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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내부 단장
왕상 6:14-28
14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15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 곧 성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16 또 성전 뒤쪽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성전의 내소 곧 지성소를 만들었으며
17 내소 앞에 있는 외소 곧 성소의 길이가 사십 규빗이며
18 성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고 모두 백향목이라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19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성전 안에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20 그 내소의 안은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
21 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22 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23 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24 한 그룹의 이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요 저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쪽 날개 끝으로부터 저쪽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25 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요
26 이 그룹의 높이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같았더라
27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28 그가 금으로 그룹을 입혔더라
왕상 6:14-28 / [성전의 내부시설] 솔로몬이 돌과 통나무로 성전의 외부 공사를 완성한 다음 15) 이제는 좋은 널빤지로 내부 장식을 시작하였다. 성전의 안벽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송백 널빤지를 입혔고, 성전 바닥에는 전나무 널빤지로 마루를 깔았다. 16) 그리고 성전의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를 만들었다. 이곳이 여호와께서 거하실 방이다. 성전의 맨 뒷벽에서 9미터가 떨어진 곳에 송백 널빤지로 벽을 만들어 성전과 분리시킨 방이다. 17) 그러자 성전의 길이는 18미터가 되었다. 18) 성전의 안벽에는 모두 송백 널빤지로 장식하여 돌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송백 널빤지에는 호리병과 활짝 핀 꽃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19-20) 여호와께서 거하시도록 만든 지성소는 길이와 폭과 높이가 모두 똑같이 9미터였다. 벽은 모두 순금으로 입혀 놓았는데 여기가 바로 계약궤를 모시는 곳이었다. 지성소 앞에 송백으로 만들어 놓은 제단도 금으로 입혀 놓았다. 21-22) 성전의 내부도 모두 순금으로 입혀 놓고, 지성소 앞에나 금사슬로 만든 줄들을 여러 겹으로 쳐놓았다. 23) 솔로몬이 지성소에는 올리브나무로 그룹이라는 날개 돋친 두 천사의 상을 조각하여 세웠는데 높이가 각각 4.5미터였다. 24-27) 그룹이 날개를 펴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4.5미터였다. 그래서 두 그룹이 편 날개가 지성소의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닿았다. 지성소의 너비가 꼭 9미터였기 때문이다. 두 그룹의 모양과 크기는 서로 꼭 같았다. 두 그룹은 지성소의 중앙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서있었으며, 그 둘의 날개 끝이 지성소의 한가운데에 닿았다. 28) 솔로몬은 두 그룹에도 얇은 금판을 입혀 놓았다.
이 성전 내부 역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하였으며 언약궤와 그룹이 설치되었고 성소에는 금으로 만든 떡상, 등대, 향단 등이 놓여 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 (14-22) 성전의 내부 전체는 백향목 널판(벽)과 잣나무 널판(마루)으로 꾸며졌으며 모두 금으로 입혀졌는데(22, 30) 이를 금단이라 불렀고(7:48), 이는 내부의 환경을 아름답게 꾸밈과 동시에 소리의 자연스러움을 전달하는 일종의 방음장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금 사슬은 지성소로 통하는 문들을 가로지르며 성소에 걸려있으며, 단은 성소에 둔 향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내소(지성소)앞에 있는 외소가 성소로서 지성소의 두 배 크기이며 내부에는 박과 핀 꽃을 아로새겨 장식했습니다. 또한 지성소는 정육면체로 만들어 정금으로 입혔고 그 안에는 언약궤(출 16:33)가 있으며, 대제사장이 연 1회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들어가는 곳입니다. 또한 절대적 완전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겔 48:20; 계 21:16참조). 그리고 정금으로 입힌 이유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금과 같이 변치 않는 믿음을 소유해야 하며(히 11:6; 벧전 1:7),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황금으로 지어진 영원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계 21:16-18).
그룹(23-28) 성경에서 그룹은 사람들이 에덴동산에 돌아오지 못하게 낙원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창 3:24), 하나님의 보좌 병거를 운반하는 자(겔 1:4)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지성소 안의 두 그룹은 감람나무(올리브나무)에 금으로 입혀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섞어 만든 천사의 형상을 말하며 높이는 2규빗, 날개의 길이는 각각 5규빗 입니다. 한 그룹의 날개는 각 맞은편 벽에 닿아서 결국 그들의 네 날개는 지성소의 전 공간을 메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법궤를 향하여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따라서 이 법궤는 그룹 사이에 놓여 있는 형상이 됩니다. 또한 성막의 그룹은 법궤를 향해 내려다보고 있으며(출 25:20), 입구를 향해 나란히 세워져(대하 3:13) 지성소의 가장 깊은 곳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그룹들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천사를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에 봉사자나 또는 거룩성을 수호한다는 수호자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본성은 거룩함입니다(레 19:2). ‘거룩하라’는 것은 ‘분리하다’ ‘구별하다’라는 뜻으로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삶은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펩소던트 컴퍼니라는 기업에 찰스 럭맨이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성공 신화를 부러워했고 그 성공 비결을 알고 싶어 무수한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11년 전 했던 단 하나의 결심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을 중요한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그의 충고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쉽고 당연한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며 어떤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바로 그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이 결심을 위해 노력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 설 교 >
하나님은 최선을 기대하신다
열왕기상 6:14~38
우리는 앞 주에 ‘순종이 없으면 성전도 의미가 없다’는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외부공사가 끝날 때 즈음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성전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2~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성전 건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고 율법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어디까지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일 뿐입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 해 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 도중 솔로몬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지어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 화려한 성전도 아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하나님은 결코 성전 안에만 갇혀 계시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성전 외부 공사가 끝나는 시점에서 성전의 본질적 의미를 설명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긴 솔로몬은 더욱더 정성을 다하여서 성전 내부 공사에 착수합니다. 오늘 말씀은 성전 내부공사에 최선을 다하여 완성해 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 곧 성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성전의 골격을 세우는 외부 공사가 끝나고 나서 이제 내부공사로 인테리어 작업이 시작됩니다. 성전은 골격은 대리석 돌로 건축했지만 내부의 벽은 백향목 널판으로 씌웠습니다. 백향목 벽은 튼튼하고 질겼으며, 냄새도 향기로웠습니다. 특별히 벽의 판자는 박과 꽃으로 교묘하게 수를 놓았는데 이는 그 당시에 유행하였던 고급 마감이었습니다. 그리고 20~22절에 보면 백향목 널판과 그 위에 수놓은 것들 위에 또 다시 정금으로 입혔습니다. 특별히 성전의 내부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의 성막처럼 동일하게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었고 지성소 안에는 사방이 십규빗이나 되는 두 개의 그룹을 감람나무로 만들어서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모세 시대 때 만들었던 그것을 그대로 모셨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설주들은 벽의 5분의 1엘 불과했고(31절),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설주는 4분의 1이었습니다(33절). 그리고 어느 문에나 종려와 핀 꽃을 아름답게 아로새겨 놓았습니다(32, 35절). 제사장이 제사를 접전하는 놋 제단이 있는 안뜰은 다음은 돌 세켜와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일반인들이 있는 뜰과 낮은 벽으로 분리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고, 또 제사장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전의 크기는 모세가 만들었던 성막의 크기보다 정확히 두 배였습니다. 모세의 성막은 길이가 30규빗 넓이는 10규빗이었는데 솔로몬의 성전은 길이가 60규빗 넓이는 20규빗 이었고 높이는 30규빗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성소는 동일하게 정사면체였습니다. 길이와 너비 높이가 모두 20규빗으로 이루어진 정사면체였습니다. 정육면체는 ‘완전성’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정방형은 ‘절대적 완전’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모세의 성막도 10규빗 정육면체였고, 거룩한 새 예루살렘도 만 이천 스다디온의 정육면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솔로몬은 성전의 골격을 건축하고 성전 내부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지성소에 필요한 나무들은 가장 고품질로 알려진 백향목과 감람나무를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성소의 벽과 단과 그룹과 마루와 문짝 등을 정금으로 입혔습니다. 솔로몬은 지성소와 성소를 만들면서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를 만들 때 최고의 것을 드려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사랑 최고의 섬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최고의 것 최고의 헌신을 드리는 것에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최고의 것 최선의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의 질서에서 항상 1순위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것에 비교해서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100%의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제외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제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100―하나님 = 0).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나머지 하나를 빼면 항상 그것은 99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빼면 그것은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잃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다른 것은 다 가져도 하나님을 가지지 못하면 그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없어도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면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솔로몬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할 때 최고의 것을 드리고 최선의 것을 드르며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에 단 하나도 아까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이 영적 공식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것을 최선의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채워지는 풍성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 내부뿐만 바닥까지 온통 정금으로 입혔다고 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특별히 성전이 온통 정금으로 입혔다는 것은 성전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첫째, 금은 빛을 냅니다.
다시 말해서 은은히 빛나는 신앙을 상징합니다. 금은 다이아몬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빛을 냅니다. 그러기에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빛입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화려하면 그것이 주는 강렬함 때문에 쉽게 싫증이 나거나 거부감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금은 눈에는 잘 띄면서도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 거부감을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이 금으로 입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히 빛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 빛은 바로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자녀임을 알리는 빛입니다. 또한 그 빛은 어두움을 내어 쫓는 빛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참 빛 곧 세상에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빛입니다. 그래서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 안에는 늘 빛이 빛나고 있고 그로 인해 성도들의 삶에도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빛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빛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전이 정금이듯이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가 정금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빛을 내는 정금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가면 어두운 곳이 밝아져야 합니다. 내가 들어가면 우울한 곳에 기쁨의 빛이 생겨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그곳이 어디든지 항상 빛이 은은하게 비추어서 어둠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의 인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입니다.
둘째, 금은 불변성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 또한 그 정금과 같이 변치 않는 고귀한 믿음을 늘 지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보면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은 불로 연단받아 정금같이 되어야 합니다. 정금은 녹이 슬지 않습니다. 물속에 담가 두어도 기온의 변화가 있어도 결코 녹이 슬지 않습니다. 색깔의 변화가 없습니다. 바로 이점인 정금의 가치를 더해 줍니다. 성전은 이러한 정금으로 성소와 지성소에 속한 모든 벽을 심지어 바닥까지도 입혔기 때문에 녹슬지 않고 변색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참된 성전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정금처럼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녹슬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그 색깔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색깔로, 저기에서는 저런 색깔로 신앙이 변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루었습니까?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고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도 바울은 참수 당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자신의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자 못이 박힌 판자 위를 걸다가 쓰러졌습니다.
왜? 믿음의 선배들이 이 고난을 당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신앙을 변색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환경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색되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는 이 색깔로 변색되고 저기서는 저 색깔로 변색된다면 우리는 이미 정금으로 입힌 성전신앙을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 어디에서도 항상 한 색깔만을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도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는 성전되 우리도 주님처럼 동일한 신앙 변색되지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려야 합니다.
셋째, 금은 고귀성을 상징합니다.
금은 모든 사람들이 귀하게 여깁니다. 화폐나 장식품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을 많이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정금 같을 때 고귀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금 같은 신앙을 유지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고귀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의 신앙이 싸구리가 되어서 세상 사람들도 우리를 싸구리 취급합니다. 개독교라고 욕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래도 선하고 고귀한 기독교인을 만나면 기독교인 중에 이런 사람도 있었나 흥분합니다. 정말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없는 그 무엇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역시, 이방 나라들에게 소문이 나 있었으며 그들에게 높고 영화로운 성전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왕상10:6,7) 그러므로 우리는 정금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그들에게 고귀하고 영화로운 삶을 통해서 약간의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고결성이 있어야 합니다. 신약시대 때 교회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2: 43~47절까지 나타난 교회의 모습은 영화로운 고귀한 모습입니다.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했습니다.교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더불어서 온 백성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교회를 칭송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 날마다 더하여졌습니다. 이것이 신약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의 모습입니다. 신약시대 때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귀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정금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넷째, 정금은 거룩성을 상징합니다.
정금으로 장식된 성전은 특별히 내외 성소 내부뿐만 아니라 지성소와 성소에 깔린 마루 전체에도 금으로 입혔습니다. 이처럼 바닥에도 금이 깔려 있다는 사실은 성소와 지성소의 거룩하게 구별된 성격을 강조하여 줍니다. 즉 성소는 오직 성별된 제사장들만 이 직무를 수행하던 곳이고, 더욱이 지성소는 1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오직 대제사장만이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성소가 다 정금으로 온 사방벽을 입혔다는 것은 성소의 거룩성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정금같이 거룩성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이란 도덕적 윤리적 거룩보다 더 본질적인 의미는 구별됨에 있습니다. 성소 밖은 놋으로 꾸몄습니다. 그러나 성전 내부는 정금으로 입혔습니다. 밖의 세상과의 구별성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구별됨에서 시작됩니다. 6일은 세상에서 살지만 7일째 되는 주일은 하나님의 날로 우리는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는 물질에 대해서 청지기 의식을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 중에 구별하여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것은 물질에 대한 구별입니다. 또한 시간에 대한 구별이 있습니다. 매일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첫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새벽기도로 드립니다. 이 날도 하나님이 주신 날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그 소중한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벽기도요 아침 큐티에 하루를 시작하는 구별된 아침 기도시간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섞여 살지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소를 정금으로 입힌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신 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성전된 우리 몸을 늘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서 삶의 예배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할렐루야!
37~3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넷째 해 시브 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열한째 해 불 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여기서 솔로몬이 성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다고 했는데 실제적으로는 7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성전 건축은 솔로몬 즉위 4년 시브월(B.C. 966년 2월)에 기초석을 놓음으로 시작하여(1절), 솔로몬 즉위 11년 시브월(B.C. 959년 8월)에 완공했습니다. 따라서 건축기간은 정확히 7년 6개월이 걸린 셈입니다.
고대 다른 신전에 비해서 이렇게 시간이 짧게 걸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에베소의 다이아나 신전 건축은 무려 200여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또한 애굽의 피라미드 건축에는 대개 20여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비교하면 그토록 화려하고 정교한 성전 건물을 완공하는데 7년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성전이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는 점과 많은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최선을 다했다는 점, 그리고 다윗 시대부터 세심한 준비가 축적되어 있었다는 점과 히람 왕의 적극적인 협조로 필요한 목재들이 잘 공급된 것을 고려한다면 솔로몬 성전 건축은 짧은 기간이지만 정성을 다한 대건축 사역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치밀한 준비와 함께 솔로몬의 지혜로운 리더십,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는 거룩한 열정이 어우려져서 짤은 시간에 이런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치밀한 준비와 함께 지혜로운 경영 그리고 최선을 다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최고의 효과 있는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은혜로 적당히 대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섬길 때 치밀한 준비와 최선을 다한 열정 최고의 헌신을 드립시다. 우리가 이번 가을에 하는 영혼사랑축제도 대충 땜질식으로 하는 행사가 아니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던 그 열정과 치밀한 행정력과 창조적 지혜와 최고의 헌신이 지불된 영혼사랑축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약시대는 교회가 성전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이요 성전된 교회를 세워 나갈 때 오늘 본문에서 최고의 것을 드려서 최선의 수고로 헌신을 했던 솔로몬의 그 열정을 배워서 하나님의 교회를 영광스럽게 거룩하게 건축해 나갑시다. 외적인 건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회건축말입니다. 구약의 성전이나 신약의 성전이나 다같이 아름답고 거룩하며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저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클럽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이기에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지어져 나가야 하며, 주님의 말씀만이 그 표준이 되어서 지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