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0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요 10:10-12).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목숨까지 버려 그 양들을 먹이고 살리는 것이지요.
나 또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가야 하건만 겉으로 볼 때는 선한 목자인 것처럼 보여도 속은 음흉한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는 이리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는 양을 키워서 잡아먹거나 이리가 오면 버리고 도망하는 삯꾼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주께서 공의로 심판하시고 다른 우리에 있던 나를 주님이 계시는 그 우리로 초청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아는 것임을 믿습니다(요 10:14).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죄의 소굴로 이끌어가는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 한 분만으로 자족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오늘도 이러한 자기부인과 함께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날 받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57:1-11
제목 :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피하리이다.
(다윗의 막담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이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이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 나의 묵상
본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성경에 다윗이 굴에 숨어 있었던 기록이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그가 블레셋 가드에서 탈출한 직후로서 아둘람 굴에 피하여 있던 때이다(삼상 22:1,2).
또 한 번은 십 황무지에서 요나단과 마지막으로 재회한 이후로서, 그는 엔게디 굴에 은신해 있었을 때이다(삼상 23장).
본시의 저작 배경이 되는 때가 둘 중 어느 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둘람 굴보다 엔게디 굴에 있었을 때가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던 바 추측컨대 본시는 엔게디 굴에 머물 때를 그 배경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자를 만난 것과 같은 위기, 잔해하는 창과 화살 그리고 날카로운 칼과 같은 원수들의 모함에 직면해 있는 풍전등화와 같은 다윗의 상황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 떨기는커녕 오히려 새벽을 깨워 비파와 수금을 치며 역동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겠노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시인의 기개가 잘 드러나고 있다.
1-2절, 시인이 위기에 처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구원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주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내가 주께 피하러 왔습니다.
내게 닥친 이 어려움들이 다 지나기까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있겠습니다.
가장 위대하고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외칩니다.
3-6절, 시인이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통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확신을 피력한다.
주님이 하늘에서부터 도움의 손길을 뻗어 나를 건지십니다.
나를 집어삼키려고 뒤쫓는 자들에게서 주님이 구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내려주신 인자와 신실입니다.
내가 지금 사자들 가운데 서 있습니다.
내가 무시무시한 들짐승들 가운데 누워 있습니다.
창과 화살은 그들의 이빨입니다.
날카로운 칼은 그들의 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눈을 들어 주를 봅니다.
나의 눈은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신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원수들이 나를 잡으려고 덫을 놓습니다.
그래서 나는 근심 중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내가 가는 길에 구덩이를 파 놓았지만 그들 스스로 그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7-11절,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한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하나님, 내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오직 주를 노래하고 찬양할 것입니다.
내 영혼아 일어나라. 비파야 수금아 잠에서 깨어라.
내가 새벽을 깨울 것이다.
나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민족들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겠습니다.
주의 인자하심 곧 사랑은 너무나 큽니다.
따라서 그 사랑은 하늘까지 닿고 신실하심은 궁창에 이릅니다.
하나님이여 하늘 위에 높임을 받으소서.
주의 영광이 온 땅에 두루 비추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울을 피해서 도망다니고 또한 가드 왕 아기스를 피해서 아둘람과 엔게디 굴로 피신하였다.
그 때 오늘 본문인 시편 57편을 쓴 것이다.
다윗은 주의 은혜를 구한다.
그가 피한 곳은 들짐승들이 사는 곳인 굴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음습하고 어두우며 침침함이 가득한 그 굴속을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표현한다.
마당에서 뛰노는 병아리들이 마당 위에 솔개가 날아오면 그들은 어김없이 어미 닭의 날개 아래로 숨는다.
병아리들에게 있어서 엄마의 품속, 곧 날개 아래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
그곳에 있으면 엄마가 지켜주기 때문이다.
다윗 역시 그 굴을 하나님의 품속인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삼고 모든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그곳을 피난처로 삼는다.
그를 잡아 죽이려는 손길들 앞에서 그는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믿는다.
하나님의 인자는 곧 헤쎄드로써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이며 진리는 곧 신실하신 말씀이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이 그를 주의 품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를 집어 삼키려는 사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고, 불사르는 자들 가운데 누워 있는 것처럼 언제든지 그는 죽음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은 창과 화살 그리고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덤벼든다.
다윗을 잡으려고 그물을 준비하며 함정을 파고 다윗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힘으로 그들을 처리하지 않고 주의 주권 앞에 믿음으로 반응한다.
오히려 그런 위기일발의 상황 앞에서도 주의 영광을 선포하고 노래한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7-1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운 죽음의 위협 앞에서 자기가 믿는 신을 높이고 찬양하며 영광을 선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기를 죽이려는 그 원수를 충분히 갚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것이 곧 다윗의 위대함이 아닌가?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다윗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난을 당하셨으며 무엇보다 죽음까지 그에게 임하였다.
죽음도 그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최고의 극형인 십자가 죽음이다.
그런데 그 죽음조차 주님을 굴복시키지 못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인자와 진리 때문이다.
진리는 아버지의 명령 곧 영생이며 인자는 헤쎄드 곧 사랑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은 죽음까지도 초월하여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그 영혼들을 아버지 품으로 인도하신다.
나는 이런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이다.
나는 나의 죄를 안다.
그렇기에 나는 도무지 살 수 없는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패역한 나를 위하여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이런 모순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순이 진리인 것은 내가 지금 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주님은 나를 살리셨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용납한다.
나의 의도, 나의 객기도 아닌 오직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용기로 말미암음이다.
이제 나는 예수 안에서 죽었다.
그리고 내 안에 아들이 사신다.
아들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어 아들로 인하여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오직 나의 양식으로 삼고 말이다.
그 안에 주의 영광의 빛이 나를 비추고 그 빛 가운데 오늘도 참된 안식과 평강을 누린다.
그리고 내 마음을 주님께로만 확정하여 나의 온 마음으로 주를 찬송하고 또 찬송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변이 날 죽이려고 위협을 가해 올지라도 나는 주님의 품속에 거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자녀는 엄마의 품속에 있을 때 제일 안심하고 평화를 누리는 것처럼 자녀 된 나 또한 주의 품속이 나의 거할 처소가 되게 하소서.
지금도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으로 인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있을 곳은 오직 주님 계시는 창세전의 세계 아버지 품속이오니 오늘도 그곳으로 나아가나이다.
그곳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요 온전한 피난처이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주님으로 참 평강과 안전이 내 안에 풍성하게 하소서.
주님만이 나의 전부임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