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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 1-12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됨. 요약설교
1. 오늘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잔치할 때,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참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망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 파탄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난감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즉각 해결해주지 않고, 거절의 응답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이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모친 마리아의 믿음을 보시고,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인들이 50말이 들어가는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않고, 또 예수님을 무시하지도 않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하인들과 제자들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연회장은 신랑이 좋은 포도주를 숨겨놓았다가, 내놓은 줄 알고, 신랑을 칭찬하고 축복해주었습니다.
신랑의 결혼식은 갈수록 더욱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덕분이었습니다.
3.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영생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면, <개인적으로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가정적으로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4. 오늘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에, 차례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3절은 혼인 자리에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과 모친 마리아도 참석을 했다는 것입니다.
1절.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1. ‘사흘째 되던 날’이란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예수 믿게 한 사건(요한복음 1:43-51) 이후 사흘째를 가리킵니다.
2절.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1. ‘예수님의 제자들’이란 다섯 명의 제자들 안드레, 베드로, 요한, 빌립, 나다나엘을 가리킵니다.
3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1. 신랑은 예수님의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결혼식을 보통 일주일간 치룹니다.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데려다가 자기 집에서 손님들을 초청하고 일주일간 잔치를 벌입니다.
그 때, 신부집 손님들도 와서,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일주일간의 혼인 잔치가 잘 마쳐져야 신랑 신부는 참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일주일 중간에, 혼인을 방해하는 일이 생긴다든지, 신부 측 손님들이 기분 나빠서 결혼을 반대하면, 그 결혼을 깨지게 됩니다.
그런데, 손님을 대접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포도주였습니다.
포도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고유 풍속도 잔치상에 술이 빠지면, 그 잔치는 헛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술로 인한 싸움과 행패가 심하므로, 잔치 때라도 술을 내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래 성경 시대나 우리나라 고유 풍습은 잔치 때, 무엇보다도 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포도주가 잔치 중간에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니, 신랑으로서는 결혼이 중간에 깨져버릴 위험을 느끼며,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래서, 신랑은 곧바로 마리아에게 그 안타까움을 말했고, 마리아는 예수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여기 신랑은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마리아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2.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배울 것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도, 이처럼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온 우주의 창조주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주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천국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런 불행한 일이 우리 자신과 가정에 닥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일이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병도 들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도 생기고, 자녀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고, 심지어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의 은혜로우신 해결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무한히 느끼면서,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도, 기도하고, 성령님과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서, 감사함으로,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면서, 더욱 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2)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가서 기도하심으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 때문에, 더욱 겸손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 때문에, 더욱 높은 신앙과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큰 믿음을 가지시고, 더욱 큰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또, 한 가지 배울 점은, 우리 기독교는 ‘금욕주의 종교’(ascetic religion)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1) 과거에 우리나라의 전래 종교 가운데는, 여승이 되면, 결혼을 안 하는 비구니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 가운데는, 남자가 평생 결혼을 안 하는 신부가 되기도 하고, 처녀가 결혼을 안 하고 수녀가 되기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성경대로 결혼을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불행하게 될 혼인 잔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결혼하느냐, 결혼 같은 세속적인 일은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최초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결혼을 축복해주셨습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행복한 가정 이루는 것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돈을 들여서, 매년 ‘가정행복학교’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2)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에 범죄가 적어집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자녀들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경제도 부흥됩니다.
가정이 불행하고, 맨날 싸우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가정이 불행하면, 그 자녀가 어찌 올바로 크겠습니까?
가정이 불행하면, 어찌 사회 범죄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가정이 불행하면, 결국 나라 전체가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4. 성경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은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예레미야 33장 10절 말씀대로,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7장과 16장의 말씀처럼,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는 것>은 비참하고, 저주 받은 모습입니다.
(2)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표현한 곳들이 있습니다.
① 그 대표적인 성경이 에스겔 16장과 호세아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을,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호세아를 떠나서 행음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②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깨어진 결혼 관계의 회복으로 묘사했습니다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사야 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3) 이런 구약의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그 백성의 혼인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을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29.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묘사했습니다.
마태복음 9:15. 바리새인들은 금식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혼 축하 만찬에 초대받은 손님이기 때문에, 신랑 예수님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하나님의 나라는 임금님이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배설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천국은 마치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했습니다.
(4)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혼인잔치>하는 것으로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9.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21: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5.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노력합니다.
(1) 우리 기독교는 산속에 들어가서 사는 ‘염세주의자’( pessimism)가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는 결혼을 죄악시하는 ‘금욕주의자’(asceticism)가 아닙니다.
(2)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결혼과 가정을 행복하고, 거룩하게 꾸며가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성결은 세상을 떠나서 사는 ‘격리주의’가 아닙니다 (Sanctity is not singurality).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속을 떠난 물고기가 아니라, 물속에서도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입니다.
6.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수님이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셨으니까, 포도주는 먹어도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1)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를 음료수로 마셨지, 발효된 술은 엄격히 삼갔습니다.
예컨대, 제사장이나 나실인들은 포도주는커녕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어떤 것이든지 먹지 않았고, 예레미야 35장의 레갑인들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잠언 23장 31절에는,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장 18절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2) 특히,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세계에서 술 취하기를 가장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기독교 초기에서부터 교회에서는 <금주>와 <금연>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고 하면서, 그 핑계 대고, 술을 드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4-5절. 마리아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1. ‘여자여’(γύναι)란 말은 귀부인에게도 쓰인 용어였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이 마리아를 점잖게 꾸짖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여자여’란 호칭은 무례한 호칭도 아니고, 지극히 존경하는 호칭도 아니고, ‘분리’(disassociation)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Linguistic Key. p.222)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정에서 지극히 효도하고 순종하는 아들이었지만, 지금 공생애 사역을 시작해서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점잖게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시면서도 ‘여자여’라고 부르시고(요한복음 19:26), 하나님의 아들 된 신분으로서 육신적인 모친을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했습니다.
2. 마리아는 혼인집의 결혼이 깨어질 위기에 처하여,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못하였나이다>고, 일단 거절의 표시를 했습니다.
(1) 여기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여자여>(γύναι)라고 호칭한 것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고대 중동 지역에서는 <왕이 왕비에게> 이런 호칭을 썼습니다.
이 호칭은 ‘존칭어’도 아니고, ‘비하하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리아를 육신의 어머니로 존경해서 이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또한 마리아를 무시해서 이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한 인간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마리아는 어떤 종교(천주교)에서처럼, 예수님보다도 더 높은 분이 아닙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해야 하나님이 더 잘 들어주신다고 잘못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처럼 높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단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성모’로 존경을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3.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요지는 마리아도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4. 또한, 예수님은 마리아가 육신의 정에 매어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방해하지 못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시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장차 커다란 충격을 받지 않도록, 미리 공적인 관계를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5. 광주에 가면, 황 장로님이 계십니다.
황 장로님은 담임 목사님(황*준)이 동생입니다.
그런데도, 공석에서는 언제나 동생에게 <목사님>이라고 호칭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사석에서도 동생에게 목사님이라고 부르니까, 동생 목사님이 황송해서 <형님 사석에서는 그냥 동생이라고 낮추어서 불러주세요>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황 장로님은 <아닙니다. 사석에서 말을 낮추면 습관이 되어서, 공석에서도 잘못 말을 낮출 수 있으니, 평소에 말을 높이렵니다>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형님 장로님이 동생 목사님에게 언제나 높임말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공적인 사역을 하시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마리아는 죄인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6. 예수님이 <아직 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신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때, 메시아적 구원의 때, 하나님 나라 완성의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중간마다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6-8. (형제들에게)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요한복음 8:2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라 말씀하시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2:23. 인자의 영광 얻을 때가 왔도다.
요한복음 13:1. 자기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요한복음 17:1.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2) 이처럼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직 십자가와 부활의 때, 구원의 완성의 때가 오지 않았지만, 구원 사역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풍성한 구원의 축복이 믿는 사람과 가정에 임하게 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메시야적 축복 사건을 이루어주십니다.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1.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서,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1)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아기를 잉태케 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고,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누가복음 1:38).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서, 또 말씀대로 무엇이든지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것은 기적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늘 순종하시어, 하나님께서 성도님을 높이 들어 쓰시기를 축원합니다!
6-11절. 예수님은 마리아의 믿음과 하인들의 순종을 통해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순종하면, 행복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면, 별로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지혜로우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서 순종하여 살면, 불행한 사람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6절.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1. ‘유대인의 정결 예식’은 식사하기 전에 부지런히 손을 씻는 것이었습니다(마가복음 7:3).
유대인들은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성결법 규정들을 정해서, 일반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모두 통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유대인의 성결법을 의도적으로 자주 깨드리신 사건이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1) 손을 씻는 정결 예식을 무시하고, 씻지 않는 손으로 식사하심(마가복음 7:2)
예수님이 죽은 자를 만져서 살리시고(누가복음 7:14)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만져서 고치시고(마태복음 8:2-3)
예수님이 혈루병자가 만지는 것을 허용하시고(마가복음 5:27)
예수님이 죄인 여자가 발을 만지는 것을 묵인하시고(누가복음 7:38)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고(마태복음 11:19)
(2) 예수님이 유대인의 거룩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신 것도 넓은 의미에서 유대인의 성결법 규정을 파괴하신 것이고(마태복음 9:10-1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도 유대인의 성결법 개념을 파괴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7:51)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임하심은 거룩한 하늘과 부정한 땅이라는 유대인의 관념을 깨뜨린 성경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3:16)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예수님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요한복음 1:51)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정결 예식의 완성이요, 율법의 완성이요, 영원한 구주가 되십니다.
2.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에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유대인의 결례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유대인의 결례를 지킴으로 성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심령이 참으로 성결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1. ‘아구까지 채우니’란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인간적인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1.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하인들이 순종하는 모습이 두 번 나옵니다.
①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②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1)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과 축복을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63.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신명기 28:1-6. 네가 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리라. 네가 성읍과 들에서 복을 받고, 네 자신과 자녀와 사업에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생명과 복을 얻고, 내 맘대로 살면 저주와 멸망을 받습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신명기 30:19-20.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라.
2.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을 듣고, 여섯 개의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① 항아리는 엄청나게 커서, 한 항아리에 50말(gallon)이나 들어가는 큰 항아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떠다가 채우는 것은 300번이나 물을 길어다가 채워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인들은 이 일을 기쁨으로 했습니다.
② 이런 기쁨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4장에는,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들에게 항아리의 물을 마시우고, 열 필이나 되는 약대에게도 물을 퍼다가 마시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리브가는 하인들과 약대들에게 물을 떠 드림으로써, 귀한 대접을 했고, 그로 인하여, 부자집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2) 또한 예수님이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인들이 무조건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인들은 항아리의 물이 먹을 물이 아니라, 더러운 손을 씻는 물인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손님들이 마시도록, 더구나 포도주로 알고 마시도록, 물을 갖다주라고 하셨을 때, 순종을 했습니다.
①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예수님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고, 물을 술로 속여서 갖다주라고 하는가 하고, 원망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회장에게 물을 퍼다 주면, 어떤 야단을 맞을까 생각하고, 불순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인들은 정말 순종을 잘했습니다.
②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 말씀을 순종하면서 따를 때,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앞세워서,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 때, 생명과 복을 맛볼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생명과 축복을 맛보는 행복한 성도님들, 행복한 가정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인들이 이처럼 자신의 생각과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순종한 것은,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평소에 감동을 줄 만한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하인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1) 평소에 하인들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면, 정말 중요한 순간에,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사업체의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평소에 깊은 감화를 주지 못하면, 중요한 시기에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상급 공직자가 평소에 하급 직원에게 깊은 감화력을 주지 못하면, 정말 중요하고 어려울 때, 부탁해도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학교 선생님도 평소에 학생들에게 그렇습니다.
가정의 부모도 자녀들에게 평소에 깊은 감화력을 주지 못하면, 중요한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2)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평상시에 깊은 감화력을 주어야, 결정적인 순간에 교회 부흥회에 가보자고 하면, 참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감화력을 주지 못하고, 흉잡히는 일을 하면, 교회 가자고 전도할 때, 거절당하고, 속으로 비웃습니다.
(3)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평소에 하인들에게 좋은 감화력을 주어서,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달게 순종하고,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① 오늘 말씀에서 물로 포도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전도를 통해서 하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② 오늘 말씀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은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기적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런 기적들을 행하신 목적이, 이런 기적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③ 그러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통해서, 하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 얻는 것이 오늘 말씀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9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 연회장은 알지 못하였으나,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연회장’은 식탁과 음식 차리는 것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whose duty was to arrange the tables and the foods).
(1)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만이 변화를 체험한다는 말씀입니다.
불신 죄인이 예수님 믿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체험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체험해보지 않은 불신 자연인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①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예수 믿고 세례를 받으라고 전도했을 때, 믿고 순종한 사람은 다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② 유명한 종교지도자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 말하기를,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께 무슨 일을 해달라고 조르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③ 한국의 유명한 교회 지도자인 박윤선 목사님(1905~1988년)은, <예수님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변화시키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놀라운 변화와 축복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놀라운 삶의 변화와 축복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 물은 외부적으로 사람을 정결케만 하지, 근본적으로 사람을 구원시킬 수 없는 형식적인 유대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성령 충만케 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독교를 가리킵니다.
(2) 그렇기 때문에, 죄인이 아무리 유대교의 가르침대로 몸을 깨끗케 해도, 죄를 씻지 못하나,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성령 충만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불신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10절.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 처음 포도주보다 나중 포도주가 더 좋았습니다.
(1) 보통 술집의 사례를 보면, 처음에는 진짜 양주를 내놓지만, 취하면 가짜 양주를 내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면, 처음보다 나중이 점점 더 좋아지고 더 행복해집니다.
결혼생활 중에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해도, 예수님 모시고 예수님이 개입하시면, 당혹스러운 일이 변하여 감격스러운 일이 됩니다.
(2) 가정생활도 그렇습니다.
처음 결혼생활 3년 동안은 ‘도파민’이라는 호르몬 때문에 모두들 좋아합니다.
그러나, 차츰 행복이 사라지고, 원망 불평하다가, 무관심해집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모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처음보다 나중이 더 행복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생활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날마다 기도하심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해 가십시오!
그러면, 갈수록 더욱 행복한 가정생활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결혼생활이나, 가정에 무엇이 모자라고, 행복이 없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보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부족이 채워지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모시고 행복이 넘쳐난 생활을 하셔서, 행복한 성도님들의 삶을 바라보는 이웃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절.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 ‘표적’(σημείων, signs)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주는 기적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2.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지만, 요한복음에는 7대 표적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요한복음 2장.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 –예수님은 질적인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킵니다.
② 요한복음 4장. 왕의 신하의 아들을 멀리서도 고치심- 거리를 초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킵니다.
③ 요한복음 5장. 38년된 병자를 고치심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킵니다.
④ 요한복음 6:1-13. 오병이어의 표적, - 양의 법칙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킵니다.
⑤ 요한복음 6:14-21. 물위를 걸으심, - 중력 법칙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킵니다.
⑥ 요한복음 9장,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심 – 생래적인 조건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킵니다.
⑦ 요한복음 11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 죽음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표적 사건입니다.
3. 요한복음에 나타난 표적은 자연현상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해줌으로써, 예수님을 믿고 영적인 구원에 이르게 해주는 표적들입니다.
요한복음의 7대 표적들은 공관복음과는 달리 영적인 설명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서는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구체적인 설명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신 표적은 예수님이 세상의 참된 빛이심을 가르쳐주고, 예수님을 거역하는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소경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9:3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또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이요 부활이심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런데 이 표적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요한복음 21:30-31)
4. 또한 이 포도주 표적은 마지막 날 혼인 잔치의 기쁨을 예시한 것입니다. (figure for joy of the final days, Linguistic Key. p.222)
12절.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이 표적 사건의 교훈은 예수님이 단순히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시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표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2. 우리 예수님은 무가치한 인생을 가치 있는 인생으로 바꾸고, 불행한 가정을 행복이 넘치는 가정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3. 여기에는 주님께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하고(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부드러운 책망),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안 맞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9-1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행복한 가정, 더욱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