 냥이 지팡이 끝에 끼었다네. 이처럼 기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 그 한 냥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엽전 한 냥이면 그 때 쌀 한 짝 값이었다. 소경으로서는 일생에 한 번도 만져 볼 수 없는 돈인 것이다.
소경한데 아무도 돈으로 동냥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 말해 보게. 그 한 냥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것으로 병아리를 사려고 하네. 암탉과 수탉을 사서 키우면 그 놈들이 자라서 알을 낳고 병아리를 낳아서 그 병아리들이 크면 그것을 팔아서 돼지를 살 것이네. 돼지를 키워서 새끼를 많이 낳으면 그것을 키워서 팔아서 송아지를 살 것이네. 그 송아지를 키워서 팔아서 돈을 많이 벌면 집을 지을 것이네. 집을 짓고 난 다음에는 장가를 가려고 하네.”
“자네 주제에 시집 올 여자가 있기는 하겠는가?”
“돈만 있으면 시집 올 년들이 많이 있다네.”
“그래? 마누라를 얻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어찌 마누라만 얻겠는가? 첩도 얻어야지.”
“나도 첩을 얻었다가 혼이 났다네. 첩은 얻지 말게.”
“무슨 소리. 남자 하나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쌈질을 한다면 남자가 그만큼 잘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맞는 말인 것 같네. 그런데 두 여자가 서로 싸우면 집안이 시끄럽지 않겠는가? 내 생각이 어떤가?”
“여자들이 서로 싸우면 왜 싸우느냐 하고 호통을 치며 지팡이로 마구 패 주겠네.”
소경 거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지팡이를 힘껏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소경이 휘두르는 지팡이가 지게 작대기를 건드려 지게가 넘어지면서 독이 모두 와장창 깨져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독이 다 깨져 버렸으니 자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독 값을 물어주겠네. 얼마인가?”
“한 냥이네.”
“자 여기 있네. 가져가시게.”
이렇게 해서 소경거지의 꿈이 한 순간에 깨어져 버렸다.
출처 : 최진규 약초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