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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20.수)
1.일시: 4월 20일(수) 오전 10:00
2.모임장소: 잠실나루터역.
3.참석자(7명):권호성.김창덕.김헌식.엄영섭.오춘식.유재성.이도경.
4.등산코스:-잠실나루터역-중부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마이산남부주차장-금당사-탒가-은수사-천황문-암마이산등정-.마이산남부주차장-잠실나루터역(3시간)
봄비 내린 세상은 어떤가.
새싹 돋아 연두 빛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봄꽃들도 형형색색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오늘은 수산노리 탄생하고 두 번째 장거리 나들이하는 날 마이산여정이다.
마이산은 관광지 쯤으로 생각해서 아주 노년에나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망거진산의 말이 아니더라도 잠간 들러가는 여행지라고들 인식한다는데.
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 또한 그러하리니 한다.
때로 가까운 곳에 참으로 좋은 곳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가보지 않고 이야기 하지 말라.
그동안 그림으로 만 본 마이산을 얼마만큼이나 상상 했느가.
“명승 제12호 ‘미슐랭 그린가이드’ 별3개(★★★)만점”.
세계 최고의 여행 안내서인 프랑스의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별 세 개의 만점을 받아 대한민국 최고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늦은 방문에 송구스러운 마음 가져야 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으로 이루어진 ‘세계 유일의 부부봉’이라고
아름다운데 신비하기 까지하여 그 소중한 가치를 이제야 깨닫는 부끄러움도 느껴야하지 아닌가 모르겠다.
마이산의 탑사. 마이산 돌탑.마이산의 지질.그리고 마이산 벚꽃길.
그것들이 하늘과 땅이 마주하고 있는 도시 진안고원에 꿈결처럼 신비로운 자태로 우리를 맞이한다.
거대함도 없고 빼어남도 없다.
다만 소박함과 겸손함의 두 부부라고 의인화되어 있을 쁀이다..
마이산 남부 입구에 도착하여 바라다 보이는 봉우리에 팔각정자 하나가 아스란히 눈에 띈다.
그 팔각정 전망대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작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른거린다.
입구에 주차하고 100여m 벚꽃길 호젓하다.
저수지 하나 있는데 호수라고 불러야겠다. 결코 작지 않은 것이 참 맑기도하다.
산 노루 사슴이 목 축이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몸이라도 담갔으랴.
옥황상제가 두 부부를 위해 만들었지 않았을까 상상해도 좋겠다.
연못 위 금당사 목탁소리가 백제의 혼이 서린 쳔년고찰이였고 후세에도 천년 만년 들려주겠다는
목탁소리 오늘 더욱 가슴에 닫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아~ 저 탑사와 탑돌들.
탑사는 동방 한민족의 전통'천지일월의 우주관'을 기본 구도로 하고 있다고 한다.
탑사 맨위 천지탑 2개있는데 부부탑이라 여기고 싶다.
쌓아올린 정성과 견고함이 확연도 하려니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산신령이 지키고 있어서 아닌가 생각하고 싶다.
아~은수사의 청실배나무 하이얀 배꽃.
조선개국에 대하여 계획을 마무리하고 기도를 마친 이성계는 돌배를 먹었단다.
배를 먹고 씨앗을 버렸는데 그 씨앗이 자라서 커다란 청실배나무가 되어 우리를 맞아준다.
배 맛과 향이 좋아 왕에게 진상했다고 하는데 우리들 그 배 맛을 어찌 할 수 있으랴.
우리 선인들은 산이라는 대상을 두고 관산(觀山), 유산(遊山), 요산(樂山)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것은 산을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들어가 노닐기도 하고, 그러면서 즐기는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산기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산을 오른다[등산(登山)]’고 하지 않고 ‘산으로 들어간다[입산(入山)]’고 하였다는데
그것은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허전할 때 기대고 싶은 대상이나 내 몸처럼 더불어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란다.
도봉산은 남성적인 산이다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등 암릉과 육산이 어우러진 산행이 쉽지않은 산이다
반면 마이산 암마이산 숫마이산으로 탑사가 있지만 육산으로 부드러운 여성적이미지로 산책같은 편한 산이다.
이런 표현들도 오늘 더욱 생생하게 와 닫는다.
해발 400m의 청청지역 고원에 685m의 마이산.
觀山이요 遊山이며 樂山이다.
마이산은 바로 나들이 산책로다.
산은 산이되 암바위 숫바위 산이다.
부부가 함께 하고는 있으나 비스듬히 누워 있는 듯한 암마이봉의 자세는 남편 숫마이봉을 배려하려는 것이 아닌가.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진안 고원을
‘하늘땅 고샅고샅에서 마을과 사람,문화를 잇는 진안고원길은 천상의 길이라고 표현하였다’.
산산산이 겹겹이고 저 아래 분지에 작으마한 고원이 정겨운 곳 저곳이 청정지역 진안고을 이다.
바로 맘마이봉 정상에서 진안 고원을 다 내려다 본다.
암마이봉 정상은 바로 우리 입산자들에게 단연 백미다.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을 ‘자연치유도시 제천’라고 하고
해마다 꽃박랍회를 여는 일산 신도시를 품은 고양시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고 한다.
하늘과 땅이 맞다아 신비의 마이산이 있어 ‘꿈을 품은 정원의 고원도시 진안’이라고 한다.
그 청정의 정원 고원길 여행은 바로 이방인들이 꿈꾸는 구름위의 정원이 아닐까.
마이산길에서 시작하여 섬진강 물길까지 4구간 진안고원길은 100km로 되어 있다.
살아 생전 연인과 함께 하늘땅 진안고원길을 걷는다.
그리고 긴 도보여행길 마치면 홍삼스파도 있다.
이런 상상만으로 행복한 꿈을 꾼다.
마이산주위 만이라도......이렇게 여정을 계획한다 해도 1박2일이여야 겠다.
오늘 마이산에 오니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
이를 어찌 할꼬.
진안군은, 6월 1일부터 ‘마이산북부 스탬프투어’를 운영한다고 한다.
마이산 여정 즐거웠다.
수산노리 4월 여정의 가치는 마이산이여서 더욱 빛났다.
재성이와 헌식이가 들려준 재담도 즐거웠고
어쩔 수 없구먼 저 많은 차량들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다이나믹하고도 안전한 스타랙스의 속도감은 쾌감이였으니까.
안전운전 해준 영섭이와 망거진산 수고 했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전해야지.
여정은 멋졌다.
연인과 함께라면 마이산만큼 더 매력적인 곳은 대한민국에 없다.
너무 과장한 표현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얼마인지 모르니까
가슴은 뛰고 다리는 아직 단단하니까.
대한민국 참 아름다운 나라 참 행복한 나라다.
☗.마이산
높이는 서봉(암마이산) 685m, 동봉(수마이산) 678m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으며, 동봉과 서봉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질은 백악기의 역암이다.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불렸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고, 동봉 중턱의 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인 탓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활엽수가 자란다. 4월에는 공원 입구에서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에서 주최하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동봉은 오를 수 없다.
또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봄이면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고 마이산 벛꽂축제가 열린다. 오가는 길에 전주∼군산 47㎞ 도로변이 벚꽃 터널을 이룬다. 가을이면 억새가 물결을 이루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든다.
문화재로는 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 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380)를 비롯하여 은수사·금당사 등의 고찰이 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보물 1266), 목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18), 석탑(전북문화재자료 122) 등의 문화재가 있다. 1979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김종직(성종때의 성리학자)은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마이산의 풍경을 노래하였다.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 밖에 떨어지니
쌍으로 쭈뼛한 것이 말의 귀와 같구나
높이는 몇천 길인지 연기와 안개 속에 우뚝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하네
중원(中原)에도 또한 이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천지조화의 공교함은 끝이 없으니
길이 천지가 혼돈했던 처음 일을 생각하도다
내 이곳에 가을비 뒤에 오니
푸른빛과 붉은빛이 비단처럼 엇갈렸네
멀리 바라보노라고 고개를 돌리지 아니하니
문은 밤새도록 열어둔 대로다
어떻게 해서 신선의 녹옥장(綠玉杖)을 얻어 높이 걸어
진흙 찌꺼기 같은 이 세상을 벗어나
쇠석암(哸石庵)에서 묵고 봉정(峯頂)에 올라
샘물을 마신 후 선동(仙童)과 서로 상의하여
방촌(方寸) 숟갈의 약을 먹을꼬
☗.석탑:
이갑룡(1860-1957) 처사가.
30년동안 쌓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갑룡씨는 1860년 전북 임실 둔덕에서 효령대군 15대손 이성우의 차남으로 태어난 이갑룡처사는 효성이 지극했다 한다.
이 처사는 부모 상을 당한 뒤 묘 옆에서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전국 명산을 전전한다.
1885년 25세가 되는 해에는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도를 닦는다. 그리고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은 그는 돌탑을 쌓기 시작한다.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 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이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 상단부분에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이라고 불렸는데 소사(小史)에 실었다. 태종이 남행하야 산 아래에 이르러 관원을 보내 제사를 드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이산 도립 공원[馬耳山 道立 公園]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마이산로 255[단양리 688-2]
개설:
마이산 도립 공원은 진안에서 남서쪽으로 4㎞, 전주에서 동쪽으로 40㎞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16.9㎢이다.
건립 경위:
마이산은 신비하게 생긴 바위산이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1979년 10월 16일 전국에서 9번째로 도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는 탑사(塔寺), 타포니 지형, 역고드름 등 특별한 자연 환경과 경관이 마이산이 도립 공원으로 지정되는 배경이 되었다. 마이산은 2003년 10월 31일 국가 지정 명승 제12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변천:
1979년 10월 16일 전라북도 고시 제207호로 도립 공원 지정이 공고되었으며 1991년 9월 1일 마이산 도립 공원 관리 사무소가 개소되었다.
구성:
마이산 도립 공원의 면적은 전라북도 도립 공원 중 가장 작은 16.9㎢이다. 나란히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라 시기에는 서다산, 고려 시기에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으로 불렸으며, 조선 태종 때부터 마이산이 되었다.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노령산맥은 용의 몸, 진안고원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며 마이산은 용의 뿔과 같다 하여 용각산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가을에 단풍이 물들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도 쌓이지 않아 먹물에 찍은 붓끝과 같다 하여 문필봉 등으로 불렀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에 걸쳐 있으며 남쪽 사면으로는 섬진강이 시작되고 북쪽 사면으로는 금강이 발원하고 있다. 두 개의 봉우리 중 약간 낮고 둥근 모양의 서쪽 봉우리를 암마이산[685m], 좀 더 뾰족한 모양의 동쪽 봉우리를 수마이산[680m]으로 부른다. 암마이산과 수마이산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어 등산을 할 수 있고 수마이산 중턱의 화엄굴[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아나는데, 예로부터 이 물을 마시고 산신에게 빌면 득남을 한다고 전해진다.
마이산 아래에는 80여 개의 돌탑이 남아 있는 탑사(塔寺)가 있어 그 신비한 장관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100여 년 전 이갑룡 처사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쌓기 시작한 것이라 전해지는데 인근 30리 밖에서 날라 온 돌로 기단을 쌓고 각처의 명산에서 가져 온 돌로 탑을 쌓았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조가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은수사와, 은수사에서 서쪽으로 2㎞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금당사(金塘寺)가 있다. 은수사와 금당사 사이에는 마이산묘(馬耳山廟)가 있으며, 금당사에서 서쪽으로 나가면 명소인 용암동문(龍岩洞門)이 있다.
현황:
도립 공원 업무는 진안군청에서 맡고 있다. 마이산 도립 공원 내 은수사에 있는 줄사철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3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명칭은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지’였으나 2008년 4월 15일 문화재청에서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지’에서 ‘진안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으로 등록 명칭을 변경하였다. 보호 소재지는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산18이고 지정일은 1993년 8월 19일, 지정 면적은 171㎡이다. 은수사의 줄사철나무 군락지는 대한민국 내륙 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줄사철나무의 북방 한계지이고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생태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마이산은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관광 등산 코스로도 유명하다. 수마이산은 난코스로 등산이 불가하며, 암마이산의 주요 등산로는 8개의 코스가 있다. ① 북부 주차장-천황문-탑군-탑영제[1.4㎞], ② 북부 주차장-천황문-남부주차장[3㎞], ③ 북부 주차장-천황문-탑영제[1.5㎞], ④ 북부 주차장-천황문-금당사[1.9㎞], ⑤ 북부 주차장-고금당-남부주차장[3㎞], ⑥ 북부 주차장-고금당-광대봉-함미산성[7.9㎞], ⑦ 남부 주차장-고금당-광대봉-함미산성[6㎞], ⑧ 남부 주차장-광대봉-보흥사[3.4㎞]이다.
또한 입구 3㎞ 진입로에는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중순 경에 남부 주차장 입구에서 매년 진안군청의 주관으로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남부 주차장 근처의 탑영제는 마이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모여 형성된 저수지로 마이산 봉우리가 거울처럼 비춰지며, 벚꽃이 필 무렵의 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최근 마이산은 드라마 및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2011년 5월 17일에는 프랑스에서 발간하는 세계적인 가이드북 『미슐랭 그린 가이드』 한국편에 마이산이 별점 3개를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소’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국내 여행 1001』(마로니에 북스, 2010)
「진안 드라마 촬영지 관리 강화해야」(『전북 도민 일보』, 2013. 10. 25.)
「진안 마이산에 ‘미슐랭의 별’ 3개나 떴다!」(『문화 일보』, 2011. 5. 11.)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91)
진안군 문화 관광(http://www.jinan.go.kr/)
한국 관광 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http://korean.visitkorea.or.kr/)
☎.마이산 도립 공원 관리 사무소.063-430-8751~5)
☗.마이산 설화
마이산에 얽힌 전설이 2가지가 있다.
1.마이산이 된 산신 부부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 나라에서 쫏겨난 한 산신 부부 내외가 이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면서 수 억겁 동안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하늘 천상계로 승천의 기회가 열렸다. 이때 남편 산신이 아내가 산신에게 말했다.
"이제 하늘 나라로 다시 올라갈 때가 되었소. 그러나 우리가 승천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면 부정을 탈것이니 사람들이 깊이 잠든 한밤중(자시11시~01시)을 택해 승천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한밤중은 너무 무섭습니다. 게다가 밤중에 일을 치르자면 너무 피곤합니다. 그러니 푹 자고나서 이른 새벽에 올라가십시다. 누가 꼭두 새벽에 잠 안자고 우리들이 승천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겠습니까?
남편 산신은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었지만 아내 산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이 무위로 돌아갈지도 몰라 불안 했지만 이튿날 새벽에 승천하기로 마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
산신 부부는 마침내 승천을 시도했다. 하늘을 향해 산이 쑥쑥 솟아가고 있을 때 아랫마을의 어느 부지런한 아낙네가 치성을 드리기 위해 정한수를 뜨려고 우물을 찾았다가 그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낙네는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질러 댔다.
이 소리에 부정을 탄 산신부부는 결국 꿈에도 그리던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져 지금의 암수 마이봉이 되었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 산신은 아내 산신을 걷어 차고는 두아이를 빼앗아 버렸다는 뒷얘기도 전한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수마이봉(해발 673m)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고, 암마이봉(667m)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한없이 고개를 떨군 채 후회하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2.조선개국
-김종직 옛시인의 노래에 등장한 임금은 바로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이다. 태종이 남행해서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짓기전에 이산은 신라때 서다산(서쪽에 많은 산들중에 가장 아름답게 쏫은산!, 쏫았다, 섯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용이 하느로 쏫아 오를듯 한 기상) 이라 불렸다. 그리고 조선의 태조는
속금산(금을 묶어 놓은 금덩어리 산! .., 땅속에서 쏫아난 산 )이라고 이름 붙였다고도한다. 이중에서 서다산과 용출산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즉 서다를 이두식 표기로 볼 때
그뜻은 '섯다'이고 그 한문식 표현은 용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몽금척 전설과 마이산의 별칭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 장수로 있을때 어느 날 꿈에 신인이 나타나 금척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금척으로 장차 삼한의 강토를 헤아려 보라. "
그후 이성계는 고려 우왕 6년(1380)전라도 운봉에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가 침입하자 한걸음에 달려가 무찌르고는 개선하는 길에 용출산을 보고 그 모습이 꿈 속에서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 듯하다해서 '속금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30일 동안 마이산에서 기도하며 건국의 대의를 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따르자면 이성계의 이씨가 목성에 해당되는 금과는 상극이므로 세상의 '금' 기운을 묶어 주라는 뜻에서 속금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전설은 이성계가 왕이 된 후 금강산에 금자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매우 꺼려하여 그 이름을 바꾸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여하튼 태조는 자신이 속금산이라고 명명한 이 산을 두고 이렇게 시를 지었다
동으로 달리던 천마 이미 지쳤는가
갈 길은 먼데 그만 쓰러지고 말았구나
연인( 내시)이 몸통만 가져가고 두귀는 남겼는가
두 봉우리 이루고 하늘로 솟아 있네.
태종은 1413년 10월 12일 이곳에 와서 부왕이 남긴 시를 보고는 마이산이라 개명했다. 그리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이일을 기념하여 수마이봉 아래에 있는 은수사에서는 매년 10월 11일 오후 마이산 제단에서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을 기원하는 마이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이 마이산 제단은 1990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해서 진안군이 복원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어찌 되었건 앞의 전설은 조선의 창업을 기리는 노래로 궁중의 연희악이나 종묘 제악에 사용되었던 '몽금척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데, 진안군은 매년 10월 12일을 진안 군민의 날로 정해서 몽금척무를 공연하고 부부 시인 담락당과 삼의당을 기리는 백일장 및 사생 대회, 좌도 농악 공연, 향토 미술인 초대전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치르고 있다.
이 몽금척요는 태조 2년 그러니까 1393년 7월에 관습도감이었던 정도전 이 가사를 지은 것이다. 태조가 개국한 후 관제의 개혁, 법령의 제정 그리고 신도의 건설 등 할 일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무악에 관한 한 대개 이전 왕조 즉 고려의 것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새 임금의 장수를 빈다거나 왕조 창업의 당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가사를 짓고 음악을 붙여 그에 걸맞는 새로운 정재를 창작했는데, 몽금척요는 그 정재 중에서 최초의 것이라고 전해온다. 몽금척요의 가사중에서 마이산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산의 사면은 모두 돌로 우뚝 솟아 돛대와 같은데, 그 아름다움이 그지 없이 좋도다. "
몽금척요라는 궁중정재는 궁중 무용 제1호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때마다 공연되었고, 국운이 기울게 된 구한말 새로운 훈장제도를 만들때 금척대훈장은 최고의 훈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마이산의 수마이봉은 당당하게 곧추 서있는 것이 마치 남근을 조각해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사람들이 오르내릴 수 없지만, 암마이봉엔 등산로가 개설되어있다. 휴게소의 오른편으로 난길을 따라 올라가면 약20분 가량 그리고 금당사에서 탑사 왼편으로 난길을 따라 올라 가면 40분 정도면 충분히 정상에 설 수 있다. 승천하지 못하고 산이 되어버린 탓이 아내 산신있다고 하는 전설을 떠올려 보면 아마도 암마이봉은 그 업보를 치르느라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밝힘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9&dir_id=901&eid=/p5bEM6e7X85tEyUP/w1QmlwioGTvZ9J&qb=wfi+yLi2wMy76g==여기로가시면 있음
☗.마이산 교통안내
대중교통
-진안으로 가서 마이산행 버스 이용.
ㅇ북부마이산
진안 - 북부마이산(10분소요) : 07:30~18:00, 30분 간격 (17회 운행)
북부마이산 - 진안(10분소요) : 07:40~19:10, 30분 간격 (17회 운행)
ㅇ남부마이산
진안 - 남부마이산 : 09:50, 12:50, 13:40, 16:40 (4회 운행)
남부마이산 - 진안 : 09:50, 12:40, 13:40, 16:20 (4회 운행)
진안에서 남부마이산 까지 택시 약 10,000원
-전주로가서 진안행 버스 이용
전주-(15분간격, 40분 소요)
마이산교통(진안군청)
도로안내
ㅇ 호남고속도로 전주IC -> 전주역 지나면서 좌회전 -> 26번국도 -> 화심온천 ->신정리->연장리 ->진안 ->마이산
ㅇ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덕유산IC -> 장수방면 19번 국도 -> 장계 ->진안방면 26번 국도 -> 진안-> 마이산
☗〔여행길 계획〕
3월 매화,개나리, 산수유 꽃 산행
4월 진달래, 벗꽃 산행
5월 철쭉 꽃 산행
6월 섬 산행
7월 계곡 산행
8월 야영
9월 특별히 가고 싶은 곳
10월,11월 단풍, 억새 산행
12월 기차여행, 또는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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