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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론도, 1938, 캔버스에 유채, 60.7x72.6㎝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406
마음 챙기기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홍라희 100억 준대도 못 샀다…김환기 ‘우주’와 어긋난 인연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406
1938년 그린 이 그림은 등록문화재가 됐습니다.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곡을 뜻하는 ‘론도’라는 제목처럼 완만한 곡선과 색분할로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피아노 4중주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이제는 한국 미술품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의 주인공이 돼버렸죠.
‘론도’는 김환기(1913~74)의 시작,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입니다.
김환기, 론도, 1938, 캔버스에 유채, 60.7x72.6㎝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마치 음악이 들리는 듯한 ‘론도’에서 시작해 달항아리 영롱한 반추상 회화를 거쳐 화면 전체가 점점이 아롱진 만년의 전면 점화까지. 61세 짧은 생애, 김환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랐던” 그의 삶과 그림을 따라가 봅니다.
지난 설문에서 많은 독자분이 “김환기의 생애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시기별로 달라진 화풍이 궁금하다” “지난해 호암미술관 회고전에 나온 많은 작품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15회, 넉 달간 이어진 연재의 마지막 주인공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입니다. 그동안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406
1. 벽화의 운명, ‘우주’의 운명
벽화 완출(完出)! 나대로의 그림 그대로 밀고 가자 (1960년 1월 25일)
폭 6m 대작을 완성한 날, 마흔일곱 화가가 수첩에 적은 한 줄이다. 김환기의 유일한 벽화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다. 과정이 지난했기에 완성의 희열은 더 컸다. “11시에서 17시30분까지 달걀 두 개 먹고 제작”한 날도, “어제도 오늘도 제작. 죽어버리고 싶은 날”도 있었다. 홍대 교수 시절이었다.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60, 캔버스에 유채, 281.5x567㎝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여인들이 인 달항아리도, 드러낸 가슴도, 얼굴도, 입술도 동그랗다. 꽃과 새를 파는 아가씨는 무릎을 세운 채 쪼그려 앉았다. 항아리와 여인과 나무와 숭례문부터 지그시 눈 감은 사슴까지, 좋아하는 것들은 다 그렸다. 조각보처럼 가른 연회색·연분홍 배경이 따뜻하다. 서명 없이도 분명한 김환기 그림이다.
지난해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한 점 하늘_김환기'에 출품된 '여인들과 항아리'. 그림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뉴스1
벽화는 삼호방직 정재호 회장이 서울 필동에 자택을 신축하면서 주문했다. 그 집 1층과 2층 난간 사이 벽에 20년 넘게 걸렸다. 삼호방직은 대전방직·조선방직을 불하받아 자유당 시절 최대의 방직 재벌이 됐다. 그러나 정재호는 1973년 박정희 정권의 반사회적 기업 명단에 포함되면서 몰락한다. 기업자금을 빼돌려 사채놀이했다는 거였다.
글 싣는 순서
1. 벽화의 운명, ‘우주’의 운명 (읽는시간 100초)
2. 점화의 탄생 (여기까지 180초)
3.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280초)
🎨남은 이야기. “그 그림 안 팝니다”… 가장 비싼 한국 미술품 Top10 (320초)
회사가 기울면서 벽화도 매물로 나왔다. 1980년대 초, 4억원 넘는 가격에 이건희 회장이 인수한다. 당시 거래를 중개한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은 “작품의 규모와 내용이 뛰어나 이 회장은 사진만 보고도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고 돌아봤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림은 1985년 서소문 중앙일보 사옥 로비에 걸렸다. 그러나 같은 건물의 호암갤러리에 전시된 다른 작품을 압도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용인 수장고로 들어갔다. 다시 세상에 나온 건 2021년 이건희컬렉션으로 기증되면서다.
2019년 11월 홍콩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 앞서 전시 중인 '우주'(Universe 5-IV-71 #200). 사진 Christie's
또 다른 대작 ‘5-IV-71#200’, ‘우주’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그림을 그릴 때도 김환기는 메모를 빼놓지 않았다. 먼저 김환기의 점화는 제목에 제작 정보가 있다. ‘우주’의 ‘5-IV-71#200’은 ‘1971년 4월 5일부터 그리기 시작한 200번째 작품’을 뜻한다. '우주'를 그릴 때 김환기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렇게 일기에 남겼다.
3월 23일. 청명. 점화 계속. 재미나는 일을 생각해 냈다. 실(絲)로 악기처럼 만든다.
3월 31일. 재목을 두 번 날라서 진종일 50″×100″ 캔버스틀 두 개 만들다. 그나마 미완성. 이젠 사다 쓸 것을 생각하다.
4월 5일. 100″×50″ 시작
4월 10일. 100″×50″ 완성
4월 11일. 100″×50″ 시작
4월 13일. 100″×50″ 완성. 전자와 후자. 연결시켜 한 폭 작품이 된다. 후자가 좌편.
캔버스 두 폭을 연결해 음악이 흐르는 듯한 그림으로 만들겠다고 착안한 뒤 틀을 짜고 첫 화면은 5일 만에, 두 번째는 3일 만에 완성해 연결했다. 고안과 준비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점을 찍기 시작하자 착착 진행됐다. 푸른 전면 점화 두 점이 한 세트로, 김환기 전면 점화 중 가장 크다. 추상에 대한 열정을 집대성한 절정기 작품이다.
김환기의 '우주'가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8800만 홍콩달러(당시 환율로 약 132억원)에 낙찰됐다. 사진 Christie's
그림은 2019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세일에서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8800만 홍콩달러(당시 환율로 약 132억원)에 낙찰됐다. 한국 미술품의 경매가가 100억원을 넘은 것도 ‘우주’가 처음이다. 거액을 주고 ‘우주’를 사들인 이가 누구일까 관심이 쏠렸다. 한국 미술사의 중요 작품이 해외 소장가에게 넘어간 건 아닐까 하는 우려들이 컸다. 경매사가 낙찰자의 신원을 비밀에 부치는 것을 이용해 "내가 샀다"고 거짓 홍보하는 이까지 나왔다. 3년 뒤에야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이 자신이 ‘의문의 낙찰자’였음을 밝히고, 서울 대치동에 새로 마련한 S2A 갤러리에서 ‘우주’를 공개했다.
뉴욕 김정준 박사 거실의 김환기. 거실에 걸기엔 너무 컸던 '우주'는 가로로 뉘여 걸렸다. 사진 Christie's
그림은 원래 뉴욕 시절 주치의나 다름없이 가까운 사이였던 의학박사 김정준(1928~2021)씨 부부가 간직했다. 김씨는 2004년부터 환기미술관에 이 그림의 위탁 관리를 맡겼다. ‘우주’는 일찌감치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사려던 그림이었다. 2019년 경매에 나오기 한참 전에 100억원, 가격까지 합의를 마쳤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김 박사에 앞서 아내 전재금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의 일이다. 전씨는 “환기미술관에 기증할 그림이다. 이렇게 팔면 마담 환기(김향안)를 뵐 낯이 없다”며 반대했다. 이후 고령의 김씨와 세 자녀가 판매를 결정하면서 경매에 나오게 됐다. 이처럼 최고의 컬렉터에게도 인연이 닿지 못한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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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점화의 탄생
추상이라는 서구적 형식의 틀로도 자기만의 한국적인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김환기가 평생을 가지고 간 질문이다. 직접 화랑을 운영할 정도로 달항아리에 빠져 있던 그가 백자를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1956년 파리에 가서다. 영향을 받을까 봐 루브르박물관관도 안 가던 그는 파리에서 ‘나만의 노래’를 찾았다. 그러고도 50세에 뉴욕으로 간다. 생활고로 넥타이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다 버리고 새로운 형식을 실험했다.
아침부터 백설이 분분…. 종일 그림 그리다. 점화(點畵)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
(1965년 1월 2일)
뉴욕에서 맞은 첫 새해엔 찾아오는 이도, 찾을 이도 없이 종일 그림만 그린 모양이다. 그리고 9일 뒤, 첫 점화의 완성 소식을 전한다. “간신히 점화 ‘겨울의 새벽별’을 완성. 완성의 쾌감. 예술은 절박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겨울의 새벽별’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찾을 수 없지만 초기 점화는 창백한 하늘에 별처럼, 도시의 불빛처럼 간간이 점을 찍은 모습이었을 거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덜어내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오로지 무수한 점만 남긴다.
초기 점화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새벽 #3’(1964~65). 국립현대미술관이 2016년 13억원에 사들인 작품이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값비싸게 산 그림이다.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의 점은 그리움의 표상이었다. “죽어간 사람, 살아 있는 사람, 흐르는 강, 내가 오르던 산, 돌, 풀 포기, 꽃잎… 실로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점을 찍어 간다”고 편지에 썼다. 점 찍기 전에 면밀한 설계 드로잉도 했다. 손바닥만 한 수첩을 항상 들고 다니며 짬짬이 점화 드로잉을 해뒀다. 즉흥적으로 찍는 점이 아니라 큰 화면에 그리기 전에 미리 ‘설계도’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뉴욕 시절 김환기의 수첩. “왼편에서 가고 바른편에서 오고 서로가 덮인다”는 설명도 적었다. 사진 독자
제작 과정도 그리 단순하진 않았다. 일단 화포 전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하나에 사각형을 두른다. 그리고 여백을 채운다. 오일에 묽게 희석한 물감으로 두 번, 세 번씩 점을 에워싸니 면에 스며든 엷은 색들이 겹치면서 오묘한 색을 띠게 된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 손수 나무를 톱질해 틀을 짜 두꺼운 면포를 맨 뒤 적당량의 아교를 도포하는 준비 과정을 거친다.
산울림 19-Ⅱ-73#307, 1973, 캔버스에 유채, 264x213㎝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건희컬렉션의 ‘산울림’도 그랬다. 1973년 2월 19일 제작을 시작한 307번째 그림이다. 이런 메모를 남겼다.
근 20일 만에 #307 끝내다. 이번 작품처럼 고된 적이 없다. 종일 안개비 내리다. (1973년 3월 11일)
김환기 점화의 작품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예산 범위 내에서 구매가 어려운 수준이 됐는데, 이건희컬렉션으로 전면점화 대작을 한 점 소장하게 됐다.
3.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세상을 뜨기 한 달 전 김환기는 이렇게 적었다. 그 무한한 꿈을 현실로 만든 여성이 있다. 바로 화가 구본웅의 이모이자 시인 이상(1910~37)의 아내 변동림(1916~2004).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니던 이 자그마한 여성에게 반해버린 이상의 고백은 이랬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406
우리 함께 죽을까? 아니면 먼 데로 달아날까?
결혼 후 넉 달 만에 도쿄로 가버린 폐병 환자 이상은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숨졌다. “센비키야(千疋屋)의 멜론이 먹고 싶다”, 유언 같은 그 말에 서둘러 멜론을 사다 마지막을 지킨 때가 스물한 살, 이상은 27세였다.
전남 신안 안좌도의 김환기 생가. '환기 블루'의 하늘에 달항아리 닮은 구름이 떠 있다. 천석꾼집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김환기는 1942년 부친이 세상을 뜨자 소작농들에게 땅을 나눠준다. 신안=권근영 기자
천석꾼 지주의 외아들이던 김환기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37년 귀국해 부모가 맺어준 여자와 결혼해 딸 셋을 낳는다. 1942년 부친이 세상을 뜨자 고향인 전남 신안군 기좌면(현 안좌면) 소작농들의 빚을 탕감해 주는 등 재산을 정리하고, 아내와도 이혼한다.
김환기가 김향안에게 보낸 연애 편지. 자기 얼굴을 그려 넣고는 짐짓 "이 수염 난 친구 누군줄 아나? 아주 호남(好男)이시지?"라고 썼다. 사진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변동림을 만나 결혼한 건 1944년. 양쪽 집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이었다. 집을 나온 변동림은 김환기의 아호 향안(鄕岸)으로 살았다. 결혼식엔 가족들 대신 문화계가 나섰다. 시인 정지용이 사회를 보고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주례를 섰다. 신혼집은 화가이자 평론가 김용준이 살던 성북동의 노시산방, 수화(樹話) 김환기와 향안의 집이라 해 수향산방(樹鄕山房)으로 부른 이곳에서 두 사람은 10년을 살았다.
1958년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의 김환기와 김향안. 사진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서울대 교수에 홍대 교수까지 지냈지만, 김환기는 “내 그림이 세계에서 어디쯤 있는지 알고 싶다”며 미술의 본향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불어를 배운 것도, 해외여행도 어렵던 1955년에 비자를 받아온 것도, 먼저 가서 아틀리에를 얻고 전시를 주선해 둔 것도 김향안이었다. 김환기는 1년 뒤에 가서 그림만 그리면 됐다. 거기서 보낸 3년 동안 김환기가 열중한 것은 달항아리 그리기였다.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석을 위해 떠나는 김환기(가운데 꽃다발 든 사람).
그의 오른쪽으로 부인 김향안, 맏사위이자 제자 윤형근, 맏딸 김영숙.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돌아와 홍대 미대 학장, 한국미술협회장도 지냈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뉴욕에 건너갔다. 이번에는 김환기가 먼저였다. 김향안은 1년 뒤 뒤따랐다. “하루 열여섯 시간 서서 일하고, 침실에 들어가면 그냥 죽어버린다”던 김환기의 곁을 지켰다.
김환기의 마지막 그림 '17-VI-74 #337'(86x121.5㎝). 사진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과로를 거듭하던 김환기는 61세, 너무 이른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뜬다. 디스크 수술 다음 날 병원에서 낙상하면서다. 별같은 점만 내내 찍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3년 뒤, 김향안은 이렇게 썼다.
5월의 사랑, 꿈, 아름다운 자연을 같이 나눌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던가.
한 사람이 가고 나니 5월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별들은 많으나 사랑할 수 있는 별은 하나밖에 없다. (1977년 5월 20일)
1989년 김환기 전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를 썼다. 그리고 1992년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개관한다. 김환기의 마지막 꿈이었다. 김향안은 미술관 옆에 수향산방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2004년 뉴욕에서 영면, 김환기의 묘소 옆에 묻혔다.
🎨남은 이야기. “그 그림 안 팝니다”…가장 비싼 한국 미술품 Top10
나는 그림을 팔지 않기로 했다. 팔리지가 않으니까 안 팔기로 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안 팔기로 작정했다. (1955년 3월)
어차피 팔리지 않을 그림이니 전람회장에서 그림 판다고 조바심내지 않고, 지인들에게 그림 사달라 민폐 끼치지 않겠다는 얘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호기를 부리다 보니 작업실에 팔리지 않은 그림만 쌓여 간다고 김환기는 덧붙였다. 파리 유학을 앞두고 돈이 필요했을 시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국내외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린 한국 미술품을 꼽아봤다. 1위가 ‘우주‘, 백자 두 점을 빼고 나면 10위권에 든 그림은 전부 김환기의 것이다. 1972년 2월 진종일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시작했다는 붉은 점화도, 라디오로 피카소의 부음을 듣고 적막해 하면서 그리던 ‘고요’도 여기에 포함됐다.
2018년 홍콩 경매에서 85억여원에 팔린 김환기의 ‘3-Ⅱ-72 #220’. 그리기 시작하던 날 "진종일 비.
100*80인치 시작. #220. Rose Matar"라고 일기에 썼다. 사진 서울옥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술품 경매의 상위권은 박수근 아니면 이중섭의 그림이었다. 작고 토속적인 이들의 그림에 비해 김환기는 현대적 감각이 빛나는 대작들을 남겼다. 작품 수도 3000여 점으로 많다.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해외 경매에서도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2010년대부터 김환기 전면 점화 가격이 치솟게 된다.
뉴욕 화실의 김환기. 내내 선 자세로 수 만 개의 점을 찍었다. 사진 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
비싸서 제일인 게 아니다. 단순하고도 숭고한 아름다움,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 미술의 흐름과 함께해서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그림 전시하는 게 민망해 짐짓 “그 그림은 안 팝니다” 하던 김환기가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김환기의 작품 및 사진 이미지의 저작권은 (재)환기재단ㆍ환기미술관에 있습니다. 이미지 다운로드 및 확대가 불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이건희·홍라희 마스터피스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에 “넥타이 풉시다” 컬렉터 이건희의 첫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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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는 무려 150억 썼다, 숨겨졌던 한국 최고가 그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1428
이건희에 이부진까지 모았다, 부녀 홀린 청도 ‘검은 숯덩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3292
“30㎜ 방탄 유리장 설치해라” 이병철이 가장 아낀 ‘주전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4900
이재용 방에 오래 걸려 있었다, ‘심플’ 장욱진의 낯선 이 그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7515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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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
보고 씁니다. 미술경영학 박사. 책 『완전한 이름』『나는 예술가다』『로이 리히텐슈타인』(번역)
youn**** 2024.05.13 18:05
그 동안 연재를 통해서 구상 추상을 망라하여 한국 미술의 새벽을 깨우고 꽃을 만개하게 키워 왔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여 주셔서 독자들의 안목을 넓혀 주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혀주신 권근영 기자님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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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m**** 2024.05.02 07:49
추상 미술은 어려운것 같습니다. 작가의 살아온 흔적과 내면의 고민을 고려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도 들여다 보아야 하는것 같아서 저에게는 꽤 어려운 분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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