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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비극적 현실 앞에서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나치스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던 사람들이, 오늘날에 이르러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종족살해(genocide)를 자행하고 있다. 지금도 홀로코스트의 비극적 기억을 되새기며, 전 세계를 향해 맹목적 민족주의와 광신적 국가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유대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민중들을 향해 히틀러와 스탈린이 저지른 만행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기막힌 역사적 모순이다.
이미 팔레스타인의 참상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한국교회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종족살해 만큼 당혹스런 현상이다. 극소수의 기독교인들만이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이 문제에 대한 학문적 토론을 벌일 뿐, 절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선 그토록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여 온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기이하다.
이런 현상의 일차적 원인은 이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한국교회의 맹목적 친(親) 유대주의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 온 한국교회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는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의 범죄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당방위에 불과하므로, 한국교회가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다면,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는 주님의 질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친(親) 유대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무엇일까? 왜 한국교회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동경하는가? 과연 그런 태도는 정당하며 바람직한 것인가? 이제,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1) 신학적 요인
한국교회사의 시작과 함께,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한국교회에게 ‘이상적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차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배경으로 기록된 성서는 유대인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선언하고, 예수도 유대인으로 소개한다. 이런 성서를 읽고 배우면서, 한국교회는 자연스럽게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해 숭고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즉, 성서 자체가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의 일차적 원인인 것이다.
성서를 통해 형성된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 신학에 의해 한층 강화되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탄생한 근본주의는 당시에 빠르게 확산되던 다윈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서무오설을 중심으로 한 프린스턴신학이나 요한계시록 20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부흥운동이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이것은 무디의 선교운동과 스코필드의 『관주성경』을 통해 미국과 전 세계로 확장되었으며, 19세기 말에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이 땅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근본주의의 한 축을 형성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주님의 임박한 재림을 고대하면서, 과학기술의 발전, 학문의 진보, 공산주의 발흥 그리고 시오니즘 등을 종말의 징조로 강조했다. 무엇보다 19세기 말부터 진행된 시오니즘 덕택에,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에 근거한 수많은 종말론 서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특히 1967년에 발발한 제3차 중동전쟁(소위, ‘6일 전쟁’)의 결과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중에 들어가자, 세대주의는 다시 한 번 맹위를 떨치게 되었고, 이스라엘도 종말론자들의 집중적 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 전쟁 직후에 출판된 홀 린지(Hal Lindsey)의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1970)의 경우, 1970년대에 50여 개국에서 31개 국어로 번역되어 3천만 권이나 팔렸다.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한국의 경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인 윌리엄 블랙스턴(William Blackstone)의 『예수의 재림』(Jesus is Coming)이 이미 20세기 초에 게일(Gale) 선교사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되었고, 이후부터 이런 종류의 종말서적들이 한국출판계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다. 뿐만 아니라, 1907년 평양대부흥을 주도했던 길선주 목사의 부흥회는 이런 종말론에 근거한 요한계시록 강해가 중심이었다. 그의 영향 하에 한국교회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세례를 직접 받을 수 있었으며, 그 후에 다양한 신학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종말론이 한국교회의 대표적 종말론으로 대중적 인기를 꾸준히 누리고 있다. 1992년에 발생한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 해프닝은 한국사회에서 이런 종말론의 대중적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으며, 최근에는 신사도개혁운동에 의해 또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슬람 세력의 본산인 중동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도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를 강화하는 신학적 명분으로 기능했다. 7세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이었으며, 십자군운동은 그런 부정적 관계의 절정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배타적 증오감’은 이후 기독교의 집단적 무의식으로 내재화되었고, 그런 감정은 오일달러를 토대로 한 이슬람의 급성장과 전투적 선교활동을 통한 세계적 팽창에 의해 ‘근원적 공포감’으로 진화했다. 이런 상황이니, 이슬람의 홈그라운드인 중동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이 한국교회에게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2) 정치적 요인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는 신학적 영향 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도 깊이 받았다. 해방 전까지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는 주로 신학적 요인에 기인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이 미국의 절대적 영향 하에 근대국가로 발전하면서, 미국의 친(親) 이스라엘 정책은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의 태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내에서 유대인은 소수지만, 그들의 거대한 경제력 때문에, 미국 정계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특히, 천문학적 액수의 선거자금이 필요한 미국 정치판에서 미국의 자본시장을 장악한 유대인의 자금력은 미국 정치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따라서 중동문제에서 미국은 일방적으로 친(親) 이스라엘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고,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도 미국의 중동정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어떤 집단보다 친미적 성향이 강한 개신교회는 중동문제에서 진실의 유무나 그것의 신학적 정당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미국 편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전개된 냉전에서, 한반도는 이념적 지형에 따라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출신 기독교인들이 대거 월남하여 남한교회의 주류를 형성했다. 그 결과, 남한사회에서 기독교는 가장 강력한 반공세력으로 기능해 왔다. 여전히 정전상황인 한반도에서, 교회는 북한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북한에 대해 가장 뿌리 깊은 적대감을 표출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의 이슬람국가들과 정치적·군사적으로 대치하며 국가재건에 성공한 이스라엘의 상황은 한국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게 보였다. 특히 남성과 함께 여성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입장은 분단상황에서 강력한 징병제를 실시하는 한국정부에게 든든한 정책적 동반자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한국과 이스라엘의 유사한 정치적·군사적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집단인 교회가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해 신학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군사적 차원에서 동질감을 갖게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는 자신을 민족교회라고 규정할 정도로, 민족주의(혹은 국가주의) 정서가 대단히 강하다. 교회 안에서 민족과 국가는 거의 동일시되고, 애국애족을 신앙적 차원으로 승화하여 정당화한다. 구한말과 일제하에서 한국교회가 참여했던 독립·구국운동을 자랑스러운 신앙전통으로 기억하고, 3·1절과 광복절을 교회의 절기와 예배로 수용할 정도로, 한국교회의 민족주의는 거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2천 년 동안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자신들의 전통적 종교, 언어, 문화를 보존해 온 유대인들의 민족주의는 한국교회에게 큰 울림과 공감을 자아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재건될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에 동참하여 팔레스타인에 모였을 때, 그리고 세계에 나가 있던 유대인 청년들이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 군대에 자원입대했을 때, 이것은 단지 신앙적 차원을 넘어 민족주의적 차원에서도 한국교회에게 큰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3) 문화적 요인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신학적·정치적 요인과 함께, 문화적 요인도 주목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문화적 요인은 바로 유대인의 천재성에 대한 한국교회의 교육적 관심과 동경이다. 한국의 근대교육을 주도했던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가장 뜨거운 집단이다. 사실 인구학적 측면에서 기독교인의 수가 불교도 보다 적지만, 교육수준 면에선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했고, 세계의 과학, 예술, 대학, 문학계를 지배하는 유대인들의 천재성은 한국교회의 지극한 관심과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민족을 유대 민족에 버금가는 우수한 민족으로 강조하는 설교들을 예배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한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미국영화계는 유대인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배우뿐 아니라, 영화제작과 투자에 미치는 유대인의 인맥과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이런 할리우드는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부터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경험을 영화화하여, 나치즘의 악마성을 폭로하고, 유대인들에 대한 세계의 동정여론을 조성하며,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정복을 정당화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가 대표적인 예이며,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이런 현상을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 불렀다. 할리우드의 강력한 영향 하에 놓여 있던 한국영화계도 이런 할리우드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홀로코스트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나치즘의 악마성을 부각시켰던 할리우드의 영향 아래, 한국교회도 유대인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갖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대한 승리와 축복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끝으로 유대인들의 천재성과 숭고한 민족성을 부각시키는 것과 함께,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중동지역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오리엔탈리즘은 중동의 문화적 우수성을 의도적으로 폄하함으로써, 유럽의 중동지배를 정당화했던 유럽의 기만적 태도를 통칭한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은 이스라엘과 중동이 극심한 갈등관계에 돌입하면서 더욱 고조된 듯하다. 특히, 유대인의 우수성을 강조할수록, 아랍계 무슬림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선전·선동은 더욱 강화되었다. 중동지역의 아랍·이슬람 문화에 대한 정당한 연구 없이, 일방적으로 중동문화는 사막, 낙타, 아라비안나이트, 오일달러, 남녀차별, 광신주의 등으로 규정·폄하된 것이다. 결국 다양한 루트를 통해 확산된 오리엔탈리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한국교회도 매우 자연스럽게 친유대적·반아랍적 태도를 견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는 여러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갈등과 참담한 희생을 목격하면서, 한국교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반성과 함께, 정직하고 용감한 자기 성찰과 수정이 필요하다.
먼저 신학적 차원에서, 한국교회는 친(親) 유대주의를 뒷받침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극복해야 한다. 세대주의는 시오니즘을 종말의 징조로 해석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인도적·도덕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또한 시오니즘과 예루살렘 회복을 예언의 성취로 간주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의 폭력적 군사행동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한다. 이것은 십자군운동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던 중세교회의 치명적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친(親) 유대주의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영향으로부터 한국교회는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한다.
둘째 정치적 차원에서, 한국교회는 맹목적 친미, 반공, 친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사실 한국교회는 냉전기 동안 친미주의와 반공주의 하에서 자유민주주의적·자본주의적 국가건설에 몰두했다. 그 결과, 친미, 반공, 친자본주의는 한국사회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이런 영향이 한국교회의 친(親) 유대주의로 자연스럽게 귀결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행한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 세계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으며, 반미정서가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이념적 갈등에 근거한 냉전이 종식되고, 탈냉전·탈이념의 데탕트 시대가 도래했으며, 자본주의, 핵전쟁,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위기의식과 협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한국교회가 여전히 냉전적 사고방식에 젖어,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한다면, 세계적으로 고립되고 시대착오적 종교집단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맹목적으로 미국의 시각만을 추종하는 대신, 세계의 보편적 여론과 팔레스타인의 처절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끝으로 문화적 차원에서, 한국교회는 교육과 영화 같은 문화적 매체를 통해 유포되는 친(親) 유대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극복해야 한다. 유대인들의 천재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아랍인과 이슬람에 대한 맹목적 악마화나 폄훼, 존재부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적어도 19세기 이전까지 아랍의 이슬람문화가 서유럽의 기독교문화보다 우월했고, 아랍인들 안에도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한, 홀로코스트를 강조하면서 나치즘을 비판한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지만,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고, 십자군운동과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 과정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사람들도 신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채, 이데올로기적 통제와 조작에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하루속히 친(親) 유대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배덕만 │ 교수는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현재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사랑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글쓴이 / 배덕만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