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최명희 선생님께
와 드디어 그날이 왔네요. 내일 12월 1일이면 맑은샘학교 선생으로 산 10년을 넘기는 게지요. 지난해 선생님에게 감동어린 10주년 축하 편지를 받고 그런 편지를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지 스스로 물었던 기억도 벌써 한 해 전입니다. 며칠 전 다시 그 편지를 읽어봤어요. 아무리 봐도 참 고맙기만 해요. 저는 선생님처럼 뭉클한 편지를 쓰기에는 부족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었어요.
얼굴에 금세 감정이 드러나는 걸 숨기지 못하는 우리 최명희 선생님, 그러니까 2008년 12월 1일이지요. 맑은샘학교에서 특별하게 제천에 계신 분을 과천으로 모셨지요. 선생님과 나는 공개채용이 아닌 특채라는 거 알죠 하하. 그해 겨울 자연속학교는 공룡화석지로 유명한 해남에서 열린지라 야최명희사우로스 라는 별명을 어린이들이 붙여줬지요. 우리끼리는 동그란 안경에 반짝이는 눈을 보고 해리포터라고 불렀는데 말이죠. 그때 사진을 다시 봤는데 정말 장난기 많고 잘 웃던 청년교사가 있더군요. 지금은 뭐 깊어진 눈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학부모와 교사 노릇을 하는 40대가 됐지만 말입니다. 2009년 선생님이 괴산 자연속학교 기간에 결혼을 하게 돼 강원도 주문진으로 어린이들과 함께 결혼식에 갔던 기억도 어제 같이 생생하네요. 우리 어린이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장에 오신 분들이 어디 시골에서 온 아이들이냐고 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세화를 낳기 위해 좋아하던 술도 안마시고 건강한 생활을 한 것도 기억나고, 선생님 덕분에 주문진 자연속학교을 열었던 것도, 고물상 공부랑 청학동 그린스타트 사업도 떠올라요. 그렇게 보물처럼 우리에게 온 선생님과 살아온 세월이 10년이라니 저절로 10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청산도, 해남, 남해, 보길도, 덕적도, 연대도, 진도, 괴산, 홍천, 남원, 부안, 화순, 하동, 우리가 간 자연속학교 곳곳에,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곰배령 무등산에도 선생님과 추억이 가득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여행 간 부산, 베트남도 재미났지요. 날마다 어린이들과 일하고 놀며 함께 한 세월 동안 선생님과 함께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맑은샘 선생으로 부지런히 살아왔다는 게 가끔씩 꿈만 같습니다. 10년이란 나이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더군요. 때로는 훌륭한 선배교사처럼, 오래된 벗처럼 많은 걸 가르쳐주고 배우게 했지요. 가족보다 더 많이 여행을 다니고 일하고 살았으니 우리는 가족이상인 사람이 분명해요.
그렇게 행복한 세월이 10년입니다. 물론 함께 아파한 시간도 모두 기억납니다. 크게 보면 두 번의 위기가 있을 때 서로 참 많이 의지했더랬지요. 성장통처럼 많은 걸 깨닫게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하게는 서로 행복한 세월을 뒤로 하고 떠난 분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우리를 아프게 하지요. 오랜 세월 살았더라도 행복한 추억을 모두 날려버릴만큼 감정의 배신은 큰 법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참 삶이 덧없기도 해요. 어린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좋을 때는 동지이지만 감정이 상하면 우습게도 아무런 존재가 아닌 만나지 않을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을 겪으며 어린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던 것도 참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입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교사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많지요. 10년 동안 가슴에 묻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 무수한 감정들을 받아내며 애를 끓였던 공동체살이도 모두 우리를 자라게 했다 믿습니다. 개인으로 보면 학교를 알게 모르게 이끈 힘도, 언제나 묵묵하게 어린이 삶을 가꾸며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학교 교육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 선생님이었습니다. 동료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지요. 가정과 학교를 동시에 선생님처럼 돌보는 것도 저 같은 사람에게는 부족하기만 하니, 사실 선생님은 여러 면에서 제 삶에 영향을 많이 준 사람입니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길게 인연을 이어온 사람이 둘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선생님입니다. 때로는 듬직한 동생처럼, 형처럼, 따라 배울 게 많은 멋진 동료 선생으로, 동지로, 제 삶에 들어와 산 세월이 10년입니다. 고맙습니다. 10년 동안 정말 애썼어요.
제 경우는 10년을 되돌아보는 건 다시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이 있느냐더군요. 이 길을 갈 것인가, 다시 새로운 꿈을 꿀 것인가부터 맑은샘에서 어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한 해 줄곧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비슷하겠지만 더 진지하게 삶의 방향을 고민하리라 믿어요. 또 그 힘에 기대어 배우게 되겠지요.
언제나 고맙고 존경하는 우리 최명희 선생님, 내 듬직한 아우(이리 생각해도 이해하리라 믿으며), 대안교육 동지인 당신과 함께 어린이 삶을 가꾸며 살아온 세월이 정말 영광입니다. 앞날은 주인으로 함께 사는 힘에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많이 배우며 살겠습니다.
-2018년 11월 30일 전정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