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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묵상글 (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우리가 하는 많은 짓들.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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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우리가 하는 많은 짓들
우리가 많이 하는 짓들
예전에 제가 본당에 잠깐 있을 때 옆 교회 전도사가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분이었는데 기도할 때마다 그 여자분 생각이 나서 너무 괴로웠고,
그래서 일생 독신으로 사는 신부에게 무슨 비법이 있나 배우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온 김에 하나는 따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왜 천주교 신부는 그렇게 술을 많이 먹느냐?
성경에 술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제가 성경에 하느님께서 흥겨운 술을 주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수님도 먹보요 술꾼으로 비난받으실 정도로 드시지 않았느냐?
이렇게 반박했지요.
둘 다 아전인수인 셈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무엇입니까?
저기 논에 물 대는 것이 아닙니까?
물을 끌어다 자기 논에 대듯이
우리 인간은 권위 있는 말을 서로 끌어다
자기주장을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는 데 쓰지요.
술을 왜 안 먹어야 합니까?
사랑 때문에 안 먹어야 하는 거지요.
술을 왜 먹어야 합니까?
사랑 때문에 먹어야 하는 거지요.
며칠 전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 저녁 식당에 오셨습니다.
지금 저희 <여기 밥상> 식당이 공유식당을 시작하였습니다.
점심은 삼천 원짜리 식당을 그대로 하고 저녁은 이주민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이주민 자매가 제값을 받는 장사를 하고 그래서 술도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옆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시끄럽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막 늘어놓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신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대 한국 사람들이
술을 먹고 많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아예 술을 못 먹게 하였는데
그것이 한국 개신교의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손을 씻는 정결례도 이스라엘의 전통일 뿐입니다.
요즘 청결을 강조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흙 가지고 놀지도 못하게 하고 돌아오면 꼭 손을 씻게 하는데
적당히 균들과 함께 살아야 싸워 면역력이 생길 텐데
너무 지나쳐 오히려 아이들의 면역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에 영성적 의미도 있지요.
씻어야 할 더러운 손은 먼지가 묻은 손이 아니라
뇌물을 받아먹은 손이요 피를 묻힌 손이지요.
사랑에 어긋나는 더러운 손은 놔두고,
제 건강을 챙기기 위해 손을 씻는 정결례는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책을 받을 것입니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남을 해치는 뒷담화나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할 짓입니다.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위로와 격려와 힘을 주는 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짓은 어떤 짓들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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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마르 7,9)
예로부터 어디서나 ‘먹는 문제’가 항상 제일 예민합니다. 싸움 중에서도 ‘밥그릇’ 싸움이 가장 치열합니다. 공동체에서도 가장 말 많고 힘든 소임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방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안식일에 제자들이 벼이삭을 따먹었다고 문제 삼는가 하면,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문제 삼고, 단식하지 않는다고 문제 삼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루살렘에서 두 번째(첫 번째는 3,22절에 나옴)로 온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먹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곧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고 시비를 겁니다. 이는 단지 위생이나 청결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위 ‘정결법’에 대한 논쟁입니다.
그런데 ‘손 씻는 정결법’은 율법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시비의 준거로 내세운 것은 “조상들의 전통”(구전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느님 신앙의 핵심과는 상관없는 일로 당시의 사회를 이끌어가던 전통관습방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를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호도하여 종교적 권위를 덧붙였습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하느님의 계명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관습을 앞세우는 어긋난 행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레위기> 11장의 ‘정결법’에 의거하여 음식물만 깨끗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이 깨끗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잘못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음식을 먹는 사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몸의 깨끗함이 아니라, 마음의 깨끗함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잘못 적용하여 손을 씻는 예법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마르 7,7-9)
오늘날 우리도 ‘사람의 규정’을 지키려다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사회적 관습이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의 규정’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막상 ‘복음의 정신’을 놓칠 때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잘못된 관습이나 전통들, 그리고 잘못 배운 교리나 가르침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 규범’이나 ‘자기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복음정신’과 ‘하느님의 뜻’을 묻고 그분께 의탁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마르 7,8)
주님!
몸에 밴 잘못된 관습과 전통에 매여
당신의 계명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틀에 맞춘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지키려다
당신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지키기에 앞서,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묻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제가 원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하늘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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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껍데기보다 알맹이가 중요하다
오늘 복음은 유다인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이 있었는데, 왜 손을 씻게 되었는가는 관심이 없고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에만 마음을 둔 것을 지적해 줍니다. 사실 모든 음식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육체적인 생명 양식으로써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을 합당한 마음으로 받아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손을 씻는 것은 위생의 의미도 있지만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미사 전례 때에 참회 예절이 있듯이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예의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사제는 미사 때 예물을 준비하고 손을 씻으면서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외적인 행위를 통해 내면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외적인 전통을 고집하면서 내용과 의미를 소홀히 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기 지켜야 할 전통과 관습이 있지만 그것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재해석하고 쇄신할 수 있어야 미래에 희망이 있습니다. 더욱이 사람의 전통은 사람의 전통일 뿐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계명을 대신 하거나 거기에 맞설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 해도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법이 훼손된다면 그 전통은 마땅히 쇄신되거나 부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2,22)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7,6-7). 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알맹이보다도 껍데기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여전히 같은 꾸중을 들을 것입니다. 내용보다도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하며 거기에 얽매이다 보면 우리의 예배는 헛되고 헛된 행위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을 중요시하되, 그 의미와 내용을 제대로 알고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전통과 관습이라 하더라도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좋은 것이 아니니 마땅히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간혹 “부득이 주일미사 참례를 하지 못하여 주님의 기도 33번을 하였는데 고해성사를 봐야 되느냐?” “몸이 불편한데 미사 전례 때 앉고, 일어서고, 꿇는 것을 따라 해야 하느냐?” “얼마 전에 고해성사를 봤는데 판공성사를 또 봐야 하느냐?” 라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질문에 대답을 일일이 해 드려야 합니까? 마음의 중심이 어디 있는가? 살펴야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행하는 것의 의미와 내용을 알고 거기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명하신 바에 얼마나 사랑으로 응답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법은 함부로 무시하여서도 안 되고 내 입맛에 맞게 합리화시켜서도 안 되느니만큼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전통과 관습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하든 하는 척하지 말고 사랑을 담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요한3,16).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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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다양한 종교가 서로 대립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공동선을 향해 서로 연대하는 사회입니다. 다양한 종교가 연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삶의 대화입니다. 이웃 종교와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말과 판단과 행동을 삼가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서로를 가로막는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하여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신학자들의 대화입니다. 여러 종교의 전문가들이 각자 자기 교파의 교리를 깊이 설명하고, 그 특성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대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이는 충분하지 못한 신학 지식과 교리 이해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교파에 속한 종교인들이 서로의 교리와 생활에 관한 잘못된 인식과 공정하지 못한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예, 가톨릭은 마리아교다.) 타 종교에 대한 교리와 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 공동선을 위한 협력입니다. 모든 종교인은 보편적인 가치에 따라서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폭넓은 협력 활동을 할 것을 권고합니다. 학문과 예술을 진보시키기 위해서, 기아와 재난, 문맹과 빈곤 등 소외 계층이 겪는 곤경에 대한 대책 마련에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특히 생명 경시 풍조를 극복하기 위한 생명 운동과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한 생태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전쟁과 폭력을 막고 자유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넷째,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종교인의 공동의 언어입니다. 기도는 일치를 이루는 힘입니다. 기도가 없는 종교는 참된 종교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함께 기도한다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
교황청은 2023년 12월 18일에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사제의 ‘동성 커플’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교황청 교리성은 선언 내용과 관련해 “축복은 모든 규정에 어긋난 상황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모든 이를 환영한다는 의미”라며 “축복을 통해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모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아선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교리성은 또 “가톨릭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상에 따라 축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고 풍부하게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교황청 선언문을 옹호하는 측은 이번 결정을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뒤집는 역사적 결정’이라며 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것이라며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교회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부모나 자신이 죄를 지어서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돌에 맞아 죽게 될 여인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나와 다른 모습,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삶을 산다고 해서 그들이 죄인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예외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 소수자를 포함해서 모든 창조물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통하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남에게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충실하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둘을 식별하는 지혜를 청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사람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더 자주 찾아뵙고 만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도와 사랑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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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손을 씻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라는 전염성 강하고 치명적인 병의 시대를 살았었습니다.
그 코로나 시대 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역은 마스크를 쓰고 손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연일 보도되는 뉴스의 한 부분은 손소독제가 바닥났다는 보도였습니다. 국회의원들도, 연예인들도, 유명하다는 그 누구도 연일 손 씻기를 홍보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손 씻는 것은 우리에게 이롭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주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계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너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은 잘 지키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은 것은 지키지 않는다. 너희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잘 지키면서 하늘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홀히 한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규율과 규정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들과 그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규정 또한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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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좋은 스피커입니다.
필리핀에서 영어 공부할 때의 일입니다.
제가 다닌 영어 학원은 스파르타식 학원이었습니다.
하루에 평균 12시간을 영어 공부에 사용합니다. 그 학원에는 또 다른 미션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스피치(연설)를 하는 것입니다. 처음 몇 주는 A4 용지에 영문으로 원고를 적고 그것을 보며 5분 스피치를 합니다. 그리고 조금 적응이 되었다 싶으면 보지 않고 외워서 스피치를 합니다.
어느 날 제 스피치가 끝나고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렇게 다른 학생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He is good speaker
(그는 좋은 스피커입니다.)
사실 저는 이 말이 기분 나빴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사물에 비유하는 것은 대부분 좋은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다시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사제로서의 저의 역할은 좋은 스피커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들려주신 것을 그대로 널리, 정확하게, 맑게 전하는 것이 사제로서의 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스피커가 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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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바위 안에 천사가 갇혀 있음을 느끼고 그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대리석 속에 갇힌 천사를 보았고, 그가 차가운 돌 속에서 풀려날 때까지 돌을 깎았다.”
미켈란젤로는 원석을 다듬어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원석만을 보고서는 “여기에 아름다운 다비드상이 있군.”, “여기에 천사가 갇혀 있군.”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원석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기에 지금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원석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요? 실제로 우리는 사랑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자녀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누군가의 사랑에 큰 힘을 얻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게 만드는 사랑을 향해 ‘사랑의 미켈란젤로 효과’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천사를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천사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원석만을 바라보고서 ‘쓸데없는 돌이네.’라며 단정을 지어 버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사람 안에 천사가 있는데, 사랑을 통해 그 안의 천사를 꺼낼 수 있지만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분명 조상들의 전통에 맞지 않는 행동이고, 또 비판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두고 위선자라며 꾸짖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8)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정결 예식이 합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또는 서원을 채우고자 성전에 예물을 바치는 것이 의무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그저 사람의 전통일 따름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오로지 사랑 안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판단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특별한 곳에서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작은 관심과 반응을 통해 사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의 몸과 성장을 응원하면서 이웃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진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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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20대에는 욕망의 지배를 받고, 30대는 이해타산, 40대는 분별력, 그리고 그 나이를 지나면 지혜로운 경험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그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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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하느님은 어디에서 사시는가?”
-존엄한 품위의 우리 안에, 우리와 더불어-
“우리가 바로 성전입니다”
강론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숙제거리를 가득 안고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참 공부할 것이, 배울 것이 많은 하루하루입니다. 한 일간신문은 “가족파산-조여오는 빚, 가족의 파멸” 1면의 톱기사에 이어 두면에 걸처 상세히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각자도생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또 다른 일간신문은 “내몸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주제로 5회에 걸쳐 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별 시리즈 목차는- 1.시간이 새겨진 나이든 몸, 2.크고 아름다운 살찐 몸, 3.다름을 알려준 장애가 있는 몸, 4.이대로도 괜찮은, 아픈 몸, 5.규정을 거부하며 존재하는 몸-으로 이루어 졌으며, 어제는 4번째 항목을 다루고 있는 특집기사였습니다. 삶은 몸이라 할만큼 몸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지혜가 참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 모두가 공부의 대상입니다. 공부중의 평생 공부가 하느님 공부, 예수님 공부, 참나를 아는 공부입니다. 공부의 궁극 목표는 무지에서의 해방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참 무지한 인간입니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이나 비극은 거의 대부분이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무지의 죄, 무지의 악, 무지의 병, 동방영성에서 한없이 강조하는 인간의 무지입니다. 불가의 삼독(三毒)이라 일컫는 탐진치(貪瞋癡)도 무지의 결과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전쟁도, 기후위기의 원인도 결국은 인간 무지의 탐욕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궁극의 필생 공부는 무지에서의 해방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전쟁도 결국은 무지와의 전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자 지혜이신 예수님과 하나될 때 무지에 대한 승리입니다. 하느님 지혜의 빛, 말씀의 빛만이 무지의 어둠을 퇴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매일미사가 그리도 고마운 것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최고 처방이 이 거룩한 미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논쟁입니다. 여기서 무지와 지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예수님입니다. 조상들의 전통과 관습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무지로 인해 하느님의 계명이 덮여 버리면 완전히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현실이 되어 버립니다. 하느님 계명의 지혜로 분별되어야 하는 전통이요 관습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전통과 계명간 관계를 깨끗이 정리해 주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무지를 밝히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바로 인간 무지의 보편적 현실을 가리킵니다. 무지에 눈이 멀어 하느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규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코르반의 예를 들면서 하느님을 섬긴다는 구실로 교묘하게 부모 공경을 거스르는 이들의 위선과 무지를 꾸짖습니다. 무지로 인해 마음이 주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어 헛되이 주님을 섬기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니 사람되는 공부가, 지혜로운 사람되는 공부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평생공부인지 깨닫습니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진정 교회 공동체의 보물입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의 건물도, 전통좋고 자연경관 수려한 수도원도 그 안에 지혜로운 사람이 없으면 다 공허할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수도원이나 사찰을 찾든지 우선 찾아 확인해 보는 것이 참으로 깨어 있는 지혜로운 고승(高僧)입니다.
우리 교회나 수도원을 저는 서비스업이라 합니다. 서비스업의 삼대필수조건도 첫째도 사람이요 둘째도 사람이요 셋째가 환경입니다. 첫째 사람이 친절하고 거룩하고 좋아야 하며, 둘째 실력이 있어 유능해야하고, 셋째 안팎의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비스업에는 병원의 예가 적절합니다.
이 서비스업의 세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분이, 26동안 제 치아를 치료해주고 있는 독실(篤實)한 믿음의 치과의사 형제입니다. 감히 명의(名醫)요 성인(聖人)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사람 좋고 실력 좋은 의사에 환경 좋으면 최상이겠지만, 사람이 친절하고 좋아도 실력이 없어 무식, 무능한 의사라면 정말 문제입니다. 무식, 무능한데다 자기를 몰라 용감하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제1독서의 솔로몬의 기도가 참 멋집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에 너무 중심을 두는 듯 솔로몬의 무지가 엿보입니다. 저는 거대한 건물의 성전을 볼때마다 믿음의 위력과 더불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땀과 피를 흘렸겠나 생각하곤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기도합니다. 유대인이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전통적 기도 자세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어찌 하느님께서 땅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갈림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옳고 마땅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건물이 아닌 땅위의 존엄한 품위의 사람들 안에 있음을 몰랐습니다. 참 거룩하고 좋은 형제들의 공동체가 바로 하느님이 거하는 집임을 몰랐습니다. 성지가 있어 성인이 아니라, 성인이 있어 성지임을 몰랐습니다. 사람이 잘 살면 묻히는 어느 곳이나 명당이라 합니다.
<어린왕자>에 사막이 빛나는 것은 그 안에 샘을 품고 있기 때문이란 말도 있듯이, 명산대찰이 빛나는 것은 그 안에 고승(高僧)이 있어서 이고, 외적 건물이 성전이 빛나는 것은 그 안에 참 좋은 거룩한 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참 거룩하고 좋은 사람들이 없는 건물뿐이라면 참 공허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이점을 솔로몬은 착안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안에 있는 솔로몬입니다. 시작도 웬지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솔로몬입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사십니까? 창세기에 하느님은 당신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화려한 건물이 아닌 끊임없는 회개로 원래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한 우리들 안에, 우리들과 함께 사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하느님의 현주소입니다.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거룩한 장소나 어떤 바리사인들의 손씻는 거룩한 행위도 인간의 거룩한 품위의 존엄에 비교하면 모두 빛을 잃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지닌 이들의 공동체 성전에서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 자비와 지혜의 빛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제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에 이어 일본의 순교자들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당시 일본은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에서 박해중 예수회 회원인 성 바오로 미키는 33세에 체포되어 교토의 옥에 갇혔다가 작은 형제회 수사 6명, 예수회 수사 2명, 일본인 신자 15명 등 23명과 함께 1597년 1월3일부터 오사카를 거쳐 1월9일에는 나가사키로 출발합니다.
이들은 무려 한달이상 혹한속을 걸어서 2월5일, 도중에 자진하여 합류한 신자 2명과 함께 모두 26명의 신자들은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사카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합니다. 동시대의 저자가 쓴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를 보면, 이들의 순교장면시 신앙고백을 대하면 감동 그 자체입니다.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됩니다. 일본 순교자 26명의 순교성인 공동체 성전을 통해 영원히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성 바오로 미키가 포함된 순교자들 26명은 1862년 6월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안에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성인영성의 디엔에(DNA), 순교영성의 디엔에(DNA) 같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회개로 깨끗해진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당신이 머무시는 거룩한 거처로, 성전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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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참믿음 참바람 참사랑>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마르 7,11-12)
하느님 믿음과
사람 믿음이
갈림 없으니
하느님 믿음이
사람 믿음이요
사람 믿음이
하느님 믿음이라야
참믿음입니다
하느님 바람과
사람 바람이
갈림 없으니
하느님 바람이
사람 바람이요
사람 바람이
하느님 바람이라야
비로소
참바람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갈림 없으니
하느님 사랑이
사람 사랑이요
사람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라야
참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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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교부들의 말씀 묵상✝️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마르 7,3)
바리사이의 표시
‘바리사이’는 ‘분리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완전하다고 여기는 생활 방식을 따랐고, 자기네 방식이 다른 어떤 것보다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율법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이들의 부활을 인정했고, 천시들과 영의 존재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사도 23,8 참조). 그들은 엄격한 생활 방식을 따랐는데, 일정 기간 금욕과 정결을 지키는 관행이 있었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였습니다(루카 18,12 참조). 율법 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의례적으로 놋그릇과 접시와 잔을 닦았고(참조: 마태 23,25; 마르 7,4), 십일조를 바치고 맏물을 봉헌했으며(참조: 마태 23,23; 루카 11,42), 많은 기도문을 읊었습니다(루카 5,33 참조).
-다마스쿠스의 요한-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2
창조 – 밖으로 흐르되 안에 머물기
“무지한 자들이 잘못 상상하는 것과 달리, 하느님은 만물을 지으시되, 그분 자신을 벗어나지 않도록 지으셨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그분이 자신 안에서 행하거나 창조하신 모든 것은 그분 안에서 보고, 그분 안에서 알고, 그분 안에서 사랑합니다. 그분은 자신을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o}무것도 알지 않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분 특유의 것입니다.”
만유내재신론을 알지 못하는 것, 곧 만물이 하느님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무식한’ 것이라고 엑카르트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물이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사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안과 밖에 있는 것은 바닷물이 물고기의 아가미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다. 그분은 사물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사물의 바깥에 있다. 그분은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바깔에 있다. 하느님에게 안과 밖은 대립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을 수 있고, 이와 동시에 하느님도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다.(115)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 화요일 성령(성시간)의 날✝️
왕이신 예수님 당신께 영예와 영광을 드리나이다. 모든 것 위에 군림하시는 당신을 찬미 찬양하나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인류에게 받은 모든 모욕과 멸시를 보속하며 당신을 찬미합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당신의 생명을 내주신 사람들한테서 받게 될 모욕 앞에서 당신을 찬미합나다.
저에 대한 숭고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또한 당신께 감사드리지 않는 모든 이를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영예와 감사를 드리고 싶나이다. 요한복음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히여 너에게 말해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니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였으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33-37)
0 예수님, 당신은 저의 왕이시니 찬미 찬양받으소서!
(침묵 가운데 반복한다.)(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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