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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200418059 이세은
주제: 비폭력 저항은 억압계층의 자유를 제한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구성: p.255> 비폭력은 매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의 저항이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들은 대단히 적극적이다. 비폭력은 억압계층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비폭력은 비록 폭력만큼 생명에 대해 파괴적이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지만, 종종 소유권에 대한 파괴를 통해 생명을 파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내용: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제목에서 말해주는 것 같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고, 도덕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사회나 집단이 되게 되면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으나 일단 집단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경우에 그 집단이나 사회나 국가는 비도덕적 경향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집단이나 국가집단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도덕도 감행한다는 것이다. 집단의 비도덕적 경향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집단(사용자 집단, 노동자 집단, 정부의 각 부처 등)이기주의의 형태로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국가 내 집단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 이기주의로도 표출됐다. 정치·외교 분야 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 분야 에서도 EC(유럽공동체)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등 경제의 지역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자식은 순종함으로써 가족의 평화를 지켜 나간다. 그러나 그 가족애가 인간에 대한 박애 정신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 가족에 대한 지극한 애정은 가족 구성원의 안녕만을 위해 배타적이 되고, 결국 그런 배타성에서 사회악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현대 사회의 합법적이고 집단적인 행동도 언제나 자기 집단의 이익과 관계된 때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수 의견에 의해 좌우되는 집단행동의 시작에는 항상 이기주의에 의해 동기화되고 행동화된다는 것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님비 현상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부모 집단이 자녀들의 학교 주변에 장애자 시설물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집단 행동을 취하고 있다. 공공 정신의 부재라고 비판받아야 할 그들이 자녀들에게는 헌신적이고 애정 가득한 부모일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사회봉사 단체에서 일하거나 정기적으로 기금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도덕적 개인이 비도덕적 사회를 만드는 한 모습이 된다. 최근 사회의 주된 문제들은 개개인의 선택이나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개인들이 속해 있는 사회 구조나 제도 자체의 개혁에 의해서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는 사회 윤리의 중요성이 자각되고 있다. 또 하나, 사회의 기본 구조나 제도의 도덕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사회가 개인의 가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에서도 찾아진다. 사회의 제도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조정하게 된다. 인간의 성격, 이상, 재능 등은 상당할 정도로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사회의 기본 구조가 윤리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결국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가 개인의 양심이나 행위로 환원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개인 윤리로부터 사회 윤리를 구분하고 사회 윤리의 중요성을 자각했다는 것에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니부어는 사회 집단의 악을 견제 하는 데는 양심에 대한 호소나 설득 같은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한 국가나 사회 집단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폭력이나 강제력이 반드시 정의나 도덕적 선에 의한 것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견제하는 또 다른 폭력과 강제가 사용되게 되어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적인 도덕적인 요소가 이런 폭력이나 강제력과 결부 되어야 한다고 니부어는 주장한다. 현대 비폭력운동의 가장 휼륭한 지도자인 간디의 예로 들고 있다. 간디는 ‘영혼의 힘’ 또는 ‘진리의 힘’의 사용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를 폭력이라는 물리적 성격과는 구별하여 정신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소극적 형태의 저항은 그것이 소극적이라는 이유 때문만으로 영혼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그런 저항이 사회적, 물리적 관계 속에 파고들어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을 제약하는 한에 있어, 그것은 일종의 물리적 강제력이라 하였다.
하지만, 내 견해는 다르다. 간디의 사상은 이상적이고 현실과는 동떨어 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폭력으로 해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 많다. 최근에 비도덕적 경향을 드러내는 집단의 예로 전교조를 들 수 있다. 최근 전교조가 교원 평가에 대해서 조건부 수용도 아닌 전면 불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평가제 조건부 수용을 표방했던 이 전 위원장의 사퇴로 더 극화된 이 일은 ‘우리만은 평가받지 못 하겠다’는 폐쇄적 집단 이기주의 그 자체인 것이다. 전교조는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평가제를 원하는 국민과 학부모의 뜻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이 전 위원장의 사퇴로 내분에 휩싸인 전교조가 평일 학교수업까지 팽개치고 평가제 반대 연가 투쟁까지 벌이려 하고 있다. 국민과 학부모들은 이런 전교조에 대해서 폐쇄적 집단 이기주의라 말하면서 외면하고 있다. 교사들 개개인으로 봤을 때는 도덕적이고 도덕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전교조라는 집단에 들어서게 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비도덕적이고 이기주의 성향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전교조가 투쟁을 하지 아니하고 비폭력적으로 투쟁하게 된다면 누가 교사들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겠는가. 교사들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교원평가제 도입을 반대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투쟁해야만 교원평가제가 저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우리나라에 광주에 민주항쟁이 있었다. 원인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 하극상을 통하여 군부를 장악하고 군사독재의 연장을 통하여 해결하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 신군부세력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를 발표하고 민주인사들을 체포 투옥하기 시작하자 광주에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과 이에 반발하는 학생 ·시민 연대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5월 18일부터 시작된 시민항쟁은 시민자치와 민주주의공동체 구현 등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27일 새벽 2만 5,000명에 달하는 군을 투입한 무력진압에 정부공식 발표 사망 191명, 부상자 852명을 내고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은 19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국민들의 대미인식변화와 함께 사회운동의 목표로 민족해방 ·사회주의 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기점이 되었다. 광주의 민주항쟁은 폭력적이고 투쟁적 이였지만 우리나라에서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민주항쟁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전두환의 군사독재의 연장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면 평화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투쟁하였다면 지금의 민주화는 실현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폭력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비폭력은 악과 억압에 저항한다. 둘째로, 비폭력은 적을 모욕한다거나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우정과 이해를 구한다. 셋째로, 비폭력은 악을 행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힘에 대항한다. 넷째로. 비폭력은 보복함이 없이 고통을 받아들인다. 다섯째는 비폭력은 사랑에 근거한다. 적을 사랑하는 것을 포함한다. 여섯 번째로, 비폭력을 행하는 사람은 미래를 믿으며 언젠가 정의가 승리하리란 것을 믿는다. 제 3자 입장에서는 비폭력운동이 얼마나 인내와 희생을 필요로 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백인 폭도나 인종차별 경찰이 차별항의 시위자들에게 검둥이라고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구타하여도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여도 아무런 물리적 대응이나 보복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유 없이 또는 정당한 주장에 대하여 자신을 때리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고 얼굴에 케첩이나 겨자를 뿌려댄다면 몇 사람이나 인내하고 참을 것인가? 그러나 흑인들이 울분과 분노를 비폭력으로 대응하였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비폭력 운동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힘이 없는 평화와 정의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이 있어야 악은 평화를 넘보지 못한다. 티베트 비극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악의 세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찬란한 종교 문화는 중국 공산당 발굽아래 말살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구한말 일본에 침략 당하였던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힘을 기르고 평화와 정의를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22개>
발췌한 내용:
1.p.184: 폭력과 혁명은 일반적으로 사회변화의 도구로서 일단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그 특성상 폭력을 싫어하는 중간층과 합리적인 도덕론자들은 자신들의 일반적인 테제의 차원에서는 정당하고 올바를지는 모른다.
2.p.185: 동기와 궁국적 목적 사이에 놓여 있는 수단들과 보다 저차적이고 직접적인 목적들을 선택하는 문제는 윤리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실용주의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3.p.187: 생명과 재산에 결정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고서, 그리고 잘못한 사람뿐만 아니라 잘못이 없는 사람도 함께 위협하지 않고서 한 집단을 강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4.p.191: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문화적, 사회적 생활을 해나감에 있어 개인적 도덕의 규범을 강하게 따를 만큼 충분한 개인적 자각을 갖고 있지 않다.
5.p.193: 폭력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제도가 확립되고, 또 그 제도를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면, 폭력과 혁명을 배제시켜야 하는 순수하게 윤리적인 근거는 있을 수없다.
6.p.248: 도덕가들은 평화를 깨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화의 배후에 은폐되어 있는 불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7.p.249: 평등한 정의란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궁극목적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이같은 결론이 올바르다고 인정되면, 보다 큰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분쟁을 특권의 영구화를 목적으로 하는 제반 노력을 거부해도 되는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8.p.249: 모든 산업국가의 공업노동자들과 같은 일체의 피억압자들은 압제자들이 폭력으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갖는 정당성보다는 더 고차적인 차원의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9.p.252: 사회 내에서 이성의 힘은 완전한 힘의 평등을 가져올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다. 다만 목적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10.p.252: 갈등과 강제력은 분명히 위험한 도구이다. 이러한 갈등과 강제력은 사회적 악을 양산해내므로, 현명한 지성이 있는 사회라면 그것들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11.p.254: 도덕가들은 흔히 강제력의 문제를 폭력적 강제력과 비폭력적 강제력으로 구별한다.
12.p.255: 비폭력은 매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의 저항이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들은 대단히 적극적이다. 비폭력은 억압계층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13.p.255: 불매운동은 전체 공동체의 생계를 앗아버릴 수 있고, 만일 오래 지속되면 생명을 파괴할 수도 있다. 파업은 그것이 정지시킨 산업과정에 내재된 재산 가치를 파괴할 수 있고, 또 때로는 파업당한 한 중요산업에 의존하는 전체 공동체의 생활을 위협할 수도 있다.
14.p.256: 현대 비폭력운동의 가장 훌륭한 지도자인 간디 자신이 이런 혼동을 조장한 느낌이 든다. 그는 종종 자신의 방법을 ‘영혼의 힘’ 또는 ‘진리의 힘’의 사용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폭력이라는 물리적 성격과 구별하여 정신적이 것이라고 믿는다.
15.p.257: 소극적 형태의 저항은 그것이 소극적이라는 이유 때문만으로 영혼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저항이 사회적, 물리적 관계 속에 파고들어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을 제약하는 한에 있어, 그것은 일종의 물리적 강제력인 것이다.
16.p.257: 무저항이라기보다는 분명히 비폭력적 저항이 의미를 설명하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다니엘, 소크라테스 등은 순수한 형태의 수동적 저항 또는 ‘영혼의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17.p.159: 진리의 힘 또는 영혼의 힘의 사용은, 보다 순수하고 정확한 의미에서 사회적 갈등에 있어서 대립세력의 이성과 선의지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18.p.260: 교육에 있어서 강제적 요소들은 도덕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요소드은 지성과 감정의 세계에서 작용하고 아무런 신체적 제약을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19.p.261: 비폭력은 사랑의 이상과 도덕적 선의지의 정신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20.p.262: 비폭력의 장점은, 그것은 행위자를 폭력적 투쟁이 양당사자들 안에 일으키는 분노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며, 또 그것이 일으키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인내함으로써 분쟁 당사자들 서로에 대한 분노와 악의가 자유롭게 될 수 있음을 입증해 주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