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크리스마스는 생일 다음으로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 방에 누워 누군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가길 기다렸다
부산에서는 눈 구경하기가 힘들었지만 매번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지로 모른다며 야구 우승을 기다리듯 괜히 마음을 졸였다
나이가 들어 외국에서 요리를 할 때 크리스마스 매상이 가장 좋은 바쁜 날이었다
얼굴에 소금기가 낄 때까지 일을 했다
자정이 넘으면 오븐의 불을 끄고 선반에 걸터앉아 동료들과 캐럴을 부르고 맥주를 마시다가 새벽에 주방을 나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 날 새벽 텅 빈 거리를 혼자 걷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는 여흥을 즐길테지만 또 누군가는 뒷 정리를 해야 한다
반드시 반복될 일상의 무게는 크리스마스의 흥분을 쉽게 무너뜨린다
이제 나는 커다랗고 화려한 케이크보다 작은 과자 하나를 두고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중년이 되었다
단골 장사는 말처럼 쉽지도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늦은 밤 까눌레 하나를 접시에 올리고 홀로 앉았다
오래전 이 빵을 굽던 수도사들처럼 와인도 조금 따랐다
안식과 평온을 기도하며 빵 한 조각을 먹었다
무거운 밤이, 묵은 날이 천천히 흘렀다.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PS: 까눌레 프랑스 서남부 와인 산지인 보르도의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다는 까눌레는 사탕수수를 증류하여 만든
럼(Rum)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첫댓글 수도사처럼 와인과 함께 먹는 빵
좋은글 다녀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