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라는 구절은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온 세상 만물이 태양에서 나오는 빛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또 사물을 인식하게 되듯
우리는 빛이신 주님을 통해 진리와 생명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 삶은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앞이 캄캄하여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인생의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의 빛, 나의 구원’(시편 27,1 참조)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소망에 응답하시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해처럼 환하고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제2독서는 이를 직접 목격한 베드로 사도의 증언을 전하며 주님의 변모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위대함과 권능을 드러내 주는 이 사건은
베드로 사도에게 잠시 자신의 처지를 잊게 만들었지만
두고두고 큰 힘과 위로가 되었고 결국 베드로는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사명은 빛 자체이신 주님을 닮아 세상의 빛이 되는 삶입니다.
우리가 빛이신 주님 가까이에 머물면 머물수록 우리 또한 그분의 빛을 받아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도
우리의 빛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또한 빛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최근 있었던
어떤 신부님과의 만남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주교님께 자신이 있던
소임지 임기가 다 되어 문의를 드렸더니 후보를 한번 추천해 보라고 하셨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이 다른 것보다 ‘잘 웃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답니다.
주교님께서 “왜 그러냐?”고 물으시니, “이곳은 많은 신자가 방문하는 곳이니
밝게 환대해 줄 수 있는 사제면 좋겠다.”라고 대답하셨답니다.
과연 사제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환한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야말로
주님의 빛을 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가 항상 당신 곁에 머무르며 당신의 빛으로 우리의 허물을 일깨워주시고,
또한 당신이 주시는 온기를 받아 우리 마음이 냉담해지지 않게 도와주소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뜨거운 사랑을 닮아 당신 생명의 빛 속을 걸어가게 하소서.”
글 : 오세민 암브로시오 신부 –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
주님을 맞이하는 순간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들과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셨는데,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결과인
‘영광스러운 부활’을 미리 보여주시고자 거룩한 변모의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구세주로서 자신의 신원을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신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과 확신’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들의 임종을 가까이에서 자주 접합니다.
가끔 그 과정에서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환자의 남은 여명을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예측 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혈압과 맥박수, 호흡 양상, 소변량 등을 통해 기대 여명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습니다. 저희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이러한 기대 여명을 바탕으로
임종이 가까운 환자와 남은 가족들을 위해 만남의 시간을 마련해 드리곤 합니다.
오랜 투병 생활로 환자와 만나지 못한 가족이
마지막으로 함께 시간을 보낼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끔, 기대 여명보다 오래오래 버텨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중요한 시험 발표를 앞둔 딸을 위하여 결과가 날 때까지 힘을 내주시던 아버지.
손자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해외로 출국했던 아들의 귀국을 기다리던 어머니.
지방 먼 곳에서 올라오는 가족을 위해 버텨주던 환자들까지. 의학적으로는
언제 임종하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힘을 내어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찌 보면 길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귀한 순간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신이 존재하고 계심을, 나아가 우리를 지켜보시고 돌보아주고 계심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우리들의 믿음을 다시 한 번 견고히 하도록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글; 김보경 스텔라 – 성 빈센트 병원 호스피스 완화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