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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영방법
2014년 7월 27일 / 대예배 / 사사기 7장 1-9절(참고 요 6:7-13)
삿 7:1-9 / [너무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 여룹바알이라고도 부르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민병대가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나 하롯 샘 부근에 진을 쳤다. 미디안 진영은 이스라엘 진영의 북쪽, 즉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다.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기드온아! 너를 따르는 민병대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내가 미디안 사람을 그 민병대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 만일 내가 미디안 사람을 너희 민병대의 손에 넘겨준다면 이스라엘 민병대가 이길 것이 뻔하지 않느냐? 그러면 자기들이 싸움을 잘해서 이긴 줄 알고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를 것이 아니냐? 3) 그러니 이제 너는 민병대에게 자세히 일러주어라. 누구든지 싸움터에 나가 싸우기가 두려운 사람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좋으니 길르앗산에서 내려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여라.” 그러자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2만 2천명이나 되었고, 남아 있는 사람이 1만 명이었다.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아직도 민병대의 수가 너무 많다. 자, 이제 저 사람들을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정말 싸움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려내겠다. 만일 어느 사람이든지 내가 ‘이 사람은 너를 따라가 싸워도 좋겠다.’고 하면 따라가게 하고, 또 내가 누구든지 ‘이 사람은 너를 따라가서 싸울 수가 없겠구나.’ 하고 일러주면 그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5) 그래서 기드온은 민병대를 이끌고 물가로 내려갔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모두 물을 먹게 하여라. 그래서 개처럼 물을 혀로 핥는 사람은 따로 세워 두어라. 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도 따로 세워 두어라.” 6)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사람들이 어떻게 물을 먹는가 하고 보았더니 손으로 물을 한 움큼 쥐고 입으로 핥아 먹는 사람은 300명이고 그밖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먹었다. 7) 그러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물을 손으로 움켜 쥐고 핥아 먹은 사람 300명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리라. 그들이 너희를 구해 내리라. 남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여라.” 8) 기드온은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려 뽑은 300명만 남아 있게 하였다. 이 300명은 집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식량과 신호용 나팔을 거두어들였다. [확실한 승전] 미디안 사람들은 그 아래 평원지대에 진을 치고 있었다. 9) 그날 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미디안의 진지로 내려가 보아라. 내가 이미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
본문은 그 유명한 기드온 이야기입니다. 기드온은 사사였습니다. 왕이 없을 때 국가에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하나님은 지도자를 세우셨습니다. 그가 사사(士師)입니다. 여호수아 사후에서 왕정(王政)시대까지 350년간을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기원전 1,120년 경 활동하였습니다. 기드온이 300명 군대로 메뚜기 같이 많은 미디안 군대 135,000명을 물리칩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용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전략(戰略)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그 전략에 순종한 결과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관찰 포인트는 기드온이 처한 현실이 곧 나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1. 사사 기드온
미디안 군과 전쟁을 하게 되자 농사를 짓던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부름 받고 전쟁할 수 있는 군대를 소집하니 32,000명이 소집되었습니다. 그들은 훈련도 준비도 되지 않는 민간인들 즉 민병대입니다. 상대는 숫자도 엄청나지만 훈련된 상비군(常備軍, 유사시에 출동하기 위하여 편성된 군대. 또는 그 군인)들입니다. 성경은 미디안군은 메뚜기 같았다(6:5, 7:12)고 했습니다. 낙타 수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7:12)고 했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은 불가능합니다. 기드온과 그에 속한 300명은 현실이 암담하였을 것입니다. 보는 모든 이들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 그때 기드온은 무슨 심정이었을까요. 그는 심각하게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크게 보인다고 하지만 기드온의 심정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숫자가 많다고 줄이라고 하십니다. 13만 5천명에 비해 32,000명도 적은데, 하나님은 많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됩니다. 어느 이론을 따라야 합니까. 갈등 어디서 오는가 하면 불균형(不均衡, 균형이 잡히지 못함.)에서 옵니다. 아무리 균형을 맞추려 해도 역부족입니다. 방법은 부딪혀 보는 것뿐이요,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주시는 메시지는 신앙 안에서는 양이나 수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할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사건이 그런 경우입니다. 광야에 5천명이 모였습니다. 모두 굶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 주라고 하십니다. 찾아보니 오병이어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 드리며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하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먹어야 할 사람에 비하면 준비된 양은 터무니없이 적은 한 소년이 먹을 양 밖에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은 5천명입니다. 아이들 부녀자까지 합하면 2만 명 이상이 됩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 예수님은 이미 요한복음 2장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목격하였습니다. 4장에서 왕의 신하 아들이 죽음 직전에 치유 받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5장에서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고 6장에서 광야에 5천명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왜 모여 있습니까? 그런 기적을 보았기에 오늘도 그런 기적을 또 보려고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함이라”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그 말씀은 빌립이 오늘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나 안 믿나 시험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현실은 광야입니다. 사람은 5천명이 모였습니다. 먹을 것을 구할 방법이 전무(全無)합니다. 5병2어는 한 사람이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빌립은 그런 현실을 만나자 지금까지 본 기적들은 순간적으로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많이 모인 사람들만 눈에 보입니다. 그들을 먹이려면 3백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까짓 5병 2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합니다.
마치 물 위를 걷고 있었던 베드로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물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망각(忘却,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했을 때와 같습니다.
여러분 현실은 우리에게 고민하고 갈등하게 합니다. 현실은 더 크게 보이고 더 암담하게 생각되게 합니다. 빌립의 모습은 곧 내 모습이고 그의 생각은 곧 내 생각입니다. 기드온이 생각할 때 오늘 현실은 너무 컸고 자신의 모습은 메뚜기같이 너무 작습니다. 미디안과 싸우려고 모인 사람은 3만 2천명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줄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갈등이 오는 온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래서 고민하고 갈등했습니다.
2. 순종(順從, 순순히 복종함)
마침내 기드온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두려운 자는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3만 2천명가운데 2만 2천명이 돌아갑니다. 1만 명만 남았습니다. 기드온은 그렇게 많이 돌아갈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순간 기드온의 마음에 또 다시 두려움이 엄습해 왔을 것입니다. ‘3만 2천명도 적은데, 1만 명으로 전투를 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전투는 그래도 병사가 많아야 합니다.
미디안 군대와 비교해 보니 터무니도 없습니다. 비교해 보니까 내가 너무 초라합니다. 큰 사람 옆에 서 보니까 내가 너무 왜소합니다. 노후 준비가 상대와 비교해 보니까 너무 초라합니다. 자식을 결혼시키려하니 상대방이 너무 부자입니다. 거기에 비교하니까 우리는 너무 빈약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초라해지고 왜소해 보이고 비굴해 집니다. 그 심정이 기드온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너무 초라하고 빈약하고 작습니다. 그러니까 더 두려움이 배가되고 떨림이 배가되고 흔들림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3. 또 순종을 요구하시는 시험
그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또 다시 시험을 하십니다. 32,000명 중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겨우 1만 명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기드온은 믿음을 가지고 1만 명을 가지고 전쟁하기로 일단 작정하고 결단하였습니다. 결단하고 나니까 마음이 평안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1만 명도 많으니 더 줄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대책이 있으신지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줄이라고만 하십니다. 납득이 안 되는 기드온은 심각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또 다시 갈등에 직면합니다.
신앙인들도 때로 이런 갈등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암담한 현실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기도해도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날짜는 다가옵니다.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를 다 해 보아도 아무런 징조가 없습니다. 그때 오는 심각한 갈등이나 두려움이나 흔들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앙인들이 한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자세하게 말씀 안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응답만 있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 심정이 기드온의 심정입니다. 한 가지 알 것이 또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살아갈 때 당장 무슨 응답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말씀이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홍해를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홍해 앞에서 보란 듯이 서서 손을 번쩍 들라, 그러면 물이 좍 갈라질 것이다.” 그렇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폼 잡고 손을 들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 지침이 없습니다. 애굽 군대가 쳐들어오고, 코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하고. 그러니까 모세가 홍해 앞에서 허둥댔고 주춤거렸던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때 훌이 우물쭈물하는 모세의 등을 물로 떠 밀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모세가 떠밀려 물을 밟자 홍해가 갈라졌다고 합니다.
■ 요셉이 팔려갑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부모 곁을 떠난 아이가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걱정 마,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 기다려”, 그랬으면 얼마나 신나게 유혹받고 신나게 감옥에 들어가서 기다렸겠습니까? 그런데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암담한 것입니다. 노예는 파리와 같은 목숨입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요셉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요? 짐작하건대 밤마다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다 보이지 않습니다. 왜 보이지 않을까요? 다 보인다면 믿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믿음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 결국 기드온은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납득은 안 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순종하기로 합니다.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순종하는 이러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납득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명령은 사람의 명령도 아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기로 합니다.
성경을 읽는데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당장은 납득이 안 됩니다. 그때 “성경이 뭐 이래”하고 집어던지거나 덮어버리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이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일단 믿고 나아가 보자.” 이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 때는 주를 만나게 되리 하나님 나를 알고 계시듯 우리도 주를 알리
▶ 32,000명 중 두려운 자는 돌아가라 했더니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1만 명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1만을 놓고 테스트를 했습니다. 1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두 종류의 태도가 나왔습니다. 한 부류는 사주경계(四周警戒, 전후좌후를 두루 경계한다)를 하면서 손으로 물을 움켜서 마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개처럼 무릎 꿇고 궁둥이 쳐들고 물을 마시는 자였습니다. 궁둥이 쳐들고 물 마신 자들은 다 돌려보냈더니 남은 자가 300명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 300명을 가지고 135,000명(삿 8:10)의 미디안 군과 싸워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 7-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4. 메시지
하나님은 왜 군대의 수를 줄이라고 하셨을까요? 300명 가지고 전쟁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이 전쟁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군대가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전쟁은 내가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구경도 쉽지 않습니다. 집 걱정, 집안 걱정, 자기 걱정을 하는 22,000명은 오히려 사기만 꺾어 놓습니다. 또한 궁둥이를 쳐들고 물마시던 9,700명은 전쟁하는데 방해만 됩니다. 그래서 300명만 남기신 것입니다. 그 300명을 용사라고 하는데, 말이 용사지 그들이 무장한 것이 무엇입니까? 항아리 300개 + 횃불 300개 + 나팔 300개를 들고 전쟁에 나간 것뿐입니다. 그것들이 전쟁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럼 무엇입니까? 이 전쟁은 ‘내가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너희는 구경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 기드온은 가려 뽑은 300명 민병대를 세 부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각 사람에게 신호용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게 하였습니다. 19) 기드온은 한밤중에 자기에게 딸린 민병대 100명을 거느리고 미디안군 진지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미디안군이 막 보초를 교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드온 부대는 나팔을 불고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20) 기드온 부대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나머지 두 부대도 나팔을 불고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를 모두 깨뜨렸습니다. 곧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나팔을 불며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자, 싸우러 나가자.’ 하고 외쳤습니다. 21) 이스라엘 민병대는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위치에 서서 적군의 진지 외곽을 에워쌌습니다. 이스라엘 민병대 300명은 일제히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미디안 연합군 진영에 있던 군인들을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희끼리 서로 칼로 찌르기도 하고 또 아우성치며 도망가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미디안 연합군은 스레라 쪽으로 도주해서 벧싯다에 이르고 답밧 쪽으로 도주해서 아벨므홀라와 시냇가에 이르렀습니다.(삿 7:19-22)
5. 성경에 나타난 실례들
대하 20:1-30 / [여호사밧이 크게 승전하다] 그런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 큰 군대를 이끌고 여호사밧을 치러 왔다. 유다 남쪽의 마온 족속들까지 그들과 합세해 있었다. 2) 전령들이 달려와서 여호사밧에게 다급한 사정을 알렸다. “엄청난 군대가 에돔에서부터 서쪽의 해안선을 타고 몰려옵니다. 그들은 이미 하사손 다말에 이르렀습니다.” 3) 여호사밧이 몹시 놀라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기기로 결심하고, 유다 온 나라에 금식을 선포하였다. 4) 유다 온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와서 여호와께 도움을 간구하였다. … 12) … “저 엄청난 군대에 대항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너무도 약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는 지금 주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13) 유다 온 백성이 부녀자와 젖먹이들까지 모여 여호와 앞에 금식하며 간구하고 있었다. 14) 이때에 여호와의 영이 군중 속에 섞여 있던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였다. … 15) 야하시엘이 여호와의 영에 사로 잡혀서 이렇게 외쳤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그리고 특별히 여호사밧왕이시여, 똑똑히 들으시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라! 저 대군을 보고 겁을 먹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싸우는 것이다(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너희는 내일 골짜기로 내려가 정면으로 그들을 향하여 출전하라! 그들은 시스 고개를 타고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에서 빠져 나가 여루엘 광야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면 그들과 마주칠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가 직접 싸울 필요는 없다. 너희는 그저 가만히 서서 나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대신 싸우고 승리하는 것을 똑똑히 보기만 하라. 그러므로 유다와 예루살렘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라. 내일 너희는 그들을 향하여 출전하기만 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며 대신 싸우리라.’” 18) 여호사밧이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자, 온 백성도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20) 다음날 이른 아침 백성들이 드고아 광야로 출발할 때에 여호사밧이 그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이 강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우신 예언자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이 승리할 것입니다!” 21) 여호사밧은 온 백성의 지휘관들과 의논한 다음, 성전 가수들에게 성가대원의 예복을 입혀 모든 군대의 선두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노래를 계속 불러 여호와를 찬양하게 하였다. “여호와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으니, 너희가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 22) 성가대원들이 노래를 시작하자,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을 향하여 밀려들어오는 원수들을 혼란에 빠뜨려 서로 쳐 죽이게 하셨다. 처음에는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이 세일 산지에서 온 지원군들에게 달려들어 모조리 쳐 죽이더니 다음에는 암몬 군대와 모압 군대가 서로 달려들어 저희들끼리 쳐 죽였다. 25) 여호사밧이 유다군을 거느리고 내려가서 적군의 군수품을 운반하는 가축들과 전사자들이 지니고 다니던 귀중품들과 의류와 귀중한 기구들을 전리품으로 거두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체들을 뒤져서 더 이상 가지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전리품들을 모아들이는 데에만 사흘이 걸렸다. 그토록 전리품들이 많았다. … 29)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의 원수들을 쳐서 멸망시키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방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30) 그래서 그 이후로는 여호사밧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든 국경선을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
♬ 1.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 올 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 된 나의 영혼 어찌 할 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 때
(후렴)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2.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 올 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 된 나의 영혼 어찌 할 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 때
3.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려면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기드온이 용사를 선택하는데 세 가지 테스트를 하였습니다.
① 믿음의 정신입니다. 성공은 양이나 수에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일은 양이나 수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자는 돌아가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엘리야가 이방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그 싸움도 수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예루살렘을 위해 중보기도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의인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렘 5:1).
② 마음의 자세를 보았습니다. 물을 마시게 하였더니 궁둥이를 쳐들고 무릎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 지금은 영적 전시입니다. 자세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선택하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밤새워 고기 잡는 베드로 일행을 관찰하셨을 것입니다. 밤새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지칠 만도 한데 중단하지 않고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가가 “깊은 데로 가서 한 번 더 던져보라.”고 하십니다. 이젠 잡힌다 해도 만사가 귀찮을 때인데도 “말씀하시니 한 번 더 던지리이다.”하고 그물을 다시 던집니다. 이 태도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순종했던 하인들도 그러했습니다. 지칠 만도 할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귀까지 차도록 순종했습니다. 제자들이나 하인들에게 세상경력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학력이나 재력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조건이나 환경이나 이력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보신 것은 그들의 마음 정신이었고 자세였습니다. 이 자세가 문제입니다. 세상일이나 하나님 일에도 이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이 자세를 봅니다. 하나님도 이 자세를 보십니다. 보시고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③ 사명감입니다. 용사됨, 준비됨입니다. 300명은 사주경계를 하며 물을 손으로 떠 마셨습니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안일하게 대처할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 일이나 삶이나 사업이나 모든 분야에는 이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우연히 재수 좋게 성공하는 법은 없습니다.
눅 12:35-40 /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 36) 마치 주인이 결혼 잔치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릴 때 곧 문을 열어 주려고 준비하고 있는 종처럼 되라. 37) 주인이 돌아왔을 때 이렇게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는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주인이 몸소 시중 드는 사람의 옷을 입고서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먹는 일을 시중 들것이다. 38) 주인이 저녁쯤에 올는지 아니면 한밤중에 올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어느 때에 오더라도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복이 있다. 39) 도둑이 언제 들어올지 알고 있었다면 대비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40) 그러므로 너희도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다.
■ 벤처 기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식 기술 집약적 기업을 벤처기업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사명과 부지런함이 모아져야 하는 분야입니다. 벤처기업을 한창 띄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후죽순처럼 벤처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식어지자 벤처기업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쓰러지는 순서가 사무실이 번쩍번쩍 한 순서대로, 인태리어 호화순위로, 사장실 넓은 순서대로 넘어졌다고 합니다. 망하는 회사의 특징은 화장실이 더럽고, 사무실이 지저분하고,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회의가 길고, 상하 위계질서가 문란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망하는 기업인은 사장이 정치와 도박에 관심을 두고, 역술인을 의존하고, 주민 등록지를 자주 옮기고, 자주 자리를 뜨고, 호화 생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세상에서 사업을 하던, 신앙생활을 하던 성공한 사람들 모두는 남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 전투생활을 한 분들입니다. 궁둥이 쳐들고 물 마시고, 두려워 떨고, 잠 잘 것 다 자는 사람은 어림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 다 가고 믿음을 지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말은 ‘나는 치열하게 싸웠고 힘썼고 최선을 다하며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입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생활,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 방법은 본문을 통해 배우십시오. 본문은 삶의 승리는 수에나 양에 있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전략이 있었고, 그 전략을 순종함으로 길이 열리고, 목적이 이루어짐이 있었습니다. 이런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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