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이란 말은, 노장문학비평가들의 좌파정권봉사와 아집이 만든 기괴한 용어.
영화 [한반도]를 둘러싸고 홍보글로 ‘팩션’이란 말이 뜬다. 그러나, 그 용어는 등장부터 사용과 정착과정 모든 것이 한마디로 말해서, 주말극 10대용 오락프로 시간에 방송되는 ‘하춘화 노래’ 같은 인상이 매우 짙다.
‘팩션’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전 인식이 필요하다.
(1) 역사소설 연구자들에서 나온 말이다.
(2) 만화방 무협지란의 중국을 가보지도 않고 중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대충 아무 근거 없이 쓰는 소설도 ‘역사소설’이라고 보고 있는 전제이다. 즉, 대충 독자에 타협하며 ‘허구 배경’으로 무협지 독자 수준을 꼬득이는 바탕보다는, 정밀한 노력에 근거해서 썼다는 말이다.
(3) 세계관에 있어서 1970년대의 ‘사실주의 문학’이란 문예 사조 교양 수준을 바탕한다.
여기에서, ‘역사소설 연구자 맥락’이 아니라 ‘일반 맥락’에서 생각해 보자.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일제 말기에 ‘완전한 새빨간 거짓말’기초의 현실도피적 다른 시간 배경 오락 소설을 역사소설로 인정해주는 버릇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럴 듯 하다고 간주될 만큼, 구체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소설창작’은 과연 오늘날에 가능한 것인가?
또, 완전한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약간이나마 리얼리티를 증명할 현실적 토대가 있다 하더라도 그 부분이 내용의 우수성을 과연 증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좌파정권’에 봉사하는 역사소설연구자는 좌파정권의 그늘 아래에서 ‘그렇다!’라고 그렇겠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닐 것이다.
‘허구’창작이 어떻게 ‘전대협’ 임수경 이념 수준을 오고 갔는가에 대해서 분석하여, 강우석 감독이 어떻게 친북좌파의 정치홍보 선전대장이 되었는가를 생각하는 데에는, ‘팩션’은 심히 부적절하다. ‘디테일’에서 사실 취재를 했다는 것 자체로, ‘만화방 대여본 무협지’가 아닌 것이 그 극의 잘남을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직, 그 배경은 ‘역사소설 연구자’ 학위 논문에서도 제한적으로만 타당한 진리이다.
좌파정권에 타협하는 역사소설 연구자들이 영화 [한반도]에게 ‘팩션’이란 표현을 헌사했을 가능성이 높아도, 그것은 하춘화의 노래의 현재성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일부 노인들 제외하면 다수에 울화통 터지게 하는 바이다. 하춘화 노래의 현재성 이야기는 하춘화 세대 말고는 공감을 못하는 것이고, 역사소설의 그 용어는 197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우파 문단 역사소설 연구자 빼고는 전혀 공감 못할 말이다. 특히, 그 들 중에서 좌파정권에 타협하고 봉사하는 자들만 인정하는 말이다.
영화 [한반도]는 만화방 대여본 무협지보다는 ‘극적 예술미’가 있다. 그러나, 전대협 정치문화 선전물 수준으로서 ‘생 날 뻥’은 분명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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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상대에게 '당신은 틀렸습니다!'하고 자신을 보일 때는, 그 분야에서 선행학술논문으로 국내 도서관 자료를 거꾸로 여러번 쏟은 경력에서만 가능하겠죠. 오늘 올린 글에서도 '문인협회'가 6.15타협한다고 합니다. 문인협회 계보에서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제출된 석사학위 논문 수준일 뿐입니다. 흔히 쓰는 말이 아니라, 그 노인 문학인들이 그 용어 빼고는 다른 어떠한 용어도 발 못 붙이게 했어요. 팩션은 결국은 40년에서 50년전의 구태의연한 역사소설계의 감성적 늘려쓰기 관행을 변명하는 지극히 국지적인 말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절대적으로 확실히 틀렸습니다'하고 자신있을 순간은 많지 않습니다. 팩션이란 말은 6.15시대에 눈치보며 대충 타협하는 역사소설 연구 문인에서 나온 말입니다. 제 '개인 까페'도 '역사소설'로서 이 분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좌파적인 표현이라 그랬습니까? 비굴한 노인 문학인들의 어거지로 학술근거는 하춘화 노래의 현재성 따위의 노인들만 기사는 내용이란 거죠.
팩션이란 용어의 절대 잘못은, 영화 [한반도]에서 절대로 중요한 것은 강우석 같은 감독이 어떻게 전대협 이념 선전대원이 되었는가의 '허구성'의 사실성 분석이지요. 사실만 중요하고 허구는 그냥 예술 창작으로 모두 인정하라는 수준은 절대로 안 맞습니다. 역사소설과 사극의 늘려쓰기 관행이 '어떻게 뻥으로 키웠는가'에 대해서 따지기에 서로 봐주면서 차단하는 관행이, 좌익 변절자에 대한 후대의 심판을 차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