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을 살아가는 후손들은 도시 중심 거주와 문화 환경변화, 종교관 차이 등에 따라 제향을 봉행하지 않는 사례가 흔하다. 또 여러 곳의 제향을 1회로 봉행하는 합제와 묘소까지 이동하는 불편으로 편리한 장소에 공간을 마련하여 봉행하는 등 제향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밖에 추석 前에 실시하는 벌초를 후손들이 하지 않고 타인에게 의뢰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작금의 문화에서는 선조들의 묘소가 잊혀져가고 있어 묘소 위치를 정확히 알기 위해 2018년부터 장천재 제향(음 10월 15일)을 마치고 본향 종친들과 선조들의 묘소 답사 행사를 해오고있다.
제1차는 2018년 11월 21일 부산면 호계리 월만에 위치한 21세 운암공(德寬) 묘역, 관산읍 내에 위치한 판사공(德弘), 청계공(德毅), 안항공(德厚), 22세 청금공(廷勳)의 묘역을 답사하였다.
제2차는 2019년 11월 12일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외나로도에 위치한 20세 훈도공(魴) 묘소와 포두면 옥강리 야산에 위치한 이하의 후손 3기 묘역, 장흥군 장평면 율곡마을 뒤 야산에 위치한 20세 양곡공(鱣) 묘소를 답사했었다.
제3차는 2020년 12월 1일(화) 08:30, 방촌유물전시관에 모여 승용차 7대에 나누어 타고 용산면 상금마을 뒤 남은동 복흥봉 아래에 위치한 16세 성균생원공(自恭)의 배 수원백씨 묘역, 운주리 봉황마을 야산에 위치한 19세 통선랑공(晉秀) 묘소, 용산면 녹원리 장주원에 위치한 22세 성균진사 국천공(廷獻)의 묘역 등 3곳을 22명 종친이 참여 답사하였기에 소개한다.
1.16세 성균생원공(自恭) 배 의인(宜人) 수원백씨 묘역
장흥위문 16세 선조 중, 유일하게 수원백씨의 묘소가 전해오고 있다. 좌측에는 아들 은동공(17세 宗立), 우측에는 장손 서(18세 瑞)의 묘소가 위치한다. 아래에는 후손 7기의 묘소가 위치한다. 참배시 현 장흥위씨 도문회장 덕산(계춘) 종친이 헌작하였다.
묘소 앞 비석의 비문은 후손 통훈대부전사간원정언 종겸(鍾謙) 삼가 기록(謹誌)하다. 후손 명원(明源) 삼가 새기(謹銘)다. 북파(北派) 21대 종손 도환(道煥), 남파(南派) 18대손 봉환(33세 琫煥 1872~1927) 삼가 세우(謹竪)다.
비석을 세울 때 관북파 후손의 이름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 관북파에서 주도하였음이 짐작된다. 남파의 18대손 봉환은 현재 계산리에서 거주하면서 사월재(沙月齋)를 관리하는 찬복 종친의 조부가 된다.
비문에는 懷州君東出後千三百七十六年己未四月二十四日에 세웠다고 새겼다. 이 내용은 지금에서는 해석이 성립될 수 없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대에는 어떻게 인식하고 기록하였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비석은 1919년(己未) 4월 24일 세웠다.
비문을 기록한 종겸(34세 鍾謙, 1854~ ?)은 1915년 편찬한 관북 을묘보와 1999년 편찬한 기묘대동보 6권에서는 公의 인명을 확인할 수 없다. 누락됨이 추정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생년은 1854년, 본관 長興, 거주지 咸興, 부 응철(應喆), 조부 광달(光達), 증조부 상조(尙祖), 외조부 김치정(金致禎)으로 확인된다. 국조방목에 의하면 父는 應喆, 6대조 定相으로 1875년(乙亥 고종12) 별시(別試) 병과(丙科) 1위로 문과(文科) 급제가 확인된다. 사헌부지평 등 다수의 관직을 지냈다.
2.19세 통선랑공(晉秀 1480~ 1564)의 묘소
묘소가 위치한 지형은 풍수설에 의하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묘소에 비석 등 일체의 석물을 시설하지 않았다. 참배시 현 장흥향교 전교 금봉(인환) 종친이 헌작하였다.
묘소 아래에는 1937년(丁丑) 오헌공(啓龍 1870~1948)의 주도로 창건한 4칸의 묘각 운곡재(雲谷齋)가 위치한다.
매년 음 10월 11일 장천문회 주관으로 묘전에서 제향을 봉행해오다가 1996년(丙子) 장천재에 위치한 배 광산김씨 묘소 옆에 단비를 세워 1997년(丁丑)부터 음 10월 15일 합제하여 봉행하고 있다. 묘각 운곡재는 방치해오다가 2005년 타인에게 매매되었으나, 아직까지 철거하지 않고 방치되어 마음이 아팠다.
3.22세 성균진사 국천공(廷獻 1570~1643) 묘역
용산면 녹원리 연화봉 장주원(관재골) 일대에는 청계공파종중 소유 8정 가량의 임야가 있다. 국천공 묘역에는 차자 23세 연봉공(東葵), 24세 통덕랑공(翊武)의 묘소가 위치한다.
지난날 음 10월 6일 묘전에서 국천공 등 5위 제향을 봉행했었다.
국천공 묘표는 1831년(辛卯) 가선대부 사간원대사 오한원(吳翰源 1750~?)이 비문을 짓(撰)고, 5대 족손 도근(道根 1773~?) 쓰(書)다. 참배시 아산(성태) 종친이 헌작하였다.
장주원 곳곳에는 24세 익신(翊信)공, 익중(翊中)공, 25세 명좌(命佐)공, 명삼(命三)공, 26세 호은공(相履 1691~1756), 28세 옥와공(榮百 1770~1789) 등 31세 후손까지 다수의 묘소가 위치하고 있다.
묘역 근처에는 묘각 연산재(蓮山齋)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3칸의 묘각은 1948년(戊子) 국천공의 10대손 계은공(大良 1884~1951)의 주도로 창건하였다. 매년 음 10월 6일 묘전 제향에서 묘각으로 사용해오다가 2004년 3월 관산읍 죽교리 양춘재(陽春齋) 옆에 위치한 청계공(德毅) 묘역 한쪽에 국천공(정헌), 연봉공(동규), 익무공, 익중공, 명삼공 등 5위 단비를 세워 음 10월 5일 합제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연산재의 액호는 극암(克菴) 이기윤(1891~1971) 선생이 썼다.
연산재 상량문은 1948년 9월 27일 丁亥 10대손 대량(大良) 삼가 기록(謹誌)하다. 2점의 편액은 빠른 시일에 떼어 방촌유물전시관에 소장할 예정이다.
3곳의 묘소 답사를 마치고 용산면 소재지 향미식당에서 청계공종회(회장 위성태)의 협찬으로 육해 비빔밥 식사를 하였다. 이 자리에서 참석 종친들은 문중발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첫째 현재 부동산 이전등기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에 따라 기간(2020년 8월 5일~2022년 8월 4일까지) 내, 도문회와 장천문회의 소유 전답에 대한 등기부상의 유고자(별세 등), 고령자의 명(名)을 갱신이 필요하다.
둘째 방촌유물관전시관 소장 전시 및 종·문중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선대 유고문집을 정기적으로 국역 간행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두 내용은 추후 도문회 운영위원회, 장천문회 총회에서 상세히 논의하기로 하고 집행부에 의견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2021년 선조 묘소 답사는 장흥읍 평화리 다전등 뒤 18세 죽남공(由貞) 묘소 등 행원문중 선조 묘소를 답사하기로 광고하고 행사를 마쳤다.
제3차 묘소 답사 참석자 : 위이량, 두환, 재원, 성태, 계춘, 수환, 철량, 인환, 종삼, 모량, 성담, 홍환, 근환, 성호, 성균, 찬복, 승복, 일환, 성석, 등, 자량, 성록 등 2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