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기분이 좋더라꼬.
권다품(영철)
"베풀면서 살아라. 꼭 보답받지는 못해도 그 베푼만큼 선해지지 않겠는가!"
내가 마음에 품고 싶고, 우리 가족들에게, 내 자식들에게 새겨주고픈 말이다.
또,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새겨주고 싶은 말이다.
베풀면서 한 번 살아보자.
꼭 보상받지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베푼만큼 내 마음이 선해질 것 같다.
나는 이 말을 정확히 누구에게 들었고, 누구에게 배웠는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살면서, 또 살아보니까, 그 말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깨우침이란, 꼭 내가 경험해야만 얻어지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비록 많이 살지는 못했지만 남을 통해서 배울 수는 있었다.
어릴 때는 안방 호롱불 밑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가족들을 통해서, 또 조금 자라서는 집안 할아버지들의 사랑방에서 목침(나무로 만든 베개)으로 차놀이를 하면서 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른들은 집안 어린 아이들이 놀러오기라도 하면, 며느리나 집안 식구를 불러 "여기 아~들(아이들) 왔는데 먹을 것 좀 내 오너라."며, 아이들 먹는 모습을 흐뭇이 바라보시며, 먹는데 정신 팔린 아이들이 듣든지 말든지, 이 고을 어른들의 이야기, 저 고을 젊은이들이 사는 이야기들을 집안 아이들에게 들려주시곤 하셨다.
"저~기 어느 고을 누구는 살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도 자식 공부를 잘 시켜서 그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고, 또 저기 누구는 몇 대를 내려오며 떵떵거리던 부자였는데, 그 자식들 교육을 잘못 시키는 바람에, 술마시고 노름하고 계집질 해서 집안이 다 망하고 .... "
또, 문중 어느 집에 새 며느리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일부러 안마당 시원한 감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모여앉아서 파전 붙여먹고 감홍시 나눠먹으며, 집안 아랫동서들이나 질부들에게 웃음으로 들려주시던 그 정겨운 이야기들을, 엄마따라 놀러갔다가 나도 듣기도 했다.
"저~기 어느 누구는 외동딸이라고 딸을 본데없이 키워서 시집을 보냈디마는, 그 행실이 하도 본데없고 막돼 먹어서 온 고을에 친정 부모 욕 다 먹였다 카네."
"그래 돼마 친정 집 한 집뿐이겠는교? 그 문중까지 욕 다 안 먹이겠는교? 어른들이 '좋은 소문은 잘 안 나도 나쁜 소문은 온 고을에, 이웃 고을까지 금방 소문이 다 난다' 안 카던교? 여자들은 잘못하면 동네에서는 '그런 년 안 쫓아버리면 동네 버린다'고 시집까지 욕을 하더마는."
조금 더 자라서는 동네 정자나무 아래 어른신들도 그런 말씀들을 하셨다.
"저기 누구는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놈이 있었는데, 디기 독하게 살았단다. 나중에 그 집에 불이 나서 집이 다 타는데도, 이웃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나오긴 했는데, 다른 동네 사람들은 지 일매치로 불을 꺼주는 사람이 없더란다. 사람은 독하게 살마 그만큼 그 뒤가 무서운 기라."
"하마, 사람이 살다보면 무슨 일이 생길 지 아무도 모르는 기라. 지금 지 살기 좀 넉넉하다고 남 무시하마, 반드시 뒤가 외로워지는 기라. 꼭 자기 대에 안 당해도 자식이나 손자 대에라도 반드시 당하고, 고렇게 사는 집 자손들은 안 풀린다 카니라. 크면서 보고 들은 기라꼬는 남 무시하는 것만 배우고, 본 데없이 컸거든. 세상을 어떻게 혼자 살아? 가만히 한 번 보라고. 크게 되고, 다른 사람들 입질에 오르는 사람들치고 어릴 때부터 지 꺼만 챙기고 산 사람 있는 지. 그러니까 사람이 어떻게 자기 것만 알고, 자기만 생각하고 살겠나 말이라."
어릴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심지어 잔소리처럼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게는 어른들의 그 말씀들이 큰 교훈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꼭 동전 몇 잎을 주시고, 사탕을 주시던 것만 생각나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드니까 그 주신 교훈들이 남는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한테는, 어차피 줄 것 같으면 밝은 표정으로 주는 기 낫니라."
그런 말씀도 생각난다.
꼭 값비싼 커피라야 좋은 건 아닐 것이다.
커피를 받쳐들고 가는 사람의 웃음과 정성과 다정한 말 한마디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억지웃음을 웃으며, 속으로는 '저 사람이 왜 왔을까? 혹시 돈 빌리러 온 건 아닐까?'하는 눈치부터 살피며, 내놓는 그 값비싼 커피보다 훨씬 맛있을 것같지 않은가?
사람을 따뜻하게 대한다고, 금방 그 베푼 만큼 이득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자식들이 그걸 보고 선한 마음을 배운다는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걸 배운다는 것이다.
금방 배우지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
그런 걸 보면서 크다보면 자연 그 어린 마음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식들이 그렇게만 커준다면, 꼭 돈 많이 버는 다른 집 아들들이나 출세한 다른 아이들이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국회 의원이 됐다가 검찰청을 드나들던 그 사람이 부럽겠는가?
적어도 그런 착한 아들이라면, 마약이나 도박으로 신문에 나지는 않을 것이고, 남의 돈이나 나랏돈을 후려 먹고 잡혀가는 모습이 티비에 나오지는 않지 않겠는가?
친구들과 등산이라도 같이 갔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 집 가까우이끼네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말을 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고 놀고 있는데, "엄마야, 맛있는 거는 준비가 안 돼서 못핻.리고 극수 삶았습니더. 욕하지 마이소이?" 하며 시원한 냉국수가 나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친구들이 시원한 국수맛보다는 당신 아내의 그 따뜻한 마음을 담아가지 않을까?
나는 내가 경영하는 학원이 작은 학원이긴 하지만,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회비를 십원도 받지 않았다.
나중에 꼭 인사하러 못 올 수도 있다.
그래도, 둘러서 둘러서라도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다.
그런 기쁨은 꼭 나만을 위해 배려는 아닐 것 같다.
그 큰 기쁨은 분명 여러분에게도 열려 있을 것 같다.
어이, 우리 한 번 베풀어 보자.
나는 기분이 좋더라꼬.
2011년 6월 27일 새벽 2시 2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