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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I find the emerging ecology in its earliest stages already daunting to strangers. Since computers are the locus where all these devices hail from and head toward, we can see in them now the alienness of unfamiliar complex machines. It doesn’t matter how acquainted you are with a particular brand of computer. When you need to borrow someone else’s, it feels like you’re using their toothbrush. The instant you turn a friend’s computer on, it’s there: that strange arrangement of familiar parts (why do they do it like that?), the whole disorienting logic of a place you thought you knew. You kind of recognize it. There’s an order here. Then, a moment of terror. You are...peering into someone else’s mind!
하지만 나는 초기단계에 있는 창발하고 있는 기계들의 생태계가 이미 이방인을 위축시키고 있음을 발견한다. 컴퓨터는 이러한 모든 장치들이 나타나고 향하는 궤적이기 때문에, 친숙하지 않는 복잡 기계에 대한 소외감alienness을 이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 컴퓨터의 특정한 상품에 얼마나 정통한지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의 컴퓨터를 빌릴 필요가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칫솔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친구의 컴퓨터를 켜는 순간 거기에는 친숙한 부분들의 낮선 배열이 존재한다.(왜 그들은 그것을 그렇게 사용할까?)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대해 방향감각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 같다고kind of 알고 있다. 여기에 질서가 있다. 그리고 경악의 순간이 온다. 당신은 누군가의 마음을 응시하고 있다.
The penetration goes both ways. So personal, so subtle, so minute is everyone’s parochial intelligence of their own computer’s ecology, that any disturbance is alarming. A pebble dislodged, a blade of grass bent, a file moved. “Someone has been in my compu-room! I know it!”
침투는 양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들 자신의 컴퓨터 생태계에 대해 편협한parochial 지능이 매우 개인적이고 미묘하며, 미세하기 때문에 어떠한 방해에도 경고를 한다. 자갈 하나가 제거되고, 풀잎 하나가 구부러지고, 파일은 이동했다. “누군가가 내 컴퓨터 방에 들어왔다면 나는 그것을 알아챈다.”
There will be nice-dog rooms and bad-dog rooms. Bad-dog rooms will bite intruders. Nice-dog rooms will herd visitors to someplace safe, away from places where real harm can be done. The nice-dog room may entertain guests. People will acquire reputations on how well-trained their computers are and how well-groomed their computational ecology is. And others will gain notoriety for how fiercely wild their machinery is. There are sure to be neglected areas in large corporations someday where no one wants to work or visit because the computational infrastructure has been neglected to the point that it is rude, erratic, swampy (although brilliant), and unforgiving, yet no one has time to tame or retrain it.
(미래에 컴퓨터는)순한 개들이 있는 방과 성질 사나운 개가 있는 방이 있을 것이다. 성질 사나운 개가 있는 방은 침입자를 물것이며, 순한 개들이 있는 방은 방문자를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에서 떨어진 어떤 장소에 안전하게 지킬 것이다. 순한 개 방은 손님들을 즐겁게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대에)사람들은 자신의 컴퓨터를 잘 훈련시켰으며, 자신의 컴퓨터 생태계를 잘 길들였다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기계들을 맹렬한 야성을 갖게 했다는 오명을 갖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거대 기업에서 누구도 일하거나방문하기를 원하지 않는 방치되는 구역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례하고, 별나며, 질척거리고(비록 멋지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정도까지 컴퓨터 기반시설이 무시되었으며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길들이거나 재교육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Of course there is a strong counterforce to keep the environment uniform. As Danny Hillis pointed out to me, “The reason we create artificial environments instead of accepting natural ones is that we like our environments to be constant and predictable. We used to have a computer editor that let everyone have a different interface. So we all did. Then we discovered it was a bad idea because we couldn’t use each other’s terminals. So we went back to the old way: a shared interface, a common culture. That’s part of what brings us together as humans.”
물론 환경을 동일하게 유지시키려는 강력한 반대세력이 존재한다. 대니 힐스가 나에게 지적했듯이 “자연적인 것 대신에 인공적인 환경을 창조하려는 이유는 우리 환경을 일상적이고 예측가능 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죠.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인터페이스를 갖는 컴퓨터 에디터를 갖도록 하였는데. 그래서 모두 그렇게 하였죠. 그런데 그 후 그것이 나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왜냐하면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단말기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옛 방식인 공유 인터페이스와 공유의 문화로 되돌아갔습니다. 그것은 일정 부분 우리를 인간으로서 함께 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Machines will never go completely on their own way, but they will become more aware of other machines. To survive in the Darwinian marketplace, their designers must recognize that these machines inhabit an environment of other machines. They gather a history together, and in the manufactured ecology of the future, they will have to share what they know
기계는 결코 스스로 완벽하게 되지 않는다. 다른 기계들을 더 인식하게 될 것이다. 다윈주의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계의 설계자들은 이러한 기계들이 다른 기계의 환경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기계들은 역사를 함께 모으고, 미래의 만들어진 생태계 내에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공유해야만 한다.
Programming a commonwealth
공통자산을 설계하기. 또는 연방을 설계하기
On the counter of every American auto parts store sits a massive row of catalogs, a horizontal stack of pages as wide as a dump truck, spines down, page edges outward. Even from the other side of the Formica you can easily spot the dozen or so pages out often thousand that the mechanics use the most: their edges are smeared black by a mob of greasy fingers. The wear marks help the guys find things. Each soiled bald spot pinpoints a section they most often need to look up. Similar wear-indicators can be found in a cheap paperback. When you lay it down on your night table, its spine buckles open slightly at the page you were last reading. You can pick up your story the next evening at this spontaneous bookmark. Wear encodes useful information. When two trails diverge in a yellow wood, the one more worn tells you something.
미국의 자동차 부품 가게의 계산대 위에는 거대한 카탈로그 묶음이 하나씩 놓여있다. 수평으로 펴 놓으면 덤프트럭만큼이나 넓고, 빙빙 돌아 내려가며, 페이지 모서리는 밖을 향하고 있다. 포마이카를 칠한 책상의 반대편에서 조차도 기능공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부분을 수천 페이지 중에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책 모서리는 기름기 묻은 수많은 손가락 때문에 검게 오염되었다. 때 묻은 흔적은 정비공들이 필요한 곳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더렵혀지고 닳은 흔적은 정비공들이 가장 자주 검색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정확히 알려준다. 유사한 사용(닳음) 지수wear indicator는 값싼 종이표지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침실용 탁자에 책을 내려놓을 때, 당신이 마지막으로 읽은 페이지는 종종 책 등이 살짝 열려 구부러져 있을 수 있다. 다음 날 저녁 이러한 자연스러운 표시를 통해 읽을 곳을 선택할 수 있다. 사용(닳음)은 유용한 정보를 부호화 한다. 엘로우드에서 두 개의 등산로가 갈라질 때 더 많이 닳은 길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해준다.
Worn spots are emergent. They are sired by a mob of individual actions. Like most emergent phenomena, wear is liable to self-reinforce. A gouge in environment is likely to attract future gouges. Also, like most emergent properties, wear is communication. In real life “wear is tattooed directly on the object, appearing exactly where it can make an informative difference,” says Will Hill, a researcher at Bellcore, the telephone companies’research consortium.
닳은 자국은 창발적이다. 닳은 자국들은 개인들 행위가 집단을 이루면서 창시된다. 대부분의 창발의 현상들처럼 닳음은 아마도 자기 증진하기 쉽다. 환경에서 도려냄은 미래의 도려냄을 유인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창발하는 특성들과 마찬가지로 닳음은 소통이다. 실제 생활에서 “닳음은 객체에 직접적으로 새겨지는데, 정보에 있어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고 전기 회사의 연구 컨소시엄인 벨코어의 연구원인 윌 힐이 말한다.
What Hill would like to do is transfer the environmental awareness communicated by physical wear into the ecology of objects in an office. As an example, Hills suggests that an electronic document can be enriched by a record of how others interact with it. “While using a spreadsheet to refine a budget, the count of edit changes per spreadsheet cell can be mapped onto a gray scale to give a visual impression of which budget numbers have been reworked the most and least.” This gives an indication of where confusion, controversy, or errors lie. Another example: businesses with an efficiency bent can track what parts of documents acquire the most editorial changes as it bounces back and forth between various departments. Programmers call such hot spots of wheel-spinning change “churns.” They find it useful to know where, in a million lines of group-written programming code, the areas of churn are. Software makers and appliance manufacturers would gladly pay for amalgamated information about which aspects of their products are used the most or least, since such explicit feedback can improve them.
힐이 하고 싶은 일은 물리적인 닳음에 의해 소통된 환경적 인식을 사무실 안에 객체들의 생태계로 전달하는 것이다. 힐은 전기적인 문서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과 반응하는지를 기록함으로써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재정을 개선하기 위하여 회계처리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중에 스프레드시트의 각 칸 당 변경한 교정 수는 어느 회계 항목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적게 수정되었는지 시각적 강조를 주기 위해 회색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디서 혼동이 있는지, 논쟁적인지, 또는 실수가 있는지 지표를 줍니다. 다른 예로, 사용 흔적의 효용성efficiency bent을 사업에 적용하면 다양한 부서를 오가면서 문서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많이 수정되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들은 이러한 바퀴 돌리기의 뜨거운 지점을 “교반기churns"라고 부른다. 그룹이 작성한 백만 줄의 프로그래밍 코드에서 어디에서 교반이 일어나는지 아는 것이 유용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소프트웨어 제작자와 응용 제조업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생산품의 어떤 측면이 가장 많이 또는 가장 적게 사용되는지에 관해 융합한 정보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간결한 되먹임이 그 제품들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Where Hill works, all the documents that pass through his lab keep track of how others (human or machine) interact with them. When you select a text file to read, a thin graph on your screen displays little tick marks indicating the cumulative time others have spent reading this part. You can see at a glance the few places other readers lingered over. Might be a key passage, or a promising passage that was a little unclear. Community usage can also be indicated by gradually increasing the type size. The effect is similar to an enlarged “pull quote” in a magazine article, except these highlighted “used” sections emerge out of an uncontrolled collective appreciation.
힐이 작업하는 곳에서 연구실을 지나간 모든 문서들이 다른 것(사람 또는 기계)이 그 문서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추적하였다. 만약 읽기 위해 문서 파일을 선택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부분을 읽기 위해 사용한 누적적인 시간을 가리키는 작은 체크 마크를 당신의 스크린 위에 가느다란 그래프로 보여준다. 한눈에 다른 독자들이 그 자리에 머물렀던 몇 몇 장소들을 볼 수 있다. 중심 문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은 명확하지 않지만 유망한 구절일수도 있다. 글자 크기를 점차 증가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사용수를 나타낼 수 있다. 그 효과는 잡지 기사에서 확대하여 “끌어서 인용부호로 싼” 것과 비슷하다. 강조된 “사용” 구역이 통제되지 않은 집단적 평가에서 창발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Wear is a wonderful metaphor for a commonwealth. A single wear mark is useless. But bunched and shared, they prove valuable to all. The more they are distributed, the more valuable. Humans crave privacy, but the fact is, we are more social than solitary. If machines knew as much about each other as we know about each other (even in our privacy), the ecology of machines would be indomitable.
닳음은 공통자산(연방)을 위한 멋진 은유이다. 단일한 닳은 흔적은 쓸모가 없다. 하지만 무리를 이루고 공유된 닳음은 모두에게 유용함을 증명하였다. 닳음이 더 많이 분산될수록 더욱 가치가 있다. 인간은 사생활을 갈망하지만 사실은 고립보다는 보다 더 사회적이기를 원한다. 만약 기계가 우리가 (우리 사생활에서 조차) 서로에 대해 아는 만큼 서로에 대해 많이 안다면, 기계의 생태계는 불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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