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 이기는 나만의 비법
정동식
나는 가마솥 같은 더위가 찾아오면 시원한 콩국이 생각난다.
어릴 때 아버지와 나들이하면서 자갈치 시장 부근의 노상에서 후루루 마셨던 음식이다. 콩물이 들어가서인지 구수했다. 투명한 듯 아닌 듯 보들보들한 우무채가 들어간 냉콩국은 삼복더위의 갈증을 단번에 해소시켜 주었다.
나는 늘 한 그릇을 더 먹었다. 한창 먹을 나이인 데다 꼬르륵하며 배꼽시계가 여과 없이 점심시간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얼추 요기가 될 정도로 공복을 잊게 했다. 어릴 땐 몰랐지만 우뭇가사리는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아서 다이어트에도 좋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가끔 그 맛이 생각나서 재래시장에 갈 때마다 두리번거려 보지만 아직 파는 곳을 발견하진 못했다.
유년 시절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남부민동 빨간 지붕이 예뻤던 우리 집을 자주 보러 다녔다. 그 집은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 처음 갖게 된 자가이다. 쉬는 날이면 큰아들인 나를 데리고 새집을 보러 가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조실부모한 아버지는 버팀목이었던 형마저 일찍이 하늘로 보낸 객지에서 거의 고아처럼 자랐다. 중매쟁이의 도움으로 24살에 어머니를 만났다. 이 집을 마련할 즈음에 우리 식구는 일곱이었다. 시골에 살다 가정을 이룬 후 자식 다섯을 낳고 힘겹게 마련한 집이니 어찌 애착이 안 갈 수가 있겠는가? 요즘도 불볕 내리쬐는 날이면 생각나는 야들야들한 우무채 듬뿍 담긴 냉콩국! 그 콩국이 어린 시절 아버지 얼굴과 겹치며 잠시 추억비에 젖는다.
어제는 전국이 폭염으로 바짝 달아올랐다. 올해 들어 가장 무더운 여름이었다고 한다. 특히 성남 분당은 최고기온 37.5도를 기록했다. 초복이 아직 일주일 전이지만 최근 40년간 복날의 평균기온이 약 30도 남짓 된다는 기사를 감안한다면 실질적 삼복더위는 벌써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유희동 기상청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 상승이 전 세계 평균인 0.07도의 세 배에 달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5월의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44도, 50도의 기록적인 폭염을 겪은 바 있어 올해는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여름 나기가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복더위에는 가만히 있어도 주르르 땀이 흐른다. 특히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견디기 어렵다. 상의를 벗고 있어도 부채나 선풍기 도움 없이는 지내기가 쉽지 않다.
40여 년 전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부산 달동네에 살던 시절의 일이다.
나는 제대하고 입시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당시 기억으로 우리는 선풍기 없이 살았다. 학원에서 우리 집은 5Km가 넘었으나 걸어 다녔다. 우리 집은 산 중턱에 있는 산복도로에서도 100여 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집에 도착하면 마치 등산한 듯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윗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수돗가 옆에 엎드리면 어머니께서 등목을 해주셨다. 한 손으로 짚고 다른 한 손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로 배와 가슴을 씻었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어푸어푸를 연발 하며 등줄기에 몇 바가지 물을 뒤집어쓰고 나면 더위에 잠시 나갔던 정신이 번쩍 다시 돌아오곤 했다. ‘이놈아 고개 들어!’ 하며 한 번씩 등짝을 얻어맞기도 했지만 등목 해 주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엄마 때문인지 모르겠다.
식구들은 제 나름의 피서법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삼복더위가 오면 무명천으로 만든 하얀 손수건 같은 것을 찬물에 적셔 목에 두르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히곤 했었다. 찬물 담은 대야 하나를 방에 두고 물이 미지근해지면 다시 갈며 수건도 서너 개쯤 쟁반에 두고 번갈아 사용하셨다.
어느 수필가의 할머니가 사용하던 당목 수건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그녀의 수건은 땀을 들이고 햇빛을 가리고 어떨 땐 새끼들을 먹이려고 잔치집에서 먹을 것도 담아 오신 다용도였지만 내 선친은 오직 실내에서만 땀을 훔치거나 체온을 내리는 데 사용하신 점이 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암튼 아버지의 여름 나기는 하얀 손수건 같은 것을 찬물에 적셔 목에 걸치시고 연방 부채를 부치시며 벽에 걸어 둔 조그만 라디오를 듣는 것이 최고의 비법이셨던 듯하다.
우리 형제자매는 낮에는 서로 등목을 쳐 주고, 밤에는 가위바위보 부채놀이를 하며 뜨거운 여름밤을 보냈다. 부채가 귀한 시절이었다. 하나씩 부칠 형편이 안 되니 가위바위보에 진 사람이 부채를 쥐고, 이긴 사람에게 시원하게 부채질을 해주는 것이다. 가위로 이기면 5번, 보로 이기면 10번, 바위로 이기면 20번을 부쳐 주는 게임이었다.
이따금 동생들은 힘이 빠져 설렁설렁 부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벌칙으로 몇 번 더 부치는 규칙을 추가로 만들기도 했었다. 우리 집은 암반 위에 지은 집이라 비교적 시원해서 견딜만했다. 그리고 꼬마 방 바로 옆에 평평한 큰 바위가 있어 땅거미가 지면 그 바위는 이내 식었다. 서늘해진 바위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노닥거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였다.
전체 가족이 함께 즐긴 여름 나기는 미숫가루를 얼음물에 타서 마시거나 수박화채를 얼음물에 동동 띄워 먹는 것이 단연 으뜸이었다. 수박은 비쌌다. 얼음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구하기가 힘들었다. 얼음을 사려면 산 아랫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이미 다 팔려서 살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 얼음이 흔할 때 사놓더라도 보관할 장소가 없어 먹을 때 즉시 사야 하는 불편함이 컸었다.
이 즐거운 파티는 아버지 봉급날이나 가끔 특별한 손님이 찾아올 때 이루어지는 간헐적 행사였다. 복날, 하면 떠오르는 복달임 행사는 우리 집에서 만큼은 즐겨하지 않았다. 초복, 중복, 말복 운운하며 삼계탕이나 보신탕을 먹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엄마께서 불교 신도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올해는 60년 만에 만나는 후덥지근한 고온의 여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초복을 수일 앞두고 유별난 삼복더위와 같이 지낼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우리 집은 친인척 사이에 에어컨 잘 안 켜는 소문으로 악명이 높다. 엄청 더운 날이면 몰라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편이다. 왜냐하면 내 기관지가 약해서 에어컨 냉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안에서 켤 때도 나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마스크를 끼고 운전을 한다. 오래전 여름휴가 시 강원도로 놀러 갔다가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나서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은 뒤부터 생긴 생활습관이다. 그래서 최근 나는 냉방 손수건을 활용한 나만의 피서비법을 계발했다. 언젠가 내 짐을 정리하다가 사용하지 않는 손수건 50여장을 발견했다. 멀쩡한 손수건을 버리자니 아깝고 적절한 용도를 찾다가 문득 아버지의 하얀 무명 손수건이 생각났다. 나는 시대가 흐른 만큼 아버지가 하신 방법보다는 한 단계 현대화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다. 직장생활 때 배운 것을 벤치마킹했다. 손수건을 곱게 똘똘 말아 물에 적신 다음 10개 정도씩 비닐 포장하여 냉장실에 넣어 두면 훌륭한 냉방 손수건이 된다. 재작년에 처음 시범적으로 해보고 지금까지 3년째 나만의 순간 피서법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가만히 있는데도 땀이 나며 더위를 느낄 때나, 일하고 난 뒤 또는 외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냉방 손수건 한 장으로 땀을 훔치면 금방 시원해진다. 샤워는최상의 선택이지만 번거롭지 않은가? 잠깐의 순간 피서로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오늘도 냉방손수건을 사용하다 불현듯 아버지를 닮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년 중 가장 덥다고 하는 우리 고유의 삼복더위가 선발대를 앞세우고 의기양양하게 뚜벅뚜벅 걸어올 것이다. 올해의 초복 방문일은 7월 11일이다. 중복은 7월 21일, 말복은 8월 10일에 우리를 찾아올 예정이란다. 복날은 하지, 입추와 관련이 있다. 초복은 하지를 기준으로 세 번째 오는 경일庚日이며 중복은 네 번째 돌아오는 경일이다. 초복과 중복은 10일의 차이가 있다.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오는 경일이어서 중복과 말복은 20일 터울이다. 삼복이 모두 경일인 것은 경이 명리학상 가을의 기운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번 삼복더위를 무탈하게 잘 넘기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할 것 같다. 재래식 방법이든 첨단 기구를 이용하든 개인에 알맞은 피서법으로 모두 여름 건강을 잘 유지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3.7.4.)
첫댓글 법수 정서장님의 여름나기 비법들을 잘 읽었습니다. 무대가 부산이네요. 자갈치시장, 산복도로, 남부민동 등 많이 듣고 가보고 했던 곳들입니다. 그 당시 저는 부산시내서 해운대 방향으로 한참나가다가 수영공항 덜가서 광안리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큰 부대들이 있었지요. 군인, 민간인 포함해서 500여명이나 되는 육군측지대에서 소위~대위까지 근무하면서 영외거주를 하였기에 해변가의 정취를 느껴본 경험이 있답니다. 해운대가 spot light를 받던 곳이라 광안리는 한참 후진곳으로 이곳은 이름조차 부르기를 꺼려했고, 그냥 해운대 인근에 살고있다고 한적이 많았답니다. 그러나 작년에 한 번 다녀왔는데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훨씬더 인파로 붐비는 것 같았습니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들 하며, 외부관광객으로 꽉 차있는 해변이나 음식점, 상점가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정겹고 지혜로운 피서법입니다. 우뭇가사리 콩국, 등목,, 냉방 손수건까지 추억이 담겨있어 더위도 싹 물러갈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삼복더위 피서법이 다양하군요. 더위를 잘못이기는 사람들에는 고역이지요. 하지만 그러려니 생각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더우려니 그러면서 참는 마음입니다. 더위가 이제 본격적으로 오는데 잘 참고 견뎌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