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 바퀴
이삿짐은 왜 이리 많은지, 한 달이면 시간은 충분한데 마음이 바쁘다. 그런데 목돈 들여 이삿짐센터에 맡길 정도는 아니다. 항상 '삑삑' 하고 소리 내다가 꺼지면서 속을 썩이던 냉장고는 버리기로 했으니 폐기물 딱지 만 원짜리를 붙여 내놓으면 그만이다. 들꽃 할머니가 예약한 이삿짐센터에 전화해 이사 당일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으니 끝났고…, 수고비는 얼마 주기로 했음은 물론이다. 큰 짐은 침대와 세탁기인데 침대는 분해해서 실으면 되므로 막내 도움을 받기로 했다. 책장은 이사를 염두에 두고 내가 새롭게 고안하여 목수에게 부탁하여 만든 것으로 뚜껑이 없는 나무 상자 여덟 개와 긴 널빤지 다섯 장이 그 부속인데 조립과 분해가 용이하다. 상자의 가로 세로는 널빤지 폭과 같고 높이는 두 가지인데 널빤지 다섯 장을 삼등분한 지점에 좌우 두 개씩으로 끼어 넣으면 책꽂이의 기둥인 동시에 좀 작은 책을 꽂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장식장으로 쓰도록 구상을 했던 것이다. 상담 중에 좋은 아이디어라는 칭찬(?)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만들어 온 것을 보니 맨 아래 널은 테두리에 각목을 덧대고 바닥에 닿는 지점 여섯 군데에 플래스틱 부속까지 부착했다. 그리고 양쪽 세로 부분은 책이 빠지지 않도록 별도의 널빤지를 나사로 고정하도록 보완하여 아주 견고했는데 문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작품이라고 표현하는 걸로 보아 목수로서의 직업의식과 자부심이 강한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사포로 매끄럽게 다듬고 원목의 질감을 살려 무광택 도료를 칠하여 정말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작품으로, 볼수록 정이 든다. 이번 기회에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잡다한 짐은 정리되는 대로 하남 가는 길에 승용차로 조금씩 실어 나르기로 했는데 카트가 필요했다. 스타 필드에 가 보니 바구니를 장착할 수 있는 게 눈에 띄어 샀는데 사고 보니 바퀴의 구조가 특이했다.
양쪽에 달려 있는 바퀴는 전체적으로 원형이 아니라 삼각형 모양이었는데 세 꼭짓점에 작은 바퀴가 하나씩 달려 있어서 밀거나 끌고 가면 삼각형 밑변 양쪽 끝에 달린 두 바퀴는 땅에 닿아 구르고 큰 삼각형 바퀴는 돌지는 않고 단지 길의 굴곡에 따라 시소처럼 미세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꼭짓점의 나머지 바퀴 하나는 덜덜거리며 아무 일도 안 하고 놀고 있었다. 말하자면 큰 삼각형 하나와 작은 원형의 바퀴 셋이 협업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돌려 가며 스페어 타이어처럼 여분으로 쓰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그 원리를 알았는데 앞뒤로 두 바퀴가 굴러감은 하중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었고 나머지도 늘 한가하게 지내는 놈이 아니었다. 바로 층계나 턱진 곳, 좀 큰 장애물을 나타날 때 수레가 멈춤 없이 굴러가게 하는, 아주 과학적인 바퀴였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좀 낫지만 보도블록 위로 지나갈 때는 소리가 크게 나는 게 단점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유용한 카트였다. 장을 보거나 분리수거 할 때 한 번에 끝낼 수 있어 아주 편리했다.
관심이 없었다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견문이 부족한 나는 이런 삼각형 바퀴를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한 점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같은 원둘레-테두리를 가진 바퀴여야 물건을 쉽게 나른다는, 그 기능을 온전하게 수행할 수 있지 아니한가. 정삼각형의 세 꼭짓점에 작은 바퀴 세 개를 닮으로써 네 축을 가진 삼각형 바퀴는 언제 발명된 것인가. 세 변은 생략하고 원의 중심점에서 원에 내접한 정삼각형의 세 꼭짓점에 선을 그은 다음 그 끝에, 그러니까 세 반지름과 원둘레의 접점에 바퀴를 단 형태이다. 그러니까 바퀴 모양이, 테두리는 떼어 버리고 중심축에 견고한 살만 세 개 남아 있는데 그 끝에 작은 바퀴를 달아 놓은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변형, 세 꼭지점이 투명선으로 이어진 삼각형 바퀴로 세 작은 바퀴의 중심축은 수직에서 수평, 수평에서 수직 운동할 때 삼각형 한 변을 지름으로 원운동을 하니 축이 아홉이나 마찬가지이다.
형태가 특이한데 재간도 남다른 놈이다. 주로 작은 바퀴 둘이 원운동을 하는데 큰 삼각형도 필요한 때는 원운동을 하며 카트가 수평과 수직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원과 정삼각형의 조합과 협동, 큰 삼각 바퀴와 작은 바퀴의 연계 운동으로 카트가 굴러감은 신기에 가깝다. 수직 벽에 다다르면 장애물에 막혀 정지한 앞바퀴와 같은 중심축으로 정삼각형 바퀴 전체가 크게 원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삼각 바퀴는 카트 진행 방향으로 12분의 1 바퀴 회전한다. 삼각 바퀴와 앞바퀴의 확장된 원운동-반지름은 정삼각형의 한 변-이 동시에 일어남으로써 뒷바퀴는 허공으로 들리고 윗 꼭짓점의 바퀴가 계단 수직면에 닿으면 수직을 이룬 작은 바퀴 둘이 굴러 계단을 올라서는 순간 수직 운동을 끝내고 삼각형 6분의 1 바퀴 더 회전하며 수평 운동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삼각형 바퀴가 평지에서는 정지 상태이지만 계단에서는 수레의 진행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면서 작은 바퀴 셋이 차례로 자기 역할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수직에서 수평으로 반복되는 직각 구조를 만났을 때 큰 삼각 바퀴와 두 작은 바퀴의 역할이 신기하다. 작은 바퀴의 반지름이라는 간격으로 인해, 움직임에 따라 계단의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두 작은 원의 접점을 이은 선이 만드는 삼각형의 모양은 계속 변하지만 층계 모서리에 부딪치지는 일이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이번 이사에서, 큰 짐을 한 방에 끝낼 수 있게 한 막내 덕이 가장 컸고 그다음은 내 승용차이다. 오간 횟수가,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지만 4주간 주 2회 이상은 될 것 같다. 마지막은 삼각형 바퀴를 장착한 카트가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시간 절약에 큰 공을 세웠다. 많은 수고를 했음에도 언제든 돕는다는 마음으로 현관에서 늘 기다리고 있으니 대견스럽다. 가까이에서 언제라도 세심하게 배려하며 도와주는 녀석이다.
첫댓글 삼각형 바퀴의 세밀함, 관찰력이 좋네요. 이삿짐 센타에 맡기지 않고 손수 이사하시다니요, 대단하십니다. 생활은 과학입니다. 작은 바퀴하나에도 원리를 집어낳고 편리함을 안겨주네요.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는 또 하나의 신선한 바람이지요. 행복한 시간들 엮어가십시오.
좋은 곳에서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