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평생(平生)
동네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7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그러나 칠십을 산 노인은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이 오면 하겠노라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구나."
그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이 모두가 한평생(平生)이다.
재미있고 해학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시(詩)다. 하루를 살았건, 천 년을 살았건, 한평생이다.
하루살이는 시궁창에서 태어나 하루를 살았지만, 제 몫을 다하고 갔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간다고 외쳤다니 그 삶은 즐겁고 행복한 삶이었을 것이다.
매미는 7년을 넘게 땅 속에서 굼벵이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7일을 살고 가지만 득음(得音)도 있었고, 지음(知音)도 있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인간은 음을 알고 이해하는데 10년은 걸리고, 소리를 얻어 자유자재로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자면
한평생도 부족하다는데, 매미는 짧은 생(生)에서 다 이루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은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있어도 즐기지 못하고 모두 다음으로 미룬다.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이 오면 하리라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다니 이 얼마나 허망하고 황당한 일인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맹목적으로 허둥대며 살다가 후회만 남기고 가는 게 인생인가 보다.
천 년을 산 거북이는 모든 걸 달관한 듯 세상에 바쁜 일이 없어 보인다.
느릿느릿 걸어도 제 갈길 다 가고 제 할 일 다 하며 건강까지 지키니 천 년을 사나 보다.
그러니까 하루를 살던 천 년을 살던 모두가 일평생이다.
이 시(詩)에서 보면, 하루살이는 하루살이대로, 매미는 매미대로, 거북이는 거북이답게 모두가 후회 없는
삶인데 유독 인간만이 후회를 남기는 것 같다.
사람이 죽은 뒤 무덤에 가보면, 껄껄껄 하는 소리가 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웃는 소리가 아니라
좀 더 사랑할 걸,
좀 더 즐길 껄,
좀 더 베풀며 살 껄,
이렇게 껄껄껄 하면서 후회를 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인가?
<받은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