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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2월) 쿤달리니 중음신(中陰身) 파킨슨 병의 증상 몸의 기울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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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뇌의 두파핵에서 도파민이 감소한 것이 주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도파민은 움직임과 균형을 조정하는 데 필수적인 신경전달물질입니다. 파킨슨병의 증상에는 기울어진 자세, 손 떨림, 근육 경직성, 치매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파킨슨병은 특발성이지만 가족력이나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파킨슨병은 진행성 질환이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상이 악화됩니다.
파킨슨병의 증상으로는 손떨림, 행동 느려짐, 자세 불안정, 근육의 뻣뻣함,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짐의 증상이 동반되게 됩니다.
파킨슨 병의 운동 증상으로는
1. 경직 (초기에 근육이 뻣뻣해지는) @ 경직긴장 교감신경항진 도파민 부족 결핍으로)
2. 떨림 (주로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 몸의 떨림)
3. 서동(행동이 느려지는데 본인은 잘 알지못하고 주변에서 말해줘야 인지 가능)
4. 구부정한 자세(몸 전체적으로 구부러진 자세로 인해 자세의 불안정)
5. 보행 동결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못해서 걷기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 구부정한 고개를 숙인 자세(죄인처럼)
## 식사하는 동안 콧물을 흘린다
### 변비(연동 운동을 일으키는 장내신경총과 부교감 미주신경의 기능저하)
파키슨병 환자의 몸이 눈에 띄게 옆으로 굽은 것 같다면 피사 증후군(pisa syndrome)을 의심하고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피사증후군은 몸통이 옆으로 10도 이상 기울어지는 자세 이상으로, 진행된 파킨슨병 환자에서 매우 흔하게 관찰되는 증상이다. 피사증후군 환자는 서있거나 걸을 때는 몸통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외부에서 힘을 가해 허리를 펴주거나, 누운 자세를 취하면 호전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통 척추 골절을 포함한 척추의 퇴행성 질환으로 인해 허리가 굽는 현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피사 증후군을 가진 파킨슨병 환자는 병이 진행함에 따라 몸통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따라서 피사 증후군은 파킨슨병 환자에게 심각한 요통을 비롯하여, 수많은 일상생활에 장애를 유발하게 된다. 또한 몸통이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서있거나 걸을 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낙상 사고를 초래하여 부축 없이 환자가 걷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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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8 중음신(中陰身) 또는 중유(中有)란 무엇인가|작성자 법성스님 :⑨ 하늘의 중유는 머리를 위로 하고 올라가니 마치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과 같다. 사람과 귀신과 축생의 중유는 사람과 같이 옆으로 간다. 지옥의 중유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위로 하여 거꾸로 떨어진다. (약천중유 두편향상 인 방생 귀 횡행이거 지옥중유 두직향하 若天中有, 頭便向上 ; 人 傍生 鬼, 橫行而去 ; 地獄中有, 頭直向下) 만일 - 선업을 쌓아 - 천인(천국)으로 태어날 중유이라면 머리를 곧 위로 향하고 가고, 인간이나 축생이나 아귀로 태어날 중유이라면 몸을 가로로 해서 가며, 지옥에 태어날 중유이라면 머리를 곧장 아래로 향하고 가느니라.
방생(傍生) : 축생(畜生)의 의역 축생은 동물 전체를 총칭 미생물까지 포함, 신화적인 동물도 포함, 축생도(畜生道)
귀(鬼) : 아귀도(餓鬼道) 불교에서 아귀는 늘 굶주리는 귀신이다. 몸은 태산만 하고, 입(또는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다.
육도윤회(六道輪廻)
6도(六道)는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불교에서 중생이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고 윤회할 때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6가지로 나눈 것으로, 지옥도(地獄道) · 아귀도(餓鬼道) · 축생도(畜生道) · 아수라도(阿修羅道) · 인간도(人間道) · 천상도(天上道)를 말한다. '나아가는 세계 또는 장소'라는 뜻의 취(趣)을 써서, 6취(六趣)라고도 한다.
이들 중 앞의 3가지, 지옥도 · 아귀도 · 축생도를 5악 · 10악 · 바라이죄 · 5역죄 등의 불선(악)한 업으로 인해 태어나는, 고통스러운 나쁜 세계 또는 악한 세계 또는 박복한 세계라는 뜻에서 3악도(三惡道) · 3악처(三惡處) 또는 3악취(三惡趣)라고 하며, 간단히 악도(惡道) · 악처(惡處) 또는 악취(惡趣)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 아수라도 · 인간도 · 천상도를 10선과 보시 등의 선한 업으로 인해 태어나는, 3악도 또는 3악취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세계 또는 착한 세계 또는 다복한 세계라는 뜻에서 3선도(三善道) 또는 3선취(三善趣)라고 하며, 간단히 선도(善道) · 선처(善處) 또는 선취(善趣)라고도 한다.
그리고 비록 3악도 또는 3악취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곳인 3선도 또는 3선취가 있지만 6도 또는 6취 전체는 미계(迷界), 즉 미혹된 상태의 세계, 즉 염오(번뇌)에 물들어 있어 사(事)와 이(理)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불선(악)을 비롯한 잘못을 범하는 상태의 세계로서, 모든 염오(번뇌, 특히 근본무명)를 멀리 떠나[遠離] 완전한 깨달음(열반)을 증득한 상태가 아닌 한 완전한 깨달음(열반)을 증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여 탄생과 재탄생을 반복하면서 윤회하여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는 뜻에서 6도윤회(六道輪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음신 [中陰身]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 윤회를 인정하는 생사관에서 죽은 순간부터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중간 시기를 의미하는 불교용어. 중유·중온.
개설 : 범어와 팔리어 모두 ‘antarā-bhava’이다. 중유(中有) 또는 중온(中蘊)이라 하는데 한국에서는 흔히 중음신(中陰身)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의 존재로 잠정적인 신체를 의미한다.
내용 : 불교의 생사관에 따르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은 반드시 세 가지 성립을 필요로 한다. 즉 부모의 성행위와 여성의 가임기, 그리고 일종의 업식(業識)의 존재로 중음신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유는 사유(四有) 가운데 하나로 사유는 생유(生有) · 본유(本有) · 사유(死有) · 중유(中有)를 말하며, 여기서 유(有)는 바로 ‘존재’를 의미한다.
생유(生有)는 태어남의 순간을, 본유(本有)는 태어남의 시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사유(死有)는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중유(中有)는 사유부터 생유까지의 존재 기간을 말한다. 중유는 부모의 정혈(精血)이 아닌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하여 의성(意成)이라고도 하며, 항상 즐거움을 구하기 때문에 구생(求生)이라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향을 먹고 산다고 하여 식향신(食香身)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출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직 환생을 하기 전의 상태, 아직 새로운 육체를 갖지 않은 중간 상태를 중유(中有) 또는 중음이라 하고, 티벳어로 바르도(bardo)라고 한다. 죽음의 과정은 탄생 과정의 역순이다. 생은 의식체(마음)가 몸을 갖는 것이고, 사는 의식체가 몸을 버리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둘 다 의식체가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바르도에 깨어나서 바르도 세계 자체의 독특한 환경에 익숙해져야 한다. 바르도 세계에서의 신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精氣) 상태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그가 생전에 갖고 있던 인간 육체의 정확한 복제품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바르도체(體)라고 한다." 바르도체는 곧 중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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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론(preexistentianism)은 환생과 관련한다.
불교의 영혼은 선재한다. 그 영혼을 중음신(中陰身), 중온(中蘊), 중유(中有), 영가(靈駕)로서 말한다. 이 중유는 천국과 지옥 중간지대, 이 세상과 천국과 지옥 중간지대에 있다. 그 세계를 티벳불교에서는 바르도(bardo)계라고 하고, 임마누엘 스베덴보리는 중간영계 또는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로 말한다(신지학에서는 아스트랄계, 카발라에서는 앗시아계, 힌두교 카스트에서는 수드라). 그 세계에서 중유가 이 세계로 오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중유가 돌아다니다가 남녀가 짝짓기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중유가 남자라면 짝짓기하는 그 남자(아버지)가 되고 여자라면 그 여자(어머니)가 된다. 전도몽상(顚倒夢想 : 거꾸로 생각하는 꿈같은 헛된 생각)이 일어난다. 그의 따라 남중유는 짝짓기하는 여자(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고, 여중유는 짝짓기하는 남자(아버지)에 대한 욕망을 일으킨다. 여기서 시간이 흘러 상태가 변하면 남중유는 이제 짝짓기 주체를 자신으로 생각하여 옆에 있는 아버지에 대해 경쟁심을 갖게 되고, 경계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게 된다. 여중유는 반대로 어머니를 미워하고 배척하게 된다. 동성(同性)은 미워하고 이성(異性)은 사랑하게 된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유들은 부모의 근문(根門 : 성기)만 보게 된다. 남중유는 여성의 것을, 여중유는 남성의 것을 보게 된다. 사랑하고 바라는 것에 의식과 마음이 간다. 그리고 사랑과 미움이 최고조에 달할 때 즉 사정할 때 남중유는 정액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여자 또한 애액 또는 난자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희열에 잠기는데, 그것과 동시에 그것들과의 일체가 되어 행동을 같이하여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쾌락의 환의, 오르가슴에 이어지는 것은 휴식이고 평온이고 안정이다. 남중유는 정자와 일체가 되어 자궁 속으로 들어가 수정란에 안착을 하니, 그곳을 휴식처, 안식처로서 생각할 수 있다. 여중유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남자는 나아가는 것이지만 여자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근문을 본다는 것은 남자에게서는 앞으로 가고 또 가고 하는 것이지만 여자는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안으로 들어오고 들어 올 때 환희가 일어나고 그 환희 후에 이완과 휴식과 안식이 생긴다. 여중유는 이 시기에 난자와 일체가 되어 입태(入胎)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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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저서
(천국과 지옥 421) 중간영계(영들의 세계)는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그 사이의 지역 즉 상태다. 사람이 죽으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이곳이다. 여기서 필요한 만큼 머물고 난 후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에 던져진다.
(천국과 지옥 426) 중간영계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모든 사람이 사후에 일단 그곳에서 만나고 거기서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고 준비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곳에 머무는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몇 주 또는 몇 년 동안 머문다. 그러나 삼십 년을 넘지는 않는다(영계에서 최후심판 이후에). 머무는 기간의 이런 차이는 사람의 내면과 외면이 상응하는가 않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중간영계에서 사람이 어떻게 여러 상태를 거치며 준비되는가를 설명하겠다.
(천국과 지옥 422) 중간영계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역이며 또한 사람의 사후의 중간상태다. 나는 천국이 그 위에 있고 지옥은 그 아래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중간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있는 영들은 아직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않은 상태임을 보고 그것이 중간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은 바로 그 사람 안의 선과 진리가 하나된 상태다. 또 사람 안의 지옥은 그 사람안의 악과 거짓이 하나된 상태다. 영인(a man-spirit) 안에서 선이 진리와 하나되면 그는 천국에 이른다. 이미 말했듯이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 안에서 악이 거짓과 하나되면 그는 지옥에 이른다.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됨의 과정은 중간영계에서 일어난다. 사람은 그때 중간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과 진리의 하나됨을 사고력과 의지의 하나됨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천국과 지옥 428) 중간영계는 사람 안에 있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상태이듯이 그 아래에는 지옥이 있고 위에는 천국이 있는 중간지역이기도 하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는 물구나무를 한다
(천국과 지옥 429) ... 나는 어떤 영(영인)이 천국에서 흘러나온 기운에 닿자 내적인 고통에 울부짖듯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닿자마자 그는 조용해지고 흐뭇해했다.
(천국과 지옥 491) 그중 가장 기만적인 자 중 하나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위로 한 채였고, 다른 자들은 또 다른 식으로 떨어졌다.
(천국과 지옥 510)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의 영(혼)이 속해 있었던 영계의 자신의 공동체로 간다. 모든 사람은 그 영으로는 지옥 공동체나 천국 공동체 중 어느 하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한 영은 그의 내면의 지배적인 상태에 따라 점진적으로 자기 자신의 공동체 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그 상태가 끝나기 전에 그 공동체를 똑바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가 끝나면 자기와 비슷한 영들이 있는 지옥으로 스스로 몸을 던진다. 이 뛰어내리는 행동은 머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위로 한채 거꾸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 영 자신이 거꾸로 된 질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 525) ... 따라서 그들에게 주님은 누구나 천국에 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그들이 원하면 천국에 들어가 보고 머물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것을 원한 이들은 실제로 들어가 보게 된다. 그러나 바로 문턱에서 천국의 열(천사들이 거하는 신적 사랑)과 천국의 빛(천사들이 거하는 신적 지혜)의 흐름이 닿자마자 그들은 속에서 천국의 기쁨 대신 지옥의 고통을 느끼고 머리부터 천국 아래로 뛰어내린다. 이런 체험을 통해서 그들은 방법을 떠나 자비로 천국이 허락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운다.
(천국과 지옥 548) ... 사람은 스스로 지옥으로 뛰어든다. 악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은 머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위로 한채 뛰어드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런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힘에 의해 지옥으로 던져지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아니다.
(천국과 지옥 558) [나]... 한 마디로 자기 사랑이 우세한 사람에게는 자기 사랑이 머리가 되고 천국적 사랑은 발이 된다. 그는 천국적 사랑 위에 올라서 있고 만일 그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짓밟아 버린다.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머리를 아래로 하여 지옥을 향하고 발은 위로 천국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548항 참조).
(천국과 지옥 591) 악은 끊임없이 지옥에서 발산되어 올라가고 선은 끊임없이 천국에서 발산되어 내려간다.
(순정 기독교 405) 그러나 자아애의 지배애가 머리의 위치를 점하면 그때는 천계의 사랑은 몸을 통해서 발로 추방된다. 그리고 자아애가 증가됨에 따라 천계의 사랑은 발목을 통해서 발바닥으로 내려가고 마침내는 신발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 발 밑에 밟히게 된다..... 완전한 사람 안에는 천계의 사랑, 세간애, 그리고 자아애가 머리, 가슴, 그리고 발에 대응된다. 만일 자아애가 머리라면 사람을 완전히 거꾸로 놓는 것이 된다. 그 사람은 천사들에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 자처럼 나타난다.
(순정기독교 564) 악의 환희에 의해서 충동된다. 악의 환희는 지옥의 환희이다. 그것이 지옥에서 뿜어내져서 발바닥 안으로 흐르고 등과 머리 뒤쪽으로 흐른다. 만일 그것이 머리 앞과 가슴 속에 흘러든다면 사람은 지옥의 종이 된다. 왜냐하면 대뇌는 이해(좌 비나 세피라)와 지혜(우 호크마 세피라)의 좌(seat)이고, 소뇌는 의지와 사랑의 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두 뇌들이 있다, 이 지옥의 환희는 오직 개혁(이성의 거듭남, 진리를 이해하고 믿고 사랑해서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 의지까기 교정됨)에 의해서 교정될 수 있고 영적으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의 방편에 의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
(순정 기독교 613) 천계에서는 모두가 주님을 우러르고 지옥에서는 모두가 주님에게서 눈을 돌린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든지 천계에서 지옥을 볼 때에는 마귀들의 등판이나 뒷면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마귀들도 발로 걷고 사방을 둘러보지만 때로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나 자신이 본 이러한 현상은 그들의 속 마음의 방향성이 천국과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중생이 천계로부터 지옥의 제거와 분리에 대응한다고 깨달았다. 지금 이야기한 것과 같이 사람은 생래적으로 축소형의 지옥이지만 그의 둘째 출생에 의하여 축소형의 천계가 된다. 이같이 천계로부터 지옥이 분리되듯 악들이 사람에게서 옮겨지고 분리된다. 그때에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천계가 심어지고 새 사람이 되는데 따라서 악은 주님에게서 눈을 돌리고 서서히 뒤엎여진다. 사람 안의 각 악이 지옥 안에 있는 영들의 유사한 악과 사귀고 있고 사람 안의 각 선이 천사들의 유사한 선과 사귀고 있음을 주지하여야 한다.
(순정 기독교 622) 악들과 비진리안에 있는 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만일 그들이 천계안으로 올라가기를 원하다면 천계에 오르는 것이 허락된다. 그러나 그 문턱에 이르자마자 호흡이 어렵게 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그들의 시각이 흐려지고, 그들의 이해는 둔해진다. 사고가 정지되고 죽음의 고통이 그들의 얼굴을 마비시키듯 하게 된다. 그때 그들의 심장의 고통이 격심해지고 가슴에 고통스러운 압박으로 고생하게 된다. 그리고는 계속 증대되는 정신적 고뇌로 고생한다. 이 상태에서는 불에 타는 뱀처럼 몸부림 치며 그들에게 나타나는 비탈길을 따라 돌진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의 벗들이 있는 지옥안에 있게 될 때까지 그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그들의 심장은 정상이 되고, 호흡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후에 그들은 천계를 증오하고 진리를 거부한다.
지옥은 사탄마귀는 흉측한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천계비의 4674) [3] 저세상에서의 실제 일어나는 일로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을 했다. 자신들은 당연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천국으로 향했고, 천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에 천국 입구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에 도착했을 때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이것의 원인은 생명의 불일치 때문이다. 천국의 생명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악하고 거짓된 삶을 살았다. 그들의 의지와 이성에는 악과 거짓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마음은 더럽고 불결했다. 그곳에 있는 천국의 빛으로 인해 그들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 모습들은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악마, 시체, 괴물 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천국 아래로 어두운 곳으로 몸을 던졌다. 그렇게 지옥으로 물구나무서는 모습으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호흡이 돌아와 숨을 자연스럽게 쉴 수 있게 되었고, 또 서로를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곳에서 그들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서로에게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 553) 지옥에 있는 모든 영은 천국의 빛으로 보면 그들의 악의 형태로 나타난다. 지옥의 모든 영은 자기 악의 형상이다. 그의 내면과 외면이 하나로 움직이므로 그의 내면이 외면 즉 얼굴, 몸, 말, 행동에 나타나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영을 보는 즉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3] 지옥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는 것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들은 것은 천국 전체가 합쳐서 단 한사람의 모습으로 비치듯(59-67) 지옥 전체도 합쳐서 한 악마로 비치며 한 악마의 형상으로 나타낼수 있다는 것이다.(544) 그러나 각 개별적 지옥 즉 지옥 공동체들의 형상은 자주 보도록 허락되었다. 지옥문이라 불리는 그 입구에 그안에 있는 모두의 형상을 전체적으로 대표하는 한 괴물이 흔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거기 거주하는 영들의 난폭함이 무섭고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을 여기 기록하는 것은 삼가겠다.
(천계비의 5057) [3] 천계는 주님에 의하여 그 누구에게도 결코 거절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만약에 그들이 원한다면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이런 목적 때문에 그들은 선에 속한 정동이나 인애 가운데 산 사람들이 있는 천계에 속한 어떤 사회에 올리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하기 때문에 그들이 거기에 이르지마자 그들은 고통을 받기 시작하였고 그리고 그들의 삶이 정반대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내적인 고통을 받습니다. 그리고 천계의 빛이 드리워지자 그들은 그 빛 안에서 거의 사람의 형체가 결여된 마치 악마들처럼 보였고 어떤 자들은 움푹 패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자들은 쇠창살 모양의 이빨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자들은 여러 가지 흉물스러운 괴물 모양으로 보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몹시 싫어하였고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머리부터 지옥으로 거꾸로 내던져졌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는 깊숙이 빠지면 빠질수록 좋은 일이었습니다.
사람 안의 생명나무와 선악과
(신애신지 270) ....자연적인 마음은 그것에 속한 것들과 더불어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반시계방향) 선회하지만 영적인 마음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선회합니다.(시계방향) 따라서 이둘은 서로 상반되는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악이 자연적인 마음 안에 그 자리를 잡고 있고 그리고 악 자체가 영적인 마음에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는 하나의 좋은 증거입니다. 더욱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선회는 아래로 내려가는 즉 지옥을 향하는 것이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선회는 위로 올라가는 즉 천계를 향하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으로 확신하는 것은 악령은 그의 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선회할수 있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선회는 불가능한 반면에 선한 영은 그의 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선회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회한다는 것은 매우 쉽다는 사실입니다. 선회는 마음에 속한 내면적인 것들의 흐름에 뒤따릅니다.
(신애신지 263) 이와 같은 변화의 상태를 바로잡음(개혁/이성, refomation)과 중생(의지, regeneration)이라고 부릅니다. 개혁 이전의 자연적인 마음의 상태는 아래쪽으로 꼬이고 꾸부러진 용수철(하강하는 쿤달리니, 역세피로트, 생명나무와 분리된 선악과)에 비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개혁 후에는 위쪽으로 꼬이고, 꾸부러진 용수철(상승하는 쿤달리니, 세피로트, 생명나무와 합일하는 선악과)에 비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깐 개혁 전에는 사람은 지옥을 향해서 내려다 보고 있으나 개혁후에는 천계를 향해서 올려다 보고 있습니다.
(신의 섭리 319) (2) 마음에 속한 유기적 형상 안에서도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그 주체는 인간의 애정과 사랑이다.....이것들은 영원한 그리고 안으로 굽은 나선들이 생명을 받는 형상으로 신기하게 묶이어 있는 안팎으로 도는 소용돌이와 같다고 밖에 정의를 내릴 다른 방법이 없다(vortex-like circlings inward and outward, after the manner of perpetual and incurving spirals wonderfully bundled together into forms receptive of life).
(3) 악인과 선인 안에 있는 이 순수한 유기적 실체와 형체의 특질을 이제 설명할까 한다. 선한 사람에게 있어서의 이 나선형은 앞으로 구부러져 있으나 악한 사람에게 있어서의 이 나선형은 뒤로 구부러져 있다(In good people they spiral forward, but in evil people backward). 또 앞으로 구부러진 나선형은 주께로 향하고 주로부터의 흐름을 받아들이나(spiral forward are turned to the Lord and receive influx from Him) 뒷면으로 구부러진 것은 지옥을 향하며 거기서 나온 흐름을 받는다(spiral backward are turned toward hell and receive influx from there). 하나 알아둘 것은 그것들이 뒷면으로 향하면 뒤로는 열리나 앞으로는 닫히는 것이다. 앞으로 열려 있는 한 앞으로는 열리나 뒷면으로는 닫히는 것이다.
(아이반호프의 비전의 카발라 6장) '선악과 그 자체 역시 하나의 심벌이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두 흐름을 상징한다. 하나는 '위'로부터 흐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 흐른다. '위'는 태양 또는 천상을 상징하고 '아래'는 지구의 중심 또는 지옥을 상징한다.'
유교의 제사론
제사는 죽은 조상을 모시는 것이다. 제사상 중앙에 있는 신위(神位)는 곧 조상을 가리키고, 그 조상의 강신(降神)을 상징한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분리되고,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가서 사라진다고 믿는다. 이 혼백을 부르기 위해 하는 의식이 첫째가 분향(焚香 : 향 피우기)이고 둘째가 강신주(降神酒 : 흙과 모래와 풀을 담은 모사기에 술을 세 번 붓는 것)이다. 향을 피움으로써 혼을 부르고, 술을 부으므로서 백을 부르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조상이 우리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신위다.
유교에서 말하는 혼백(魂魄)
성리학에서는 사후 세계를 부인한다(성리학자들이 유물론자들이다). 이 우주 이외에는 다른 세계가 없다. 그러므로 혼백도 이 세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리학에서는 하늘을 양(陽)이라 하고, 땅을 음(陰)이라 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이 (가시적인) 하늘로 올라가고 백이 땅으로 내려가는 것은 혼은 양기(陽氣)로, 백은 음기(陰氣)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것이 말하는 것은 소멸을 뜻한다. 유교는 인간 존재의 불멸을 부정한다.
유교의 믿음은 유물론자들과 같다.
비물질적인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적인 또는 마음을 의미하는 혼(魂)은 물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魄)은 혼보다 아래이기 때문에 이 또한 물질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다니는 귀(鬼)가 된다고 해도 이에는 변함이 없다. 성리학에서는 비물질적인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혼백육(魂魄肉)은 같은 차원에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고 이 우주의 모든 사물이 동일 상태 또는 수준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거시계와 미시계(양자계)로 나눠지듯이 혼과 백과 육체도 나눠진다. 예를 들면 물은 수증기와 물과, 얼음으로 있다. 이와 같이 혼과 백과 육체도 있다. 육체가 말단으로서 가장 조잡하고, 다음이 백(魄)이고, 가장 위의 순순하고 정묘 한 것이 혼(魂)이다. 그렇지만 성리학 안에서 이 셋은 모두 물질적인 것이고 형이하(形而下)에 속한 것으로서 기(氣)의 여러 상태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영계와 자연계 사이의 중간계
기독교에서는 비물질의 영혼을 믿는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믿는다. 사후에도 존재한다는 영혼불멸의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진전한다. 사람이 사후에도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이는 논리적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 개신교는 사후세계를 이 두 세계로만 국한해서 말을 하지만 로마 가톨릭은 천국과 지옥 말고 다른 세계를 말한다(칼빈은 초기에 중간 상태를 말했다. 낙원과 음부, 그의 저작 혼수론에서, 참조‘오직 성경만이 판단 기준이다’ 신계훈 박사 지음). 그 세계가 중간계로서 연옥이다. 이 중간계를 말하는 또 다른 종교가 불교이다.
불교는 세계를 여섯 가지로 말한다.
첫째 지옥도(地獄道), 둘째 아귀도(餓鬼道), 셋째 축생도(畜生道), 넷째 아수라도(阿修羅道), 다섯째 천상도(天上道), 여섯째 인간도(人間道)이다. 마지막 인간도는 이 자연계를 말하고, 나머지 다섯 가지는 사후세계를 말한다. 축생도가 이 지상의 동물계를 말하기도 하지만 저 세상의 각각의 도에도 동물들이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천국에 대응하는 것은 천상도이고 나머지 네 개는 지옥에 대응한다.
불교는 이 여섯 세계 말고 다른 세계를 하나 더 말하는데, 로마 가톨릭의 연옥에 해당하는 중간계인 바르도계이다. 바르도(Bardo)는 두 단어로 구성되었다. 바르(Bar)와 도(do)이다. ‘바르’는 사이를 뜻하고, ‘도’는 둘을 뜻한다. 둘 사이 또는 둘 가운데를 의미한다. 둘은 첫째 자연계와 영계(천국과 지옥)를 말하고, 둘째 죽음과 환생을 말한다.
개신교에서 믿고 있듯이 저 세상은 천국과 지옥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영계와 자연계 사이의 중간계 즉 중간 영계가 있다. 이 세계에서 불교는 육도윤회(六道輪廻, 환생)를 말하는 것이고, 칠칠재라고도 하는 49재 천도재(薦度齋)를 드리는 것이다. 이 중간계는 선과 악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있다. 속과 겉이 선으로 충만한 사람 또는 속과 겉이 선으로 일치하는 사람은 죽으면 이 중간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올라간다. 반대로 온전히 악한 사람은 바로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상태는 순선(純善)이나 순악(純惡)이 아니기 때문에 이 중간계를 거쳐야만 한다.
중간계는 사람이 천국이나 지옥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게 교정하는 공간이다. 천국은 순선의 세계요, 지옥은 순악의 세계다. 어중간한 상태로 그곳으로 갈 수 없다. 로마 가톨릭의 연옥에도 이런 정화 개념이 있다. 물론 이 연옥은 천국으로 갈 사람들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중간 과정이 없다. 그래서 불교의 바르도계와 임마누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중간 영계와는 차이가 있다. 사람의 상태는 각 세계에 맞게 정렬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세계로 갈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그 정렬을 이루면 좋겠지만 대다수는 그런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중간계는 필연적이다.
천국과 지옥은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 천국은 하나의 거대한 사람으로 형상화된다. 이를 스베덴보리는 대인간으로 말하고, 카발라에서는 아담 카드몬(Adam kadmon)으로 말한다. 이 대인간(the Grand Man, Greatest Man)에 대응하는 지옥의 형상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괴물에 가깝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단순히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발바닥을 맞대고 거꾸로 서 있는 것이다. 이쪽에서 보나 저쪽에서 보나 상대방은 거꾸로 있다.
왜 서로에 대해서 등을 돌린채 거꾸로 있는 것일까? 그것은 천국과 지옥의 모든 것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선이라 하는 것을 지옥에서는 악이라고 하고, 천국에서 진리라 하는 것을 지옥에서는 거짓이라고 한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신을 향하나, 지옥에 있는 존재들은 신을 등지고 있다. 천국에 있는 최우선의 사랑의 대상은 신이나 지옥에 있는 존재들의 최우선의 사랑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다. 이렇게 모든 측면에서 천국과 지옥은 반대다. 그래서 에너지의 흐름도 반대다. 천국의 생명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지옥의 생명은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 사람은 생명을 받는 그릇으로 창조가 되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그릇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 그 생명을 어디로 받느냐면 머리로 받는다. 이것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똑같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있는 곳을 향하여 몸을 돌리고, 그 대상을 바라본다. 선인은 위를 바라보고, 악인은 아래를 바라본다. 그래서 선인은 서 있고, 악인은 물구나무를 한다.
(아이반호프의 비전의 카발라 6장) '선악과 그 자체 역시 하나의 심벌이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두 흐름을 상징한다. 하나는 '위'로부터 흐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 흐른다.
선악과를 아이반호프는 선의 에너지와 악의 에너지 이 둘로 보고서 선은 위에서 아래로, 악은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은 아래에서 위로 가는 에너지는 지옥의 에너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번 말했듯이 가이아(Gaia)의 에너지도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 그러나 이 에너지의 속성은 지옥으로부터 발산되는 에너지와는 다르다. 지옥은 천국을 끌어내려서 짓밟을려고 하는 것이고, 가이아는 사랑해 달라고 끌어내리는 것이다.(중력의 법칙) 연인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목적은 사랑하기 위해서이지만 원수나 경쟁자가 끌어당기는 이유는 상대방을 해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이 지옥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아니고, 사랑(교화)하기 위해서다.
쿤달리니와 생명나무와 선악과
쿤달리니는 사람의 겉사람 안에 있다. 신체상으로는 척추기저부 즉 성기와 항문 사이 회음혈(물라다라 차크라)에 있다. 이 쿤달리니 여성 에너지는 잠든 것과 각성한 두 가지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잠든 상태로 있다. 소수의 사람들 안에서만 깨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각성한 쿤달리니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선이나 악이나 모두가 에너지다. 볕(선)과 빛(진리)은 에너지를 말한다. 선한 사람이 똑바로 서 있고, 악한 사람이 물구나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에너지의 흐름 때문에 그런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거쳐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그 사람은 바르게 서 있게 되지만 지옥으로부터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선악과의 열매를 먹으면 그 사람은 거꾸로 서 있게 된다.
쿤달리니의 각성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천기(天氣)와 사기(邪氣, 魔氣)의 호흡에 달렸다. 천지합일 호흡법 즉 빛 명상법은 영성(靈性)의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누구나 다 하고 있는 것인데 다만 차이점은 무의식적으로 하느냐, 의식적으로 하느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이 선인인가 악인인가에 따라 자기 자신이 호흡하는 그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짐작하고 있듯이 악인은 사기(邪氣)를 호흡하고, 선인은 천기(天氣)를 호흡한다.
천기(天氣)를 호흡하는 이는 자기 자신 안에서 속사람과 겉사람의 하나됨과 하늘(아담 카드몬)과 땅(가이아)의 하나됨에 보탬을 주고 있는 고마운 존재인 반면에 사기(邪氣)를 호흡하는 이는 자기 자신을 속과 겉으로 분리하여 겉사람으로 있게 하고, 하늘과 땅을 분리시켜 서로 싸우게 만드는 해로운 존재다.
인체에는 에너지 시스템이 있다. 에너지 센터(차크라)가 있고, 에너지 저장소(단전=차크라)가 있으며, 에너지가 흐르는 길(氣道)이 있다. 도교와 한의학에서 말하는 삼단전과 12경락과 기경팔맥도 이것을 말하고, 힌두교의 차크라와 나디(경락=기도)도 그렇다. 그 중에서 에너지가 폭포수처럼 흐르는 중심대로(大路)가 있다. 그것을 요가에서는 수슘나라고 하고, 동양에서는 중맥(中脈), 중도(中道)라고 한다. 이 기도는 회음부의 회음혈과 정수리의 백회혈의 척추를 따라 수직으로 잇는 선이다. 이 중도 위의 천문(天門)과 아래의 지문(地門)이 열려야 천기가 위 아래로 흘러들어와 온 몸에 (두루 소통하여) 충만해지고, 천기의 바다 안에서 호흡할 수 있게 된다.
천기(성령)가 사람 안에 입류하여 주는 이익 중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가장 큰 것은 척추기저부에 잠들어 있는 쿤달리니의 각성(覺醒)이다. 쿤달리니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열린 하늘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뿐이다. 빛이 비추이지 않으면 쿤달리니는 밤인 줄 알고 계속 잠을 잔다.
쿤달리니는 두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잠자는 뱀과 깨어난 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잠들었을 때의 뱀이 취하고 있는 모습과 깨어났을 때 뱀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잠들어 있을때는 반시계방향으로 세바퀴 반을 또아리 튼채 뒤돌아서 고개를 숙여 수슘나의 입구를 머리로 막고 있으나 깨어났을 때는 사람과 같이 앞으로 향하여 시계방향으로 또아리를 튼채 코브라처럼 고개를 뻣뻣이 들고 언제라도 정수리 위로 솟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잠들어 있을 때 쿤달리니 뱀이 수슘나의 입구를 머리로 막고 있다는 것은 천기(天氣)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뱀의 (얼굴) 윗입술 부위나 머리로 위에서 아래로 수슘나의 통로를 타고 내려오는 천기를 막고 있는 것이다. 그 반면에 이렇게 천기를 막으면서 동시에 입을 아래로 벌려서 아래에서 위로 들어오는 사기(邪氣)를 입으로 받아 먹는 것이다.
지옥에서 심어진 선악과의 열매를 쿤달리니 뱀이 먹으면 그 자신도 그 선악과와 같은 에너지 흐름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반시계방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잠을 자는 것이다.
차크라(Chakras), 하리쉬 요하리 (p 129) 생명력의 보고인 쿤달리니 샥티는 또아리를 튼 뱀이나 남근 혹은 삼각형으로 묘사된다. 쿤달리니 뱀은 스바얌부(자아 탄생) 남근상(링감) 둘레를 세 바퀴 반 정도 감고 있다. 입은 위를 향하여 벌린채 척추를 따라 흐르는 수슘나 경로와 연결되어 있다. 깨어나지 않은 쿤달리니 샥티는 입 속에 꼬리를 넣은 채 남근상 주위를 감은 상태로 있다. 이때 입은 아래를 향해 있기 때문에 에너지의 흐름도 아래를 향하게 된다. 그러나 첫 번째 에너지 중심 센터인 물다라다 차크라를 작동시키면 이 잠재 에너지는 즉시 그 머리를 코브라처럼 치켜들고 에너지 중앙통로를 향하여 자유로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요가의 목표 : 요가에 따르면 시바신과 쿤달리니 샥티(여성 에너지)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데,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시바신(생명나무=주님)은 정수리에서 손가락 세 개의 폭 위에 존재하는 사하스라라 챠크라(케테르, 3층천)에, 샥티는 등골의 가장 밑 부분/척추 기저부인 물라다라 챠크라(에테르체, 말쿠트에 상응, 말쿠트는 발에 상응하나 가장 아래 있기 때문에)에서 세 번 몸을 꼬은 뱀의 형태로 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모든 요가 수행의 근본은 바로 이 잠을 자는 쿤달리니 샥티(선악과)를 수행을 통해 일깨워서 사하스라라 챠크라에 존재하는 시바신에게로 이끌어 올려서 합일(Yoga)시키는 것이다.(생명나무와 한 쌍인 선악과는 코브라처럼 위로 솟구쳐 있지만 분리된 선악과는 인체의 맨 아래에 등을 돌린 채 앉아서 졸고 있다)
쿤달리니, 아지트 무케르지 (p14) <요가 쿤달리니 우파니샤드 Yoga Kundalinni Upanishad>(1.82)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성스러운 힘, 쿤달리니가 갓 피어난 연꽃의 줄기처럼, 빛나고 있네.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앉아, 그녀의 꼬리를 입에 물고 신체의 중심에 반쯤 조는 듯이 쉬고 있네.’정적이고 아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쿤달리니는 척추 기저부에 있는 스바얌부-링가 또는 중심축을 둘레로 세 바퀴 반을 나선형으로 감아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뱀으로 상징된다. 쿤달리니 샥티가 쭉 뻗어나가면 그녀는 정수리 위까지 상승하여 시바와 결합하는데, 척추의 중심을 따라 의식의 잠재력이 자리하고 있는 차크라 즉 정신의 중심들을 통과하여 그녀의 본질인 에너지로서 현현된다.
각성한 뱀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 수슘나의 탯줄을 통해서 들어오는 천기(天氣)의 양분을 받고 튀어 오르려고 힘을 낸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때 비로서 가이아(Gaia)의 지기가 깨어난 뱀에게 힘을 준다. 지기(地氣)가 하는 일은 쿤달리니 뱀을 성장시키고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껍질을 쪼아(줄)될 때 어미 닭이 밖에서 같이 그 껍질을 쪼아주는(탁) 것과 같다(줄탁동시啐啄同時). 깨어난 뱀이 수슘나의 길을 따라 오르면서 하나 하나의 단계들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것이 에너지 센터인 차크라이다. 차크라는 수백 개 정도가 있지만 중요 차크라는 7개다. 대 차크라라고 하는데, 이 차크라들은 진동수(꽃잎수 : 4, 6, 10, 12, 16, 96, 1000)가 다르다. 진동수란 차원을 말한다. 우리가 서로 보고 만지고 듣고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진동으로 진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7개의 차크라는 창세기의 일곱 날에 상응한다. 거듭남의 첫째 날은 가장 말단에 있는 물라다라 차크라에 상응하고, 갓 깨어난 쿤달리니가 이 차크라에 있는 것이다. 쿤달리니가 수슘나를 통해서 7개의 대 차크라를 통과한다는 것은 거듭남의 7일 또는 7단계를 의식이 통과한다는 것을 말한다.
(펌) 중맥은 서장밀교에서 명맥(命脈),대도맥(大道脈)이라 하고, 범어로는 아푸또우디(afudoudi)라 하며 티벳어로는 우마(wuma),건다마(gendama),수오수오마(suosuoma)라 한다. 이러한 명칭은 모두 중맥의 중요성과 공능을 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명맥은 중맥이 일체 중생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표시한다. 위 중맥의 명칭들 중 대도맥은 그 중요성을 표시한다. 즉, 중맥이 성불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말한다. 범어 아푸또우디는 중맥의 공능을 말하고 있다. 뜻은 모든 묘한 지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티벳어 우마는 중맥이 성취의 어머니라는 뜻이며, 또 다른 중맥에 대한 티벳어 명칭인 건다마는 일체의 공덕지혜를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일체 모든 것이 이곳으로부터 생겨난다는 뜻이다. 중맥의 중요성은, 그것이 중생이 고통의 바다를 벗어나는 지름길이고, 성불열반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밀법을 수행하여 얻는 첫번째 대성취가 바로 중맥의 개통이다. 중맥개통 후, 수행자는 신통력을 구비할 뿐만 아니라, 이미 생사와 열반의 차별이 없어진다. 때문에 <<협파다걸근본속>> 중에는 "기가 중맥에 들어가지 않은 자는 망상으로써 보리를 증명하려 하여, 마치 손으로 모래를 비벼 기름을 얻으려는 자와 같다" 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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