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320) - 친구가 걸어온 고난과 기쁨의 길
연일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내리는 장맛비가 가뭄으로 메마른 땅을 적신다. 여름은 덥기 마련, 찜통더위는 견딜 만한데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가 숨통을 죈다. 광주에서는 소방헬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고 순천에서는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유병언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황당한 사건이 터지더니 강원도에서는 마주 오는 열차가 충돌하는 아찔한 사고가 뒤를 잇는다. 이에 뒤질세라 세계 곳곳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반군과 교전중인 우크라이나에서는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던 여객기가 격추되어 300여명의 귀중한 생명이 날벼락을 맞았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대치중인 가자지구에서는 무고한 생명이 수백 명이나 목숨을 잃는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날는지 불안한 세상, 해괴하고 요상한 일상을 무사히 지탱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엊그제 격동의 시대를 맨주먹으로 마주하며 올곧게 살아온 친구의 고희(古稀) 기념문집 출판 잔치에 참여하여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주인공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 정상복 목사, 고등학생 때 외국인 선교사의 성경공부에서 만난 철부지소년들이 어느새 불혹과 지천명, 이순을 지나 백발이 성성한 고희에 이르다니.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 출판 잔치는 21일 저녁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풍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경건하면서도 흥겹게 열렸다. 그곳은 주인공의 삶이 응축된 한국 민주화운동의 성지이기도. 기념식장에는 가족과 친지들은 물론 기라성 같은 민주투사들이 다수 동석하였고 기념문집에 글을 쓴 이들 가운데는 각계에서 한 몫 하는 명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들 모두 어려운 시국을 슬기롭게 헤치며 평생을 따뜻하고 의롭게 살아온 양심을 향하여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한데 모았다.
1944년생 같은 나이인 정상복 형과는 1960년에 효창공원 앞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만난 지 어언 54년, 고향을 떠나 객지살이의 어려운 환경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내며 쌓은 교제가 한쪽은 민주화운동과 목회활동으로 한쪽은 공직에 입문하여 대학교단으로 옮기는 다른 길을 택하면서도 동시대의 아픔과 질곡을 공유하는 긴 여정을 함께 하였다.
1974년 4월, 이 땅의 민주화운동에 큰 획을 그은 민청학련 사건이 터졌고 그는 그 사건의 중심에 섰다. 그때 나는 동대문우체국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종로경찰서 형사가 찾아왔다. 수배중인 정상복의 소재를 아느냐고. 사연인즉 그해 3월에 명동성당에서 가진 내 결혼식에서 그를 보았다는 증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서로 연락이 되는지 탐문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그는 당국에 붙잡혀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신혼인 나는 친구의 옥살이가 걸려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 것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1년여 옥고를 치른 그가 풀려나왔을 때 저녁을 대접한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음이 부끄럽다.
1980년대의 어느 해, 기독학생 총연맹과 기독자교수협의회 총무 등을 거친 그가 미국선교단체의 초청으로 유학길에 오르는데 당국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청와대 파견 중인 고시 동기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한 적이 있으나 효험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 체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귀국하여 감리교 목사로 순례자교회를 설립하고 감리교단에서 활약한 후로는 광주에 정착한 터라 가끔 연락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가 엄혹한 시절을 온몸으로 견디며 재야의 버팀목으로 우뚝 선 정황이나 고문후유증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고통을 겪는 일도 제대로 몰랐다.
출판 잔치와 고희기념문집의 제목은 '기쁨과 고난의 길, 순례자'다. 내가 쓴 책, '여행에서 배우는 삶과 문화'에서는 순례자를 일련의 제약들을 부수고 자기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영혼의 소유자,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의 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을 가진 자유인으로 규정하였다. 친구는 문집에 이렇게 적었다. '인생은 고난 속에서 기쁨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이라 여긴다. 순례자는 목적지가 분명한 의미를 가슴에 지니고 걸어가는 자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좋은 분들과 사랑을 나누며 지금까지 온 것을 감사한다.' 고독한 순례자의 사명을 안고 걸어온 길, 가족 사랑의 본을 보여준 삶에 대하여 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동의하며 칭송하는 그의 행적이 아름답다.
가족을 대표하는 인사에서 큰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탈무드에서 좋은 부모는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고기를 잡아주지도 않고 고기 잡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왜 고기를 잡아야 하는지를 깨치게 하였습니다.'
축시를 낭독한 양성우 시인은 '내 친구 의로운 사람 정상복목사'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읊었다.
' 이 시절의 모든 슬픔을 거두고 아픔을 안으려고
먼 길을 혼자 온 그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도 횃불로 타고
별이 되어 반짝이는 아름다운 사람
여름산보다 더 그윽하고 짙푸른 그의 가슴이여
이제는 깃을 접고 스스로 풀숲에 숨으려는
한때는 어깨 걸고 세상을 바꾸자던 이들
너나없이 가랑잎처럼 진흙 위에 나란히 누워도
마지막까지 빈들에 남아 외롭게 외치는 그
영혼이 참 맑은 여울물 같은 그는 언제나
꿈꾸듯이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
굳이 그의 오래된 가난을 탓하지 마라
생각이 깊고 곧으며 티 없이 깨끗한 그에게는
기름진 밥상이 오히려 낯설고 거북하느니
허리 굽혀 배부름을 얻기보다는 차리리 맨몸으로
가시밭을 걸으면서
이 세대를 살리려고 눈물로 빌어온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언덕을 오르는
내 친구 의로운 사람 정상복목사'
만인보(萬人譜)에 고은 시인은 정상복을 이렇게 적었다.
70년대 아파트란 15평이면 넉넉했다
정상복의 신접살이
거기에 기관원이 나타나면
집안의 수도에 호스 이어다가
세찬 물줄기로 그 기관원 물벼락 씌워 보냈다
여기 왜 와
여기 왜 와
이 작자야 박정희한테나 가
안재응에 이어
KSCF 살림 도맡아
투지 불탔다
투지 불탔다
온몸에 쇳내 나며
거품 물어
커다란 눈 치떠 (고은 시집 만인보 12권, 1996)
젊은 시절의 그를 키우고 거든 원로들이 어느덧 팔순을 넘고 구순에 이르렀다. 그 중 한분이 축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냥 젊은이로 알았던 후배가 고희를 맞누나, 선배로 당부하노니 욕심을 버리고 편안히 살라. 노욕이 쉽사리 가시지 않더라.'
식장에 들어서자 아들들에게 교회 고등부 친구라고 소개하는 주인공이 자랑스럽다. 부인 정영순 여사는 이구동성으로 내조의 공이 크다고 칭찬인데 먼 길 찾아주어 고맙다며 문집에 글 쓴 이들을 위하여 손수 그렸다는 부채를 손에 안긴다.
성서는 이렇게 교훈한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찌니라'(잠언 27장 2절) 그를 기리는 잔치와 문집에서 자신이 나서지 않고 다른 이들이 그를 칭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혼탁한 시류에 물들지 않은 의로운 사람 있었구나. 고난을 견디고 기쁨의 길로 들어선 친구여, 남은 때에 더욱 평안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