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가슴사이
- 아프리카에 뜬 별들
김학철
2013년 「대한문학」 등단.
벌써 8~9년이 지난 것 같다. 중앙일간지 주요 신문 맨 뒷장 전지에 실린 광고를 유심히 본 일이 있었다. 늙고 깡마르고 눈이 들어간 주름진 얼굴의 서양 할머니 한 사람이 역시 눈이 퀭하게 들어가고 굶어서인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네댓 살짜리 흑인 어린 애를 품에 안고 허공을 응시하며 서 있는 커다란 사진이었다. 그 아래에는 명함판 크기의 20대의 젊고 예쁜 서양 여자 사진이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오드리 햅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영화〈로마의 휴일〉 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였습니다’라는 간단한 글과 맨 아래 우측에는 광고주인 S기업체 마크가 인쇄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이렇게 큰 광고를 내려면 거금의 광고료가 들 텐데 기왕에 광고 하려면 자기 회사의 생산 제품이 품질이 좋다는 등 직접적인 광고나 낼 일이지….’ 라며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광고는 사흘이 멀다고 계속해서 20여 차례나 반복하여 게재되었다. 그러자 나는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하! 바로 이런 생각이었구나!’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렀다. 그 기업체는 날로 발전하더니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드리 햅번의 정신이 바로 우리 기업의 정신입니다.’ 라는 무언의 홍보를 한 것이리라. 이것을 간접광고 효과라 하던가?
오드리 햅번은 20대 중반에 미국 영화감독 W와일러의 눈에 띄어 영화〈로마의 휴일〉에 주연으로 출연, 상대역인 ‘그레고리 팩’과 열연, 그야말로 자고나니 세계적인 유명배우가 되어 전 세계 여성들의 우상이었으며 남성들의 연인이 되었다. 이 영화로 그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이 후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페어 레이디〉 등 출연한 영화들마다 모두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팩을 뒤에 태운 채 오토바이를 운전, 로마 시가지를 질주하던 광경은 인상적이었다.
이때 그녀의 청순하고 발랄하며 깜찍한 얼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뇌리 속에 선하다. 그러나 그러했던 그녀도 세월의 흐름은 어찌 할 수 없었던가! 할머니로 변한 그녀의 얼굴은 젊은 날의 햅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삭 늙은 모습이었다.
햅번은 50세 후반에 우연히 세계적 구호단체인 〈유니세프〉와 인연을 맺게 되어 친선홍보대사로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인도 등 20여 개국을 순방하며 전쟁으로 인한 부상자, 기아자, 전염병 환자 등을 목격하였으며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노년에 이르기까지 현지에 다니며 구호활동을 폈다. 그녀는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라고 외쳐 세계적인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고 말년에는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녀는 안타깝게도 직장암 말기로 하는 수 없이 스위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생활하다가 1993년 1월, 6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는데, 그 무덤은 스위스의 톨로세나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오드리 햅번’에 버금가는 왕년의 유명 여배우가 있다. 그녀는 김혜자(76세)다. 그는 누구인가? 부친이 보사부 차관까지 지낸 유복한 가정에서 셋째 딸로 태어나 서울의 유명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수료한 재원으로 〈전원일기〉 〈사랑이 뭐길래〉 등 수많은 TV드라마와 영화 연극배우로 자타가 공인하는 명성을 쌓은 배우였다. 총 38회의 수상경력이 있는가 하면 한국 ‘어머니상’이란 별칭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1970년에서 1980년 사이 TV홍보방송에 출연, 조미료를 홍보할 때 국자로 국물을 떠먹으며 “응∼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라는 짧은 대사로 소비자 주부들의 가슴속에 공감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그 업체를 크게 성공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데 그녀는 나이 50이 넘어 우연히 세계적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끼어 아프리카 여행을 갔다가 햅번처럼 그런 참상을 목격하고 그 단체의 홍보대사가 되더니 아예 봉사자가 되어 그녀 역시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인도, 케냐, 우간다 등 오지를 전전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간 이런 활동을 20년 넘게 계속해오고 있는 김혜자는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참상에 절망, 마침내 이렇게 흐느끼며 절규했다고 한다. ‘신이시여 신께서도 아프리카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잘 아실 텐데 왜 이다지도 무심하나요? 끝내 이들을 외면한다면 왜 아프리카를 만들었나요?’
또 말하기를 “나는 그간 유명한 배우로서 너무 많은 사랑도 받았고 또 너무 많은 걸 이루고, 또 많이 가졌어요. 그러니 얼마나 권세 가지고 돈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악수를 했겠어요? 그래도 제 손이 기억하는 것은요, 힘없이 죽어가는 그 아이들의 손이에요. 그 손만을 기억해요. 그러니 그들의 손을 더 많이 만질 수밖에 없어요.”
또한 우정도 많아 일시 귀국했을 때 TV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친구이자 연기동료인 일용엄니 역의 김수미가 무슨 사업으로 빚을 많이 져서 곤경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김수미와 만나 거금이 들어있는 통장과 도장을 통째로 내어 주며 “이 돈을 꺼내어 빚을 갚고 앞으로는 구차하게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돈 빌리지 마…, 그리고 이 돈은 나에게 갚지 않아도 돼…” 하며 아프리카로 되돌아갔다 한다. 이에 김수미는 얼마나 감동했겠는가?
김수미는 아마 입장을 바꾸어 김혜자가 빚을 져서 곤궁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성큼 큰돈을 내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봉사활동 중 인질로 붙잡히게 될 경우 내가 대신 인질이 되어 줄 각오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그 뒤 김수미는 빌려준 김혜자의 돈을 전부 갚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작년부터는 오랜 내전으로 황폐해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국으로 선정, 현재 그 나라에서 봉사 중이란다. 주변사람들은 현지 아이들은 불결하여 질병에 감염될 우려가 있으니 직접적인 신체접촉은 피하고 어쩌다 손이라도 잡았을 경우 그 즉시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주의를 주지만 이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 부모가 모두 죽고 고아가 되어 아프거나 기아에서 헤매는 3∼5세가량의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가슴을 열어주면 그 애들은 손으로 젖꼭지를 꼭 잡고 행복해 하며 웃음 짓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애들이 느끼는 감성이 문명국의 애들이나 전혀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나는 13년 전 그녀의 자서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출간과 KBS희망로드 대장정 영상을 끝으로 홍보대사 역할로만 종지부를 찍는 줄로 알았다. 그 후 소식을 모르던 중 우연히 최근에 그녀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아프리카에서 병들고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애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이런 활동은 25년째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생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란다. 낯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모든 운명을 보이지 않는 신의 손에 맡긴 채 오직 신의 계시에 따라 살고 있다. 왕년의 세계적인 명배우 오드리 햅번, 그리고 대한민국의 김혜자, 두 여인은 이미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비춰 주는 작은 별들이 되어 있었다.
아무쪼록 그녀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빌어본다. 나는 그간 유명 여배우들은 은퇴한 후 호의호식하며 여생을 여왕이나 공주처럼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분들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여생을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사랑’이란 두 글자가 있다. 새삼스레 나는 이 두 여인으로부터 ‘사랑’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 배우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라 한다. 불쌍하다.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은 머리의 기능이고 이 생각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가슴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두 곳의 거리는 멀기만 할 뿐 가까운 사람은 흔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비로소 머리와 가슴까지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새삼스레 나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길이를 재어 본다. 겨우 세 뼘 남짓이다. 그러나 나의 그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 보다도 더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 생각은 두 여인의 삶의 모습을 접하고 나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