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거니…….
-<슬픈 목가>(1947)-
해 설
[ 개관정리 ]
◆ 성격 : 긍정적, 의지적, 시각적, 직설적, 비유적, 미래지향적
◆ 표현
* 시각적 이미지의 사용
*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시어의 사용
* 대립적 심상(어둠과 밝음)을 지닌 시어의 대조를 통해 주제를 도출해 냄
(저문 들길 ↔ 푸른 하늘, 푸른 별)
◆ 중요시어 및 시구
* 푸른 하늘 → 화자의 삶이 지향하는 맑고 높은 이상세계. 미래를 밝게 비추어 주는
전망과 희망
* 산삼 → 숲, 산림
* 2연 →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숭고하다는 뜻으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가 돋보임.
하늘을 향하여 살아가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수풀에 비유한 표현임.
* 숭고한 일 → 슬픈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말
* 부절히 → 끊임없이
* 푸른 산 → 화자가 자신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대상
원관념 : 산처럼 강하고 굳건한 자세를 지닌 자아
*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 뼈에 저릴 정도로 삶이 고통스럽고 슬픈 상황임.
고통스런 삶의 상황을 극복코자 하는 의지와 다짐
* 저문 들길 → 나의 삶을 일시적으로 희망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 주변환경이나
시대적 여건
시적 화자가 처한 암울한 현실
* 푸른 별 → '저문 들길'과 대조를 이루며 화자가 이상으로 삼은 밝고 아름다운 세계 상징
미래를 밝게 비추어주는 희망 상징
* 푸른 별을 바라보자 → 시인이 추구하는 꿈과 이상에 대한 의지와 다짐
*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 삶의 목표를 재확인하면서 의지를 다짐
◆ 주제 ⇒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별(이상)을 바라보며 살려는 굳센 의지와 다짐
희망과 이상을 잃지 않는 삶의 중요성
[ 시상의 흐름(짜임) ]
◆ 1연 : 푸른 하늘에 대한 자각
◆ 2연 : 삶의 숭고함
◆ 3연 : 굳센 삶의 모습
◆ 4연 : 삶의 기쁨
◆ 5연 : 푸른 별 지향(주제연)
◆ 6연 : 삶의 목표 재확인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이 작품은 신석정의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신석정은 일관성있는 자기 세계를 추구해 온 대표적인 시인이다. 즉 평생을 일관되게 자연친화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해 온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전원)은 그의 문학에 지속적으로 자양분을 공급해 준 정신의 토양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서 신석정 문학에 다소의 변화를 느낄 수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현실적 삶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시적 자아가 현실적으로 지니고 있는 삶의 상황들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시는 저문 들길에 서서 '나'의 생활을 돌아보고 '삶에 대한 밝고 건강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두 가지 세계를 대립시키고 있는데, 첫 번째 세계는 '시적 자아가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 곳은 이미 어두어져 버린 공간과 시간이고, 뼈에 저리도록 생활이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그 속의 '나'는 결코 연약하지 않아 푸른 산과 같이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살고 있다. 두 번째 세계는 '푸른 하늘과 푸른 별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미래에 다가올 것이고, 그 때문에 현재가 결코 비관적으로만 비치지 않도록 해주는 전망과 같은 것이다.
[작가소개]
신석정 : 시인
출생-사망 : 1907년 7월 7일, - 1974년 7월 6일
출생지 : 전북 부안
호 : 석정(夕汀), 석지영(石志永), 호성(胡星), 소적(蘇笛), 서촌(曙村)
데뷔 : 1924년
1968년 제5회 한국문학상경력1967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지부 지부장
1963~1972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
시 : '기우는 해'
수상 : 1973년 제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부문
1972년 국민포장
1907년 7월 7일 전북 부안 태생. 보통학교 졸업 후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전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한국문학상, 문화포상, 한국예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74년 7월 6일 사망하였다. 1931년 김영랑‧박용철‧정지용‧이하윤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제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하였다.
1939년 첫번째 시집인 『촛불』에서는 하늘, 어머니, 먼 나라로 표상되는 동경의 나라를 향한 희구를 어린이의 천진스러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집을 통해 그는 전원시인, 목가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집에는 대표작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47년 두번째 시집인 『슬픈 목가』에서는 어머니라는 상징어에 기댄 유아적, 퇴영적 자아의 모습은 줄어들고, 성숙한 현실의 눈으로 돌아온다. 이상향에 대한 천진난만한 시인의 희구는 상실감으로 바뀌고, 내적 체험의 결여로 인한 공허감이 나타난다. 그후 『빙하』(1956), 『산의 서곡』(1967)에 이르면서 삶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역사 의식이 예각화되면서 주제 의식이 문학적 심미성에 선행하게 된다. 마지막 시집인 『대바람 소리』(1970)에서 다시 초기 서정시의 세계로 복귀하고 있다. 신석정은 노장의 철학과 도연명의 「귀거래사」, 「도화원기」의 영향을 받았고, 미국의 삼림시인인 소로우(H. D. Thoreau)를 좋아했으며, 한용운에게서 문학 수업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반속적(反俗的)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기림은 그를 “현대문명의 잡답(雜踏)을 멀리 피한 곳에 한 개의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적 시인”이라 평가하였다.
신석정의 시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체험의 가능성이 폐쇄된 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문학적 단면을 보여준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로써 초월적이고 본원적인 실재에 대한 강한 희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희구는 전원적, 자연친화적 이상향에 대한 시적 열망으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