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박상률의 작품 '봄바람'의 일부분이다. 이를 잘 읽고,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나는 노래 경연 대회에서 서울 아이 어머니의 노래를 듣고 난 뒤부터 서울 아이에 대해 그전과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서울 아이는 처음 전학 왔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명랑하고 사근사근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아이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어 볼 말도 없고, 말을 나눠야 할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뚱하게도 노래 경연 대회 이후 푸른 목장에 어울리는 밀짚모자 아가씨는 은주보다 서울 아이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은주는 무뚝뚝하고, 서울 아이는 쾌활하다. 은주는 시골말을 쓰고, 서울 아이는 서울말을 쓴다. 은주는 키가 작고, 서울 아이는 키가 크다. 은주는 얼굴이 검고, 서울 아이는 얼굴이 희다. 은주는 향단이고, 서울 아이는 춘향이다. 나는 자꾸만 그렇게 은주와 서울 아이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꽃치의 흉내를 낸 것이긴 하지만, 내가 은주네 사립문 안쪽에 꽃다발을 수도 없이 걸어 놓았는데도 은주는 그 동안 꽃에 대해서 한 마디로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갑자기 은주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가시나, 내가 갖다 놓은 것인 줄 알면서도 새치름하긴......' 사립문 안쪽에 걸어 놓은 꽃다발을 내가 갖다 놓은 것인 줄 은주가 어떻게 알리오만, 난 은주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 아이 같으면 어땠을까? 내가 갖다 놓았다는 걸 눈치채면 바로 나에게 고맙다며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말했을까?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꾸만, 서울 아이 같았으면 절대로 남의 마음을 몰라주지 않고 꼭 반응을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이 지나면서 찬 이슬이 내리는 날이 많아지자, 슬슬 염소의 겨우살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풀을 베어다가 말리기도 하고, 콩깍지를 말리기도 하고, 고구마를 캔 밭에서 거둔 고구마덩굴을 밭둑에 널어서 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집 염소는 소와는 달리 솔잎도 곧잘 먹어서 겨울에도 솔잎은 따다 줄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의 풀도 시들기 시작해 그 파랗던 산등성이가 조금씩 갈색으로 변해 갔다. 푸른 목장에 염소를 매어 놓을 일은 없었지만, 은주와 지낸 추억을 생각해 가끔 푸른 목장에 올랐다. 벌써 나한테도 추억이 생긴 것이다. 열세 살짜리의 가슴에도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들국화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서리를 맞으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그 꽃은 과연 들의 꽃이었다. 대부분의 꽃은 봄이나 여름에 몰려 피는데, 들국화는 늦가을에 피어 더욱 빛난다. 그것도 집 울타리 안이 아니라 찬 서리 맞으며 거친 들에 피니 더욱 야무져 보인다. 추석을 앞뒤로 해서 달포 가량 보이지 않던 꽃치가 들국화가 피어남과 동시에 드디어 고개를 넘어왔다. 그의 망태기엔 노란 들국화와 하얀 들국화가 잔뜩 피어 있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들국화를 한 움큼 꺽어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선 재빠르게 산을 내려와 꽃치의 뒤를 따랐다. 꽃치는 내가 뒤에 따라가는데도 아무런 반응 없이 노래만 했다. 그의 노랫소리가 가까이 들릴수록 그가 점점 가깝게 느껴졌다. 열세살의 나이란 벌써 이만큼 자란 것을 보여 준다. 꽃치가 무섭지 않고 정답게 느껴지는 나이....... 꽃치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나는 손에 들고 온 들국화 다발을 내 방 옆 토방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런데 돌아서는 순간, 들국화로 꽃다발을 만들어 누구에게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같으면 선물을 줄 사람이 당연히 은주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다르다. 나도 모르게 은주보다는 서울 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를 따로 만나기 쉽지 않다. 학교에선 다른 아이들 눈이 있어 내 뜻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한가지다. 아침 일찍 그 아이가 학교에 오기 전, 삼거리 다방 앞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서울 아이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동안은 은주 때문에 미처 그 아이를 만날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다르다. 서울 아이를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사실, 푸른 목장에 어울리는 밀짚모자 아가씨는 서울 아이다. 적어도 푸른 목장엔 서울 아이처럼 세련된 아가씨가 어울린다. 나는 저녁 숟갈을 놓자마자, 내 방으로 들국화를 들고 들어가 꽃과 잎사귀를 가지런히 잘 다듬은 뒤, 다발을 지어 실로 묶었다. 그런 다음, 하얀 시험지로 아랫부분을 감쌌다. 방 안에 두면 시들까 봐 바람이 통하는 헛간 바깥쪽 벽에 조심스럽게 걸어 둔 뒤 잠을 청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했지만,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슨 이유를 대며 서울 아이에게 저 꽃다발을 줄 것인가가 걱정되었다. 방금까진 무조건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다가 괜히 얼굴 붉힐 일이나 생기지 않을는지 망설여졌다. 또, 마음 한켠에선 가는 토끼 잡으려다 잡은 토끼 놓치는 꼴이나 안 되는가 망설여졌다. 그렇다면 산토끼를 잡으려 애쓰지 말고 집토끼나 잘 간수해야 할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저걸 들고 은주네 집에 가 볼까? 날씨가 쌀쌀하니까 은주 고모도 마당에 나와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금방 지워 버렸다. ‘은주 고 가시나, 한 번쯤 날 찾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찾아오지 않다니.......’ 난 자꾸만 은주를 고깝에 생각하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움 포개서 미움이 있다더니, 요즘 은주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입 안이 깔깔하고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간밤에 뒤척이느라 잠을 깊이 자지 못한 탓이리라. 나는 보통 때 보다 훨씬 더 정성들여 세수를 했다. 그리고선 오늘 주번이라서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며 어머니에게 서둘러 아침을 차려 달라고 졸랐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엔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양치질까지 했다. 굵은 소금을 잘게 빻아 만든 양치 소금을 손가락에 묻힌 뒤 이를 빡빡 문질렀다. 자, 이제 출발이다! 나는 책보를 어깨에 가로질러 단단히 멘 다음, 꽃다발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학교 가는 길에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늘해진 아침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기를 몇 번 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새 다리까지 후들거릴 정도로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학교 앞에까지 왔다. 학교 운동장에도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 등교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아는 아이를 만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학교 앞을 지나 면 소재지 마을로 들어설 때까지 다행이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마침내 삼거리 다방 앞에 섰다. 다방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다방을 돌아 다방 안집을 기웃거렸다.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부딪쳐 보자고 결심했다. 다방안집을 들여다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서울 아이가 어서 나왔으면.......’ 그렇다고 큰 소리로 그 아이를 불러 낼 수도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학교 가는 아이가 나를 볼까 봐 다방 뒤쪽에 몸을 잘 숨긴 뒤, 서울 아이가 집을 나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도 집 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학교 갈 시간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었으므로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엉뚱하게 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 아침 일찍 웬일이니?” 서울 아이였다.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놓칠 뻔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쪽에서 그 애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 아이는 손에 개줄을 쥐고 있었다. 개가 내 발 밑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아니, 잘 됐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이란, 시루에 켜켜이 앉혀진 떡처럼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포개어 할 수도 있다는 걸 난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내 입에선 참으로 멋없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개, 데리고, 어디, 갔다, 오니?” 더듬거리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나는 서울 사람들의 말투인 ‘니’자를 끝에 붙여 말하고 있었다. 서울 아이는 구김살 없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응, 메리 운동 좀 시키고 오는 길이야.” “개를...... 운동을...... 시켜?” 그냥 풀어 놓으면 개 스스로 알아서 뛰어 다닐 텐데, 목줄을 매서 일부러 운동을 시키다니! 이것도 서울 식인가? 그러나 그것보다도 개한테도 누렁이나 백구가 아닌, 사람식의 이름이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메리라니, 메리라니? 이 개는 분명 토종 진돗개인데 서양식으로 메리라니?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도 그렇게 미끌미끌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나는 그런 사실을 서울 아이를 통해서 배운 것이다. 하긴,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이름 없는 것이 있으랴. 살아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눈에 들어오는 것이면 모두 저마다의 이름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무슨 이름이든지 이름은 스스로 그 이름으로 자처하기보다는 남이 부르는 대로 지어져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치도 그렇고, 들국화도 그렇고, 여기에 있는 ‘메리’도 그렇다. 그 누구도 자신이 꽃치고 들국화고 메리라고 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으면 불편해하는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아이는 개도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다고 느꼈기에 이름을 붙여 주었을 것이다. 나는 마냥 망설이고 있을 수만도 없어 다짜고짜 꽃다발을 내밀었다. “응, 이거.......” “웬 꽃이니?” “어제 산에서 꺾어 왔어.......” 끝내 “너 주려고.”라는 말은 달지 못했다. 왠지 쑥스러워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머, 예쁘다 ! 이 꽃, 나 주는 거니?” “응.” “근데 오늘이 내 생일인 줄 어떻게 알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오늘이 서울 아이의 생일이라니! 나는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귀신이 아닌 바에야 오늘이 서울 아이의 생일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나는 얼렁뚱땅 둘러댔다. “꼭 생일이라서 그런다기보다는 꽃이 예뻐서 네 생각이.......” 그 순간엔 나는 내 자신을 잘 몰랐지만, 아마 “네 생각이 나서.”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얼른 돌아섰다. 그 자리에 더 서 있다간 말이 어디로 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서울 아이가 “얘, 훈필아, 낮에 학교 끝난 뒤.......” 하며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서울 아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을 못 한 터라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그 다음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뒤꼭지가 근질근질함을 느끼며, 길을 되짚어 학교로 향했다. 여전히 학교 가는 길에 아이들은 없었다. 텅 빈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가슴을 뒤로 젖히고 “야! 야! 야!” 하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 동안의 긴장감과 화끈거림을 넓은 운동장에 다 쏟아 내 버리기라도 하듯이....... 가슴 한쪽에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 아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사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전 학년 학생의 이름을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학 온 지 한 학기도 되지 않은 서울 아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그 날, 우리 반 머시마들의 정보에 따르면, 오늘 학교가 끝나면 옆 반 가시나들은 서울 아이의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정보엔 내가 서울 아이에게 생일 선물로 준 격이 되고 만 꽃다발 얘기는 없었다. 내겐 벌써 아이들이 모르는 비밀이 생겨 버렸다. 다른 열세 살짜리 아이들 몰래 생긴 비밀. 난 그만큼 웃자라 있었다. 서울 아이가 자기 생일이라고 자기 반 아이들을 초대한 모양인데, 은주도 거기에 갔을까? 특별히 안 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못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주는 고모 때문에, 학교에 갔다 오면 곧장 집으로 가 집을 지키는 게 일과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은주 고모는 보통 땐 혼자서 히죽히죽 웃거나 뜻도 이어지지 않은 소리를 중얼거리긴 해도, 일을 저지르진 않으므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발작을 하게 되면 똥을 싸서 온몸에 바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울다 웃다 하다 펄펄 날뛰며 발가벗은 몸으로 집을 뛰쳐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은주는 늘 집에 있으면서 고모를 잘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발작했을 때의 은주 고모는 기운이 항우 장사 이상이였다. 사실, 그런 고모를 어린 은주가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그렇지만 최소한 발가벗은 알몸으로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만이라도 막기 위해 은주는 늘 집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발작이 끝났을 때에는 고모의 몸을 씻겨야 한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 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은주가 서울 아이의 집에 갔느냐, 가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 점심을 먹고 은주네 집에 한번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은주네 집에 들어갈 적당한 명분이 없었다. 밤 같으면 어둠을 틈타 살며시 들어갈 수가 있는데, 낮에는 다 큰 녀석이 괜히 남의 집을 어정거리다가 어른들이라도 만나면 실없는 놈으로 취급을 받기에 딱 알맞다. 그렇다고 해서 궁금증을 참고 있기엔 너무 조바심이 났다 괜히 집을 나와 마을 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은주네 집 앞에 섰다. 집 안이 조용했다. 사립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내가 전에 갖다 둔 것이 틀림없는 코스모스 꽃다발이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채 아직도 거기 있었다. 묘한 부끄러움과 서글픔이 치밀어올랐다. 나는 누가 볼세라, 얼른 말라비틀어진 코스모스의 잔해를 집어 들고, 은주네 집 앞을 벗어났다. 느낌에 은주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울 아이의 집에 간 것이 틀림없다. 당산 나무 거리에 나와 괜스레 어정거려 보았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놀러 나오는 아이도 없었다. 추수가 다 끝난 들녘엔 머무를 곳 없는 늦가을의 찬바람만 가끔씩 외로움을 견디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길 위에고, 논 위에고, 산 위에고,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숨어들었을까? 사람이 그립다. 나는 비로소 외로움이라는 말을 나에게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열세 살짜리들 보다 웃자란 죄로 나는 외로움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야 했다. 나는 열세 살의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계절의 틈에서, 그 틈 사이엔 외로움이 있다는 걸 알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