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시회(URISI)
 
 
 
카페 게시글
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9월호와 수수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62 09.09.01 06:4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가을 예감에 사로잡힌 비오는 8월 31일에 월간 ‘우리詩’ 9월호가 배달되었다. 긴 여름에 충전할 시간을 가졌던 시인들의 작품이 싱그럽다. ‘권두 시론’에 황정산의 ‘시인의 출신’을 이달의 ‘우리詩’ 16인 특집은 신작시로 임보 ‘대竹’, 김석규 ‘삼국사기 열전’, 추명희 ‘대낮에도 꿈을 꾼다’, 최진연 ‘한국 토종 아이들’, 이혜선 ‘어떤 셈 법’, 박영원 ‘득도(得道)’, 주경림  ‘증발’, 양승준 ‘여름밤’, 이인평 ‘사슴의 눈동자 같은 시심’ 외 1편, 송시월의 ‘검돌 외 각1편을 실었다.


 신작 시조로는 신필영 ‘무한궤도’, 오종문의 ‘옹기 속에는 울 엄니가 살고 있다’, 박정호 ‘섬겨 듣는 나무’, 정휘립 ‘고사목 · 7’, 김사계 ‘약속의 땅’, 박성민 ‘깡통은 유통기한 보다 먼저 죽을 수 없다‘외 각각 1편씩 뽑았다. 신작 소시집에 ‘황근남의 나리꽃 - 추자도 탐방기 1’ 외 5편, 조삼현의 ‘월출산에서’ 외 4편, 임보의 시 창작교실에 연재 7회 ‘당신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영미시 산책으로는 C. S. Lewis의 ‘Our Daily Bread(우리의 일용할 양식)’를 실었고, 박승류 담당의 ‘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시’로 ‘고창수’의 ‘박 첨지의 눈짓’, 정병근의 ‘벽과 요강’, 신작 특집에 이덕규의 ‘자결自決’, 권혁수의 ‘에덴 건강원’, 안현미의 ‘총잡이들의 세계사’와 황도제의 ‘고별’,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는 신현락의 ‘찬밥’, 신작특집으로 조정의 ‘찬밥‘, 한옥순의 ‘빈집’, 장혜승 ‘배릿하다’ 정하해 ‘그를 안다’, 한병준의 ‘열린 문’, 황구하 ‘꿈꾸다, 꿈’, 김경선의 ‘세공의 기술’, 김세형 ‘식사’, 김정원의 ‘점자’, 서효인 ‘잭슨빌의 사람들’ 송영미 ‘서쪽의 국경수비대’, 이향숙 ‘한가위’, 최성훈 ‘희망 고물상’, 문지숙 ‘랭그리 팍의 회상을 들으며’, 박현웅 ‘바람의 눈물’ 등 각각 1편씩 실었다.


 ‘우리詩 월평’은 박해림의 ‘생의 기웃거림, 단절을 넘어서’, 한시 읽기로 진경환의 한시 ‘한 편의 여러 생각·4’을 실었다. 이번 비가 그치면 곧 가을이 오리라. 일요일 한경면 용수리에서 찍은 수수와 우리詩 9월호의 시 5편을 골라 싣는다.

 


 

♧ 대[竹] - 임보


누에가 그 맑은 몸으로

은사(銀絲)의 가는 실을 뽑아내듯

대는 그 빈 몸으로 소리의 실을 뽑아낸다


그것을 못 믿겠거든

달이 밝은 밤 잠시

대밭에 나가 홀로 서 있어 보라


아가의 손 같은 작은 댓잎들이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지며

흰 달빛에 맑은 바람을 걸어

얼마나 신묘한 소리를 짜 내는지


그래도 못 믿겠거든

저 단소나 대금의 가락을 들어보라

대의 몸에서 풀려나온

영롱한 소리의 실에

그대의 귀가 깊이 묶이지 않던가


대가 몸을 그렇게 비운 것은

한평생 자신이 빚은 소리의 실꾸리를

그 속에 담아 두기 위함이다.



 

♧ 낮달의 사인(死因) - 조삼현


내가 어머니를 죽게 했어요

욕조 찬물에 담궈 물고문을 한 것이지요

남들은 저 양반 죽기 전에 이승의 때 다

벗었으니 좋은데 가셨겠다 했지만

내 생각은 오직 그러지 말 걸 그랬어요

당신의 몸 깊숙이 밴 지린내며

치매의 흔적들 지우지 말 걸 그랬어요

낮달처럼 야윈 젖이며 앙상한 손마디

아, 이 눈부시게 슬픈 문이 나를 세상에 보냈구나

당신의 여미고 싶은 곳을, 이젠

부끄러움도 놓아버린 생의 헐거워진 근력을

구석구석 고문했던 것이지요, 나는

어머니 좋아? 하고, 게슴츠레

눈 풀린 당신은 오르가즘인 양 흐뭇해 했지만

우리 서로 믿지 말 걸 그랬어요

삼복더위를 믿지 말 걸 그랬어요

어머니 치가 떨리시나요

왜 이렇게 부들부들 떨고 계세요

고향집 뒤란 플라스틱 욕조 노천탕에서

어머니 시원해? 오냐 시원타 했지만

용서 참 쉽군요

내 죄를 덮으려 사흘을 더 사셨죠

낮달이 원하는 물의 체온을 간과했어요.

 


♧ 총잡이들의 세계사 - 안현미


 세상은 흙먼지 날리는 무법천지의 서부와도 같다고 아이가 말했을 때 나는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마네킹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아이의 염색한

머리 색깔과 마네킹의 머리 색깔이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피나 콜라다 빛 머리

색깔, 이방인처럼 낯선 아이의 말풍선 속에서는 욜라 짱나 담탱이 같은 해체된

모국어가 쉴 새 없이 튀어나오고 구겨진 교복엔 기름때가 얼룩져 있다 지구의

반대편에선 검은 오일 때문에 유혈 전쟁이 한창이지만 검은 오일이 장전된 총을

들고 짙은 선탠이 된 자동차 뒤꽁무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아이의 총에선

불꽃이 일지 않는다 선탠이 된 차창이 스르르 열리고 가발 쓴 대머리 아저씨가

골드카드에 사인을 할 때 아이는 서부의 총잡이 존 웨인이 되어 조수석 짙은

화장을 하고 마네킹처럼 앉아 있는 제 또래의 여자아이를 구출하는 상상을 한다

다행히 그건 이 도시에서 무시로 일어나는 일이어서 아이는 제 총을 가발 쓴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통에 들이밀지 않고 만국기가 펄럭이는 주유소 앞 바보

같은 허풍선이 거인 풍선 인형만 펄럭펄럭 춤을 추고 있다



 

♧ 찬밥 - 신현락


아버지는 세상의 찬밥이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도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는 외향성의 가지를

싹뚝싹뚝 잘랐던 내향성의 할아버지와 각을 지며 살았다


한식날, 찬밥 한 덩이 들고 아버지를 찾아 간다

평생 할아버지의 찬밥이었던 아버지처럼

나도 아버지의 찬밥이 아니었을까, 란 생각이

잡초처럼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무덤의 뗏장이 드문드문 무너져 내렸다

뗏장의 각을 뜬다

이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더운 눈물

고물고물 다른 세상으로 가려는 울음을 삽날로 콱콱 잘라 버린다


 

이른 봄 햇살에 고슬고슬 막 지어낸 밥공기 같은

무덤을 보니 마음이 먼 경전처럼 아득해졌다

그래, 세상과 각을 지고, 세상에서는 찬밥이었으나

우리 식구에게 아버지는 따뜻한 밥이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따뜻한 밥을 먹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저승집 문전에 찬밥을 올린다

아버지, 저승에서는 부디 찬밥이 아니기를…

뼈와 뼈 사이에 부는 바람에게

내 몸의 관절을 발라주며 생각한다


세상의 관절이란 관절을 다 모아서

식구의 따뜻한 한 끼의 밥 앞에서 무릎 꿇을 수 있겠으나

아버지, 찬밥처럼 뒹굴던 세상에게

허리 굽히지 않는 강철같이 빛나는 뼈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싶어 한다 - 문지숙


포도주처럼 향기로웠던 내 청춘도 가버리고

모든 것이 스산하게 저물어가는 황혼의 가을이 찾아오면

아주 작은 눈빛에도 갈대는 흔들리고 싶어 한다

이제 일몰의 시각은 점점 다가오고

아무리 체념의 체념을 거듭해도

두렵고 고독 한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을 알아도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세월에 주름이 깊어 가면

아주 작은 바람에도 갈대는 흔들리고 싶어 한다

 

 

 

 
다음검색
댓글
  • 09.09.01 10:18

    첫댓글 개인적으로 한번도 뵈온적이 없는 김창집님께 감사드립니다. 卒詩를 높으신 선생님들의 옥고 밑에 걸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