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문자
이응철
초여름 새벽이다. 변덕이 심한 여편네처럼 갑자기 흐려 천둥이 치더니 급기야 한줄기 소나기를 퍼붓는다.
넘실대는 바깥 초목들 역시 주눅이 들어 하늘만 쳐다본다. 오늘도 구순이 넘으신 존경하는 수필 대모께서 문자가 답지한다. 어김없이 그분은 새벽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을 길게 늘어놓는 단골손님이시다.
사람은 항상 고독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살아난 아침입니다.
네 네- 그놈의 세월, 그저 하루하루 많이 웃으며 맛있는 것 드시고 시조나 읋으시며 사는 게 최고겠지요. 저는 요즘 장자의 오상아 吾喪我를 읽으며 위로를 받고 있지요. 내가 나를 잃는다, 내가 나를 버린다. 내가 나를 장례 치르다. 그런 얘기인데 태어날 때 그 착함과 순수함 위에 너무 더러워져있는 자신을 이제 발견해 가는 셈이지요.
변화를 아시지요? 세상에 모든 것들은 세월이란 놈이 변하게 하는 원흉이지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동식물 모두 변화시키지요. 때문에 이런 같은 이치 속에 불평등도 차별도 없다는 것이 장자의 제물론이지요. 때문에 우리 또한 무엇으로 변할텐데 그것은 즉 자유롭고 원초적인 나, 결국 자연 속에 돌아가는 셈이지요.
언젠가는 모두 다 두고 떠날 인생 아닌가요? 오늘 하루 행복하고 만족하며 살아야지요. 네- . 삶에 순간 나는 어떻게 살고 왜 살다가 목숨이 다하면 어디로 사라져야 하는가? 요즘 제게 주어진 명제지요. 아니 그럴 나이에 당도했으니까요.
아! 이제서야 철학자 반열에 오르셨군요. 德田님! 하하
네 – 요즘 제 뇌리에는 오상아(吾喪我) 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자유의 삶과 태어난 우리 모두(吾)인 나와 성장하면서 여기저기 규제와 통제를 받고 억압과 폭력으로 내 뜻이 왜곡되고 있는 나(我)를 발견하며 귀토(歸土)로 돌아가면서 모든 억압에서 풀려 다시 자유를 얻는다는 장자의 이론이지요.
홀로 있는 나는 자연입니다. 아무 걸림 없이 하늘을 구름처럼 노닐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고 과묵한그 무엇이 되어 다음 생을 이어 가겠지요.
이제 백수를 눈앞에 맞닿으니 허무라는 단어가 시도 때도 없이 제 품속으로 찾아드니 어쩜 당연지사겠지요.고독 또한 왜 그리 활개를 치는지요. 글을 쓰고 상걸리에 가서 작가들과 청산에 에워싸여 신명에 노래하고 사진을 박고 돌아와도 늘 달랑대는 것이 고독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있나요. 누에고치처럼 늙어서 번데기처럼 되겠지요.
대모님! 삶에 집착이나 애착 때문이겠지요. 옛말에 오뉴월 황덕불도 쬐다 나면 섭섭하다란 말이 있고, 개똥밭에 딍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습니다. 기쁘고 어려운 일들이 빚어낸 애착들이 어느새 우리 몸속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지요. 늙음은 인정하고요.ㅎ
원주의 정신적인 지주 고 장일순님도 아호가 무위당이지요.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생멸生滅의 변화를 떠난 것으로 인위를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지가 바로 무위당이지요. 이런 무위가 특히 노인의 4고(苦)의 가난, 질병, 고독과 더불어 무위로도 불리우지만, 무위의 참뜻은 단순한 할일 없는 것이 아닌 심오한 것이지요
오늘도 행복하소서, 맛있는 것 사드시고 웃으며 오늘 하루 내일은 내일 또다시-. 눈도 침침하고, 손도 마음도 떨려 이만 줄이겠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새벽 내내 주고받은 문자는 무엇인가?
주 2회 고전을 배우면서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내겐 하늘이 주신 기회이다. 특히 칠순을 넘어서면서 다가올 저승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명제가 두렵지 않다.
노자, 장자와 공자, 맹자를 배우면서 나를 깨워주는 것은 노장(老壯)이 마음을 편케 해준다. 원초적인 인간들로 태어나기까지 자유의 내가 아플 때 그 통증을 가라앉혀주지만, 공맹(孔孟)은 인위적인 체제나 삶의 방식 등에서 바르게 대처하는 인간교육이 또다른 통증을 없애준다.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동감이다. 목전에 두고 항상 우리를 불안케 하는 죽음은 진정 모든 것들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내 몸은 하나지만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가장 어려운 자신을 볼줄 아는 혜안 말이다. 진정 천음을 따라 속세에서 쌓아둔 모든 문화와 자극에 따른 반응에 민감치 않는 오상아(吾喪娥)가 될 것이다.
내 마음이 정신의 밥을 먹는 기분으로 하루를 살지만 녹록치 않은 하루, 누군가 미래는 두렵고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복잡하지만 믿을 건 하루살이가 아닌 현재 뿐이라고 했다. 고고지성으로 이 땅에 태어나 하루를 값지고 기쁘게 사는 것이 태어난 우리가 열심히 살아갈 하루가 오늘도 전개된다. 모두의 업보가 아닐까?(끝)
,<약력>
- 김유정문학공모 최우수(‘95)
-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96)입상
- 수필과 비평지 신인상(‘97)
- 강원수필문학상(‘14.11)
- 제 9회 백교문학상 수상
- 강원수필문학회장 역임, 현 강원수필문학고문
- 수필집-어머니의 빈손(2008) 바다는 강을 거부하지 않는다.
- (2011) 달을 낚고 구름밭을 갈다(수필화집)(2014)
- 감로개화송(甘露開花頌) 수필화집 발간(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