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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교육-2
내가 골동품상회에서 구입을 하여 보관중인 러시아제국 엽서.
머슴아이가 자라면 작은 지게부터 만들어 주어서 부모를 돕게 하는
데 키가 작은 아이가어른의 지게를 지면 지개의 목발이 땅에 닿는데
맬빵을 바짝 줄이면 다소 낫기는 한데 평지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허리를
구부리고 산에서 내려올 참이면 지개의 목발이
땅에 닿게 되고 아이는 앞으로 꼬꾸라지게 된다.
1895년에 단발령이 있었지만 그들은 상투인데 댕기머리의
소년은 머리를 물에 감지 않으니 닳지를 않아서 머리숱이
굵은데 신발은 없으니 조선은 후진문화국가 이었다.
그 당시에는 먹을거리가 귀할때이니 살이 찐 사람이나
배가나온 사람이 없었을것이다,
어른은 장죽을 물고 집신을 신고 있으니 1904년에
제정러시아[1721-1917]인들의 우편엽서에 기록되는데
그들에게는 기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살아있는 교육-2
1869년 메이지[明治維新]신절 황군의 혼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야스꾸니(靖國)라는 신사(神社)를 만드는데(246만명 안치)
국군묘지가 없는 일본에서는 상징적 묘지이며 1972년 정부는
비밀리에 도쪼히데끼(동조영기)를 비롯한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을 묻었는데 국가가 위험할 때는 “천황과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라” 라고 교육시키며 전장(戰場)에서 죽은
후에는 영혼이 야스꾸니신사로 돌아온다고 믿게 한다.
일본수상의 야스꾸니 신사참배같은 글을 한국인과 중국인이
싫어하는 것은 태평양전쟁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인데 일부의
내국인은 좋아하고 외국인은 싫어하니 진퇴의 양난이 되어서 눈치작전을 펴야 된다.
근 동경시장도 수상자리를 노리고 참배했고 또 최남단에 있는
오끼노도리 시마(沖ノ鳥島)를 방문하여 바구니에 담긴 일본 물고기들을
방사하는 것이 뉴스[한국전 중에는 흑백의 ‘리버티 늬우스(자유 소식)’
라고 본영화 직전에 보여 주었다.]로 나왔는데
“日本國 一等三角點(일본국 일등삼각점)”
이라 대리석에 새겨 놓았다.
일본은 1868년 문호를 개방한 후 근대국가로 만들며 미국으로부터
전함과 스프링필드(泉野, M-1총 제작회사)제 총을 불하받았다.
프러시아는 영국으로 해군을 보내어 영국식 교육을 받게 하고
단추도 금속으로 만들었는데 1905년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 하는 것을 여순에서
전함 미까시는 숨어서 대포를 쏘아 한대한대 씩 차례로 괴멸시켜 대승을 했다.
항해중인 군함은 상대가 안 되며 일본역사상 가장 위대하며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대승을 거두고 한반도는 전리품이 된다.
이때 소련은 19척의 군함을 잃고 5천명의 전사자와 6,100명이
일본에 포로가 되었는데 그 후
‘백인에게만 주어졌던 전쟁을 동양인도 해 낼 수 있다’
고 했고 기고만장해진 일본은 열강의 일원이 되고
그 후 일본은 세이꼬샤(成功社)에서는 기둥시계나 자명종(사발시계)도 만들었다.
어떤 전직 일본수상의 말에 의하면 조선은 소련을 끌어 들이느냐
청국을 끌어드리느냐 하는 기로에 있을 때 자기들이 먼저 발을
들여 놓았다하여 조선반도는 어차피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식민지로 만든 후에는 너무도 많은 수탈이 있었으니 자원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죽여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미국군함은 한국군함보다 수병들의 활동공간이 많으니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 그로부터 110년 후인 내가 미국에 온 후 1976년에야
미국 필라델피아 폐선장(廢船場)으로부터 처음으로 군함을
불하 받게 되는데 1개월 만에 시동을 거는 바람에 미국해군은
혀를 내어 둘렀는데 이름은 ‘장보고 호’로 명명했다.
메릴랜드 주 내가 살던 캔트 빌리지 한국인(106 세대)들이 소갈비구이
100파운드를 마련하여 천리가 넘는 길을 달려서 해군들을 대접했는데
그 후 한국의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부쳐 왔다.
이미 미국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태양계 중에서 눈에 보이는것 중 큰
것부터 7개(해,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를 정하여 요일을
만들었고 음력보다 농사에 더 편리한 태양위주의 양력을 썼는데
미국의 음력은 고기잡이에만 연관성을 띠고 있을 따름이다.
제칠일안식일교회에서는 달력에 보면 토요일이 마지막 날이니 토요일 교회에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을 계속 쓰다가 처음 양력을 쓰게 된 것은 1895년이다.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에 식목일과 3.1절이 생기게 되며 서력기원을
무시하고 반만년의 역사를 고집하여 단군기원을 위주로 쓴 것은 세계화의
추세에 뒤떨어지는 요소들인데 4283년에 사변이 터졌고 나의 생년월일도
‘단군기원’을 줄인 단기4275년으로 표기를 했다.
서력기원을 알려고 하면 2333년을 감안해야 하므로 그 당시에는
혼란이 오니 단기[단군기원]를 먼저쓰고 서기[서력기원]를 병기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단기 4283년에 6.25사변이 시작 됐다.’
라고 외국인에게 말하면 그들은 못 알아듣지만 “1950년6월24일에
한국전쟁(Korean war, **1972년에 단기 폐기, 미국은 6월24일**)이 시작 됐다.”
라고 하면 그들은 이해를 하니 말이다.
영어로 사우드 코리아(남한)노드 코리아(북한)이라고 하는데 반하여
북한은 일제말기까지 연장된 조선을 물려받은 것 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북조선, 남조선, 하전사(사병), 군관(장교), 등으로
불리니 남북한모두가 사용하는 통일된 단어란 영영 없는 것일까?
이씨조선은 일본인들이 비하하기 위하여 만든 이름이며 이성계가
물려받은 조선이란 뜻이 되는데 현대인들은 ‘고조선’ ‘이씨조선’
이라고 분리를 해서 부른다.
나의 양력생일도 만세력에 의해서 찾았는데 수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41년 음력 10월 초열날이 양력으로 11월 28일 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냈다.
미국달력에는 음력이 아예 없고 보름달과 초승달 그림만 있으니
그동안 자녀들에게는 해마다 나의 생일을 찾아야하는 반복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양력으로 개선됐다.
이씨조선 시절 미국에서는 어떠했는가?
한정된 시간에 극장에 가야만 되고 한정된 인원이 들을 수 있었던
음악도 소리를 내는 축음기를 이용하여 집에 앉아서 원하는
시간에 돈을 소비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으니 빌게이츠의 연구에 해당하는 일대(一大)의 변혁이었으리라
그때의 한국은 제물포(인천)나 강화도 등으로 포교를
목적으로 들어오려는 프랑스 주교 베르누 등 9명을 살해한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조의 왕권의 왕위세습은 천혜(天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개화된 선거제도를 행하는 미국을 상대로 한
선진국의 문명이 들어오는 것을 자칭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찬하며
코가 큰 외국인은 무조건 오랑캐로 인정하여 거부 비하하는
행위임이 자명(自明)했던 것 같다.
1866년(고종3년)영국에 용역 대여한 미국상선 셔먼호는 선교용
팜프렛 적재와 토머스 영국목사 탑승을 볼 때 개항과 포교목적으로
보는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모두 전멸 당하게 된다.
평양부근에서 정체미상의 외국선 1척이 소침(燒沈)됐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과 통상이나 교역이 없는 미국은 청국정부에 교섭을 하여 진상을
조사해 달라는 청탁을 하게 되는데 결국 승무원들은 모두 살해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셔먼호사건을 구실로 삼아 미국은 조선의 개국종용을 시도 하게 되는데
신미양요는 1871(고종 8년, 신미년)년 미국은 무력적으로 개항을 위하여
(식민지로 삼으려는 의도는 없었음)군함5정 해병 1,230명, 82문의 대포
등으로 나가사끼(長崎)에서 보름 동안 기동훈련을 시킨 후 개항을 시키려
했으나 또다시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40일 만에 물러가게 된다.
고종은 시대의 흐름이니 개국을 하자고 했지만 아버지대원군은
쇄국을 주장했는데 결국 고종은 아버지장례식에도 불참을 하게 된다.
1882년 군인들에게 모래가 섞인 쌀을 월급으로 주는 바람에 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실은 일본의 앞잡이가 곡물창고직이를 협박하여
꾸며낸 연극이었다고 하는데 민비가 궁녀복장을 하고 장호원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조선은 미국을 오랑캐로 간주했고 대원군은
개항을 망국으로 해석 쇄국정책을 고수, 청나라에 의탁하여 조공국으로
남길 원했고 척화비를 만들어 곳곳에 설치했단다.
척화비(斥和碑)의 글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라고 한문으로 새겼다.
같은 해에 대원군은 청나라군사에게 납치되어 이틀만에 천진으로 유배가
되어서 3년간 금족이 되는데 시간을 죽이려고 석란도[石蘭圖] 여러장 그렸다는데
병풍으로 만든 것은 최고로 2억6천만원이라는데 골퍼메이트로 부터 내가
사진을 담아 놓았는데 이 블로그 어딘가에 있다.
지금도 재미교포들을 조금은 배척 하는 것 같은데 달러와 원화의 환율의
첫 글자가 싱글 디짓(digit)이면 멸시 하여 ‘재미 똥 포’가 되었다가 틴(teen)으로
바뀌면 다시 ‘재미 돈 포’가 되어 위상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그 당시 미 본국에 제출한 격전 보고서는 “조선군은 창과 검으로 또는
육탄으로 돌진했으며 돌을 던지고 흙을 뿌렸고 부상자는 모두 자살하니
포로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하니 결국 미국은 조선인을 독종(毒種; 성질이 매우 독한 사람)들로
으로 생각했는지 제물포(인천)를 단념하고 도망가게 된다.
수 십 년 전 미국인들은 난방장치가 있었던 시절에 한국에서는
겨울이 되면 아이들이 양지쪽에서 햇볕은 쪼이며 자랐으니 추위에
대한 거부반응이 약하여 지금도 영하의 온도가 될지라도 한국인골퍼는
추위를 모르고 풀밭 운동을 나가니 원주민들에게는
추위를 모르는 사람들로 인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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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박한 정치 경제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장문이라서 읽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장문이어서 애독자의 시간을 너무 허비한다는 생각입니다.
붓가는대로 기술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네요.
감솨요!
오래전 러시아 우표인데 귀한걸 얻으셨네요
저는 골동품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오랜 의리나라 근세의 역사에 해박 하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저는 호기심 많은친구이어서
칡넝쿨처럼 엉겨 붙네요.
감솨요
우리나라의 역사에
해박하심은 애국자세요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