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세종대왕, 세종임금 둘째 딸 ‘정희공주’와 함께 도봉산에 다녀왔다.
산행은 도봉구 방학동 ‘정희공주 묘’에서 시작해 의정부 망월사역에서 끝냈다.
세종대왕과 정희공주 관계를 생각하며 10시 46분 정희공주 묘에서 방학능선 쪽으로 붙었다.
공주가 생각했던 세종대왕은 인자하신 아빠였을까, 아니면 엄격하신 아버지였을까?
세종이 공주에게 정을 주셨을까, 아니면 늘 냉정하셨을까?
지금 <이이화·한국사 이야기(이이화, 2015, 한길사)> ‘9권, 조선의 건국’ 편을 읽고 있다.
저자 이이화 선생은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를 왜 혼자 했을까?’에 대해 천착(穿鑿)했다.
그리고 「세종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새 문자를 만들겠다고 공포한다면?」이라고 물었다.
그랬다면 집현전 학사들이 나서서 분명히 반대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創製)를 은밀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 신하들은 임금 지시를 받아 일을 추진하는데 이 일만큼은 세종이 친제(親製)했다고 했다.
세종이 친히 만들었다면 집현전 학사들은 보고하는 정도로 도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당시 집현전 학사들은 철저히 유교교육을 받아 한문을 숭상하는 기풍 속에 있었기 때문에.
세종이 새 문자를 만들고 실험한 증거도 있다고 했다.
세종의 둘째 딸 정희공주는 죽산 안씨 가문에 시집갔다고 했다.
그런데 ‘죽산 안씨 족보’에 ‘정희공주가 정음(正音) 창제를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성삼문이 쓴 ‘해동잡기’에는 정음을 세종과 문종이 창제했다고 기록돼 있다고도 했다.
뒷날 세종은 언문청을 두고 문종과 수양대군, 안평대군에게 번역사업을 맡겼다는 것이다.
이이화 선생은 이렇게 은밀히 공주, 왕자들의 협조를 받은 것으로 봤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친제(친히 만들어)라고 했다.
11시 19분 방학능선에 올라섰다.
‘혜화동성당묘원’에서 북한산 ‘삼각봉(백운대-인수봉-만경대)’을 바라보고 그 전경을 담았다.
방학능선 어느 봉우리 위에서는 색다르게 보이는 ‘우이암’ 자태를 찍었고.
11시 35분 우이능선과 방학능선 갈림길 삼거리,
11시 46분 우이능선 위험구간 방향과 원통사 쪽 갈림길 삼거리 쉼터,
11시 59분 원통사 앞을 거쳐 12시 13분 도봉산 주능선에 올라섰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줄곧 내리던 가랑비가 우이암 위 바위에 섰을 때 그쳤다.
도중에 산행을 접을까 말까 조마조마하면서 걸었는데 하늘이 좀 맑아져 다행스러웠다.
아침식사로 엄마가 쪄준 크기가 작은 찐빵 5개를 먹었다.
배가 불러 오르막에서 힘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도.
그런데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정희공주 묘에서 발걸음을 뗀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장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은 채 쉬엄쉬엄 참고 걸었다.
12시 59분 여성봉 갈림길, 배낭에서 견과류 한 봉지를 꺼내 조금씩 씹으면서 오르내렸다.
13시 22분 자운봉 앞, 소보로빵 1개와 목욕탕식 계란 2개로 점심을 대신했다.
바위에 앉아 마음속으로 하산 코스를 그리며.
기왕이면 자주 밟지 않았던 길을 걷고 싶었다.
13시 49분 민초샘,
14시 13분 망월사 갈림길 삼거리,
14시 48분 두꺼비바위 앞을 지나갔다.
이어서 14시 37분 엄홍길 집터 앞을 경유해 15시 04분 망월사역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망월사 갈림길 삼거리에서 망월사역까지 구간은 최근에 걸었던 코스이다.
오랜만에 밟았던 길은 ‘정희공주 묘~방학능선’과 ‘민초샘~망월사 갈림길 삼거리’ 구간이고.
도봉산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자마자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를 읽는데 몰두했다.
아빠 우측에 앉았던 젊은 여성이 자리를 양보하느라 도중에 일어선 줄도 몰랐다.
그 자리에 할머니께서 앉고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서계신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 순간 아빠는 얼른 일어서서 그 어르신께 자리를 권해드렸다.
어르신께서 계속 괜찮다고 하시기에 아빠가 강권하다시피 해 그 어르신을 자리에 앉혀드렸다.
그 후 서서 책을 보고 있는데 아빠 좌측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이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그 자리엔 어느 누구도 앉으려 하지 않자 두 어르신들께서 아빠에게 앉으라고 하셨다.
자연스럽게 그 자리는 아빠 몫이 됐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할머니께서 아빠에게 캐러멜(사탕) 한 개를 주셨다.
지하철 내에서 뭘 먹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 쥐고만 있으면서 계속 독서에 몰입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아빠 입에 ‘생강엿’을 넣어주셨는데 참으로 맛있었다.
군자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려고 일어서면서 두 어르신께 잘 가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그분들도 계속 고맙다는 표현을 하셨다.
요양원에서 할머니를 뵙고 막 귀가하려 하는데 오(관우)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군자역 인근에 맛있는 고기 집이 있다는데, 광나루역 농협 앞에서 18시 10분에 만나자고.
술을 마시지 않는 아빠는 오 원장님 말동무로 2차 풍납동 순대국밥 식당까지 동행했다.
헤어질 때 오 원장님은 아이스크림 큰 것 한 박스를 사줬다.
카투사(용산 미8군) 출신인 오 원장님도 군 복무 중 ‘기흉’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허파에서 바람을 뺀 후 6개월간 열외였다고 했다.
기흉은 폐에서 바람만 빼면 괜찮다고 엄마도 그랬고, 경험자인 오 원장님도 그렇게 말했다.
무리가 따르는 심한 운동은 하지 말되 건강을 위해 가벼운 운동은 꾸준히 하길 바란다.
태풍부대 육군 28사단 상병 김0, 우리 아들을 한없이 사랑한다!!!
첫댓글 멋진 하루셨네요 산에 진달래도 살짝이지만 이쁘구요 ㅎ 지하철 스토리는
참 훈훈한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여주 세종대왕님의 묘인 영릉이 여주에 있는데 정희공주 묘에 다녀오셨군요~^^
네.
정희공주 묘를 들머리로 삼았습니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사람사는 맛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창꽃을 보니까 창원의 천주산 산행이 떠오릅니다.
비를 맞으면서...
비도 오고 해서 꽃들은 담지 않았습니다.
멋진 모습들이 많았지만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