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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등산 짐 꾸리고 아내와 함께 바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대구 시내 국일 따로국밥 한 그릇씩 하고 칠곡 동명면에 위치한 동명성당으로 출발했다. 오늘의 점심식사는 4구간을 통과한 후, 5구간에 들어서서 방턱골 주변의 식당에서 매식을 하는 것으로 편하게 가늠했다. 단지 점심 도시락 준비 대신 챙긴 것은 챙긴 것은 과일, 쵸컬릿류 이외에 전날 냉동실에 넣어 얼려둔 맥주 캔 2개와 보온병에 담은 냉오미자즙을 별도로 챙겼다. 걷는 가운데 나름대로의 맛있는 먹거리도 무시할 수 없는 것. 땀을 내며 걷는 가운데 쉬면서 먹는 즐거움은 걷는 자의 또 다른 동기 부여.
동명성당에 들어서서 쉼터 옆에 주차. 그런데 들어오기 전, 성당 입구에서 봉고차 한 대가 주차해 있고, 동명성당 옆 인근 동명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온 듯한 낚시꾼 차림의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 네 사람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람만 남고 모두 동명을 성당을 떠나가고 난 뒤, 쉼터 자리의 쓰레기통으로 와서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한다.
왜 이 사람들이 몰지각하게 인근에서 낚시하고 와서 남의 모르는 성당 안에 들어와서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소리 해야 하겠다고 작정하고, 본인은 출발 준비를 제쳐두고 그 사람에게 “왜, 그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데요?”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뜻밖의 대답을 한다. “제 집에 본인 쓰레기 버리는데 왜 그러십니까?”라고......그리고 “저는 동명성당 주임신부입니다~“라고...... 헐~ 본인은 어쩔 줄 몰라하고.....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동명성당 일부 자매님들이 민물매운탕을 좋아해서, 그리고 동명성당 신자 분들이 더운 여름날, 기분 좀 내서 밤낚시 한 번 가자고 해서 지금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씀하신다. 머쓱함과 웃음, 미소, 어쩔 줄 몰라함.. 동명성당 주임신부님께 오늘 한티까지 한티가는 길 걸을려고 이 곳에 왔다가 말씀드리고 이런 저런 얘기 잠깐. 동명성당 신부님께서는 8시 조금 시각, 슬며시 성전 문을 열어주셨다. 잠시 성전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각자 스스로의 다짐, 그리고 침잠, 잠시 머무는 소중한 시간........ 용서와 화해 ? 그리고 오늘의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기. 그 이후 성전에서 나오니 주임 신부님께서는 여전히 마무리 정리를 하고 계셨다. “덕분에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한 후, 8시 25분경 출발.
성전을 나와 동명성당을 출발하다. 아내는 본인보고 놀려댄다. 멋쩍음~ 동명성당 주임신부님께서는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동명성당을 벗어나 팔공산 한티로 올라가는 도로 옆의 인도를 따라 걷는다.
동명저수지, 동명수변공원으로 바뀌어져 있다. 가게 앞에서 좌회전....
한티가는 길, 돌 표지석이 보이고 그 너머로 동명저수지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나타났다. 용서하는 길이 시작....
누구를 용서하는 것이 아닌, 나의 교만스러움을 먼저 떨쳐내어야 하지 않는 지?
이른 아침의 작은 호수... 멀리 산자락을 지긋히 안고 있는 저수지 속의 작은 수채화. 그리고 이른 아침의 아직 덥기 전의 맑은 공기가 걷기 시작하는 나로 하여금 감각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깨닫게 한다.
저수지와 철조망 사이를 걷기. 웬지 철조망은 부담스럽다.
이 곳은 가을 잔재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 섞지 못하는 낙엽의 비애일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발걸음.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감각. 나의 무형적 발자국을 이 곳에 남겨놓다.
더운 여름날 아침의 오솔길 풍경.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길은 어느 듯 다소 넓어져 있다. 작은 집 한 채가 들어오다.
그런데 다가가니 집 주인은 보이고 않고 개 스무마리 정도가 한꺼번을 우리를 압박해 오고...... 아내는 질겁~~ 마치 오늘의 순레길을 이 자리에서 포기할 듯한 자세. 나 역시 당황스러움. 등산용 스틱을 꺼내어 만반의 준비.... 그런데 자세히 보니 큰 개는 묶여져 있고, 작은 개들만 자유로움이 부여되어 있다. ㅎㅎ
자연스럽게 이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아내는 여전히 부담스러워 했지만 작은 강아지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애절한 눈빛, 그리고 꼬리의 살랑거림~~
동명 수변공원 스템프 Site에 도착하다. 동명성당으로부터 30분도 채 걷지 않은 듯.
동명저수지도 가뭄 탓에 저수지의 가장자리부터 적지 않은 곳까지 민낯...
동명저수지 끝자락.... 길 왼편으로 동명수변공원 조성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귀나무. 손잡이로 사용되는 나무라고 해서 자귀나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어두워지면 서로의 잎이 붙어버리는 특성....
길은 더욱더 넓어졌다. 어느 듯 동명수변공원을 벗어나는 단계.
칠곡 동명면 구덕리 양지마을 입구로 들어서다.
어느듯 이 곳의 벼는 하늘을 향해 잔뜩 팔을 벗고 있다.
싱싱한 고추가 열려 있고....
탐스런 토마토가 영글어가고 있고...
가지 열매도 열려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양지교 일대를 건너가다... 예쁜 개울가였다.
양지교 위 육각정자 앞 도착. 걸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대로 통과.
구덕리 양지마을 음식점을 지나고.. 부추천 ? ^^ 문득 부추전이라는 표준어 대신 '정구지 찌짐'이 칼국수와는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칼국수와 함께 먹는 선찬, 정구지 찌짐과 돼지고기 수육 중 어느 것이 좋을까?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갈등?
왼편으로 꺾이는 지점. 실제 이 곳이 양지교였다.
양지교 아래 왼쪽으로 내려서서 이 거친 임도로 잠시 걷다. 그런데 소위 알바(잘못 걷다 되돌아오는 것)를 50m. 한티마을 시그널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되돌아오기.
양지마을 부추전 가게 바로 옆이 실질적인 길이었다. 가게에 피해를 줄 듯 해서 양지교를 완전히 건너기 직전 왼쪽 아래로 내려서서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서 오른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작은 돌계단을 올라서게 되고..
길 왼쪽으로 대나무밭을 만나다.
이제 본격적인 오솔길 오름길이 시작된다. 마을로부터 벗어나 산속 숲길을 걷는다.
참나무 숲 아래를 걷기도 하고..
소나무숲을 걷기도 하고...
2m 이상의 우뚝선 산죽 사이를 걷기도 하고....
잠시 왼편의 오르막을 걸어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기도 한다. 예전부터 있었던 길이라기 보다는 동명면 구덕리에서 남원리로 가는 아스팔트 길 대신 숲길로 이 길을 새로 연 듯. 길을 새로 단장한 설계를 새롭게 한, 길에 대한 밑그림의 생각을 이 곳에서 가늠해 보다.
무덤 앞을 지나자 다시 산길로 올라간다.
편안한 유유자적한 길이 되고 있다.
숲길은 나에게 겸손을 요구하고 있다. 동네 뒷산의 오솔길을 걷는 편안함도 다가오고...
어느 듯 길 자체에 걷는 것에 각각 빠져들고 있는 듯.....
의외로 마을 아래로부터 많이 올라가지 않는, 겨우 아래 마을의 인근 개울가 조금 위를 따라 줄곧 걷는 산길이었지만 이 일대가 다소 조용한 마을이어서 그런지 우선 소음의, 도시 길에서 벗어난 편안함을 가득 담고 걷는다.
평탄한 길 이외에 가끔씩 돌길이 때로는 작은 긴장감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1시간 남짓 걸었을까? 잠시 물한모금 마시며 쉬어 가기로 했다. 길 바로 아래 작은 계곡이 보여 내려가 보고... 물과의 만남. 산길에서 물길의 존재는 가끔씩 반갑게 다가온다.
아내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고, 그리고 난 뒤 또 다시 카톡확인. 도시의 이기적인 단위들에 잠시 걷기의 방해를 받다. 이로 인해 나는 잠시 기다려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가끔씩 이런 상황이 싫어서 산길을 걸을 때 휴대폰을 꺼 놓는다.
너덜지대를 지나가고....
어느 듯 해가 중천에 떠오른 상태... 걷는 가운데 옆에서 후두둑 소리와 함께 약간의 돼지 목소리보다 쉰 목소리가 들려온다. 5m 정도위에 멧돼지가 지나가고 있는 듯.... 한 마리가 아닌 몇 마리가 되는 듯. 역시 우리도 긴장하고 이들도 긴장하며 서로를 피해갔을 듯.... 산의 대장인 멧돼지 대신 지금 산에 살지 않는 우리가 이 산의 주인행세를 한 듯
또 다시 너덜지대를 지나가고 있다.
어느 듯 걷는 가운데 우리는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양지교이후 청산농원 입구 철조망 문까지는 홀로 아무 말없이, 마치 일어나서 전혀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꾸는 것처럼 걸었다.
숲길로부터 다시 마을 아래로 내려서고.... 바로 아래에 글램핑 캠핑장이 있었다. 일찍 잠에서 깬 어린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도 텐트들고 전국 산 자락이나 휴양림을 아이들 데리고 다닐 때가 있었는데......
청산농원 입구신고식.
철조망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다.
문을 걸고난 뒤 농원 안으로 들어서다.
청산농원 중간을 가로 지르다.
익어가는 6월 여름과일의 대명사, 자두열매
청산농원 연꽃이 핀 연못을 지나 이내 청산농원 쉼터에 다다르고...
청산농원 쉼터에 도착해서 등산화를 벗은 후 쉼터 정자에서 앉았다. 그리고 등산양말로 벗고.... 옆은 계곡. 여름철 계곡 물놀이 나온 기분 속에 한 참을 쉬고 출발하다.
청산농원 쉼터 옆 계곡. 짐작컨데 어디서부터 비롯된 물길일까? 우리가 현재 위치한 왼쪽 산인 지마산(약 571m) 중간 정도를 지나고 있는 터라 이 곳으로부터의 물줄기일까? 아니면 지마산 맞은 편의 북동쪽 위쪽에 위치한 팔공산 가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더해진 것일까? 어느 듯 계곡 양 옆으로 높지는 않지만 산들 사이로 난 길과 계곡, 계곡 우측 위로 포장도로가 각각 있는, 산 속의 길들이었기에 이 계곡의 본류 정체가 궁금해진다. 이 곳 마을 사람이 보이면 물어서 바로 알 수 있는데......
청산농원 쉼터 이후로는 산길이 아닌 계곡옆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산길이 아닌 계곡 옆길을 따라 걷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청산농원쉼터 경계를 벗어나다.
산과 계곡 사이의 길...... 길의 형태로 봐서 어느 듯 분명 산 속의 길임이 분명하다. 왼쪽의 산인 지미산 옆자락과 오른쪽의 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북쪽 방향으로 걷다.
계곡 옆을 따라 걷는 오솔길 옆에 나무 기둥과 밧줄이 묘하게도 길과 주변 풍경이 같이 어울려, 길에 대한 막연한 여정의 의미를 눈을 통해 보는 감각으로 가늠하게 해 놓고 있다. '그대, 어디로 가고 있는 가?'를 다시 물어오고 듯한 길......
사방댐이 나타나고...
사방댐 직전 우측으로 난 징검다리를 건너가다. 가뭄탓에 물이 없어서 아쉬웠다. 다른 한편으로 장마철 게곡물이 한꺼번에 내려오게 되면......
지미산자락 길을 벗어나 징검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포장도로(동명면 구덕리-남원리를 연결하는 도로)로 올라오다.
올라서는 지점
올라서서 사방댐 위 철조망 옆, 포장도로 왼편 가장자리를 따라 잠시 걷다.
10m 정도를 걸어 나무데크 길을 걷게 되고..... 차량 10대 정도를 주차장을 지나가고...
한티가는 길 안내판에는 팔각정이라고 되어 있지만, 결코 팔각정 아닌 쉄터 정자 건너편 1시 방향 길로 접어든다.
포장도로를 다시 건너 접어들자마자 나타나는 스템프 Site. 어느 듯 스템프를 찍는 재미에도 빠져있다.
이 곳에도 작은 계곡이 있다. 가뭄이 아니면 적지 않은 수량이 될 듯 한데..... 그리고 오른쪽을 따라 걷는 길도 소담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걷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에 비하면 제법 거친 그야말로 산길 같은 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길 또한 걷는 재미가 솔솔했다. 길이 거칠어서 걷기 좋았다기 보다는 6월 초하의 주변 분위기가 어울려 좋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가 될 듯....
길의 굴곡과 높낮이도 있었다. 돌아 내려서는 길...
작은 버섯재배 단지 옆을 지나가고.. 어느 듯 본격적으로 남원리 마을에 접어들다.
남원리 마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지만 왼편 아래로 마을이 보이는 가운데 여전히 산길을 걷는다.
온실과 그 너머 포장도로로 바로 눈 앞에 나타났지만......
여전히 예쁜 산길을 걷는다.
그리고 마침내 계곡 옆길로 내려선다.
남원리 마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다.
남원교를 건너고...
남원교를 건너자마자 10m 정도 걸어 우측으로.....
지금까지 걸었던 오솔길과는 4구간 처음으로 포장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올라간다.
어느 듯 팔공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팔공산 가산자락-한티재-파계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팔공산산줄기. 산줄기 중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약 3분의 2 지점 정도의 얉은 곳이 한티재가 될 듯. 그 아래 한티성지가 있음을 가늠하고..... 신나무골을 갔다가 되돌아오던 순교자들은 이 곳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원리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어느 듯 땡볕 속을 걷고 있다. 따가운 햇볕과의 전쟁 중.
구 지명 남원리 대신 신 지명은 구남로.....
그러나 의외로 피곤한 길이 될 법도 했지만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팔공산 주변의 주도로가 아닌 탓에) 가장자리를 따라 넉넉하게 걷는다.
어느 듯 남원리는 대구 외지 사람들도 상당수 들어와 있는 듯. 곳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풍경에 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팍팍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함은 누구나의 원의이자 로망. 그러나 개인적으로 도시도 아닌, 시골도 아닌, 산골도 아닌 이 곳의 삶은 다소 의문스럽다.
남원 1리 도로 교차지점에 도착하다. 왼쪽으로 진행하면 동명면 학명리로 내려서서 5번국도를 만나게 되고,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동명면 팔공산 한티로 올라가게 되는 79번 지방국도를 만나게 된다. 직진하는 길이 지금 가야할 길.... 남원 1리 마을회관이 안쪽에 위치해 있다.
남원 1리 사거리를 지나가기 직전, 차량이 보이는 도로로.......
남원 1리 삼거리... ^^ 남원 1리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큰 길로 쳐주지 않는 듯...... 진남문까지 1.6km, 1시간 채 남지 않았음을 가늠한다.
더운 날씨 속의 꽃은 시각적인 청량제.
남원 1리 마을회관을 지나가고, 위로 올라가는데 길 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서 걸어올라오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온 우리에게 "땡볕에 무슨 고생이냐?" 묻는다. 그저 미소~~ 사서 하는 고생이지요.. "고맙습니다" ㅎㅎ
초여름의 호도나무 열매....
남원 교회가 눈에 들어오고.... 마을 안은 의외로 모두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남원리 교회 옆을 지나가고...
남원 1리를 벗어나며 멀리 1시방향으로 남원 2리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현대화된 시골 농로를 따라 걷는다.
남원 1리와 2리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마실길.
길을 가다가 문득 왼편으로 틀어 포장도로를 버리고 흙길을 따라 걷는다. 이 주위에는 소 축사가 적지 않다. 때로는 축사의 냄새가 얕게 다가오고......^^
어느 듯 팔공산 자락은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고...
바로 앞의 둥근산 너머 다소 뽀족하게 생긴 도덕산(660m)가 눈에 들어온다. 둥글게 생긴 산 정상 너머 바로 아래가 기성삼거리와 동명 동부초등학교(하나로마트)가 있다.
우람한, 반가운 느티나무 보호수를 발견하다. 그리고 쉼터 정자. 이 곳에서 또 다시 한참을 쉬다.
원당공소 300m 전.
정자에서 한참을 쉬고 난 뒤, 이례적으로 거친 땡볕에 선크림을 아내의 강한 권유로 발랐다. 아직도 흐연 분 바른 듯한 나의 얼굴 모습이 나에게는 어색하다. 그리고 길을 다시 나서다.
이 일대 풍광이 너무 좋아서 다시 되돌아 보다. 다시 기억 속에 한 번 담고 싶었던 그림 수채화.
제법 잘 가꾸어진 전원주택 마을, 남원 2리에 들어서다.
붉은색으로 단장한 줄장미
남원 2리의 중심으로 어느 듯 들어서 있다.
1시 방향으로 남원 2리 원당 경로당과 그 앞 정자가 눈에 들어오고, 그 왼편 11시 방향으로 원당공소(파란색 지붕)과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경로당 앞을 지나고 원당공소가 바로 앞에 서 있다.
원당공소 전경.
# 원당(남원리) 공소
원당리 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피난온 신자들의 피난처로부터 비롯되었다. 한티마을에서 내려온 신자들은 동명 인근의 동명면 학명리(가산산성 서쪽 아래 마을)나 여부재를 넘어 신나무골(대구대교구 옛 본당터)까지 오고가며 몰래 전교를 하기도 했다. 병인박해 당시 조씨와 신씨 성을 가진 두 신자가 있었으며,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최씨 성을 가진 이 마을 사람을 입교 권면시키게 되고 최씨 성을 가진 이는 자신의 아랫채 사랑방을 내어놓아 공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소실된 이후 최민학(베드로)가 현재의 남원리 508번지 땅 100평을 내놓아 인근 학명리 공소부지의 자재를 사용하여 공소를 신축하게 되었다. 6.25 전쟁이후 베네딕도 수도원 관할이었다가 비산성당, 칠곡성당 동명성당 관할을 거쳐 최근에는 대구대교구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일정한 미사 시간은 없으며 남원리 일대 신자들은 동명성당으로 내려가서 미사를 참례하고 있다.
원당공소 종탑. "안동에 있는 권정생 생가 종탑이 문득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아내는 나에게 묻는다. 공감~ 고개 끄덕끄덕...... 권정생 선생의 가난에 대해, 그리고 당신이 강아지똥 동화에 이르기까지.....
어느 듯 나는 두 발로 걷는 순례자, 나그네로 이 곳에 선듯 들어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종탑 아래에서 종줄을 당겨 마음 속으로 종을 울리며 나의 용서와 화해에 대해 묻는다. "너 어디 있느냐? ".........
원당 공소 안에 잠시 머무르다.
다시 등산화 신발끈을 고쳐매고 길을 나서다.
이제 4구간 종점 진남문도 얼마남지 않았음을 가늠하며 씩씩하게 걷는다.
다시 흘길을 걷고....
좌회전하여 올라가고... 진남문 300m 전.
흙길로 된 오르막 길을 벗어나 포장도로에 들어서자 이내 바로 앞에 드디어 진남문 누각 지붕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4구간 종점, 진남문에 도착했다. 동명성다응로부터 8.5 km를 걸어왔다. 11시 40분경.
# 진남문과 가산, 가산산성
가산(架山)은 팔공산 비로봉의 팔공산맥 산줄기사의 서북쪽으로 약 15㎞ 정도에 위치해 있다. 가산의 정상부는 꽤 넓은 평지이고 이 일대를 7개의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어 칠봉산(七峰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군의 이름인 칠곡(漆谷)이 가산의 ‘칠곡(七谷)’에 근원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가산은 칠곡군의 모태가 되는 진산이라고 할 수 있다.
뒤로 보이는 진남문은 가산산성 외성의 남문이자 가산산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커다란 돌로 쌓아 올린 성벽 가운데 홍예문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홍예문 위에 누각이 올라 서있고 ‘영남제일관방(嶺南第一關防)’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즉, 영남 제일의 방위 시설이라는 뜻. 가산 속에 있는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에 축성되었는데, 전란의 상처가 워낙 커서 외성, 중성, 내성 세 겹으로 쌓게 되었다. 내성 축조는 인조 때인 1640년, 중성은 영조 때인 1741년, 외성은 숙종 때인 1700년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팔공산 정상 비로봉 주위(서봉, 동봉) 영역과는 달리 이 곳 가산은 진남문을 출발기점으로 해서 올라 가산산성 성곽을 따라 걷거나 가산바위에 올라 주위 조망을 바라보거나 상대적으로 팔공산 다른 봉우리보다 산길이 완만한 편이어서 왕복 4시간 전후의 가족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남문은 가산산성 등산으로 편안하게 자주 오는 터라 진남문에 올라가는 것은 생략하고 바로 옆길을 따라 들어갔다. 예전에는 청솔매 식당까지 줄곧 포장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기성리 방턱골까지 걸어갔지만 이 쪽도 일부 새롭게 흙길을 만들어 놓았다. 사랑의 길, 5구간 마지막 한티가는 길 구간 출발.....
포장도로 우측 아래로 새로운 길을 터 놓았다.
다시 올라서고....
잠시 걷는 가운데 소나무 거송 아래 그늘 발견.... 땡볕에 걸어온 발걸음을 잠시 멈추다. 그리고 배낭 안에 있던 자리를 꺼내다. 아이스 슬러시 맥주 한 잔, 지나가는 이들이 없어서 꺼리낌없이 그대로 드러누웠다. 하늘 향해 우뚝 뻗은 소나무 줄기와 솔잎, 그 사이로 하늘의 빛이 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약간의 오수......
다시 나그네가 되다.
다시 포장도로로 올라왔다.
에전과는 달리 가산산성 진남문에서 79번 지방도로가 만나는 청솔매식당까지 빠져나오는 길에 도보순례자의 안전을 위해 안전봉을 박아 놓았다.
잠시 걷는 가운데 도반 국시 식당을 발견.... 원래 좀 더 걸어내려가 청솔매 식당이나 그 주위 방턱골 주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계획을 바꾸어 도반과 국시라는 단어에 이끌려 이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어느 듯 점심 시간을 지나가고 있기도 했고, 본인이 국수, 면을 워낙 좋아하던 터라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다. ^^ .잔치국수와 가마솥 수육 주문. 원래는 부추전과 콩국수를 주문했으나 이 집 주된 메뉴인 가마솥 수육을 삶는 것을 가게 들어서기 직전 본 터라 가마솥 수육으로 주문 변경. 음식 이외에 풋고추로 찍어먹는 엣된장이 별미였다. 아울러 나름대로 정갈한 식당 주인의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주인 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후 다시 뚜벅뚜벅 걷기...
벚나무가 우거진 숲길....
걷는 도로 우측 가장자리로 순례객들을 위한 멍석자리가 깔려 있기도 했다.
길이 변곡점.
어느 듯 청솔매 식당과 79번 도로가 눈 앞으로 들어오고....
기성리 방턱골 버스 정류장에 이르다. 그런데 이 곳도 새롭게 길이 나 있었다. 도로 포장까지....
어느 듯 예전 이 도로의 아래 길로 한티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었는데..... 아래 도로는 모텔 지대를 지나가게 되어 다소 부담스러웠던 터....... 새로운 길을 따라 걷다.
최근 포장된 도로인 듯........ 잠시 후에 안 사실이지만 군위와 동명을 잇는 터널로 진입하는 도로이기도 했다.
군위 부계- 칠곡 동명 터널과 연결되는 지점
왼편으로 난 길 위로 현재 터널공사 진행 중. 한티재가 아닌 중간 산 중간을 통과하게 되고, 터널은 2017년 12월말 완공을 예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대로 직진.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올라가기.
그리고 잠시 직진...... 새로운 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거의 160도 우회전하여 밑으로 내려간다.
내려서기....
그리고 걷던 주된 길을 버리고 다시 왼쪽으로 난 오솔길로 내려서기
계곡으로 내려서는 오솔길. 그리고 나무다리, 계곡을 건너가다. 예전에는 없던 새롭게 열린 한티 가는 길 마지막 구간을 걷다.
숲길로 들어서다. 예전의 길이 모텔 앞이나 카페를 지나가는 길에 피하고, 달계사와 선원사 앞 길이 아닌 원래 길의 우측에 있는 산자락을 걷도록 길을 바꾸어 놓았다.
소나무 숲길에 대한 개인적 감탄
다시 두발로 걷는, 순례자.... 홀로 걷기, 혼자라기보다는 길과 주변 나무, 숲, 그리고 흙과의 작은 대화....
묵묵히 걷는다.
부르심에 왔나이다.
암자 옆을 지나가다. 정숙을 당부하는 스님의 글을 옆으로 하고... 침묵속의 대화.
사랑법을 길에서 묻다. 강은교 시인의 시 구절을 나 혼자 중얼거리기.....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강은교, 사랑법> 중에서...
이른 아침부터 제법 걸어왔지만 아내는 씩씩하게 걷는다.
천천히 걷기를 원하는 나에게 반하여.... 본인이 따라가기 급할 만큼....
다시 포장도로를 만나다. 예전 한티가는 길, 즉 왼쪽 편 길방향으로 약 1km 정도 내려가면 선원사와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있다.
포장도로에 내려서고...
마당재 200m 전.
좌회전....
한티성지 위 팔공산 마루금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왼편으로.....
다소 지겨웠던 길. 직전의 소나무 숲길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기에 그러했던 듯.....
평산아카데미 연수원과 대구 신세계병원 연수원 입구에 거의 다다르고....
마침내 연수원 입구를 지나자마자 나무테크길과 스템프 Site 발견.... 마당재에 도착하다.
예전 임도와 우측으로 새롭게 조성된,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데크 길.
계곡 숲길을 또 다시 넉넉하게 걷다. 길에서 위로를 받다.
의외로 나무데크 숲길에서 녹색이 그 자체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젊은 날에는 그렇게 선호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웬지 주홍의 알록달록 단풍색보다는 연두빛과 싱그러운 녹색으로부터 숲의 에너지를 받는다.
녹색 속의 쉬어가는 자리.... 평상 위에 또 다시 잠사 드러눕다.
한티가는 길.... 그대, 어디로 가는 가? 새삼스럽게 또 묻기를.....
산수국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늘 나를 살아있음을 인식하게 만드는 원초적인 몸짓.
하늘이 다시 열리고...
늘 이 곳은 아래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예쁘다.
걷는다는 것은 육체적인 원초적 행위이기도 하고, 홀로 묵묵히 걸어가는데 가운데 자신을 찾아내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왼편에 위치한 축사의 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문. 마치 한티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듯한 느낌이 들고...
한티로 가는 길은 사랑이다.
순교자들의 아픔... 형틀 형상을 한 한티순교성지 표지석은 아픔과 함께 사랑이 있다.
한티성지 기념 스템프.... 잠시 휴식.
사랑의 길.... 그리고 나머지 남아있는 길을 가늠하다.
걷는 자, 순례자를 위한 둘레길, 숲길보다는 편의성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 도로가 더 많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 그러나 걷기는 어떤 수단보다 자신에게 훨씬 더 큰 육체적, 정신적 건강성을 부여한다. .
한티성지 입구가 바로 눈 앞에 들어서다. 긴 터널을 뚜벅뚜벅 걸어서 바로 앞에 터널의 끝이 보이듯이.... 한티가는 길도 이렇지 않을까?
이른 아침부터 초여름의 날씨와 땡볕과 씨름하며 계속 오름길을 걸어 올라왔기에 어느 듯 지치기 시작하는 아내.... 만만한게 남편이라고 뽀로퉁하게 뭔가 불만 섞인 얼굴이 가득하다. 한티성지 입구까지만 하더라도 앞에서 줄곧 걸었는데 어느 듯 나도 모르게 그 앞에 와 있다. 지쳤을 때 뒤를 따르게 되면 힘드는 법....
그러나 배려없이 나는 무심코 한티가는 길 시그널을 따라 우측으로 올라간다.
한티마을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성지순례길.... 남은 순례자의 길은 3.4km 한티성지 내에서 겸손의 길, 인내의 길, 최종적으로 십자가의 길로 마무리 해야하는 상황.
우측으로 난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다.
겸손의 길 입구에 이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아내와 실랑이가 벌어진다. 무명 순교자 묘역을 따라 걷는 이후의 길은 지난 겨울에 걸었고, 그동안 이외에도 여러번 걸었기에, 아내는 내일 이 곳에 올 일정이 있으므로 내일로 미루기를 원한다. 개인적으로 내일 이 곳에 올 일은 걷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관장 신부님과 만나기로 한 무언의 약속. 땀 흘리고, 씻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적인 일을 한다는 것이 웬지 싫었다 그러나 힘들지만 의지로 마무리하는 것이 나을 듯 했다.
나는 계속 걷기를 원하고..... 그러나 6시간 이상을 걷는 그 자체가 자신에게는 힘들다고 항변하며 삐친 아내~ (그러면서도 7-8시간을 묵묵히 걷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푹 주저앉아서 쉬며 고민하는 나를 두고 아내는 알아서 오라고 하고 역설적으로 먼저 겸손의 길 입구에서 먼저 올라가 버린다. 헐~ 겸손의 길 입구에서부터 아내와 겸손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말없는 전쟁이 길 위에서 벌어졌다.
화가 좀 나기도 하고......아내가 먼저 홀로 올라간 이후, 10여분을 지난 후,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천천히 걷기로 했다. 걷는 가운데 듣기보다는 나만의 생각과 말만 먼저 늘어놓은 듯.......... 교만이었다.
말없는 순교자 묘역.... 그 앞을 지나가며 다시 겸손을 생각하다.
말없는 서어나무 옆을 지나가고... "너는 왜 그렇니?"라고 나에게 따져오는 듯....
나의 교만에 대해 다시 묻다. 가실성당으로부터 걸어오며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의미가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는 나의 몸짓과 행동이 바리사이파처럼 가장 퇴색되어 있다
겸손의 길에서 다시 길을 묻다. 돌아보는 길... 비우기.... 뉘우치는......... 이 정도이면 오늘 여정은 만족하는 것으로...
천천히 다시 걸었다.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하지?
그런데 겸손의 길 입구에서 먼저 시작된 아내의 길이 궁금해졌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라는........ 문득 잊고 있었던 아내의 현주소.... 한티피정의 집으로 그만 바로 내려갔는 지? 아니면 그대로 진행한 것인지?
마음이 다시 급해졌다. 총총 걸음으로 빠르게 걷는다.
서어나무 숲길....
다소 빠른 걸음으로 걷다.
갈림길. 겸손의 길 끝지점.......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십자가의 길로 가지는 않았을 듯....... 인내의 길은 지난 겨울에 이미 가본 터여서 알고 있는 길이어서 그대로 진행했을 듯. 길을 모른다면 이 즈음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대로 인내의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티재로 올라가는 79번 국도길로....
지방국도 횡단.
길을 건너자마자 아내는 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망과 불만의 눈빛과 함께 작은 미소... 멋쩍음.....
다시 걷기 시작하다.
숯가마터로 올라가는 길이 상대적으로 경사도가 제법 있어, 이제 힘이 다소 떨어져 천천히 걷는다.
힘들어하는 아내... 뭔가 해줄수 없어 그냥 뒤따라 가는 본인.....
숯가마터를 가본 터여서 바로 아래 갈림길에서 아내는 본인 보고 혼자 갔다 오라고 다시 불평.... 그러면서 다시 올라간다. 스템프 Site가 숯가마터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숯가마터. 참나무로 굽는 백탄 숯은 숯으로는 최상급. 숯을 구워 대구 장터에 내다팔고, 그 돈으로 부모들을 옥바라지한 한티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이 곳에 서려 있다.
이제 마지막 37번 순교자 묘역을 향해 내려서다....
묵묵히 걷다. 지난 겨울보다 길이 다소 다듬어진 듯....
조심스럽게 내려서다...
한티성지 내 37기 무명 순교자 묘역중 마지막 끝번을 차지하고 있는 인내의 길 아래에 위치한 37번 순교자 묘 앞을 지나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先人, 죽음을 처참하게, 뜻밖에, 맞이한 아니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지도......나만의 작은 기도.
인내의 길 끝자락으로...........
그리고 다시 겸손의 길과 안내의 길, 십자가의 길이 만나는 이정표 나무표지석 앞으로 되돌아왔다. 십자가의 길은 잠시 남겨두고 그대로 한티마을 사람들을 형상화한 순교자 묘역 입구, 제대 앞으로 내려왔다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남겨 둔 것은 예비자들과 같이 걸으며, 수시로 설명하고 걷는 길이기도 했지만, 어느 조용한 날 다시 한티 이 곳 길에 들어와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걷고 싶었다.
순교자 묘역 입구으로 내려서기.
팔공산 한티재 바로 아래 작은 교우촌을 형성하며 살아갔던 사람들, 즉 한티마을 사람들을 형상화한 표지석이 서 있다. 마을이 이 곳에 있었다는 사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 듯세월이 흘러 나 자신이 이 곳에 지금 서 있음을.... 약 150년전의 아픈 역사, 그리고 이들이 얼을 다시 생각하다.
십자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랑이다. 누군가의 아픔과 주위 이웃의 고통을 대신하거나... 아니 따뜻하게 나를 바라보기....
한티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아내는 어느 듯 순교자 묘역을 벗어나 내려가고 있다...
주차장이 아닌 한티성지로 들어왔다가 동명성당으로 내려가는 분들의 차에 동승하기 위해 입구로 빠져 나왔다. 입구에 걸터 앉아 기다리기를 한참.... 다소 늦은 시각, 대구에 약속이 있어서 빨리 내려가야 할 상황이었고....카카오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하는 그 때, 반갑게 흰색 승용차 한 대가 올라온다. 신자분들이 아니셨지만, 이 곳 한티마을 아래 개망초나 풀, 꽃들을 조금씩 채취해서 표본으로 만들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부부, 그리고 동행한 한 분의 차량 덕분에 여기에 편승해서 한티마을을 내려왔다. 내려오며 오늘 걸었던 한티가는 길의 4, 5구간 요약 얘기, 그리고 한티성지 유래.... 어느 듯 우리는 한티가는 길 해설사가 되어 있었다.
79번 지방국도를 따라 동명 저수지 앞으로 내려오는 가운데 저녁무렵의 대구로 빠져 나가는 차들이 밀려 동명성당 100m 앞에서 내렸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동명성당 안으로 되돌아왔다. 동명성당 성전 앞에서 마무리 하기. 그리고 차를 몰고 대구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 약속의 만남... 그리고 그 이후 집에 돌아와서 한티가는 길 스템프 지를 정리하다. 웬 정리? 실상 아내는 오늘 4구간 첫 스템프 장소, 동명 수변공원 앞에서 예전 찍어둔 1,2,3 구간의 스템지를 집에 놔두고 왔었다. 때마침 지난 1구간 단체 행사 시, 본인 배낭에 있었던 스템프 지 1개가 남아 있어 이를 이용하여 4, 5구간의 각각 스템프를 찍었다. 그런 탓에 아내는 집에서 두 개를 연결하기 잘라서 서로 붙여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이 것때문에 아내는 오늘 한티 마지막 구간의 한티성지 내 길을 걷기를 주저했을 지도 모르겠다. ^^ 나만의 생각?
# 한티마을(한티순교성지)
조선 초기의 사기굴이기도 했고. 임진왜란 때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울 경기 충청 지방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고 그 이후 청송, 영양, 안동 등으로 피난하는 시기에 경상도 지방에 신자촌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한티마을은 1815-1827년경의 을해박해와 정해박해 때에 대구 경상감영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가족들이 감옥과 가깝고 자신들이 숨기에 안전하다고 판단된 이 곳 한티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티마을이 순교성지를 의미를 부여하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먼저 1838년 김현상 요아킴 가정이 한티로 이주해온 것으로 기록으로 남아있고, 직접적인 한티의 천주교 박해는 1860년 경신 박해 때 칠곡 지천 신나무골에서 이 곳으로부터 피난 왔던 이선이 엘리사벳과 아들 배도령이 이곳 한티에서 순교한(처형당한) 것이었다. 그 이후 1866년 병인박해 때 김응진 가롤로(김현상 차남) 가정, 서상돈 아오스딩 및 서인순 시몬, 노곡동 송씨 가족, 그리고 신나무골에 살던 여러 신자들이 포졸들에 쫓겨 팔공산 한티로 피난을 오게 되었으며, 같은 해, 서태순 베드로가 순교하게 되어 조카 서상돈 아우스티노(국채보상운동)가 이 분을 한티에 안장하게 되었다. 특히 1868년 봄에는 이 곳의 초대 공소회장이었던 조가롤로와 함께 배교하지 않는 한티신자들이 이 곳에서 한꺼번에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처형당했고, 포졸들이 마을 전체에 불을 질러 한티마을은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한티마을사람들의 천주교 신앙활동에 대한 기록은 1882-1883년 김보록 신부가 한티에서 성사를 집행한 것(신자수 39명, 고백성사 20명, 영성체 19명, 세례 3명, 혼인 1쌍)이 그 기록이 남아있으며, 1885년 대구 본당 설정(신나무골, 김보록 신부 - 한티 방문) 대축일에 한티마을에서 신나무골로 미사 참례를 하러간 기록이 남아있다. .
1868년의 처참한 순교역사 이후 마을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었지만 조영학 토마스(조 가롤로 공소회장의 아들, 공소회장 역임)와 몇몇 교우들이 다시 이 곳으로 들어와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공소 재건에 다시 나서 공소가 다시 재건되었다. 1900년 초 한티마을의 신자 수는 80여명으로 알려져 있고 그 이후 해방과 함께 근대화, 도시화로 인해 한티마을 사람들의 후손들은 대구로 이주해 나갔다.
1967년부터 9월 순교자성월에 대구 대교구 평신도 단체 주관으로 한티마을에 성지 순례를 하기 시작했고 1983년 대구대교구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순교자 성지 개발을 위한 부지 매입 및 유해 발굴 및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후 1988년 5월 무명 순교자 묘 24기 확인하게 되었다.(3기 이장, 합묘확인 2기). 1990년 2월 한티 순교 성지 피정의 집이 착공되었고 다음해 1991년 9월 29일 완공되었다. 그 사이 9월에 무명 순교자 묘 9기가 추가로 확인되어 현재 이 곳 한티성지에는 현재 총 37기의 순교자 묘를 확인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름이 확인된 것은 4기(1868년 당시 공소 회장이었던 조 가롤로와 부인 최 바르바라, 동생 조아기 그리고 이 곳에 안장된 서태순 베드로(1867년), 총 4명)이다.
한티순교성지 안내도
십자가의 길 시작부, 이 바로 위가 예전 공소터가 있었던 자리. 예비자분들과 이렇게 같이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천주교 아닌 신자분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겠지요. 그냥 편안하게 걸으시면 될 듯... 그러나 이 일대가 약 150년전, 1868년 병인박해 때 들이닥친 포졸들에 의해 그 자리에서 처형당하고 한티마을의 집은 한순간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변하고........ 다시 되돌아왔을 때는 유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형태가 아니어서 돌아가신 그 자리에 그대로 묻었다는 사연을 가늠하면 아픈 삶의 역사가 이 곳에 담겨져 있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당신들의 그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이 무엇때문이었는지 지금의 한 사람이 묻고 싶습니다.
1868년 이 곳에 공소터가 다시 마련되고.... 재현된 공소마을. 지금은 억새마을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순교자 묘역과 피정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의 옆에 서 있는 억새마을... 그냥 옛 초가집의 평화로움.....
한티 피정의 집과 순교자 묘역을 잇는 한티순교성지 내 도로... 이 길을 걸을 때 느끼는 기분은 늘 평화입니다.
한티 피정의 집은 천주교 신자분들뿐만 아니라 '한티가는 길'의 도보순례자들이나 소울스테이 하시는 분들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4구간 용서하는 길 및 5구간 사랑하는 길 여정 요약)
동명성당(8시 24분) → 동명저수지 끝부분(8시 45분) → 청산농원 쉼터(10시 2분) →
쉼터 정자 건너편 스템프(10시 32분) → 남원 1리 삼거리(10시 54분) → 남원 원당공소(11시 24분) → 진남문(11시 41분) → 도반국시 가게에서 점심(12시 17분∼13시) → 칠곡3번 버스종점(방턱골 정류장) 13시 15분 → 평산아카데미/마당재/스템프(14시) →한티순교성지 형틀(돌) 형상 입구(14시 26분) → 한티순교성지 겸손의 길 시작입구(14시 39분) / 다소 긴 휴식 → 인내의 길 진입 입구 도로(한티재 도로) (15시 30분) → 인내의 길 중 숯가마터(15시 43분) → 한티마을 사람들 조각상 앞(최종스템프) (16시 30분)
이동교통편 : 동명성당 개인승용차 이동 및 주차 / 한티순교성지에서 성지방문 차량 도움 편의 이동 및 동명성당 앞 하차, 차량 회수 / 귀가
한티가는 길, 4구간 여정(동명성당-남원리 원당공소-진남문) 약도 : 네이버 지도검색 색인
한티가는 길 5구간 여정(가산산성 진남문-마당재-한티순교성지) 약도 : 네이버 지도검색 확인
첫댓글 상세한 안내에 감사드립니다.
사진 글 생동감 넘치게 올려주심 감사드립니다 ~~
제 집에 본인 쓰레기 버리는데 왜 그러십니까? ㅎㅎ
휴양림 일직 근무하면서 지나간 후기를 하루종일 되십어 보고 있습니다..
교육팀장님 글에 흠뻑빠져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