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입니다.
인생이야 말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친밀히 동행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친척으로 왕궁에서 일하는 관료였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52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리던 웃시야 왕이 죽자 ‘조국 유다는 어떻게 될까?’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엎드려 기도하는 중 환상 중 높은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기대했던 기도응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것은 “그래, 내가 네 민족을 지켜 주리라”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듣거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기도 응답도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사야가 받은 응답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사야는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였으나,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하나님은 자신이 생각하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사야는 하나님의 손만 바라고 있었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나니, 모든 문제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고 안 죽고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두려울 것도 염려할 것도 없어졌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고백만 나올 뿐입니다,
여러분 중에 삶의 기반의 흔들려 두려운 분이 있습니까?
사업의 기반, 가정의 기반, 건강의 기반이 무너지는 위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제가 1984년 회심을 경험하였을 때, 가장 애통하였던 것이 그동안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드리지만 정작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사야 시대도 종교적인 열심은 특심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제물과 분향과 피에 대하여 하나님이 지겨워하셨고, 역겨워하셨고, 짐이 되었고, 지치셔서 견디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사 1, 11-15).
이사야도 그런 점에서 자유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자마자 했던 고백이 화로다, 나는 이제 죽게 되었도다. 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상을 보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분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발 강가의 에스겔이 그랬고,
힛데겔 강가의 다니엘도 그랬고,
밧모섬의 요한도 그랬고,
디베랴 바닷가의 베드로도 다메섹 도상의 사울도 꼬꾸라졌습니다.
부흥은 이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 보면 염려도 탄식도 절망도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저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할 뿐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슬픔과 절망과 흔들림과 분노에 빠질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기쁨과 소망과 든든함과 환희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비관주의자가 되고 하늘을 바라보면 낙관주의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는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102장) 찬송하게 됩니다.
염려는 사라지고 오직 깨끗함을 받으며 사랑만 하며 살기를 원할 뿐입니다,
새해를 앞둔 지금, 이 부흥이 임하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