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새 엄마와 마태오
열아홉 새 색시가 시집을 왔습니다. 훤칠하게 잘생긴 남편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 뒤편엔 세 살 배기 남자아이가 서 있습니다.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엄마와 남동생을 한꺼번에 잃고 슬퍼하던 아이에게 새 엄마가 생긴 겁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모자(母子)간의 인연, 저희 친정아버지 마태오와 새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새 엄마와 아들은 열여섯 살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
당시 엄마 젖이 그립던 아이는, 새 엄마의 젖꼭지를 만지고 비틀면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아프다고 밀어내면 울면서 떼를 쓰기에, 억지로 참았습니다. 애도 낳아보지 않은 새댁이 이런 일을 겪은 겁니다. 또 아들이 새 엄마와 다투고 할머니 댁으로 달려가 일러바치면, 할머니는 영락없이 시어머니께 불려가 야단을 맞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한 번도 억울하다고 변명하거나, 아들 탓을 하지 않고 늘 침묵하셨습니다. 제가 만일 할머니와 같은 그 나이였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할아버지)와 아들(아버지)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엄하고 검소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색하셨고,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늘 반항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월사금을 주지 않자, 새 엄마는 몰래 벼 가마니를 꺼내 리어카에 싣고 방앗간으로 향했습니다. 도둑질이 따로 없습니다. 방아를 쪄서 마련해준 월사금을 들고, 학교에 가는 아들을 볼라치면 너무 불쌍했다고 회상하셨습니다.
그렇게 착하신 우리 할머니, 얼마 전 96세의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할머니가 고모들에게 마지막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나 마태오네 집에 가서 일주일이나 자고 왔어. 연신 뭘 먹으라고 갖다 주고, 사탕도 까서 내 입에 넣어주고…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사실 할머니는 이틀 밤을 주무시고 가셨는데, 일주일동안 지낸 걸로 착각하신 겁니다. 얼마나 행복했으면 그러실까요.
입관식에서 할머니는 평소의 성품답게 올곧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금세 목이 메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우리 착한 할머니, 우리 아빠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는 하느님께서 불쌍한 우리 아빠에게 보내주신 천사였어요. 할머니는 분명 천당에 가셨을 거야. 사랑해요.”
관 속엔 곧 날아오를 것 같은 나비 모형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나비처럼 사셨습니다. 순리의 바람을 다 받아 안으시고, 뭘 쌓아 놓거나 채우지도 않으시고, 당신 앉은 자리를 항상 깨끗이 하시며 욕심 없이 가볍게 사셨지요. 할머니는 죽음도 나비처럼 받아들이시며, 훨훨 하늘로 오르신 겁니다. 순교자처럼 살아오신 당신의 공덕을 품에 안고서 말이지요.
80년 전, 어린 마태오가 우두커니 앉아 엄마를 그리워할 때, 천사처럼 찾아와 준 열아홉 새 엄마, 멋쩍은 표정으로 아이를 안았을 모습이 상상됩니다. 파란만장한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 장면 같습니다. 정말 파란만장했을까요. 할머니에게 물어볼 걸 그랬습니다. “할머니,
큰 아들 마태오, 어떤 아들이었나요.”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의 글이
의정부 주보에 게재되었군요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