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존사망(操存舍亡)
[요약] (操: 잡을 조. 存: 있을 존. 舍: 집 사. 亡: 망할 망)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도망친다는 뜻으로, 사람의 양심은 이를 바르게 조정하면 존재하게 되지만, 이를 버려 돌보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됨을 이르는 말.
[출전]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 8장》
[내용] 이 성어는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 8장에 나오는 말오 그내용은 다음과 같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우산(牛山= 齊나라 동쪽의 산)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답더니, 큰 나라(제나라)도성(都城) 밖(郊於大國)에 있어, 도끼와 자귀로 베어가니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으로 자라남과 비와 이슬이 적셔주어 새싹이 늘 돋아남이 없지 않건마는, 소와 양을 또 끌어다가 먹이는지라 이로서 저렇듯이 민둥산(山)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민둥산을 보고 일찍이 재목(材= 바탕)이 있지 않았다고 하니, 이 어찌 산의 본래 모습(山之性)이겠느냐? 모름지기 사람이 보존하고 있는 본성(本性)인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 양심(良心=본래 사물의 시비.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마음)을 버리는 그 까닭이 또한 도끼와 자귀로 나무를 날마다 베어냄 같으니,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 낮과 밤에 쉬는 바와 새벽의 기운에 그 좋아하고 미워함이 사람과 서로 가까움이 거의 드물거늘, 낮에 하는 소행(所行)이 이를 어지럽혀 없어지게 하니, 어지럽히기를 거듭하면 밤사이에 길러지는 깨끗하고 조용한 기운(夜氣)을 보존되지 않는다. 밤사이에 길러졌던 깨끗하고 조용한 기운(夜氣)을 보존할 수 없게 되면 짐승과 다름이 없게 된다。사람들이 그 짐승 같음을 보고서 일찍이 바탕(材)이 있지 않았다고 하나니, 이 어찌 사람의 정(情)이겠는가?
진실로 그 길러줌(養)을 얻으면 자라지 않을 것이 없고, 진실로 그 길러줌(養)을 잃으면 사라 없어지지 않을 것이 없으리라。(山의 나무와 사람의 마음이 그 이치가 같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잡으면 보존하고 버리면 잃어서 출입에 때가 없어 그 향함을 알지 못함은 오직 마음을 이름이로다.’고 하셨느니라.”
孟子曰:「牛山之木嘗美矣。以其郊於大國也,斧斤伐之,可以為美乎?是其日夜之所息,雨露之所潤,非無萌蘗之生焉,牛羊又從而牧之,是以若彼濯濯也。人見其濯濯也,以為未嘗有材焉,此豈山之性也哉?雖存乎人者,豈無仁義之心哉?其所以放其良心者,亦猶斧斤之於木也。旦旦而伐之,可以為美乎?其日夜之所息,平旦之氣,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則其旦晝之所為,有梏亡之矣。梏之反覆,則其夜氣不足以存。夜氣不足以存,則其違禽獸不遠矣。人見其禽獸也,而以為未嘗有才焉者,是豈人之情也哉?故茍得其養,無物不長;茍失其養,無物不消。孔子曰:『操則存,舍則亡。出入無時,莫知其鄉。』惟心之謂與!」
조선 중기의 문신 조익(趙翼)은 포저집(浦渚集)제24권 도촌잡록(道村雜錄) 상(上)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맹자》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은 심법(心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앞에 나오는 두 대목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본래 선한데 물욕에 해침을 당해서 잃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말하기를 “제대로 길러지기만 한다면 어느 것이든 자라나지 않는 것이 없고, 제대로 길러지지 못하면 어느 것이든 시들지 않는 것이 없다.〔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대로 기르면 길러지고 제대로 기르지 못하면 시드는 것이야말로 만물이 모두 그러하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사람의 선한 마음이 물욕에 해침을 당해 잃게 되는 것 역시 제대로 기르지 못해서 시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도망친다.〔操則存 舍則亡〕”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이것은 제대로 기르고 제대로 기르지 못하게 되는 이유를 말한 것이다. 무릇 방목(放牧)하고 벌채(伐採)하여 곡망(梏亡= 욕심 때문에 본래의 선한 마음을 잃음)하면서 제대로 길러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두 마음을 놓아서 도망치게 하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만약 항상 붙잡아 보존하면 물욕이 해칠 수 없게 되어 이 마음이 자연히 내면에 있게 될 것인데, 이처럼 물욕의 해침을 당하지 않고서 그 마음이 보존될 경우, 보존된 그 마음이 바로 양심(良心)이니, 이것은 양심을 제대로 길러서 자라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마음을 붙잡아 보존하는 공부야말로 양심을 기르는 방법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이하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조존사망(操存舍亡)의 글.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마음이 늘 문제다.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이 죽 끓듯 한다.
맹자는 “붙들면 보존되고 놓아두면 달아난다(操則存 舍則亡)” 했다. 붙들어 간직해야지 방심해 놓아두면 마음이 밖에 나가 제멋대로 논다.
대학(大學)에서는 “마음이 나가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고 했다. 정자(程子)가 “마음은 내 안에 있어야만 한다(心要在腔子裏)”거나 “나가버린 마음을 붙들어 와서, 되풀이해 몸 안에 들여놓아야 한다(將已放之心, 反復入身來)”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음이 달아난 자리에는 잡된 생각이 들어와 논다. 쓸데없는 생각을 깨끗이 닦아내야 영대(靈臺)가 거울처럼 빛나, 사물이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옛 선비는 마음을 붙잡아 간직하는 조존(操存) 공부를 특별히 중시했다. 그것은 계신공구(戒愼恐懼), 즉 끊임없이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붙들면 잡념이 사라진다. 잡념이야 누구나 있지만, 중도에 이것을 걷어내느냐, 아니면 거기에 휘둘리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 마음을 붙들어두려면 응취수렴(凝聚收斂)해서 보수정정(保守靜定)해야 한다. 마음을 응집하여 한 지점으로 거두어 모은다. 그 상태를 잘 간수해 고요하게 안정된 상태로 잘 유지하는 것이 보수정정이다. 조존은 힘이 들고 사망은 편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좋은 일은 늘 힘들다. 애써서 이루는 일이라야 가치가 있다. 거저 얻어지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거(伍擧)가 말했다.
“사사로운 욕심이 넘치면 덕의(德義)가 드물어진다. 덕의가 행해지지 않으면, 가깝던 사람은 근심하며 멀어지고, 멀던 사람은 어기며 항거한다(私欲弘侈, 則德義鮮少. 德義不行, 則邇者騷離, 而遠者拒違).”
가까운 사람이 등을 돌렸는가? 먼 사람이 대놓고 대드는가? 그것으로 사사로운 욕심이 지나쳐, 내게 덕의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통렬하게 반성할 일이지 원망하고 화낼 일이 아니다. 조익(趙翼·1579~1655)이 ‘도촌잡록(道村雜錄)’에서 쓴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첫댓글 조존사망(操存舍亡),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도망친다는 뜻으로,
사람의 양심은 이를 바르게 조정하면 존재하게 되지만,
이를 버려 돌보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됨을 이르는 말.
좋은 일은 늘 힘들다. 애써서 이루는 일이라야 가치가 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 마음 수양의 글 감사사합니다
공부함니다
眞好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