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는 유독 '1인자' 들의 몰락이 두드러지던 한 해였다.
수십년동안 MC계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이경규가 눈에 띠게 침체했고,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이휘재 등 당대 내로라 하는 톱 MC들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2008년에는 오로지 '강호동' 과 '유재석' 만이 돋보일 뿐이었다.
허나 예상치 못한 침체기를 걷고 있는 1인자들과는 달리 2008년 '2인자' 들은 방송 3사를 모두 휘젓고 다니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고는 했다.
1인자 부럽지 않은 2인자들의 세계. 2008년 그들의 '반란' 은 어떠한 결실을 맺게 될 것인가?
2008년 가장 눈에 띠게 급부상 한 인물은 누가 뭐래도 '김구라' 다. 2007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방송 내외적으로 거침없는 활약상을 보여줬던 그는 2008년 [라디오 스타][명랑 히어로] 에서 김구라 식 폭탄개그를 유감없이 펼쳐보이며 작년보다 그 위상이 훨씬 높아졌다. 적재적소에 치고 들어가는 공격성 짙은 개그와 특유의 막말은 김구라식 개그의 상징이 됐고, 욕설파문으로 얼룩진 과거조차 이제는 완벽한 '개그의 소재' 로 변모했다.
특히 故최진실과 함께 출연했던 [진실과 구라] 에서 난생 처음 정통 토크쇼 MC를 맡아 본격적인 1인자 수업에 들어간 그는 포맷이 바뀐 [명랑 히어로] 에서도 특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며 전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과거 좋지 않은 이미지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마이너스' 를 깔고 들어가는 단점이 있지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송계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희석하고 있으니 내후년이면 2인자 자리를 털고 본격적인 메인 MC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다.
김구라만큼 활약한 이를 꼽으라면 윤종신을 빼 놓을 수 없다. '예능계의 늦둥이' 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한 그는 [패밀리가 떴다] 의 유재석, [야심만만] 의 강호동 등 당대 최고의 MC들과 호흡을 맞추며 결코 뒤쳐지지 않는 예능 감각을 발휘했고 [라디오 스타] 와 [명랑 히어로] 에서는 끼어들기식 개그를 통해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정통 개그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 때에 터져나오는 애드립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나올 지경.
올 11월 가수로도 컴백을 준비 중인 그는 사실 굉장한 천재 프로듀서이자 감수성 짙은 음악인이기도 하다. 어쩌면 예능인 윤종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가수' 윤종신의 진중함과 천재성과 상반되는 가벼움과 일회성 지향의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가수와 예능 양쪽 모두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윤종신이라는 인물은 이제 TV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가장 빛나는 '2인자' 중 하나가 됐다.
[라디오 스타] 의 2명을 거론했으니 신정환까지 함께 거론해야 옳을 것 같다. 사실 신정환은 작년에 비해 큰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간판이라고 할 수 있었던 [불후의 명곡] 이 폐지된 뒤에 야심차게 시작한 [꼬꼬 관광] 이 시청률 3~4% 대를 허우적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다가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상상 플러스] 역시 제대로 된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나 낮은 시청률 속에서도 여전히 신정환은 재밌고 웃기다. 조혜련조차 "어쩜 저 상황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신정환을 보면 감탄스럽다!" 고 할 정도로 그의 애드립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MC 군단과 패널 군단을 통틀어서 아마 순간적인 재치와 애드립이 가장 뛰어난 인물을 꼽으라면 유재석 다음으로 신정환이 꼽히지 않을까. 비록 [라디오 스타] 를 제외하고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신정환이지만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화려하게 '부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남은 시간 동안 그의 선전을 부탁해 본다.
김구라, 윤종신, 신정환 등의 활약 속에 또 한가지 눈에 띠는 사실은 바로 '스탠딩 코미디언' 들의 움직임이다. 2008년에는 유달리 [개콘][웃찾사] 등에서 활약했던 스탠딩 코미디언들이 대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합류하며 쇼 버라이어티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한 때는 "스탠딩 코미디언들은 절대 안 된다." 며 고개를 가로 저었던 방송사지만 2008년 들어 그런 분위기도 180도 변화했다. 적극적으로 스탠딩 코미디언들을 버라이어티 쪽으로 영입해 인재풀을 넓혀보겠다는 것이 방송사들의 공통적인 목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스탠딩 코미디언도 '성공 할 수 있다' 를 단적으로 증명해 보인 사람은 누가 뭐래도 '정형돈' 이다. 유재석조차 "내가 없으면 [무한도전] 은 형돈이 몫이다." 라고 공언할 정도로 정형돈은 전방위적으로 [무한도전] 에서 활약하고 있다. 유재석과 '햇님달님' 라인을 형성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한편 [무한도전] 상승세의 기폭제가 된 "지못미 2탄" 을 진두지휘 하면서 아이디어 뱅크로서의 역할도 완벽하게 수행했기 때문이다.
한 때는 '못 웃긴다' '센스가 없다' 는 비판에 시달려 왔지만 그는 탁월한 재능과 꾸준한 노력으로 서서히 그러한 비판들을 찬사의 목소리로 바꿔가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 에서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는 그의 캐릭터는 이제 '어색한 뚱보' 의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이미지로 창출되고 있고, [무한도전] 역시 '정작가' 정형돈의 아이디어에 힘입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만하면 정형돈은 '2인자들의 교과서' 라고 해야 맞을 듯.
정형돈 이후로 주목받았던 [황금어장] 의 유세윤 역시 2008년 '대활약' 했다. 비록 [황금어장] 내에서 주어진 캐릭터로 존재하고 있을 뿐, 완전한 가능성을 펼쳐 보이지는 못했지만 강호동이 "유세윤에게는 유재석 냄새가 난다. 아주 센스 있는 사람들의 감성이랄까." 라고 증명할 정도로 그의 가능성은 충만하다. [무릎팍 도사] 에서의 무도 캐릭터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을 봐도 유세윤이 실력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무한걸스] 의 신봉선, 김신영 역시 여성 MC의 유일한 대안들로 급부상하고 있다. 박미선을 제외한 모든 여성 MC들이 패널급 위치로 떨어져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신봉선과 김신영이라는 걸출한 신예들의 급부상은 그저 반갑기만 할 뿐이다. 특히 신봉선은 [해피투게더] 에서 박미선, 박명수의 멘트를 적절하게 받아쳐주면서 완전히 자신의 위치를 굳혀 놨고, 더 나아가 [무한걸스] 의 '2인자' 로, [샴페인] 에서는 당대 최고의 황제 MC 신동엽과 투 톱으로 나서며 2007년보다 훨씬 향상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신영 같은 경우는 [웃찾사] 에서의 캐릭터로 [스타 골든벨] 에서 맹활약하더니 [무한걸스] 에서는 신봉선과 함께 '니나내나' 콤비를 형성해 완전히 쇼 버라이어티에 안착해 이제는 [놀러와] 를 통해 공중파 패널로까지 진출했다. [놀러와] 자체가 게스트 위주의 토크쇼다 보니 아직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워낙 재능과 실력이 뛰어난 개그우먼이니 조금만 기회를 준다면 이영자 못지 않은 파워풀한 여성 MC로 굳건히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인물은 [1박 2일] 의 이수근이다. [1박 2일] 첫 합류 때만해도 하는 멘트마다 썰렁하고 재미없어 '편집 1순위' 였지만, 이제는 어느새 [1박 2일] 을 이끄는 주축이 되어 버린 그다. [야심만만] 에서 말했던 것처럼 '무릎팍 도사' 패러디인 '물렁뼈 도사' 로 강호동을 처음 웃긴 뒤에 말문이 트인 이수근은 오동잎 댄스, 무조건 클로징 댄스까지 연달아 [1박 2일] 의 기획 상품들을 쏟아내면서 명실공히 [1박 2일] 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1박 2일] 부진론이 고개를 드는 와중에도 이수근의 활약은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 어떤 네티즌의 말대로 우리는 계속 그의 '나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할 것 같다. 나대라고 있는 프로그램에 나대지 않으면 그것이 더 큰 문제다! 열심히 나대줘서 [1박 2일] 뿐 아니라, 새로운 예능 MC계의 대안으로 성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재석, 강호동을 있게 한 최고의 '파트너' 들!
사실 그들은 2008년 유재석-강호동 시대를 만들어 낸 최고의 '파트너' 들이다. 2인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긴 하지만 유재석은 정형돈, 윤종신, 신봉선, 김신영의 신선한 매력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고, 강호동 역시 유세윤, 이수근, 윤종신 등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2인자' 들의 적극적인 서포트가 없었다면 '1인자' 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유재석-강호동 시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재석, 강호동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 시대의 '2인자' 들은 시청자들에게는 웃음을, 방송에는 활력을, 프로그램에는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새로운 구도를 제공하며 1인자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들의 유쾌한 반란이 2009년에도 계속 되기를, 그리고 신선하고 재밌는 '2인자' 들이 더 많이 탄생해서 우리를 배꼽잡게 웃게 만들기를 바래본다.
1인자들보다 더 빛나는 2인자들에게, 찬사의 박수를!
첫댓글 와우 이 기자님 기사 너무 잘쓰셨네요 2인자들의 교과서, 아이디어뱅크에 정작가, 그리고 이미지를 바꾸며 개척해나가는것까지 지목해주시고.. 탁재훈이 김용만 신동엽옆에있는것만빼면 완전 좋네요 이 기사^^
그렇죠? ^^ 내년에는 유재석을 잇는 버라이어티계의 1인자로서의 활약 기대해봅니다!!!
와 기사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