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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성공과 번영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4) 예언은 성령의 나타남인데 우리 교회의 예언사역은 성경적인가?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성령의 세 가지 인도에 대해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셋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입니다.
이 인도를 잘 받지 못하면 성령의 세 번째 인도를 정확하게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별력과 영의 증거를 캐치하는 민감성이 길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 인도를 잘 받지 못하면 성령의 두 번째 인도를 잘 받아도 삼중사역이 불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세계적인 영성운동 강사들에게 무수히 본 것처럼, 훌륭하지만 예수님의 사역과 다른 불완전한 사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도와 선지자들에게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보는 눈과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들에게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보는 눈과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은 보는 눈과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보는 눈과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은 들을 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들을 귀는 우리 모두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에게 자세히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말씀을 심히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집요하고 끈질기게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 결과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으면 신기하게 깨달아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깨달은 것을 나누면 사람들이 두 종류로 나누어졌습니다. 고교시절에도 그랬고, 신학생 때도 그랬습니다. 또, 울산에서 목회할 때뿐 아니라 지금도 듣는 자들이 항상 둘로 양분됩니다.
다수는, 제가 깨달은 것에 대해 말하면 무관심하고, 거부감을 보이고, 안 들으려고 합니다. 듣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납니다. 그들은 제가 자기를 높이고 자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를 비난합니다. 미안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크게 쓰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절대 이런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소수는 제가 깨달은 것에 대해 말할 때 관심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눈을 빛내며 듣습니다. 들으면서 공명이 이루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달게 듣고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은 대부분 이런 분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혹, 여러분 중 그렇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반드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에는 두 종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바울 아니면 디모데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는 사람을 뜻하고, 디모데는 스스로 그렇게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고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 배워야 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전자는 극히 소수이고 후자가 대부분입니다. 바울과 같은 은혜는 목사나 교수라고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받은 은사가 많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극히 소수를 일으키셔서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깨닫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진리가 퍼져나가게 하십니다. 다른 이들은, 아무리 연구해도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참 진리로 충만해질 수 있는 길은 겸손히 듣고 배우는 것 외에 없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들을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런데,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은 교만하고 겸손히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 진리로 충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이시고, 진리이시고, 구원자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최고의 사도와 선지자시면 뭐합니까? 바리새인들처럼 들을 귀가 없어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오직 들을 귀가 있는 자들에게만 유익했고, 오늘날의 사도와 선지자들이 깨닫고 선포하는 진리들도 오직 들을 귀가 있는 자들에게만 유익합니다. 결국, 들을 귀가 없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들을 귀입니다.
이제, 들을 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아시겠지요! 그런데, 이 설교를 준비할 때 성령님께서 들을 귀와 관계가 있는 중요한 것들을 저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교회는 오래도록 "한 가지"를 강조해왔습니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기서 "한 가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영성운동의 주된 강조점입니다. 마크 듀퐁, 하이디 베이커, 릭 조이너, 빌 존슨, 샨 볼츠를 위시해서 많은 분들이 한 가지를 힘주어 강조해왔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입니다. 때문에 우리 교회도 한 가지를 입이 닳도록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가지가 가장 중요하고 전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잘 들으십시오! 놀랍게도, 한 가지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또, 한 가지는 전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는 실제로는 두 가지이고 그 두 가지를 합해야 진짜 성경이 말하는 한 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한 가지가 나옵니다. 먼저, 여러분이 잘 하는 구약성경(시27:4)에 나오는 "한 가지"가 있고, 그 다음 신약성경에도 한 가지가 나옵니다.
누가복음 10:38-42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두 종류의 두 종류의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한 한 가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둘 다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중요하고 하나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둘 다 똑같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가지의 중요성은 여러분이 충분히 들어서 잘 알고 계시지만, 다른 한 가지의 중요성은 아직 잘 혹은 충분히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한 가지인 들을 귀의 중요성을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1) 들을 귀가 있어야 참 신자가 될 수 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말씀을 듣는다고 다 참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귀가 있어야 말씀을 통해 참 신자가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씨 뿌리는 비유를 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4가지 밭이 나옵니다. 그 중 옥토만 천국에 가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씨를 뿌리는 목적은 열매를 거두는 것인데, 옥토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의 시작과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3-9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또, 누가복음에서도 씨 뿌리는 비유의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8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들을 귀가 있어야 좋은 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그런 사람만 참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여러분 모두 가라지 비유를 아시지요!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의 마지막 부분에서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13:43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러니 누가 가라지가 아니라 알곡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입니다.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알곡 신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8:37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니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 구절들도 들을 귀가 있어야 참 신자가 될 수 있고 참 신자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 우리의 영혼이고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들을 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2) 들을 귀가 있어야 버림받지 않는다.
제가 주일학교 때 부장 선생님이나 반사 선생님들이 설교 중 이런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열심히 믿었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교회에 안 다니고, 중학생 때 열심히 믿었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교회에 안 다니고, 고등학생 때 열심히 다녔던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교회에 안 다니고, 대학생 때 열심히 다녔던 사람이 군대에 가서 교회에 안 다니고, 군대에서 열심히 다녔던 사람이 직장에 다니면서 교회에 안 다니고, 직장에 다니며 열심히 다녔던 사람이 결혼한 후에는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제가 더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들도 교회에 다닐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은 지금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그것이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때문에 저는 심히 염려가 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저는 중학생이 되어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대학생이 되어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군대 가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취직해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결혼해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죽을 때까지 예수님 믿다가 반드시 천국에 가게 해주세요!"
이것이 제가 초등학생 때 가장 많이 드렸던 기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다녔던 장로교 합동교단 원당교회 김관오 목사님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분은 천사 같은 분이었습니다. 천상 목사님이셨고, 한 번도 그분이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은 죄도 안 지을 것 같고, 말씀대로만 사실 것 같아. 게다가, 목사가 되면 확실히 평생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을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로 저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한 지 오래된 지금, 저는 목사가 되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사 중에도 가짜가 많고 지옥에 갈 목사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끝까지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반드시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비결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일곱 통의 편지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계시록 2-3장에서 반복해서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주님은 먼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연이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궁극적인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모두 동일한 명령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버림받지 않고 궁극적인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누가 천국에 들어갑니까? 이기는 자들이지요(계21:7).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보여주듯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바르게 반응해야 합니다. 이것이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잘 믿다가 반드시 천국에 가는 비결은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않고 변함없이 말씀을 잘 듣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을 귀를 잃으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들을 귀를 잃으면 자기 영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들을 귀를 잃으면 천국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들을 귀를 잃지 않으면 절대 믿음과 영혼과 천국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함으로 끝까지 들을 귀를 잃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들을 귀가 있어야 삼중사역이 가능케 된다.
잘 들으십시오. 우리 교회에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운동이나 신사도운동 진영에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분들은 대부분 들을 귀가 없습니다.
일례로, 우리 교회에 온 세계적인 강사님 한 분에게 제가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선물로 주었을 때 책 제목을 보고 꿈쩍 놀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는 눈과 들을 귀와 깨닫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훌륭하지만 삼중사역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영성운동이나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나 사역자 중에 우리 교회처럼 철저하게 삼중사역을 하는 목회자나 교회가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보여주듯 아무리 영성이 뛰어나고 은사와 체험이 굉장해도 들을 귀가 없으면 삼중사역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교회와 성도들에게 돌아갑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굉장히 많은 분들에게 제 책을 선물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해 전 우리 교회는 영성운동 진영의 세계적인 수많은 강사들을 초청해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사님들에게 제 책을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아보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통역을 하던 목사님이 제게 자주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 분들은 목사님을 초청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말씀이 이렇게 보배로운데도 초청하여 배울 생각을 안 할까요?"
우리 교회가 초청한 그 수많은 강사들 중 말씀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바로 찰리 로빈슨 목사님입니다.
또, 저는 우리나라의 유명 목회자와 교수들, 선교단체장, 기도원 원장들을 비롯해서 드물게 저를 찾아온 신앙생활을 하는 국회의원들과 사회 각층의 중요 크리스천 지도자들에게 제 책을 보냈습니다. 또, 정말 간증이 경이롭고 훌륭한 타교단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에게도 제 책을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 들을 귀가 있어서 진리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아본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물론 초대형 교회 목사님 세 분이 저의 책을 받고 저에게 직접 전화를 주시거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또, 한 유명한 목사님은 저의 설교와 책들의 원고를 모두 보내달라고 저에게 요청하셨고,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합동교단의 유명한 목사님도 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오셨고, 반응하는 목사님들이 소수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사회 지도층 중 진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본 대표적인 분은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내신 김승규 장로님이십니다. 얼마나 귀한 분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진리의 가치를 알아보는 분이 너무 소수였습니다.
특히, 제가 단체로 보내지 않고 책을 개인적으로 보낸 분들은 훌륭한 분들입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하고 장점이 많은 분들입니다. 제가 깊이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제 책들을 보내드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분들이 훌륭해도 진리의 회복이 없으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한 삼중사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원은 단지 우리 교회가 커지고 지교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소속이 아니더라도 그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이 삼중사역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삼중사역은 가장 영혼들에게 유익하고 가장 하나님 나라를 빠르게 확장시킬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우 훌륭한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조차도 대부분 자신들이 받은 은혜와 장점과 성공적인 사역에 만족했습니다. 진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겸손과 들을 귀가 있는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훌륭하고 존경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삼중사역이 아닌 불완전한 사역을 되풀이하고 거기에 머무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 들을 귀가 없으면 삼중사역이 불가능합니다. 사역뿐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똑같은 한계가 나타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뿐 아니라 진리를 뜨겁게 사랑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만이라도 하나님을사랑하는 한 가지뿐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한 가지를 추구하는 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4) 들을 귀가 있어야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와 성도가 된다.
오래전, 울산에서 목회할 때 저는 성령님이 들려주시는 다음과 같은 내적인 음성을 자주 들었습니다.
'너는 앞으로 교회의 일꾼을 세울 때, 한 가지만 보아라! 그가 얼마나 기도하는지, 그가 얼마나 은사가 강한지, 그가 얼마나 헌금하는지, 그가 얼마나 봉사하는지, 그가 얼마나 인격이 훌륭한지 이런 것들을 보지 말아라. 그 사람이 너의 설교를 어떻게 듣나? 이것 하나만 보아라. 너의 설교를 어떻게 듣고 어떻게 반응하나? 말씀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인정하고, 정말로 말씀을 사모하고 정말로 설교에 은혜를 받는가? 이것을 보아라!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게 되어있다. 설교를 잘 듣지 않는 자는 양이 아니고 염소다! 양이 아니면 절대로 좋은 일꾼이 될 수 없다. 결국 당을 짓고, 너를 대적하고,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말씀을 잘 듣는 자들을 교회의 목회자와 일꾼으로 세워라!'
그래서 이것을 설교 중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준비할 때 참으로 오랜만에 그것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김옥경 목사님이 어떻게 저의 동역자가 되었습니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들을 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옥경 목사님은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처음 읽고 그 책을 이문동 멤버들에게 적극 추천했습니다. 또, 제 책과 설교 테이프를 계속 박스로 구입해서 설교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반복해서 듣고 많은 사람에게 권했습니다. 또, 서울에 교회가 세워진 뒤에도 항상 울면서 설교를 듣고 열 번 이상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이처럼 들을 귀가 있었기 때문에 저의 최고의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진성원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전 제가 캐나다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진 목사님을 스카우트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매 시간 맨 앞에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은혜 받고, 도전받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저는 진 목사님으로부터 그때 하루 1시간 정도만 자고 집회에 참석하며 말씀을 듣는 것에 심취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들을 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제가 진 목사님을 스카우트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역자가 되었고,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놀랍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김동욱 목사님과 이동기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히 말하진 않겠지만, 한 분은 선교단체에서 한 분은 신학대학에서 앞길이 창창했습니다. 그런데도 둘 다 진리에 이끌려서 다 버리고 우리 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저의 동역자가 되어 수석부목사로서 제2예배와 성령신학교에서 귀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과 사역자와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들을 귀가 있었기 때문에 진리에 끌려서 우리 교회로 왔고 동역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진짜 우리 교회의 성도일까요? 들을 귀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누가 진짜 믿을 수 있는 동역자일까요? 역시 들을 귀가 있는 목회자와 신자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가지"가 처음 혹은 한 때만 필요합니까? 아니지요! 시편 27편 4절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평생 한 가지를 고수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한 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신자 때뿐 아니라 오래 된 후에도, 평신도 때뿐 아니라 중직자가 된 후에도, 평범한 신자가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은 후에도, 심지어 목회자가 된 후에도 변함없이 계속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만해지거나, 변질 되지 않고, 끝까지 마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니듯, 한 번 들을 귀도 영원한 들을 귀가 아닙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엄중한 경고 두 가지가 생겨납니다.
1)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끝까지 우리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저는 이것을 모든 성도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해 목회를 하면서 그 실체를 분명히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어떤 성도들은 제가 처음에 알았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진짜 양이고 참 신자였습니다. 겸손하고, 은혜를 사모하고, 순종적인 성도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문제를 일으키거나 교회를 떠날 때 보면, 전에 제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즉, 전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 "나는 절대 그들처럼 되진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다고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증거로, 그동안 누가 우리 교회에 열심히 다니다가 떠났습니까? 들을 귀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그런 분들이 떠났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들을 귀를 잃어버려서 떠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남아 있는 성도님들은 교회에 전혀 문제가 없어서 안 떠났습니까? 똑같은 과정을 통과하고 똑같은 문제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들을 귀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고백하며 교회에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8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한마디로,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않은 성도들은 교회에 남고, 들을 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엄중한 교훈을 줍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사랑하고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진짜 우리 교회의 성도가 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지금은 다녀도 결국 떨어져나갈 것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회개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도 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들을 귀가 있었는데, 은사나 직분을 받은 후에 교만해져서 들을 귀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결과 변질되고, 타락하고, 버림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들을 귀를 고수하는 것이 자기 영혼을 보존하고, 또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쓰임 받는 비결이라는 것을 깨닫고,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2) 들을 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끝까지 우리의 동역자가 될 수 있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니듯, 한 번 동역자라고 영원한 동역자가 아닙니다. 지금은 저와 김옥경 목사님의 동역자로 동역을 잘하고 있는 목회자들도 들을 귀를 잃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진짜 동역자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를 떠나간 목회자들을 보면, 그 전과 달리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들을 귀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험은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뿐 아니라 목회자들도 진리를 사랑하고 사모하여 절대로 들을 귀를 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끝까지 잘 동역하다가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 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5) 들을 귀가 있어야 권위 아래 거하고 질서를 지킬 수 있다.
들을 귀를 잃어버리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들을 귀와 겸손이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결국 들을 귀를 잃었다는 것은 교만해졌다는 뜻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천사가 왜 마귀가 되었습니까? 교만해져서 자기 위치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그런데 교회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믿음의 분량과 위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계급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영적인 질서입니다. 그런데 들을 귀를 잃어버리면 교회 안에서 자기 위치를 떠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뜻대로 은사와 분량을 나눠주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울산에서 목회할 때, 저는 성도님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자는 목자고, 양은 양이다! 양이 성숙하면 목자가 되느냐? 아니다. 양은 양일뿐이다. 기도 많이 하면 기도 많이 하는 양, 영성이 좋으면 영성 좋은 양, 은사와 능력을 많이 받았으면 은사와 능력을 많이 받은 양, 사랑이 많으면 사랑 많은 양, 성숙했으면 성숙한 양일 뿐이다. 그렇다고 양이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양이 목자가 될 수 있다면 수시로 목사가 바뀌어야 한다. 가장 뛰어난 양을 목자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무지해서 교만해지고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이 많다.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가지만 강조하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 강조하고 말씀을 잘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교회가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는 기도 많이 한다고 머리를 쳐들고, 어떤 이는 사랑이 많다고 머리를 쳐들고, 어떤 이는 예언이 정확하다고 멀리를 쳐들고, 어떤 이는 치유가 강력하다고 머리를 쳐들고, 어떤 이는 입신이나 영적 체험을 많이 한다고 머리를 쳐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영적 질서가 무너지고 교회가 분열되고 약화가 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가지뿐 아니라 말씀을 잘 듣는 한 가지를 함께 충분히 강조하면, 성도들이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고 영적인 권위에 즐거이 순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명령한 질서가 교회 안에 이루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4: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이처럼 성숙한 자들과 은사를 많이 받은 자들도 권위에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질서가 확립되고, 강력한 군대가 되어, 더 효과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복싱이나 레슬링처럼 개인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체전 중에 단체전인 영적 전쟁에 참여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그런데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군기입니다. 즉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군대인 교회 역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적인 작은 승리에서 멈추지 않고 군대가 도시나 나라를 점령하듯이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큰 부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중요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한 가지"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말씀을 잘 듣는 "한 가지"를 포함해서 두 종류의 "한 가지"를 강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 진짜 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할 수 있습니까?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합해야 진짜 한 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한 가지를 추구해야 영혼들이 안전하고, 삼중사역이 가능해져서 더 가장 효과적인 목회와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 부흥을 일으키고, 개신교를 개혁하고, 열방의 수많은 영혼들을 최대한 추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오늘부터 한 가지를 추구하되,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진짜 한 가지를 끝까지 추구하는 분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