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요 14:114-15)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복음을 알기 전에는 이 말씀을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뜻으로 이해했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달달 암송하기도 했었지요.
주님의 이름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여 아무 데나 갖다 붙여서 주문 외우듯이 이용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처사였는지 그저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이기에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압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에 있겠는지요?
오늘 주일입니다.
공동체로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주의 영광의 빛이 임하길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죄로 이끌어 가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61:1-8
제목 :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1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셀라).
5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6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7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 나의 묵상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지은 시이다.
마음이 약해지고 억눌린 상태에서 오직 전심으로 주만 의지하는 신앙으로 주의 보호하심을 의뢰하는 다윗의 모습이다.
1-4절, 답답하고 억눌린 상태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주께 나아오는 왕의 호소와 하나님 절대의존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다윗이 땅 끝에서 주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땅 끝에 처한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도우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음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 다윗은 오직 주님만을 피난처로 삼고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로 삼는다.
그런 위경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오직 주의 장막이며 주의 날개 아래임을 그는 믿음으로 고백한다.
5-8절, 다윗 자신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서원했던 것을 기억하셔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기업 곧 이스라엘을 주셨다.
그런데 지금 그 기업이 위경에 빠졌기에 그 기업이 위태롭지만 주의 인자와 진리로 자신을 지켜 보호해 주실 것을 구하고 있다.
그리하시면 날마다 주님과의 언약을 지켜 행하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한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에 의해 왕권을 찬탈 당하고 광야로 쫓겨 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비참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군사들의 힘이나 어떤 위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의 인자와 진리를 구한다.
그의 육신의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왕궁은 비록 빼앗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혼의 안식처인 영원한 주의 장막을 자신의 거할 처소로 삼고 주의 날개 아래를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다.
다윗은 오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심까지 계시로 미리 본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위대한 사람이 지은 인간 장막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품을 자신의 장막으로 삼은 것이다.
(행 2:30-35) 그(다윗)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처럼 만물 위에 계신 주님을 본 자는 오직 그 분을 피난처로 삼고 자신이 거할 처소로 삼을 수 있다.
고대광실(高大廣室) 아무리 휘황하고 어마어마한 궁전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한낱 썩어질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거기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 마음을 온전히 주께로 향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으로 이 땅에서 30여년을 사셨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늘 교제하시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셨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여기서 나 있는 곳은 지금 육신으로 있는 겟세마네 동산이나 지상의 어느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품속은 아들이 생명을 받고 태어난 때부터 항상 거했던 자신의 처소였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본문에서 다윗이 자신의 기업을 다시 회복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육신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모형과 그림자로써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자 하는 기도이다.
이와 같이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써 항상 주님의 품속 곧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신앙하며 창세전 그 나라를 연모하는 자였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다윗을 대적하는 압살롬과 같은 자이다.
끊임없이 물질을 탐하되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던 자였다.
또한 나의 필요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부르짖으며 기도했었는가?
그래서 응답을 받고 얻으면 신앙이 좋은 자로, 얻지 못하면 신앙이 없는 자로 치부하던 자였었다.
한 때 내가 나의 멘토로 삼을 정도로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다.
그분의 가르침은 이랬다.
몸이 아파서 기도를 받으러 오는 성도들이 있으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준단다.
그런데 어떤 이는 낫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낫지 않을 때도 있다.
낫는 사람은 그 사람의 믿음이 있어서 낫는 것이고 낫지 않는 사람은 기도를 받는 사람이 믿음이 없어서 낫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절대화하고 그대로 믿었었다.
그래서 나의 믿음을 키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복음을 알고 보니까 이것은 믿음의 차원이 아니었다.
믿음이라해도 그것은 가장 어린 믿음이요 초보적인 단계의 믿음이었다.
어린아이들의 말은 부모들이 잘 들어주지 않는가?
그것도 어리면 어릴수록 더 잘 들어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가려가면서 들어주지 않는가?
위험한 것은 절대 주지 않고 그에게 좋은 것만 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어린 아이들은 선악의 분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별력이 있는 부모가 그것을 구별해서 주기도 하고 주지 않기도 하며 혹은 있는 것도 빼앗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작정 소리 높여 부르짖는다고 해서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믿음의 척도로 본다면 이는 너무 1차원적 신앙일 수밖에 없다.
한 때는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많이 받은 것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정욕과 필요에 의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주님의 뜻을 알기에 그 뜻을 이루는데 가장 적합한 삶을 살고자 애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자주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 그곳은 바로 아버지의 품속이요 주의 장막이며 주의 날개 아래이다.
그곳에 있을 때에 비로소 아버지의 영광, 곧 쉐키나의 영광이 임한다.
내가 지금 있는 말씀의 자리가 곧 주의 날개 그늘 아래이며 이곳에 쉐키나의 영광이 임하는 자리이다.
육신은 피곤하고 졸립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그냥 좀 잘까, 쉴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주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셔서 여기까지 왔다.
육신의 소욕은 언제나 나를 주의 날개 아래서 멀어지게 하려고 유혹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주님만 바라보길 원한다.
주님이 거하시는 장막과 그 망대에서 말이다.
그곳이 주님의 품속이며 쉐키나의 영광이 임하는 자리이기에...
* 묵상 후 기도
주님...
넘어질 수밖에 없고 언제나 넘어지지만 오늘도 다시 주의 보혈을 힘입어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나아갑니다.
나에게 파레시아의 담대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믿음이며 주께서 주신 선물이오니 내게 주신 그 은혜를 그저 사용할 뿐입니다.
주께서 행하시는 언약 안에서 주님의 신실하심이 나를 강권하오니 거기에 힘입어 일하게 하소서.
나의 일은 오직 주의 일이며 복음을 통하여 주의 얼굴을 보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이 말씀의 자리에서 주의 영광의 빛을 보게 하소서.
쉐키나의 영광이 임하오니 그 빛 가운데 온전히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