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있는 예배당 봉헌 이야기
2024년 11월 24일 다수교회에서 성전 리모델링 봉헌 감사예배가 있었다. 여름 내내 푸르렀던 이파리에 가을이 물들고 한 해를 울긋불긋 치장하며 마무리하느라 바쁜 만추의 때 은혜받은 시간이었다. 다수교회는 다수리에 살던 이명섭이 평창제일교회 출석하다가 1969년 12월 3일에 자기 집에서 첫 예배로 모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70년 4월 이명섭의 부친(이동수)이 다수교(多水橋) 아래쪽 동굴 건너편에 대지 50평에 건평 18평의 목조 한옥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80년 대홍수로 예배당이 떠내려가는 참사를 당하고 1981년 6월 1일 최창순 집사가 헌납한 대지 60평에 40평 예배당과 13평 목사관을 건축하여 1981년 11월 20일 완공하였다. 그 후 1994년 현재의 조완형(趙完衡) 목사가 제15대 담임자로 부임한 이래 다수리 영혼을 담당하며 구원의 방주로서 그 사명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덧 세월은 평창강물처럼 40여 년이 흘렀다. 사람이 늙어가듯이 예배당 건물도 낡아졌고 목사관 역시 그러했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도록 낡아버린 벽돌 건물의 작은 틈새로 들어오는 겨울 강바람이 유난히 추웠던 예배당이다. 천정 어딘가에는 새가 둥지를 틀고 살림을 차렸고 그놈을 잡아먹겠다고 뱀이 출현하여 어느 때는 예배 중에 고개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는 때도 있었다. 이런 예배당에서 2024년 4월 7일 지방 남선교회가 제2 계삭회로 모였다. 직접 교회 상황을 목도하고 당장에 예배당을 보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접하게 된 것이다. 남선교회장 이용배 장로는 회의 끝에 건축업 종사자들이 재능 기부하는 형식으로 최소한의 경비만 들여서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낡은 건물 보수 공사는 반드시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국 전면적인 예배당 리모델링 공사로 확대되었다. 지방 내 교회들과 뜻있는 개인들, 외부 단체가 동참할 것을 부탁하고 믿음으로 첫 삽을 떴다. 그날이 2024년 9월 1일이었다. 여러 곳에서 사랑의 마음이 속속 답지하였다. 공사는 시작하고 보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법이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그때마다 돕는 자를 보내시고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셨다. 당초 340만 원으로 공사를 시작했는데 결산을 보니 8천만 원이 소요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목사관이 예배당과 비교되어 더 남루하게 보였다. 더욱이 이곳은 매일 사람이 호흡하는 생활공간이 아니던가? 외형보다는 내실 있게 더 잘 꾸며야 할 당위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예산은 없지만 또 믿음으로 건축 2부 순서를 진행했다. 3천만 원이 결산되어 11월 8일 2개월의 대 장정에 종지부를 찍고 오늘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의 봉헌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동부연회 우광성 감독은 다수교회 성전 봉헌식이 한 두 사람의 공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헌신한 쾌거요, 그 누구 하나 건축한 장본인이 없다고 고백하는 은혜로운 공사였음을 칭찬했다. 굳이 공로자를 꼽으라면 모두가 남선교회장을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그 역시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조완형 목사는 공사 실무책임자 안성규 장로(대화남부교회), 건축 총책임자 이용배 장로(종부교회)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그간의 노고를 주님의 이름으로 치하하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특히 건축비가 바닥이 났을 때 원주서지방 큰나무교회 담임목사의 통 큰 후원은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후원자나 수혜자 모두가 공감했다. 이뿐 아니다. 여러 손길들의 저마다 쏟아낸 이야기는 한결 같이 은혜로운 간증 그 자체였다. 정말 이번 건축은 직접 하나님의 개입하신 역사였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사였다. 이용배 장로가 공사보고하다가, 조완형 목사가 인사말을 하다가 목메어 떨리는 음성, 목회자와 남녀선교회 회원들의 수고, 내 교회 예배당 건축을 외부에만 맡길 수 없다면서 보여준 다수교회 교인들의 눈물겨운 헌신의 이야기 등등 모든 것이 감동적이지 않은 게 없다. 다수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신앙 유산이다. 공사가 끝났는데 누구도 공사한 사람이 없는 이상한 건축, 모두는 한결 같이 이렇게 고백한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평창군 다수리는 원래 북면 지역에 있으며 조선지지, 평창읍지에 다수리로 기록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될 때 뒷말, 방축매기, 산제당이 병합되어 다수리는 군내면(郡內面)인 평창면에 편입되어 지금까지 지명이 바뀌지 않았다. 여름 한철은 어디를 가나 물이 많은 지역이라서 그 이름은 세월의 풍상에도 없어지지 않은 것 같다. 한때는 장수(長壽)의 마을이라고 해서 다수(多壽)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번 40여 년만의 예배당 개축공사를 기점으로 해서 다수교회는 새로운 비전을 품는다. 이 시대에 예수님의 복음을 더욱더 풍성하게 전하고 싶은 소망이다. 평창강을 끼고 있는 다수리의 교회답게 이 마을 모든 영혼들에게 목마름을 해갈시켜 줄 예수님의 생명수를 더욱 흘러넘치게 해야 할 사명이다. 특히 이번에 조완형 목사는 10년 동안 씨름했던 철학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하필 예배당 봉헌식과 그 시기가 맞물린 것은 그동안 묵상하고 갈고닦았던 말씀을 이제 깊은 우물에서 막 퍼 올린 생수처럼 흐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닐까? 평창의 강물이 가득한 다수리가 아니고 생수의 강물이 차고 넘치는 다수리가 되도록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제 비옵나니, 다수리(多水里)에 사는 다수(多數)의 사람이 물댄 동산 다수(多水) 성전에서 흘러 보내는 생수를 마시고 다수(多壽)의 복인 영생을 얻게 하소서.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에스겔 47:8).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24년 9월 9일 조완형 목사
다수교회 예배당리모델링 건축을 책임진 평창지방 남선교회 연합회장 이용배 장로(종부교회)
내부 전기공사가 한창이다(2024년 9월 9일)
봉헌예배 순서지
하늘에서 본 다수교회 전경
봉헌식 축도 우광성 동부연회 감독
동부연회 감독으로 공로패를 받은 조완형 목사
통 큰 후원 원주서지방 큰나무교회 김홍구 목사의 축사
봉헌식 집례 평창지방 원창연 감리사
2부순서 봉헌예식사
1부 예배 설교 우광성 감독
기도 최승화 목사(종부교회)
헌금기도 홍성현 목사(봉평교회)
임사자 기념 촬영
단장된 예배당과 목사관
1981년 11월 20일 완공된 예배당이며 지금의 예배당의 모습이다.
1980년에 대홍수로 잃어버린 예배당을 1981년에 다시 건축중이다.
1980년대 다수교회 교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