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소감】
警友新聞 편집국장이 보내준 칼럼
― 한밤중에 카톡으로 받은 ‘경우신문(警友新聞) 2023년 신년호’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일요일 밤 10시 43분,
경우신문 편집국장의 카톡 알림음에 잠이 깼다.
“아, 편집국장님은 일요일 밤 11시까지도 일하시는구나!”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보통 밤 9시경이면 잠이 든다.
아직도 편히 쉬지 못하고 필자에게 PDF지면 파일을 보내주는
성의를 생각하면 고맙기만 하다.
스마트폰 알림음에 달아난 잠이 문제가 아니다.
필자에 대한 신문사의 정성!
그 어느 신문사의 편집자가 필자에게
이렇게 뜨거운 성의를 보이는가.
활자로 인쇄된 지면을 가장 먼저 받아보는
필자의 마음은 그저 감사할 뿐.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늦은 밤까지 고생하셨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잠을 다시 청하기 전에 카톡으로 받은 지면을
다시 읽어 본다.
이번엔 필자의 입장이 아니라
종이신문을 우편으로 받아 펼쳐 볼
독자의 시선으로 칼럼을 읽는다.
전국 150만 警友 독자들,
과거 나의 직장 상사도 볼 것이고
현직 경찰 후배들과
그 가족들도 읽게 될 신문.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일이다.
<독자의 반응>은 30여 년 문단 경력자도
초심자처럼 언제나 두려운 일
하지만 마주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독자의 시선이 기다리고 있다.
2023년 1월 29일 밤
필자 윤승원 소감 記
♧ ♧ ♧
【윤승원 소감】
원로 문학평론가의 신년 휘호 『세한송백(歲寒松柏)』 감상 記
― ‘날카로운 글’ 썼던 저명 작가의 「엽서」 한 대목이 떠올라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세한송백[歲寒松柏]’이란 추운 겨울의 소나무와 잣나무라는 뜻으로, 어떤 역경 속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 사람 또는 그 지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세한송백’이란 네 글자를 보면 ‘세한도[歲寒圖]’가 연상된다. 조선 후기의 서화가 김정희가 그린 그림이다. ‘송백(松柏) 같은 선비의 절조(節操)와 제주도에 유배 중인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국보 정식 명칭은 ‘김정희필 세한도’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문인, 언론인, 교육자, 공직자 등 지식인들에게 ‘세한송백’이란 어떤 의미일까?
과거 충남도경 정보과에서 근무할 때였다. 명색이 ‘등단 문인’이라고 해서 ‘대전매일신문사(현 충청투데이)’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1993년이다.
수개월 장기 집필하는 고정 칼럼이었다. 칼럼 명칭은 『大每直筆』. 우선 칼럼 ‘명칭’부터 두려웠다. ‘大每’란 <대전매일신문>을 뜻하는 것이지만 ‘直筆’을 붙인 것은 어떤 성격의 글을 주문하는 것일까? 두 글자가 유독 필진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신문사가 창간할 때부터 사시(社是)처럼 내걸었던 ‘정론(正論)’에 가장 부합하는 지면이 ‘직필(直筆) 칼럼’이라고 원고 청탁 기자는 필진인 내게 말했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직필(直筆)’의 사전적 풀이는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사실 그대로 적는 것’을 말한다. 왜곡(歪曲)하거나 호도(糊塗)하거나 아부(阿附), 아첨(阿諂) 하지 말고 당당하게 ‘곧은 글’을 쓰라는 주문이다.
바로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정신으로 글을 쓰라는 청탁인 것이다. 우리 역사에는 그런 정신으로 살다가 뜻을 펼치지 못하고 귀양을 간 선비도 많았다.
신문에 ‘칼럼 필진 소개’가 나갈 때부터 내가 몸담은 직장의 상사들은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혹여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건드려 자신들의 신상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불편한 글’을 쓰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直筆’이란 말이 그런 걱정스러운 뉘앙스를 주었다.
하지만 당시 선비풍의 도경 청장[기세익(奇世翊) 치안감]은 달랐다. 걱정이나 우려는커녕 오히려 필자인 나를 청장실로 불러 차를 대접하고 담소하면서 기념품으로 청장 명의의 손목시계까지 선물로 주었다.
그러면서 “윤 선생 글이 나의 정서와 맞아 가위로 오려 보관하고 있다”면서 나의 칼럼 3개월 치 묶음을 보여줬다.
나는 본시 ‘수필 문학’으로 등단한 사람이다. 날카롭거나 민감한 주제의 글을 칼럼에 쓰지 않았다. 직분에 어긋나거나 공직 윤리에 벗어나는 거친 표현도 하지 않았다. ‘直’ 자와는 다소 성격이 다른 부드러운(?) 수필 형식의 글을 썼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저명 작가의 엽서를 받았다. 이른바 ‘날카로운 글’을 쓰기로 유명한 한 원로 여류 작가의 엽서였다.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 이런 내용이다.
『각설하옵고, <어떤 만남>, <차 한 잔의 여유>, 그리고 또 뭐였던가, 어쨌든 오래간만에 즐겁게 읽은 글이었습니다. 어거지로 쥐어짜고 꿰다 맞추고 한 글쟁이들의 교묘한 속임수 글이 아니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여느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특수지대의 체험담이기에 풋풋하면서도 숭늉처럼 구수합니다. 일부러 엽서를 사오라고 하여 몇 자 적었습니다. 1993.5.21. ○○○』 |
이어서 이런 엽서도 받았다. 이번엔 연하장 뒷면에 깨알처럼 쓴 글이었다.
『‘大每直筆’ 고맙고, 계유년의 사건으로 기억에 담아 두니, 기쁩니다. 윤승원 님이 도경 정보과에 계심이 여간 희망적이 아닙니다. 경찰의 모습도 정보활동의 목적도 정권 유지 차원에 앞서 민족 자주의 화합적 통일을 지향하는 의지에 초점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많은 지성인들이 정보과에서 활동해 주었으면 하는 게 제 욕심입니다. … (중략)…
쓰레기통보다 지저분한 내 방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있습니다. 타이틀과 내용이 상이한 감각의 대조를 띄지만 궁극에는 우리의 꽃을 피우게 해야 한다는 뚝심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늘 강대국의 그늘에서 세뇌되어온 우리의 각질화한 의식에 망치질하는 그러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윤승원 님 못지않게 김진명 님도 만나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좋은 글 갑술년에도 읽게 해주십쇼.』
|
일간지 칼럼을 쓰는 동안 수많은 독자의 편지를 받았지만, 가장 잊히지 않는 저명 여류 작가의 엽서였다. 부드러움 속에 꼿꼿한 선비 정신이 살아 있는 ‘직언’ ‘직필’ 메시지가 행간에 번득였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 편지와 엽서로만 ‘독자와 소통’하였다.
평소 범접하기 어려운 저명 원로 여류 작가의 이런 뜻하지 않은 격려와 응원 엽서를 여러 통 받고는 ‘直筆’이란 이름을 달고 매주 쓰는 칼럼이 더욱 부담스럽고 두려워졌다.
신문사 편집국장의 간곡한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독자들이 필진에게 요구하는 것이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정신이다. 그렇고 그런 진부한 글이 아니라 늘 꼿꼿한 ‘歲寒의 松柏’을 독자들은 보고 싶은 것이다.
♧ ♧ ♧
한 해를 보내는 12월 29일 오후.
영하의 날씨에 잔설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도솔산(兜率山)에서 스마트폰으로 ‘신년 휘호’를 받았다. 일송(一松) 송하섭(宋夏燮) 교수(문학평론가, 전 단국대 부총장)의 붓글씨였다. 이마를 서늘하게 스치는 ‘휘호’를 받고,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 보잘것없는 글을 쓰면서 늘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고민해 온 사람이다. 존경하는 팔순의 원로 문인 송하섭 교수는 그런 나의 ‘남모르는 고민’을 현미경처럼 헤아리고 이런 휘호를 보내셨을 것이다.
문득 고인이 되신 한 원로 작가의 날카롭지만 따뜻한 격려 엽서 한 대목이 떠올라 먼지 쌓인 ‘편지 철’을 뒤적여 보았다. ■
♧ ♧ ♧
첫댓글 송하섭 총장님께
이마를 서늘하게 하는 귀한 신년휘호를 주셔서
거듭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유익한 글감을 얻는 것도
드문 일이고, 저에게 주신 福입니다.
많은 분들의 찬사를 듣고 있습니다.
총장님 덕분입니다. ㅡ 윤승원 올림
♧ 카카오톡에서
◆ 송하섭(문학평론가, 전 단국대 부총장) 2023.01.30. 16:57
윤 선생님.
새해를 맞으면서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제 소망을 써본 것인데
이렇게 깊은 해석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배움이 큽니다.
나이 드니 비난보다 진지한 칭찬이 더 어려움을 느낍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따뜻한 인정으로 상대방을 격려하고
칭찬하시는 삶을 사시니 이웃도, 언론인들도 이처럼 고운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셔서 더 많은 정을 베풀어주시길 기원합니다.
이제 추위도 물러갈 듯 바람이 싱그러워지네요.
한번 뵙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건승을 빕니다. (송하섭)
▲ 답글 / 윤승원
귀한 답글을 주시니 큰 감동입니다.
총장님이 주신 신년 휘호는 어느 특정 분야의 개인뿐만 아니라
범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국민과 가장 밀접한 곳에서 법 집행하는 경찰관들도
송백의 정신을 가다듬는다면 더욱 건강한 사회 기틀이
유지되리라 믿습니다.
문단과 학계에서 크게 존경받고 계신 총장님의
혜안과 통찰력이 담긴 귀한 글귀라서 많은 독자가
신선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믿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많은 가르침 주시길 바라옵니다.
감사합니다. (윤승원 올림)
잘 읽었습니다..건강하세요
늘 따뜻한 격려 댓글
감사합니다.
♧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01.31. 09:25
장천 윤승원 선생의 글이 추위와 어려움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봉사하는 많은 경찰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자기가 있던 직장에 대해 항상 고마움을 표하고
맺은 인연의 고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경하해야 할 덕목입니다.
한평생 있었던 직장을 자신이 떠났다고 하여 섭섭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과는 극과 극의 대치점에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윤 선생은 우리 사회의 모범이며, 큰 스승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장천 윤 선생은 큰 냇물에서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가는 정진을 용맹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따뜻한 감동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구복)
▲ 답글 / 윤승원
과분합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 품격 있는 가르침과 훌륭한 인품의 영향을 받으니
사회생활 하면서 많은 분으로부터 칭찬도 받게 됩니다.
저의 능력은 부족하나, 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마음가짐을 가다듬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문학 창작 활동이 그러하고, 덕망 높은 훌륭한 학자님들과
늘 가까이 교감하는 덕분입니다.
오늘도 따뜻한 격려와 아낌없는 사랑 감사합니다. (윤승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