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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왔다.
43.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44.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45.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시체를 요셉에게 내어주었다.
46. 요셉은 고운 베를 사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려다가 그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디에 그가 안장되는지를 지켜 보고 있었다.(막15:42-47)
42-43 It was toward evening when Joseph of Arimathea arrived. He was a respected member of the Council, who was waiting for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It was Preparation day (that is, the day before the Sabbath), so Joseph went boldly into the presence of Pilate and asked him for the body of Jesus. 44 Pilate was surprised to hear that Jesus was already dead. He called the army officer and asked him if Jesus had been dead a long time. 45 After hearing the officer's report, Pilate told Joseph he could have the body. 46 Joseph bought a linen sheet, took the body down, wrapped it in the sheet, and placed it in a tomb which had been dug out of solid rock. Then he rolled a large stone across the entrance to the tomb. 47 Mary Magdalene and Mary the mother of Joseph were watching and saw where the body of Jesus was placed.
당시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1.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흉계를 꾸며서 예수를 죽일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막14:1,2)
그런데 그들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다윗 왕이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를 거두자 백성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호했습니다.
백성들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들의 노래 때문에 사울이 훽 돌아버린 것입니다.
사울 안에서 시기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사울 안에 있는 시기심에 제동이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 때문이 아닙니다.
그 장소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영락없이 다윗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은 그 다음부터 군대를 몰고 다윗을 죽이러 다녔습니다.
사울 왕을 끌고 다닌 것은 사울 안에 있던 시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심이 다윗을 죽인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사울 자신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을 산으로 바다로 몰고 다니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천천이며 이 청년은 만만이라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 다음 그들 안의 시기심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고발했지만 이방 사람 빌라도의 눈에도 대제사장의 속이 훤히 보였습니다.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 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막15:10)
지도자들의 시기심에서부터 곪아 터지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1:15)
나를 죽이는 가장 강력한 적은 실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롬7:21)
신앙은 죽을 나를 생명으로 살리는 일을 이릅니다.
그런데 신앙심이라는 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안에서 작동하는 그 시기심을 제동 거는 일을 두고 신앙심이라고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내 힘으로 내 안의 시기심에 제동을 걸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나를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 신앙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일을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제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중심을 성령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그 때도 대제사장과 지도자들 안에서 이 시기심이 작동을 하더니 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만 것입니다.
달리 지옥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구원자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그 일이, 또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리스도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는 것이 지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애 이렇게 무지한지 모르겠습니다.
지옥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천국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이 피조물들이 창조물에 대해 사사건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 될 일인데 그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무엇을 꼬치꼬치 알려고 하는 것인가?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지으시면서 그 중앙에 과일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하필 그 중앙에 그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나무를 심으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또 그 열매를 먹어서 안 되는 이유를 다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해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먹고 나서 알고 보니 그들이 지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갖지 못해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면 생명을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죄인 즉 지옥을 모르면 천국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지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죄인들은 천국을 알기 위해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창자가 쏟아지고 그렇게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지옥의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인가?
22. "죽을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의 주검은 나무에 매달아 두어야 한다.
23. 그러나 너희는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어라.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신21:22,23)
이제 시간이 흐르면 안식일이 됩니다.
나무에 걸리신 주님을 어떻게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밤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아리마데 요셉이라는 사람이 등장한 것입니다.
42.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왔다.
난감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등장한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어부 출신 베드로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 앞에 당당히 나서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한 사람은 고위 관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요셉 같은 그런 관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들리는 관리들뿐입니다.
살살 비위를 맞추고 제 권력을 보장받고.......
43.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42-43 It was toward evening when Joseph of Arimathea arrived. He was a respected member of the Council, who was waiting for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It was Preparation day (that is, the day before the Sabbath), so Joseph went boldly into the presence of Pilate and asked him for the body of Jesus.
먼저 그는 의회 의원이었습니다.
그 의회는 예수님의 사형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도 그 의회를 대변해야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 의원 중에 전혀 다른 소수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50.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회의원이며,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51.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찬성하지 않았다.- (눅23:50,51a)
당시 헤롯 가문이 유대를 통치했습니다.
이 헤롯 왕가는 안티파터 때부터 로마 제국과 깊은 관련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본래 이두메인인데 유다인들에게 정복당해서 유다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안티파터는 전쟁을 잘 이용하여서 로마 황제로부터 유다 지역의 책임자로 임명받았습니다.
처세에 능했습니다.
헤롯 대왕은 안티파터의 아들로 47년 갈릴리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유대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로마 통치자들의 호감을 얻어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에는 온갖 정치적 술수를 다 했지만 백성들에게는 잔인했습니다.
실지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대 헤롯은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대헤롯의 아들입니다.
그는 제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살았습니다.
요한이 그 잘못을 지적하자 그는 요한을 목 잘라 죽여 버렸습니다.
이런 험한 현실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시기심으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위기의 현장에 요셉이 감히 로마 총독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이 사람에게 가능했던 이유를 성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43.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42-43 who was waiting for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그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헷갈리기 때문에 비교할 수밖에 없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도 그렇게 하나님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눅3:7-9)
요한은 하나님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사람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즉 좋은 열매를 맺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일어날 일입니다.
6.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7.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사11:6-9)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의 죽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삶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막8:35)
로마는 식민독재를 했습니다.
십자가형은 그런 식민 정치술입니다.
십자가의 잔인한 형벌 방식과 그것을 끌고 마을을 행진하게 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잔인하게 시체를 효시하는 것은 그들의 의도된 행위였습니다.
그런 그들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독재자들의 예측할 수 없는 한 마디에 죽고 사는 일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요셉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빌라도라는 맹수의 굴에다가 손을 집어 넣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확신을 가지고 부활을 예견하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당장 예수님과 함께했던 여인들조차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빈 무덤에서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 갔거든, 어디에다 두셨는지를 말해 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요20:15)
이 여인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들어왔고 또 그 고백을 했습니다.
25.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26.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습니다."(요11:25-27)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부활의 현장에서는 예수님의 시체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요셉은 예수님을 대하는 관리들의 태도가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일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형으로 이렇게 죽을 일을 하신 적이 없다.
그것은 지도자의 시기심 때문이다.’
그 불의를 참을 수 없어서 그런 소신 행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본 의식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의 순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며 또한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44. 그 때에 그들도 대답하여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45. 그 때에 임금은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마25:44,45)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을 뿐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여를 입에 달고 살지만 생명을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43.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42-43 so Joseph went boldly into the presence of Pilate and asked him for the body of Jesus.
독재자 헤롯도 슬금슬금 눈치 보는 로마 총독 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시체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44.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44 Pilate was surprised to hear that Jesus was already dead. He called the army officer and asked him if Jesus had been dead a long time.
지금 요셉은 의인의 죽음에 대해 분노를 품은 것입니다.
그의 요구의 한쪽에는 빌라도에 대한 추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빌라도가 요셉의 얼굴을 보면 모르겠습니까?
또한 시체를 효시하는 것은 로마의 식민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로마에 방항했다가는 이 꼴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까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극도의 공포심을 심어 주려는 의도를 깔고 하는 일입니다.
빌라도에게 그런 의사 표현을 했던 어떤 사람도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그의 의견에 백부장을 불렀습니다.
이 백부장은 상관인 총독의 명령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상관이 명령하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백부장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그 현장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39.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고 말하였다.(막15:39)
옆구리가 창에 찔려 죽으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한 것입니다.
45.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시체를 요셉에게 내어주었다.
45 After hearing the officer's report, Pilate told Joseph he could have the body.
빌라도가 예수님의 시체를 그대로 내어주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빌라도는 이 예수님의 문제를 사무적만 다룰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영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동원했고 마지막에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 일을 했다고 마음 속의 두려움도 씻겨졌겠습니까?
그는 영적 두려움에 쫓겨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처세를 위해 수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오히려 요셉에게 위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세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죽음에 대한 이해에 있습니다.
54.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고전15:54,55)
요셉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를 지배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정의심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이르는 것입니다.
46. 요셉은 고운 베를 사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려다가 그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46 Joseph bought a linen sheet, took the body down, wrapped it in the sheet, and placed it in a tomb which had been dug out of solid rock. Then he rolled a large stone across the entrance to the tomb.
요셉은 예수님에 대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요셉의 행위는 예수님께 대한 입장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의 뜻을 정확히 역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삼일 후 사람들은 이 요셉이 사온 고운 베가 단정히 정리된 것을 볼 것입니다.
그 큰 바위는 옮겨지고 무덤문이 열린 것을 볼 것입니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디에 그가 안장되는지를 지켜 보고 있었다.
47 Mary Magdalene and Mary the mother of Joseph were watching and saw where the body of Jesus was placed.
이 여인들은 먼발치에서 요셉의 이 일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주일 아침 가장 먼저 이 장소에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 그 자리에 누워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리 죄인들에게는 죄인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영생의 나라도 예비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