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德行 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冉有季路 文學 子游子夏 덕행에는 안연·민자건·염백우·중궁이었고, 언어에는 재아·자공이었고, 정사에는 염유·계로(자로)였고, 문학에는 자유·자하였다.”라고 하셨다.
弟子因孔子之言 記此十人 而幷目其所長 分爲四科 孔子敎人 各因其材 於此可見 제자들은 공자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 열 사람을 기록하였고 또한 그들의 장점을 아울러 지목하여 4과로 나누었다. 공자께서 남을 가르칠 적에 그 사람의 재능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問何以知其爲弟子所記 朱子曰 吳氏例云 凡稱名者 夫子之辭 或弟子師前相謂之辭 稱字者 弟子自相謂之辭 或弟子門人之辭 或以此章盡爲夫子之言者 考之不審也 누군가 묻기를, “무엇으로 그것이 제자들이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오씨가 예를 들어 말하길, 무릇 제자의 이름을 호칭하는 것은 공자님의 말씀이거나 혹은 제자들이 스승 앞에서 서로를 부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字를 호칭하는 것은 제자들이 스스로 서로를 일컬어 부르는 말이거나, 혹은 제자의 문인들이 하는 말이다. 혹자는 이 장을 모두 공자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여기고 있으나, 상고하기를 잘 살피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德者行之本 君子以成德爲行 言德則行在其中 德行是兼內外貫本末 全體底物事 那三件各是一物 見於用者也 德이라는 것은 行의 근본이다. 군자는 德을 이루는 것을 行으로 삼는다. 덕을 말하면 곧 행은 그 안에 있는 것이니, 德行은 내외를 겸하고 본말을 관통하여 體를 온전하게 하는 존재이니, 저 3가지 것은 각자 하나의 사물이지만 用에 드러나는 것이다.
問德行不知可兼言語政事文學否 曰 當就逐項上看 如顔子之德行固可以備 若他人固有有德行而短於才者 누군가 묻기를, “덕행은 언어, 정사, 문학을 겸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마땅히 항목별로 쫓아 나아가서 살펴보아야 한다. 예컨대 안자의 덕행으로는 본래 겸비할 수 있으나, 만약 타인(민자건, 염백우, 중궁)이라면 본래 덕행은 있지만 재주에는 짧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四科之目 曰 德行者 潛心體道黙契於中 篤志力行 不言而信者也 言語者 善爲辭令者也 政事者 達於爲國治民之事者也 文學者 學於詩書禮樂之文而能言其意者也 夫子敎人使各因其所長以入於道 然其序則必以德行爲先 誠以躬行 實造具體 聖人學之所貴 尤在於此 非若三者各爲一事之長而已也 누군가 4과의 지목에 관하여 물었다. 말하길, “德行이라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道를 체득하여 中道에 묵묵히 합치되며, 뜻을 돈독히 하여 힘써 행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신뢰를 받는 것이다. 言語라고 하는 것은 辭令을 잘하는 것이다. 政事라고 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통달한 것이다. 文學이라고 하는 것은 시서와 예악의 文을 배워서 그 뜻을 능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사람을 가르칠 적에는 그가 잘하는 것을 바탕으로 도에 들어가도록 하지만, 그 순서에 있어서는 반드시 덕행을 우선으로 삼아서, 정성으로 직접 행하고 실제로 구체적인 지경까지 나아가게 하였으니, 성인께서 배움에서 귀하게 여기는 바가 더욱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는 세 가지가 각자 한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 될 뿐인 것과 같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四科之目 因其所得而稱之 擧其最優者爲言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4과의 지목은 그들이 터득한 바를 바탕으로 하여 지칭하였지만, 그 중에서 제일 잘하는 것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聖門之敎有大綱領有小條目 小條目如長於政事者 與言政事 長於文學者 與言文學 是也 如今人能文者 告之以作文之法 曉事者告之以處事之法 此是各因其材 然本領不正 能文者無緣做得好文章 曉事者無緣做得好政事 又須示之以大綱領 使之治心修身 從本領上做將來 쌍봉요씨가 말하길, “성문의 가르침에 있어 큰 강령도 있고 작은 조목도 있다. 작은 조목이란 예컨대 정사에 장점이 있는 사람은 그와 더불어 정사를 말하고, 문학에 장점이 있는 사람은 더불어 문학을 말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마치 지금 사람들 중 문학에 능한 사람에게는 작문하는 법을 알려주고, 일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일을 처리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각자 그 재주에 따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령이 올바르지 않다면, 문학에 능한자라고 할지라도 좋은 문장을 지어낼 도리가 없으며, 일을 잘 아는 자라고 할지라도 좋은 정사를 만들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또한 반드시 큰 강령을 보여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아서 본령을 따라서 장차 해나가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 程子曰 四科 乃從夫子於陳蔡者爾 門人之賢者 固不止此 曾子傳道而不與焉 故知十哲世俗論也 정자가 말하길, “4과는 곧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공자님을 따랐던 사람들을 말하였을 뿐이다. 문인들 중 현자는 본디 이 열 사람에 그치지 않았다. 증자는 도를 전하였지만 여기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十哲이라는 것은 그저 세속의 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夫子之門 如此十人者 固高矣 然受業身通者 凡七十人 則豈獨此十人可名爲哲哉 故程子引曾子以爲證而斷十哲爲世俗之論 所以敎學者使求於聖人之門 不止此十人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공자님의 문하에서 이러한 10명의 제자들은 본래 고명하였다. 그러나 수업을 받아서 몸으로 통달한 사람은 모두 70명이었으니, 어찌 유독 이 10명만을 哲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자는 증자를 증거로 인용하여 10철이 그저 세속의 논의일 뿐이라고 단언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배우는 자를 가르침에 있어 성인에 문하에서 추구하도록 할 사람이 이러한 10명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曾子晳之子 是時尙少 不得與陳蔡之從 故不在列 又如有若雖賢亦以不從此行 而不在列焉 신안진씨가 말하길, “증자는 증석의 아들인데, 이 당시는 아직 어려서, 진채의 따라감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열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예컨대 유약의 경우 비록 현명하였지만 역시 이 행차에 따라가지 않았기에 여기에 나열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德行卽孟子所謂有成德者 言語政事文學卽孟子所謂有達才者 然孟子於成德之上有如時雨化之者 集註所謂顔曾 是也 於此見論語四科不過門人所記 而孟子五敎又能發門人之所未發 운봉호씨가 말하길, “덕행은 곧 맹자가 말한 이른바 덕을 이룸이 있다는 것이고, 언어와 정사와 문학은 곧 맹자가 말한 재주에 통달하게 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가 말한 ‘덕을 이루는 것’ 위에 ‘時雨가 변화시키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 있는데, 집주에서 말한 이른바 ‘안자와 증자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논어의 4과는 門人들이 기록한 것에 불과하지만, 맹자의 5가지 가르치는 방법은 또한 문인들이 드러내지 못한 바를 능히 드러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