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화
Coevolution 共同进化
공진화(共進化)는 상호관계가 있는 둘 이상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는 진화다. 진화(進化)는 생물, 사회, 자연, 사고, 감정 등이 환경에 따라 발전, 분화,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물과 자연의 발전적 변화를 진화라고 하며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 진화의 핵심이다. 공진화(coevolution)는 라틴어 ‘함께’라는 뜻의 co와 ‘펼친다’라는 뜻의 evolūtiō가 결합한 명사로, ‘함께 펼쳐지면서 앞으로 발전한다’라는 뜻이다. 공진화는 주로 생물에서 쓰는 용어지만 사회, 과학, 기술, 지식, 정치, 경제 등에서도 쓴다. 생물의 공진화는 약 38억 년 전 단세포생물의 출현과 10억 년 전 다세포생물의 출현 이후 계속되었던 진화의 일종이다. 광의의 공진화는 거의 모든 생물의 진화를 의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생물은 생태환경에 적응하고 주변 생물과 관계하면서 함께 진화했기 때문이다.
공진화는 협의의 의미에서 주로 쓰인다. 그 이유는 진화의 과정, 진화의 결과, 상호관계, 적응과 변이 등에서 공진화의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관찰과 체계화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화석, 생물의 구조, 상호 영향, 결과 유추 등으로 공진화를 입증할 수 있다. 처음 공진화를 체계화한 것은 다윈이다. 다윈은 공진화라는 개념을 쓰지는 않았지만 [종의 기원](1859)에서 식물과 곤충이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다는 것을 밝혔다. 다윈은 마다가르카스(Madagascar)에서 30cm 정도의 긴 꽃주머니와 꿀샘을 가진 난을 보고 꽃가루 전파에 필요한 곤충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다윈이 죽은 40년 후에 실제로 긴 주둥이를 가진 박각시나방이 발견되었다. 이 난은 다윈난[(Angraecum sesquipedale)으로 명명되어 공진화의 상징적 식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각시나방은 꿀을 빨려고 주둥이가 길게 진화하고, 다윈난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꿀샘의 길이가 길게 진화했다. 식물인 다윈난과 곤충인 박각시나방은 생존하기 위해서 상호이익이 되는 쪽으로 공진화한 것이다. 이후 진화의 여러 가지 원리가 밝혀지면서 공진화의 개념이 완성되었다. 공진화를 처음 개념화하고 이론화한 것은 얼리히(P.R. Ehrlich)와 라벤(P.H. Raven)이다. 이들은 1964년 과학 저널 [진화(Evolution)]에 둘 이상의 종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것을 공진화(coevolution, 共進化)라고 명명하고, 나비와 식물의 관계를 밝혀서 공진화를 체계적으로 증명했다. 한편 진화생물학자 리 반 발렌(Leigh Van Valen)은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s Hypothesis)을 제기하고 공진화의 군비경쟁에서 어느 쪽도 승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붉은 여왕 가설은 경쟁 상대보다 빠르게 진화할 때 일어나는 적자생존의 원리다.
모든 생물은 생태환경에 적응하고 경쟁 상대보다 빠르게 진화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적자생존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리고 생물은 끊임없이 진화 경쟁을 하지만 한쪽이 승리할 수 없다. 이 이론에서 보여주듯이 생물은 환경과 경쟁자로부터 선택압력(selective pressure) 또는 진화압력(Evolutionary pressure)을 받는다. 진화압력이란, 생물은 생존의 위기를 감지하면 진화의 압력을 받아서 생태환경에 맞게 진화한다는 것이다. 생태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는 것도 공진화의 예다. 생물은 적응하고 변이하여 자연선택되지 못하면 자연도태한다. 공진화에는 속씨식물과 곤충의 관계처럼 서로 이익이 되는 쪽으로 진화하는 공생(Mutualism), 바이러스처럼 진화압력으로 진화하는 숙주와 기생자(Host and parasite)의 진화, 잡아먹는 사자와 잡아 먹히는 얼룩말이 적대적으로 발전하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진화 등이 있다.
다윈의 난에서 보듯이 식물과 나방의 두 종만 공진화하지 않는다. 하나의 기주(host, 寄主) 종과 여러 상대 종의 공진화, 여러 기주 종과 여러 상대 종의 공진화도 있다. 이것을 다양한 종의 확산공진화(diffuse coevolution)라고 한다. 한편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거북이 종이지만 다르게 변이한 것을 보았듯이, 공진화 역시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같은 유전자를 가졌지만,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거나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는 공진화 양상을 지리적 모자이크(Geographic Mosaic)로 표시할 수 있다. 공진화와 반대되는 개념은 공멸종(Coextinction)이다. 공멸종은 핵심종이 쇠퇴하면서 상호관계에 있는 다른 종이 함께 멸종하는 것이다. 생물의 공진화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의 관계에서 보듯이 서로 공존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원리다. 공진화는 자연선택이 아닌 인공 진화(artificial evolution)에서도 나타난다.★(김승환)
*참고문헌 Richard Dawkins, The Blind Watchmaker, (Norton & Company, 1986).
*참조 <DNA/디옥시리보 핵산>, <결정론>, <돌연변이>, <밈>,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인공지능(AI)>, <자연선택>, <적자생존>, <중립진화>, <진화>, <진화론>, <진화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