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
귄터 그라스가 생생하게 그려 낸 나이 듦과 죽음
이 책의 원제인 ‘Vonne Endlichkait’의 ‘Endlichkait’는 동프로이센 방언으로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작가의 고향인 동프로이센 단치히 자유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로 편입되어 그단스크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가 어린 시절 사용하던 방언도 세월이 지나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죽은 언어가 되었다. 작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 모어(母語)를 제목으로 정했다는 사실은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진리를 통렬하게 일깨운다.
언제나 논쟁적 주제로 글을 썼던 그라스가 생애 마지막으로 다룬 주제는 무너져가는 육체와 정신, 즉 나이 듦과 필멸(必滅)이다. 물론 세계정세, 특히 유럽의 정치 사회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작가답게 세태를 논하는 꼭지들도 사이사이 위치해 세월도 무디게 하지 못한 날카로운 혜안을 보여준다. 그러나 노작가의 눈과 마음이 줄곧 향한 곳은 머지않아 가 닿을 죽음과 이제는 영영 멀어진 저 어리고 젊었던 시절이다.
그로테스크 미학의 이면에 존재하는 유머와 건강한 아이러니
육체라는 밀폐된 방을 탈출하게 하는 예술의 힘
죽은 새, 버섯, 짐승의 뼈, 돌, 화석, 틀니, 나무뿌리, 깃털, 낙엽, 다 말라비틀어진 열매……. 책에 실린 글들의 마중물이 되어준 그림들의 주제 역시 늙음과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 그림들은 일견 그로테스크하게도 보이는데, 그라스가 바라보는 우리 삶의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로테스크의 이면에는 유머와 건강한 아이러니라는 흔치 않은 감성이 깃들어 있다. 그 감성은 작가의 자유분방한 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책의 첫 꼭지에서 그는 나이 듦이 그런 자유를 선사해 주었음을 고백한다. 직역하면 ‘추방된 존재’인 제목의 첫 글 「새처럼 자유롭게」에서 그라스는 자신을 “깃털처럼 추방된 존재”라고 일컫는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현대의학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창작의 샘이 다 말라 버려 그때그때 “파트타임 뮤즈”에게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으로 도움을 받고, 이제는 “자신에게 낯선 존재”가 된 작가. 그러나 “오래전부터 종말을 맞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덕분에 그는 부끄러움 없이 자기 안의 짐승을 밧줄에서 풀어놓고,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되어 보고, 마음껏 방황도 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글과 그림들은 그 자유로운 방황이 남긴 흔적이자, 허물어져 가는 필멸의 육체라는 밀폐된 방을 탈출하게 하는 예술의 힘에 대한 증거이다.
노년의 삶에도 존재하는 욕구와 희망
다 빠지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이[齒]에 대한 단상을 담은 연작 글들과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린 우스꽝스러운 자화상, 허물어져 가는 육체와 더불어 퇴화하는 미각, 노년의 밤을 길게 늘이는 수면 장애, 모든 것이 표준화된 21세기에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지난 시절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 젊어서부터 사랑했던 선배 작가들, 젊은 예술학도 시절 함께했지만 먼저 떠난 친구에 대한 가슴 아픈 회한……. 그중에서도 가장 생생하게 다가오는 글들은 노년의 삶에도 여전히 느껴지는 질투 같은 원초적 감정과(「그대의 그리고 나의」), 담대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가운데서도 이듬해의 봄꽃을 기다리는 생의 욕구를 그린 글(「우리가 들어가 눕게 될 그것」)들이다. 특히 작가와 그의 부인이 그들의 가구를 만들어 주던 소목장에게 관 제작을 의뢰하고, 주문한 관을 받고 부부가 그 안에 들어가 눕는 입관 ‘리허설’을 하고, 또 그 관을 도둑맞으면서 벌어지는 부조리극 같은 소동을 그린 연작 에피소드는 이 책의 백미와도 같다.(「우리가 들어가 눕게 될 그것」, 「보험 들어 놓은 손실」, 「도난품」) 귄터 그라스가 그리는 노년의 삶은 고유한 다이내믹으로 요동치고 은근한 서스펜스가 흐른다.
더 이상 ‘전후 시대’가 아닌 오늘날, 거듭 읽혀야 할 작가 귄터 그라스
책 말미에 이르러 그라스의 마지막 하나 남은 이도 마침내 빠져 버린다. “이제 치통은 없다.”고 작가는 선언한다. 이가 다 빠졌다고 세상의 부조리에 대고 일갈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건만, 그는 그 몫을 이가 남아 있는 젊은 세대에 넘기려 한다. 이제 그는 경기장 바깥에 서 있는, 지난 시대의 인물인 것이다.(「종결선 긋기」)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의 100세 생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라디오에서 여전히 전쟁 소식이 들려오고, 또 다른 세계 대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예감에 작가는 다시 분기탱천한다. 역사가 남긴 교훈은 간데없고,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이미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8월」, 「그 여름에 분기탱천하여」) 어린 시절 그를 “따뜻하게 데워 주었던 언어”의 소멸을 가슴 아파하면서 그라스가 안타까워한 것은, 언제든 우리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이방인이 될 수 있음에도 좀처럼 베풀지 않는 환대의 마음이다.(「쿠르브윤 씨의 질문」) 작가가 평생을 걸고 한 투쟁과 고발의 이면에는 그 같은 짙은 휴머니즘이 깔려 있었다. 점점 더 혼탁해지는 지금의 세계를 보며 그는 뭐라고 말했을까. 작가가 떠난 지 어느덧 십 년을 향해 가지만, 더 이상 “전후 시대”라고 단언할 수 없게 된 이 시대에 귄터 그라스는 거듭 다시 읽혀야 할 작가로 남아 있다.
이제는 다 지난 일. 이제 너무 많은 일을 겪었지. 이제 다 스러지고 다 지나갔어. 이제 모든 것이 느릿느릿. 이제 방귀도 나오지 않으려고 해. 이제 더 이상 불쾌할 일도 없어. 곧 나아지겠지. 느릿느릿 남은 생을 사는 거야. 온 세상 모든 것은 끝이 있으니까.
드론의 눈은 나를 지켜본다,
깜박이지도 않고 결코 잠드는 일도 없이
모든 것을 저장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으면서.
어느새 나는 아이가 되어
더듬더듬 기도를 읊으며
은총과 용서를 간청한다.
한때 나의 입술이 잠자리에 들기 전
모든 타락에 대해 용서를 빌었던 것처럼.
고해소에서 나는 내 속삭임을 듣는다.
오, 친애하는 드론이여,
나를 경건하게 해 주소서,
내가 당신 천국에 들 수 있도록.
---「저녁 기도」중에서
이제 완전히 홀로 남은 이는 튼튼함을 증명하고 싶어 해.
문드러진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세 동료들이 한때 그랬듯
그도 황금빛으로 뻐기긴 하지만, 내가 밤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의 세 번째 이, 즉 틀니를 물을 가득 채운 잔에 넣고는
발포 알약으로 세척할 때면 쓸쓸해 보여.
단 하나 남은 마지막 이, 그것은 내 어린 손주들을 놀래키는 데만 쓸모 있어.
나는 입을 한껏 벌리고 지옥의 웃음을 흉내 내거나 우물거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안데르센의 용감한 외다리 주석 병사처럼,
하나 남은 내 이가 떠나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들을.
---「남은 이[齒]들과의 이별」중에서
어쨌거나 우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뭇잎 위에 눕고
나뭇잎으로 덮일 예정이다.
(…)
덧붙여 아내는 수의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고, 그것도 ‘손수 지은’
수의가 좋다고 했다.
그 정도면 준비는 충분했다.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닐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은 허물어질 것이다.
(…)
우리는 어떤 생명체도 될 수 있다. 나는 전능한
자연의 도움으로 낯선 둥지에서도 대접받는 뻐꾸기로
다시 태어나기를 언제나 소망해 왔다. 연년세세 요란하게 소리치는
약속들이 있었다.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관들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저런 상념들이 남는다.
(…)
손님이 오지 않은 바로 다음 날인 일요일에 우리는 관을 쌌던
포장지를 벗기고, 느슨하게 덮인 뚜껑들을 열고,
신발을 벗고, 관 속에 드러누웠다. 관들은 우리 키와
어깨너비에 꼭 맞았다. 논평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입관식 리허설을 멋지게 해냈다.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기이한 일이던지.
관에서 나오면서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 관 뚜껑을
다시 덮은 후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거주지 위에 포장지를 펼쳤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생각이 자유롭게 떠돌았지만
말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 후 아내는
내가 관 속에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고,
다음 기회엔 카메라를 꼭 준비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아주 만족스러워 보이던데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창고 방문이라고 부른, 시험 삼아 관에 누워 보기를
한 직후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들어가 눕게 될 그것」중에서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 이것은 할아버지의 애인이었어.
심지어 휴가 때도 데려갔으니까.
가끔씩 할아버지는 이것을 쓰다듬어.
이것과 할아버지는
많은 아이들을 만들어 냈어,
그 아이들은 오래전에 다 자랐지만.
이제 올리베티는 슬퍼.
눈을 깜박이며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야.
이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할아버지의 애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