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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박혜란씨(왼쪽에서 세 번째)와 책의 내용 중에 나오는 새 어머니 (아가페 북스 사진) |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는 비밀스러울 정도로 외부에서는 잘 모른다. 그들만이 안다. 책에서 두 사람만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딸이 아버지로인해 몹시 아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교계신문에 실린 논란을 지피는 글들을 읽어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나이가 칠순이 넘었으면서도..." "목사라는 사람이 아직도 용서를 못하고... "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비난하는 글도 있었다. 용서는 나이나 직위로 되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딸이 아버지를 어느 정도 용서하지 않았다면 이런 책을 내어 자신이 망가져 버리는 고통과 비난을 자초(自初)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사람
나는 <목사의 딸>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와 박윤선 목사의 명성이 더럽혀지고 그의 업적이 깎여졌다고 보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박윤선 목사보다 나 자신이 먼저 보였다. 책의 내용이 나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두 딸이 아버지이자 목사인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혹시 나의 행동에서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의 괴리감으로인해 딸들의 신앙생활에 혼란과 지장을 주고 있지는 않았을까? 철저히 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칼 융은 인간은 누구나 '페르조나(가면)'를 쓰고 산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아버지로서의 목사, 목사로서의 아버지 역할. 그리고 주의 일과 세상의 일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한 것들은 없었는지 통렬히 반성도 되었다.
아틀란타에서 목회를 하는 30년 지기인 친구 목사를 자주 만난다. 그의 목사실에 들어서면, "그냥 사람"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쓰여진 액자가 벽 한 켠에 걸려 있다. 나는 그 글귀를 보고 돌아 올 때마다 잔상이 오래오래 남는다. 이 책이 출간되므로 '왜곡' '폄하'라는 단어로 귀결되어 아버지를 모독한 딸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이려는 일부에서 역설적 왜곡을 하고 있지는 않나? 의구심마저 든다.
박윤선 목사의 약한 부분은 그도 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준 실례이다. 성경은 진리이다. 그렇다고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이 완벽한 인간들이었거나 죄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진리가 고수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약점과 죄까지도 소상히 기록해 두었으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친근히 발견하게 된다. 포장되고 '영웅 만들기'로 쓰여진 책이라면 성경은 진리가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만으로 영웅은 탄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뭔가 허구적 이미지로 덧씌워진 것을 가리거나 '접근금지'로 막아서 신비주의를 조장하여 우상을 만든다면 더 우습게 되고, 그것이야말로 허상임을 자인하게 된다.
공감이 필요
나르시시즘을 '자기도취적인 자기애'라 한다. 유영권 교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목회자는 병적으로 과장된 자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감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려 하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감(共感)이 필요하다. 소통이 강조되는 세상에 과감하게 던져진 <목사의 딸>이 '세움이냐' '훼손이냐' 논란이 되는 가운데,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논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집필하면서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특히 아버지를 존경하다 못해 숭상하려는 느낌을 주는 분들도 있어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집필하면서 20번 넘게 읽고 그때마다 울어야 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팠다고 하는 딸의 비통한 말과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한 아버지의 진심 어린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 뜻이 무엇인지 어떤 어색한 두둔도, 설명도, 해석도, 미화도, 폄하도 하려 들지말고. 목사라는 '감투'를 쓴 우리들도 알고 보면 결점 투성이의 아버지요 남편이라고 깨우쳐 준 것만이라도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박지용 목사 / 온맘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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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제가 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하간 책속에 문제가 된 내용은 무엇인가요?
고 박윤선목사는 개혁주의목사로 저명한데, 그의 사생활이 부정적으로(가부장적, 무정함, 폭력..) 드러남으로써 그 명성에 타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흔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권위를 탓할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아버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머리를 쳐들기를 원하고 또 모든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쳐드는 머리를 찍어 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것이 사실입니다.이러한 기질과 성품이 죄악의 본질이라는것을 알았다면, 그리고 왜 사람을 대할때 사랑이 중요한지를 깨달았다면 목회자의 자녀가 그렇게 상처를 받지를 않았을것입니다.목회자들이 이러한 인간의 죄성을 발견하고 죄성을 다스리는 훈련을
받고 교회를 이끌어 왔다면 지금의 한국교회의 위상이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을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자신이 좀더 성숙한 인격자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타락한 죄성을 발견하고 죄성에 따른 말과 행동을 자제하고 사랑으로 사람들을
용서하고 격려할수만 있어야 성자 예수를 닮아가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겠지요.가정도 사랑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목회자가 무슨 개혁을 논했다니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협력자 '개혁주의'=전통적인 캘비니즘=총신대 측..... 우리카페의 '개혁'과는 좀 다르지요.^^
박윤선 목사가 한국 개신교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모르나,
지금처럼 목사들이 역성들고 나서는 모습은 오히려 고인에게 욕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개 가정사도 온전히 처리하지 못하면서 진리와 생명에 대해 가르치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겠지요.
저명한 분이었다 해도 '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대단한 인물'로 띄우는 풍토가 문제라 보입니다.
흠이 있고 실수가 있는 부족한 사람인데 마치 귀감의 표본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며 대단하게 만들어가는...
역성을 들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바벨탑 욕망이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책을 썼다면 그러려니 했을테지만, 박혜란 교수님이 쓰셨기에 공감이 갑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샤머니즘 위에 덮어씌워진 유교 위에 또다시 덮어씌워진 기독교인 경우가 많았지요. '전통'이 아닌 '성경'에 비추어 부끄럼 없는 아버지로 서고 싶습니다.
자 ㅡ
그러면???
우리는 온전한가?로 돌아 볼 일입니다.
좋은 글이네요. 그분의 업적은 분명 인정할 부분이 있고 또 허물은 허물대로 보는게 맞겠지요. 임홍규님 말씀처럼 어느날 우리 자녀들이 여기와서 글을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빤 개혁말할 자격없다"면서.
아마쿠사님, 임홍규님, 각씨님. 댓글 감사합니다.
네..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무시할 수 없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성경안에 있어야 하나 모든것이 성경 밖으로 드나들다 보면 그런 병폐가 오지요..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그리스도인 아버지와 현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군상 아닐련지요?
네.. 그래서 반면교사 삼기 원합니다. ^^
맞아요. 권위주의적인 면이 상당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속에 거주하면서 성경적인 신앙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유별난 부류에 속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개개인의 삶의 배경과 현실이라는 문화의 테두리에서 하나님의
온전함을 향한 몸부림이 모두에게 동일한 양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