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딸이 일곱이나 있는 집을 보고 "저 집은 손이 끊겼어! ㅉㅉ!"라며 조금은 측은하다는 표현을 했다.
요즘은 "딸이 많으면 로또 맞았다!"라고 한다니 세월 따라 우리네 가치관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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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께서 작고해 안 계시고, 큰댁에는 기일과 차례, 시제를 섬기지 않으니 명절이라도 찾아 갈 곳이 없어졌다.
갈 곳이 없으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도 전화를 곧바로 걸어 안부를 묻지도 못하고, 할까 말까 제다가 그만둔다.
긴 명절 연휴 시작 전날 손녀네는, 전주 친가 할아버지 댁에 내려갔다, 이틀을 묵으며 큰댁 가족들을 두루 만나고,
2021.9.19일 일요일에 올라왔으니 올 추석 우리집 명절은 큼지막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딸들이 사위의 친가에서 명절을 보내고 올라 온 다음 날이 늘 우리 집 명절날이었는데,
이래저래, 긴 연휴 덕에, 코로나 세월 덕에, 올해는 하루 당겨서 어제저녁이 우리집 추석명절이었다.
조상님 차례상도 없는 명절이지만...!
20여 년이 지났다.
강동구 길동에 살 때 전남 고흥 출신인 이웃사촌 한 분이 추석 전날 저녁에 차례를 뫼시고 우리 부부에게도 베푼 음식 중에 '쇠고기 토란국'이 나왔었는데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추석을 맞으면 그 추억의 토란국 맛이 떠오르곤 한다.
나보다 다섯 살 적은 나이였는데, 하늘에 가신지 5. 6년은 지난 것 같다.
좋은 일이건 애석한 일이건 지난 일들은 기억 속에서도 자꾸만 가물가물 사라져 간다.
손녀 둘은 이제 말끼를 알아듣기도 하고 철이 조금 들어 하는 짓이 분위기를 업시켜 준다.
조잘조잘 말도 잘하고 말솜씨도 예쁘다!
지금 딸만 뒀어도 이렇게 훈훈하게 명절을 보내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들 어린 시절 그때로 치면 '대가 끊기는 집'이라 손가락질로 측은지심을 받을 대상인 셈 아닌가!
인생 事에서 중요한 가치관 하나가 우리 세대가 끝나기 전에 제길을 찾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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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아내가 나가서
딸들과 장봐온 과일, 떡, 한우 육, 야채, 등... (막내의 지갑에서)
모처럼 풍성한 명절음식을 차려 모두 둘러앉았다.
현서가 내 전화기 google 번역기를 펴고 놀다, 동심의 세계를 만들고 screenshot을 하나 잡아 저장한 것이다.
1학년 은서는 "할아버지 영어 공부하자!"며 'google 번역기'에 대고 "학교, 오이, 양파, 귤, 호박, ~, ~...!"이라 소리 내서 'school, cucumber, onion, tangerine, pumpkin'이라 변환 시키고, 그 spelling을 따라 써보기도 하더니, 거꾸로 써 놓은 것을 우리말로 해석을 하는 데서는 가끔 머뭇기도 하면서 스스로 배우다, 묻다, 재롱을 뜬다.
순수하고 예쁘다!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손녀의 작은 음성이 내 가슴에 와서 찌릉찌릉 울려댄다!
손자, 손녀 없는 분들은 이 기쁨 어찌 알겠는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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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석양무렵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는데 집 앞 도로에 차가 하나도 없다.
예년에 비하면 귀성 인파가 적다고는 하지만 도시에 남아 있어도 움직이는 이들은 매우 적다.
곧 코로나를 외면하지 않고 부대끼며 살아갈 세월이 올 것 같다.
이도 지나갈 것이니 새해에라도 그렇게 되어, 보고 싶은 이들과 원할 때 만나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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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경산에 계신 처형께서 정갈하게 갈무리했다 보내온 묵나물을 어제 아침부터 아내가 손질해서 오늘 추석날 아침은 차례를 모시고 받은 비빔밥과 다르잖은 헛제사 비빔밥이다.
감사함 가득한 추석날 아침이 열렸다.
11시가 넘어갈 무렵 컴퓨터 앞에 앉아 전화기를 펴니 부재중 2통이 찍혔다.
용산 동서와는 통화를 했고,
영수 회장은 못 받기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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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로 놀고먹는 내게도 연휴가 끝나는 23일 오후에는 옛 직장 동료로 열여섯 살 아래인 한 친구가 횡성의 높은산 숲 속에 지어 놓은 자신의 산장으로 2박을 초대해서 떠난다.
좋은 공기도 한보따리 가슴에 담으면서 잘 쉬어올 작정이다.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情理에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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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멋진 추석명절 되소서!
첫댓글 집안 장손에 종손이면서도,
나는 명절 제사 안 지낸지가 어언 20년 세월일세...
아내는 며느리 맞으면서 집안 제삿날도 안 가르쳐줬고...
어차피 끊어질 문화,
내가 일찌감치 끊어버렸지,
집안에 대판 싸움판이 벌어지긴 했지만,
챙겨봤자, 아내 고생만 하고,
고맙다는 말은 아무도 안 하고....
지금 생각해도,
내 잘했다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