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시명 : 뉴포토그래퍼 텐보이스 그룹전 'PHANTASMAGORIA(판타스마고리아)'
유형 : 대전 사진전
날짜 : 2025년 10월 30일~11월 10일
관람시간 : 11:00~20:00, 전시마감일 : 10:00~15:00, 월요일 휴관
장소 : 갤러리 탄(TAN), 대전 서구 문정로148(탄방동, 굿앤월드 빌딩 502호)
문의처 : 갤러리 탄(TAN) 042)489-8025
기타 : 작가와의 대화 : 2025.11.02(일요일). PM 4:00
[전시 서문]
2025 뉴포토그래퍼 TEN VOICE그룹전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이정희(기획 및 평론)
일상의 혁명
20세기 유럽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68혁명이 아주 사소하고도 개별적인 섹슈얼리티에서 출발하여 전통적 패러다임의 고루한 사고방식과 산업화 시대의 눈먼 정책에 저항하는 거대한 물결로 번져갔듯이 우리의 사진작업의 처음 시작은 지극히 본질적인 욕망- 무언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되었으나 이제 우리의 예술행위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무관할 수 없게 되었다. 개별적인 것은 사회적이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은 다르지만 이번 전시 역시 기존의 시선과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려는 ‘파괴자들’의 이야기이다. 예술행위가 가장 아름다운 별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탐구자들’의 욕망이라면. 과연 예술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2025년 텐보이스 그룹전 <Phantasmagoria>는 전시라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실험의 장이며 실천의 장이다.
우리는 무엇을 재현하고 알레고리화하고 상상하는가-
디지털 시대의 첨단기술은 예술사진의 제작방법과 크기, 전시방식을 변화시켰고 그에 따른 담론도 달라졌다. 디지털 기술은 사진의 새로운 미학과 가능성을 열어줌으로 사진매체의 확장을 가져왔다. 80인치 이상의 타블로사이즈로 확대되고 있는 사진은 작품의 크기와 선명한 색채 확보와 함께 미디어의 무궁무진한 발전에 힘입어 앞으로도 오랫동안 예술계의 왕좌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이미 50여 년 전, 비평가이자 기획자였던 더글라스 크림프는 사진을 재현 매체로 경계짓는 고정된 틀에서 ‘픽쳐스’라는- 회화, 영화, 사진을 통합한-새로운 시각용어를 사용하여 보다 확장된 사진의 의미를 제시한 바 있다. 이때 ‘pictures’는 매체의 구분보다는 이미지가 어떻게 의미를 구성하느냐에 따른 하나의 전략으로서 사진예술을 새롭게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술 발달로 대형사진으로 전달되는 물성이 사진이라는 2차원 평면에 커다란 동력을 부여하였다면 텐보이스가 참고하는 인문학 텍스트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 이미지의 구성에 큰 역할을 한다. ‘판타스마고리아’에 참여한 13명의 사진작업 40여 점은 풍부한 색채와 대형사진을 통해 시대의 담론을 적시하는 현대적 감수성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정직한 재현을 통해 초현실적인 기호를 발산하는 김미경의 작업과 자본가들의 교묘한 전략에 추동되는 사태를 고발하는 김춘숙의 작업은 순수자연과 자본화된 도시라는 상보적인 관계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콜라주기법으로 시선을 해체시킨 신은주의 상징적 알레고리, 노동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돌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조각과 사진 사이를 넘나드는 정옥영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사진매체가 가진 특성을 보다 넓게 확대해석하고 활용한다는 면에서 현대사진이 가진 다양성을 보게 될 것이다. 정석호의 중첩된 잔상들은 실체없이 환영처럼 흐릿하게 떠돈다. 정박된 직장인이 느끼는 영원한 노마드적 삶에 대한 동경과 기억의 잔상이 겹쳐지면서 아득한 환상을 끌어낸다. 곽풍영의 드론작업은 부감의 시선을 통해서 사물과 공간에 내재한 깊이를 제거하고, 풍경을 납작한 추상으로 만든다. 입체감 없는 세계, 현실과 환상이 모호하게 겹치는 부감촬영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지만, 사실을 무화(無化)시킨다. 원근이 사라지고, 깊이의 환영이 빠져나간 비현실적인 평면성 속에서 작가는 판타스마고리아를 본다. 도시의 건축물을 우리가 살아가는 터의 흔적이자 무늬로 해석한 이경환의 존재론적 성찰과 눈과 시선의 문제를 욕망에 전이되는 구조로 구현시킨 이종경의 작업은 우리를 한순간 심리적 환영에 빠져들게 한다. 성과 속의 경계를 부단히 넘나드는 최재중의 이미지와 서동훈의 부동액에 빠져든 꽃과 나비떼, 백명자의 ‘꽃’ 시리즈와 이정희의 ‘운디네’ 역시 피할 수 없는 생의 충동과 욕망의 덧없음에 대한 변증법적 긍정이다. 생의 충동만큼 강렬한 리비도가 어디 있겠는가. 최영귀가 재현한 <마라의 죽음>, <뵈클린의 죽음의 자화상> 또한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역설적인 자기긍정이며 남아있는 자가 겪는 허무를 넘어 바로크 비극의 영웅처럼 자기 구원에 이르고자 함이다.
13개의 성좌를 찾아서
2025년 뉴포토그래퍼 텐보이스 그룹전 <판타스마고리아>는 13개의 작가들이 쏘아올린 담론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성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판타스마고리아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환상과 허깨비들이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에 이른다. 죽음에 관하여, 사랑에 관하여, 돈과 도시와 욕망에 관하여, 우리가 사는 세계와 생에 관하여, 무의식과 기억의 비탈을 가로지르는 이미지의 파편을 따라가노라면 의미의 별자리가 성립될 것이다. 전시는 사진이라는 이미지의 별자리를 통하여 잃어버린 세계와 균질화되고 물질화된 세계에 대한 저항이며 균열을 내는 일이다. 우리에게 꿈, 욕망, 사랑, 자유, 유토피아, 예술은 동의어이다,
[작품 설명]
◎ NEW PHOTOGRAPHER 작가
초록의 수작1, 80x80cm, pigment print, 2025
김미경/초록의 수작 (手作)
조명을 받은 잎은 반짝인다. 풍성한 가지는 왁스를 칠한 듯 매끈하고, 줄기는 한 점의 흔들림 없이 수직으로 서 있다. 물도, 흙도 보이지 않는다. 뿌리는 감춰진 듯 사라지고, 초록은 자라고 있다기보다 공간의 균형을 맞추는 구조물처럼 놓여 있다. 자연을 닮았으되, 스스로 자라기보다 보이기 위해 조율된 형상에 가깝다. 살아 있으나, 풍경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그렇게 식물은 ‘심어진다’.
카페의 구석, 호텔 로비의 정중앙, 사무실 책상 한켠…
도심 속 실내 공간은,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초록을 조용히 배치한다. 그 안에서 식물은 살아 있지만, 자람을 멈춘 채 공간의 안정을 위한 장치처럼 놓여 있다. 자연에 대한 향수라기보다, 보기 좋고 편안한 풍경을 설계한 구성물에 가깝다. 그렇게 식물은 점점, 살아 있는 자연이라기보다 ‘보기에 좋은 현실의 일부’가 된다.
왜 사람들은 초록 앞에서 위안을 받을까? 그 감각은, 오랜 시간 생존을 위해 자연을 주시해온 몸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혹은, 과잉 자극과 정보에 지친 도시의 일상 속에서, 초록이 가장 단순하고 안정된 색채로 감정을 정돈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생명을 지속하려는 본능이 조용히 반응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연이라 믿고,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러나 그 장면은 종종, 욕망의 안정과 균형을 위해 조율된 시각적 장치에 더 가깝다. 벤야민이 말한 ‘판타스마고리아’는 현실 속 욕망이 이미지로 연출된 하나의 환영을 뜻한다. 이 초록 역시, 자연이라기보다 감각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기획된 풍경이며, 조율된 위안으로서 기능하는 하나의 이미지다.
<초록의 수작>은 그러한 장면 앞에 잠시 멈춘 시선에서 출발한다. 손으로 조형된 듯한 식물, 정지된 생명, 연출된 자연. 나는 그 경계에 놓인 식물들을 바라보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함께 바라본다. 그들이 응시하는 그 풍경 앞에서, 나 역시 문득 깨닫는다. 진짜 자연이 아닌, 감각을 위해 조율된 이미지 속에, 나 역시 조용히 안착해 있었음을. 초록은 결국, 나의 안정을 위해 설계된 정교한 구성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식물은 생명이자, 동시에 시선을 위한 조형물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경계에 다시 한번 멈춰 선다.
대도시의 환등상, 150x120cm,pigment print
김춘숙/대도시의 환등상
나는 오랜 시간 작업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인형들을 융단 위에 펼쳐놓고 사진을 찍었다. 인형은 놀이의 대상도, 단순한 수집품도 아닌, 나의 내면과 사회를 투사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이 작업의 출발점은 유년의 기억이다. 인형은 나에게 한때 ‘친구이자’ 분신이었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을 은밀히 담아두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는 깨달았다. 이 순수했던 사물조차도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철저히 기획되고, 포장되고,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 벤야민이 말한 Phantasmagoria는 환영의 체계다. 이제 더 이상 인형은 동심의 친구가 아니라, 브렌드의 상징, 마케팅의 정서, 소비를 자극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사진은 그런 이중적인 의미를 껴안고 있다. 인형들을 융단 위에 배열한 이 장면은 마치 기억의 성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상품 전시장의 진열대를 연상시킨다. 관람자는 순수와 소비 사이에서 시선을 주저하며, 그 틈에서 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작업을 통해, 과거의 감정과 현재의 시스템 사이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조작되고, 경험이 어떻게 상품화 되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동심이라는 내면의 진실조차도 자본이 어떻게 환영으로 포장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 환영의 장막을 들춰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내 기억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설계한 이미지로 나의 과거를 소비하고 있는가?” 이 전시는 그 질문에서 출발하고, 그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다른 하나는 도시 한복판, 향수회사의 상업 건물을 거대한 핑크색 리본으로 감싼 설치 작업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장소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무엇이 우리의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그 감정은 누구에 의해 연출되고, 소비되는가?”
인형은 내면의 기억과 감정, 즉 순수했던 동심의 원형을 상징한다. 반면, 핑크 리본은 자본이 만들어낸 시각적 감정의 극치다. 리본은 그것을 더 환영적으로, 더 욕망하게 만든다. 이때 인형과 리본은 판타스마고리아적 관계로 연결된다. 두 작업은 하나의 주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감정과 기억이 언제부터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이 되었는지를 묻는 행위 그것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Beutiful my life, 100x75cm,pigment print, 2025
백명자/Beutiful my life
나의 사진은 한 인간의 내면에 깃든 2개의 중층적인 내면이다. 얼음꽃 정물 2점은 화려하게 피어난 꽃을 얼려 찍은 것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화려하고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을 표현하였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내 인생을 상징한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나만의 색으로 표현한 내 인생의 환타지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텐보이스팀이 그동안 읽고 나눴던 ‘벤야민의 ’파리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내 작업의 밑바탕이 되었다. 벤야민의 ‘파리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19세기의 파리의 현상을 꿈의 표상으로 독해한 몽타주 텍스트이다.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아케이드를 바라보며 그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상품이 어떻게 신화화되는가를 목도한다. 거대한 쇼윈도우에 장식된 화려한 상품들, 이 상품들의 신전에서 벤야민은 궁극적인 이미지를 본 것이다. 쇼윈도우에 진열된 상품들을 몽롱하게 스쳐 지나는 소비의 원초적 풍경이다. 상품은 개인들에게 어떻게 팔려가고 소비되는가? 유리로 덮인 아케이드는 도시라는 거대한 미궁 안의 미궁이다. 미궁을 구축한 자본가들의 교묘한 전략은 대중들의 환상과 욕망과 유혹을 부추긴다. 명품관 안의 화려한 상품들, 전시장의 수억대의 고가의 상품들은 물신화되고, 대중들은 그것들을 숭배하고 도취된다. 일종의 판타스마고리아이다. 화려한 나의 꽃들은 마크퀸의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그는 바니타스적인 욕망과 리비도를 말하지만 나는 물신화된 사물의 유혹적인 손짓을 꽃정물로서 표현해보았다.
얼려있는 꽃 2점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주었다면 거대한 크기의 꽃작업 1점은 물산회된 상품들의 매혹과 판타스마고리아로 대립시켰다. 언제나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정신적인 것과 물적인 것은 대립되면서도 공존한다. 모순되고 상반된 두 개의 시선은 꽃이라는 은유적 상관물을 통해서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과 뜨겁게 추구하는 생의 불꽃으로도 설명될 수 있겠다.
Resurrection, 85x50cm, pigment print, 2024
서동훈/Resurrection
꽃과 곤충들의 죽음이다
문명의 인간에 의해 꺾이고 밟혀죽은 꽃들
자동차에 치여 갈갈이 찢겨 생을 다하지 못한 배역없는 자들의 죽음
전자파와 미세먼지 온갖 환경오염으로
사라져간 죽음이기도 하다.
이들은 우리들의 어릴적 꿈, 희망, 사랑, 행복을 나눠준 친구였으며
시인의 시어 속으로 불리던 동무이기도 하다
이들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함께해야 할 중요한 자연의 존재이다
독나방, 파리, 모기, 빈대가 해충이라 이름하여 인간에게 해가 된다고 하나
각자의 삶에 있어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그들은 그들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술문명의 가속화로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병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모든 생명체들이 공존할 수 있는 가치에 귀기울이고
존중할 때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고 인간 역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다
니체는 우주적 생명력을 말한다
삶의 욕망은 끝없는 것이어서 결핍감에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고
욕망은 우주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넘쳐나고
생명과 혼을 불어넣는 근원이라고 말한다
난 여기서 (비극의 탄생) 디오니소스신 의 부활을 떠올려 본다
날아오르는 나비떼 버려진 꽃을 구성해 힘없고 쉬워 보이는 죽음을
다시 부활시켜 나는 이들을 통해 투영되고
이들은 나를 위해 투영되어 꿈과 희망 사랑이 넘치는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이들의 부활로 인해 나 또한 다시 태어난다.
사라지는 방식 1, 100x75cm, pigment print, 2025
신은주/사라지는 방식
사라짐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존재가 형태를 바꾸어 다른 방식으로 현존하는 과정이다.
사라지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흔적과 잔영, 파편으로 남아 시간과 공간 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나의 작업은 이처럼 파편화된 현실과 기억, 경험의 흔적들이 어떻게 이미지의 파편으로 응축되고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한다. 우리는 온전한 ‘전체’를 기억하거나 경험하기보다 끊임없이 부서지고 흩어지는 단편들을 통해 존재를 이해한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환영의 연속이며, 실재와 환상, 명확함과 모호함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 속의 유령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변주되고 소멸과 생성의 사이를 오가는 존재들이다.
나의 사진은 바로 이 불확실하고 흐릿한 존재의 중간지대를 포착하려 한다.
이 파편들은 완전한 의미를 거부하며, 하나의 확정된 해석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들은 열린 텍스트로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야 하며, 바로 그 점에서 ‘사라지는 방식’이라는 개념이 의미를 갖는다.
존재란 사라지면서도 흔적을 남기고, 소멸은 곧 새로운 방식의 현존을 낳는다.
이 과정은 단절과 연속, 상실과 발견 사이에서 미묘한 진동을 일으킨다.
사진은 이 진동의 순간들을 기록하여, 사라져가는 것들의 조용한 증언자가 된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사라짐 속에 내재한 존재의 다층성,
그 다층성 속에 피어나는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묻는다.
우리 모두는 완전한 실체를 가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파편화된 현실과 경험을 이어 붙이며 살아간다. 이 파편들은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함이 오히려 우리의 감각과 기억을 더욱 깊이 있고 풍부하게 만든다.
‘사라지는 방식’은 그래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경의이며,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미묘한 움직임이다. 사진은 그 움직임을 포착하고, 우리에게 사라짐 속에서도 계속되는 존재의 흔적을 바라보게 한다.
욕망의터무니3, 80X120cm, pigment print, 2025
이경환/욕망의 ‘터무니’
중세시대 사람들에게 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사회에 편입된 모든 인간은 돈이라는 새로운 신을 믿고 그것에 의지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속성이 집약된 현대도시와 그 도시 속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는 말의 하나로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가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원래 천사나 악마 같은 초현실적 이미지를 빛을 이용해 드러내 보임으로써 관객에게 환상적·초현실적 체험을 안기는 극적장치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발터벤야민은 현대도시를 이 판타스마고리아에 비유했다. 갖가지 상품들로 가득 찬 아케이드, 백화점 등을 통해 도시야말로 인간의 삶과 죽음, 자본주의 체제 아래 끝없는 욕망이 얽히고설킨 초현실적 공간임을 통찰한 것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그의 시에서 미로와 같은 도심의 길가 위에서 길을 잃고 물을 찾는 백조의 모습을 통해 방향을 잃고 의미 없는 일상을 반복하는 현대 도시인의 우울함을 표현하였다.
건축가 승효상은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터에 새겨진 무늬가 ‘터무니’이며, 이 단어를 우리의 존재와 이유가 모두 터에 있다고 믿은 우리 선조의 관념어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진 익숙하고 편리한 공간이지만 그곳에는 삶과 죽음, 경쟁, 절망, 고독, 희망과 꿈이 공존하는 ‘욕망의 터무니’인 것이다. 도시를 만들고 이용하는 인간들의 욕망에 따라 그 ‘터무니’도 모습이 달라져 계층별, 지역별로 특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욕망의 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 회색빛 도시의 ‘터무니’에 ‘욕망’의 색을 입혀보고, ‘욕망의 색’들을 중첩 시켜 유형화해 보았다.
undine 2, 94.2x124.5cm, pigment print, 2025
이정희/UNDINE: Phantasmagoria
“우리는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베를린에서의 러브스토리는 파리, 로마, 뉴욕에서의 러브스토리와는 다르다. 하나의 러브스토리 안에서 시대의 감각을 얻어낼 수 있으며 사회구조를 볼 수 있으며 구원의 욕망을 느낄 수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게서 일어나는 것들은 하나의 실험이다 사랑은 실험실이며 동시에 매우 순결한 어떤 것이다.”(페촐트)
신화는 오랜 기간 ’허구‘라는 프레임과 싸워왔다. 그러나 신화는 각 시대가 안고 있는 현재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시대와 지역에 따른 다양한 해석과 신화를 기반한 담론의 발생은 신화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인류의 원형을 담지한 이야기이며 신성한 역사성을 가진 것임을 말해준다. 신화의 원형이 반복적인 동일한 패턴을 구성하고 있음을 밝힌 구스타프 융이나 제임스 G. 프레이저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신화론, 마르치아 엘리아데와 같이 신화의 실재적 의미를 탐구한 신화에 대한 담론들이 있다. 신화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오늘날까지 다양한 텍스트와 미디어를 통해서 재현되고 있다.
물의 정령 ‘운디네’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여자, 남자의 영원한 사랑에 의해서만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다. 운디네 이야기에는 일정한 계보가 있다. 19세기 낭만주의시대에 푸케의 소설과 워터하우스의 그림으로 각색된 운디네 신화는 20세기 들어 미디어의 발달로 더욱 대중화되고 상업화되었다. 본 작업에 실마리가 되었던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운디네가 간다(Undine geht)>와 페촐트 감독의 <운디네>는 희생적이고 전통적 운디네 신화를 능동적인 존재로 변주하였다, 특히 바흐만이 쓴 ’운디네‘의 독백은 사랑, 배신, 언어, 여성의 억압에 관한 고발로 날카로우면서도 간절함이 배어있다.
”거의 묵묵히 Beinahe verstummt
거의 아직도 beinahe noch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den Ruf hörend
오라, 단 한번만 Komm Nur einmal
오라, Komm“(Undine geht:11/263)
이번 작업 ’운디네 – 판타스마고리아‘는 일종의 유령성을 보여준다. 환영이란 존재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운디네를 숨막힐 듯한 붉은 저녁노을 속에서 연출해보았다. 신화의 사진적 변용이다. 고정되지 않은 자유로움, 어둠에 싸인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운디네적 요소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사랑이라는 마법의 환등상은 신기루처럼, 역사의 흥망성쇠처럼 한 인간의 내면에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물위의 흔적처럼 세월이 흘러 사라진다 해서 그 기억마저 없겠는가.
특정 X의 시선 2, 20x30cm, pigment print, 2025
이종경/특정 X의 시선
본다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실상 ‘본다’는 것, 시선은 우리의 인식과 연결된다. 18세기 말에 등장한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는 환등기에 투사된이미지, 빛을 이용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였다. 여기서 투사된 이미지는 실재하지 않음에도 보는 이들은 그것을 보는 순간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것을 봐도 보는 이에 따라 ‘무슨 생각을 할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보는 이의 몫이다. 따라서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한 환영이 아닌, ‘시선의 욕망’과 연결지어본다.
‘당신이 보는 것은 진짜인가? 우리는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맞는가?’
슬라보예 지젝에 따르면 ‘욕망은 결핍의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구조화되며, 그 결핍은 언제나 상상적 환영(imaginary phantasm)을 통해 가시화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부분에서 볼 때 판타스마고리아 구조는-보는 것을 통해 결핍을 자각하고, 그 결핍이 욕망으로 전이되는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따라서 인간은 환상을 인지하고, 그 환상에 반응하며, 때로는 그것을 소유하거나 회피하고자 한다.
따라서 보는 행위는 인지로 이어지고, 인지는 다시 욕망으로 이어지는 것을 ‘눈-시선’을 통해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시선을 통해 대상의 형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X가 자신만의 세계로 보는 판타스마고리아는 환상이 넘어 환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첩된 기억2, 34x50cm, pigment print, 2025
정석호/중첩된 기억
한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여러 장면을 담았다.
그 장면들은 불규칙하게 떠올랐고,
빛과 냄새, 말 없는 순간들이 서로 엇갈리며
기억은 그렇게, 순차가 아닌 감각으로 저장되었다.
이번 작업은 기억의 중첩성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기억은 언제나 명확한 구도나 순서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흐릿하고, 감정이 겹쳐진 채,
매번 다르게 불러내어진다.
트램 차창 너머의 흔들림,
햇살 아래 머무는 시선들,
호숫가에서의 고요함.
서로 다른 시간에 찍힌 이 장면들은
내 기억 속에서 하나의 매혹된 순간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기억의 속성을 담기 위해
나는 필름카메라로 촬영하고,
디지털 코드로 이미지를 겹쳐 쌓는 방식을 택했다.
필름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을 품는다.
셔터에 눌린 빛은 잠시 숨겨졌다가,
현상과 스캔을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그 느림과 불확실성은
시간이 지나야 모습을 갖추는 기억의 구조를 닮아있다.
반면, 이미지의 겹침과 조정은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Python)을 통해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미지를 불러오고, 흐림을 조절하고, 투명도를 덧입히는 과정은
과거의 장면을 지금의 감정과 시선으로 다시 엮는 일과 닮아 있다.
이처럼 실체 없이 흐릿하게 부유하는 이미지들,
감정과 기억이 진동하며 겹쳐지는 시각적 구조는
이번 전시의 테마인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와 맞닿아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18세기 유럽의 유령극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어둠 속에서 빛으로 떠오른 환영들이 형태를 바꾸고 감각을 교란하듯,
기억 또한 고정되지 않은 채 감정 속에서 부유한다.
내 작업은 바로 그 흐릿한 경계, 기억과 감각의 사이를 시각화하는 시도다.
돌 위에 앉은 환상, 100x75cm, pigment print, 2025
정옥영/돌 위에 앉은 환상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매일 자신의 노동을 상품처럼 팔며 살아간다. 하지만 일의 과정보다 결과물인 상품, 브랜드, 돈에 더 집중한다. 이번 작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동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돌’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왜 돌인가?
돌은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노동의 도구였다, 굴려지고 쪼개지고, 쌓이면서 인간은 돌을 통해 삶의 환경을 변화시켜 왔다. 작업에서 사용된 이미지의 돌은 단순한 재료가 아닌, 노동의 물질성과 시간성을 상징한다.
작품 속의 지폐 이미지는 노동의 결과이자 화폐로 환원되는 노동을 나타낸다. 하지만 화폐는 다시 욕망을 자극하는 도구가 되며, 명품 브랜드(Gucci, Chanel 등)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현대 사회의 욕망을 형성하는 기호가 된다.
발터 베냐민은 이런 상품의 물신화를 ‘판타스마고리아’라 했다. 상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며 꿈과 이상을 약속하고, 그로 인해 노동의 실질 가치는 가려진다.
우리는 상품 속에 담긴 노동의 시간과 노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욕망에 따라 상품을 소비하게 되고, 노동의 의미는 점점 더 희미해진다. 물신의 환상은 노동의 본질을 잊게 만든다. 우리는 “얼마나 노동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가졌는가?”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노동을 상품이 아닌 노동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일은 단순히 경제적 요구를 넘어서, 인간 회복과 물신주의의 판타스마고리아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의 의지이다
이 작업은 그 환상을 잠시 멈추고,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눈에 보이는 로고와 화려한 이미지 뒤에는, 돌처럼 무겁고 단단한 노동의 흔적이 숨어 있다. 돌 위에 얹힌 이 기호들(돈, 로고)은 그 자체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진짜로 보고 있는 건 무엇인가?”
“노동의 가치는 어디로 갔는가?”
◎ 콜라보레이션 작가
아놀드 뵈클린의 죽음 ,70x50cm, Cyanotype Tannic Toning, 2024
최영귀/아놀드 뵈클린의 죽음
“모든 생명의 목표는 죽음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쾌락 원칙을 넘어서』 (1920)
이번 전시는 인간 존재를 지배하는 두 개의 충동, **에로스(생의 본능)**와 타나토스(죽음 본능) 사이, 다시말하여 사랑과 죽음에 관한 사유에서 출발합니다. 프로이트는 삶이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파괴 충동과 자기 소멸을 향한 욕망이 공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본능적 충동에 주목해는데 생의 본능인 Eros 와 thanatos 즉 모든 존재가 무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 충동으로 자기파괴, 죽음을 향한 본능이라고 했다
우리가 몰두하는 사랑(Eros)행위는 높은 강도의 자극과 긴장으로 가득 찬 쾌락이지만, 이는 실은 모든 자극이 사라진 죽음의 상태를 맛보는 일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쾌락을 좇는 우리의 욕망조차, 그 끝에는 죽음을 향한 은밀한 갈망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삶을 밀어붙이는 원동력이었고, 동시에 파멸로 이끄는 덫이기도 하기 때문입 니다
자화상<아놀드 뵈클린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윌리엄 워터하우스의<오필리어> 그리고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명화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갈망하고 축적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을 생생히 마주하게 한다.
이 전시는 ‘죽음’이라는 무게 속에서도 살아 있으려는 인간의 예술적 충동과, 무질서하게 흩어지고 쌓아논 소유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현대적 욕망의 풍경을 병치시킨다. 죽음이 곁에 있음을 알아채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창조하려 하고, 무엇을 움켜쥐려 하는가? 소유로써 존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작가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이 품는 가장 강렬한 에너지인 ‘욕망’에 주목합니다.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 남기고자 하는 욕망,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이 모든 것이 결국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더욱 강렬해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죽음을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더욱 살고자 하고, 더욱 창조하고자 하며, 더욱 움켜쥐려 합니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욕망의 풍경을 시각적 병치로 담아내려 합니다.
◎ 콜라보레이션 작가
경남 함안, 121.96x134.62cm, pigment print, 2021
곽풍영/하늘에서 본 땅_판타스마고리아의 평면
나는 종종 상공에서 대지를 내려다본다. 카메라를 들고 바라보는 이 시선은 우리 일상의 시야와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그것은 높고 차가우며, 무심한 신의 눈처럼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든다. 이 부감의 시선은 사물과 공간에 내재한 깊이를 제거하고, 풍경을 하나의 납작한 추상으로 만든다. 입체감 없는 세계, 그것은 현실과 환상이 모호하게 겹치는 장소다.
논과 밭은 나에게 단순한 농경지의 지리적 대상이 아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그것은 패턴이 되고, 무늬가 되며, 결국 기호가 된다. 지면 위에 새겨진 경작의 흔적, 물의 반사, 토양의 균열은 하나의 거대한 평면 콜라주처럼 조형적으로 다가온다. 이때 사진은 기록을 넘어선다. 부감촬영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지만, 사실을 무화(無化)시킨다. 원근이 사라지고, 깊이의 환영이 빠져나간 자리에 비현실적인 평면성이 들어선다.
나는 그 평면성 속에서 판타스마고리아를 본다. 빛과 색이 납작하게 눌린 채 겹겹이 쌓인 풍경은,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실재와 허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보는 이의 시선은 중심을 잃고, 표면 위를 떠돈다. 이때 관람은 지각이 아니라 몽상의 행위가 된다.
부감촬영이 만들어낸 이 비현실적 평면성은 아이러니하게도 풍경의 진실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실은 얼마나 복잡한 시간과 노동, 기억과 망각으로 얽힌 장소인지 말없이 웅변한다. 동시에, 이 사진들은 묻는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평면에 담긴 환영 속에서, 당신은 진실을 보는가, 아니면 단지 잘 구축된 꿈의 껍데기를 보는가?
이 사진들은 그러한 질문이 깃든 판타스마고리아의 장이다. 현실을 찍되, 환상을 드러낸다. 땅을 기록하되, 시선을 해체한다. 그리고 마침내,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욕망, 73cmx110cm, pigment print_2019
최재중/보이지 않은 욕망
현대사회의 성 문화와는 다른, 성숙된 성 문화의 표현이자 아름다움이며, 모호함과 숨김의 미학으로 절제의 미(美)를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이 간직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욕망”도 내포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이렇듯 어린아이 때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인간의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촬영대회에서 모델의 휴식을 통해 여성의 감추어진 몸에 깃든 보이지 않은 욕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여성이 성 상품화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어가면서 페미니즘(Feminism) 이 등장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경험과 역사에서 나온 것이며, 여성의 위치를 재조종하고 동등한 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운동이라 볼 수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페티시즘(fetishism)이 인간의 삶 전반에 스며들었음을 시사 하며, 구체적으로는 현대인의 사고와 행동이 욕망의 추구나 물질적 충족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내면의 초월성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활동, 정신적 욕망, 심지어 사회적 관계까지도 물질의 세계에 흡수되고 있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물화의 본질은 대상적 관계의 역전으로, 추상적이고 고정된 물질이 인간사회를 완전히 지배한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사물이나 상품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배와 그로 인한 인간의 소외뿐 아니라, 사물의 소비에 실제로 내재된 심층적인 기호적 의미를 제시했다. 보드리야르의 기호에 대한 해석에 따르면 상품은 사용 가치와 교환가치 외에 기호 가치도 갖고 있다. 오늘날의 소비는 단순히 음식이나 의복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자의 일종의 자아 실현, 즉 자신의 가치를 반영하는 소비이기도 하다. 신체 역시 소비재이며, 소비사회의 기호체계로 기호화 되기도 한다.
소비의 맥락에서 신체는 더 이상 종교적 의미의 육신도, 생산 현장에서의 노동력도 아닌 나르시시즘적 숭배나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대상인 신체는 물질적인 의미뿐 만 아니라 우리의 쾌락과 욕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추상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신체 소비산업은 완벽한 여성 형상을 구축함으로써 아름다운 신체의 기준을 만들었다. 여성들은 대중매체, 광고에 의해 제시되는 신체 이미지의 표준에 따라 자신의 몸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사회는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끝없이 자극하였고 이때문에 여성의 몸은 점차 이질화되고 왜곡된다.
일상에선 숨겨야 할 것, 부끄러운 것, 감춰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지만 누드가 예술이라는 포장을 씌우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감추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옷을 벗어야만 에로틱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술에서 추구해야 할 품격과 숭고함은 정신적 관능이다.
뉴포토그래퍼 ‘텐보이스’ 작가들 경력
이정희(기획 및 편저)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영상을, 서양철학박사과정 일부 수료.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25회의 전시기획과 40여 편의 전시평론을 썼으며 현재 현대사진회 블룸즈버리 수요Comune지도교수, New photographer대표, 이마고학회 학술위원, 여성사진가협회(KOWPA)이사. 한남대, 한밭대, 시민대학에서 교양미술 및 사진미학 강의, 2개의 아카데미를 통해 사진과 인문학의 만남을 도모하였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작가들이 매주 함께 하는 화요 뉴포토그래퍼 사진클래스에서 인문학과 미학, 미술사와 철학에 관련된 아티클과 뜨거운 이슈가 되는 국내외의 작가연구에 관련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3년 뉴포토그래퍼 <텐보이스 아르카디아를 꿈꾸며>, 2024년 <텐보이스, 그 침묵의 소리>편저 출판.
김미경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기능성 식품소재를 개발·제조하는 기업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2019년 브레송 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익숙함의 경계에서〉를 시작으로, 2024년에는 〈타자의 숲_The Other TREE〉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지금까지 30회 이상의 기획전 및 그룹전에 참여해 왔다. 집, 나무, 길, 사물 등 익숙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마주치는 낯선 감각을 포착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주요 참여 전시로는 〈감각의 방향_우회의 지혜〉(2023, 여성사진작가협회), 〈상상임신_테크니아〉(2024, 국제여성사진페스티벌), 〈8개의 황금가지〉(2025)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대전국제사진축제 특별전(2024), 청주–난징국제사진전(2024), 전주국제사진제 특별전(2025), 뉴포토그래퍼 그룹전(2021~)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하였다. 사진집으로는 눈빛출판사에서 〈텐 보이스 1-코끼리의 방〉(2023), 〈텐 보이스 2-그 침묵의 소리〉(2024)를 출간하였다. 현재 여성사진작가협회와 뉴포토그래퍼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춘숙
대학원에서 사진 영상학을 전공하고, 2011년 전시 ‘Constructed Doll’ 시리즈에서 여성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 후, 두 번째 개인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021)’에서 여성성의 은유 개념을 통해 여성성의 내재 된 본성을 표현했다. 같은 해에 세 번째 개인전 ‘Andante, Ma Non Troppo’를 전시했다. 다수의 기획전과 70여 차례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주요 전시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Amsterdam Arts Collection, 2020년 IMAGO 국제사진전 ‘Crossing Border’, 2022년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린 여성사진페스티벌 ‘명랑주파수’, 2023년 KOWPA의 ‘감각의 방향 릴레이전’과 텐 보이스의 ‘코끼리 방’전시. 책 출간, 24년에 『텐 보이스-아르카디아를 꿈꾸며』를 출판하였으며, 24년 한국 문화예술교류협회 베트남 미술협회(베트남 미술협회 미술관, 베트남) 전시. 이마고 사진학회 현대사진전(예술가의 집, 대전). 베트남미술협회가 작품을 소장하였다. 현재 여성사진작가협회와 뉴포토그래퍼 회원이며, 사진예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백명자
중부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사진영상학을 전공하고 2021년“Memory”, 2000년 “밝은 내일을 위하여” 2003년 “소리 없는 영웅들” 개인전을 했다. 해외 전시는 2015~2022년 일본 살롱블랑국제 현대 미술전에 출품했고 2019년 국제 사라예보 겨울축제 초청 한국현대 사진전 “Different Reality” ARTISTRUM12 국제현대미술전(조지아)에서 그룹전을 했다. 이마고 학회 부회장, 2021, 2022, 2023년 뉴포토그래퍼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현재는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서동훈
본업은 자동차엔지니어로 틈틈이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2019년 개인전, 2020년 초대전, 2022 진주사진축제에 참가했으며. 2020, 2021, 2022, 2023년 뉴포토그래퍼 그룹전 등 다수의 그룹전을 참여하며 사진 활동을 하고 있다. 죽은 꽃들에 대한 연작시리즈를 계속하고 있다. 2025년 8월 인사동 오미갤러리에서 <애도일기> 이후 부활을 꿈꾸는 <RESURRECTION>을 준비 중이다.
신은주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술 심리 상담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진 매체를 활용하여 심리 상담에 적용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특히, 발달 장애아, 다문화 가정, 외국인 근로자와 같은 소외 계층에 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사진 매체를 통한 ‘Art as therapy’를 실현하고자 한다. <시간을 만지다>(2024)로 개인전을 하였으며 주요 참여전시로는 〈감각의 방향_우회의 지혜〉(2023, 여성사진작가협회), 〈상상임신_테크니아〉(2024, 국제여성사진페스티벌), 대전국제사진축제 특별전(2024), 전주국제사진제 특별전(2025) 뉴포토그래퍼 그룹전(2022~) 등 다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눈빛출판사에서 출간한 사진집 〈텐 보이스 1-코끼리의 방〉(2023), 〈텐 보이스 2-그 침묵의 소리〉(2024)에 참여하였다. 현재 한국여성사진가협회의(KOWPA)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예술 심리 연구소의 대표로 상담심리학 박사과정 중이다.
이경환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 후 (예)공군준장으로 전역하였다. 이미지 인문학 수강을 계기로 작품 활동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사진과 컴퓨터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이미지로 만들고 있다. 2회의 개인전과 부산국제 사진제 등 1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이종경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영상을 전공하고, 보고 만지는 것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구체관절인형, 신체 파츠, 조각상, 더미인형, 거울 등 다양한 소재를 사진과 더불어 여러 매체를 섞어 작업하고 있다. ‘SOMNIUM’(2017), ‘Borderline: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2022),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Visible and Invisible)’(2022)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 현재는 개인 작업을 하며 문화예술교육(사진) 을 이어가며 사진과 함께 하고 있다.
정석호
경영학을 시작으로, 인문학과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위를 취득하며 서로 다른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을 넓혀왔다. 현재는 한 공공기관 소속으로 AI 연구를 이어가는 한편, 아날로그 필름 사진과 디지털 기술이라는 이질적인 감각과 매체가 교차하는 순간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 낯선 조합에 이끌려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그룹전 《판타스마고리아》를 통해 첫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옥영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나의 내재된 감정의 표출 작업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첫 개인전 <기억속의 기억> (디지털전시, 빛이든 공간, 2023)을 시작으로 2025년 <내가 은빛날개를 가졌을 때>로 개인전과 초대전을 하였고, 2024년 리멤버 포토 제주사진전. 2019년, 2022년 PASA FESTIVAL 디지털 전시 등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해 왔다. 현재 한국여성사진가협회의(KOWPA)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색체와 조형미를 기반으로 주제의 의미화를 위해 현대사진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콜라주를 이용하여 사진을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최재중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면서 사진을 시작했고 순수사진에 관심을 가지며 물의 내면을 통한 개인전 “기억의 변주&내면의 영혼(2019)”을 시작으로 다수의 그룹전과“사진 진주2021” 포트폴리오로 주제전에 참여하였고. 사진 전문잡지 포토 닷(2023.3월호)에 포트폴리오(Memento mori)가 선정되었다. 2025년 “존재와 시간”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하였으며 사진집”존재와 시간“을 출판하였고 2025.부산국제사진전 국제사진공모전 『혼이 있는 바다』전시와 현재 사진과 인문학을 통한 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콜라보레이션 작가
최영귀
늦은 나이에 중앙대에서 사진영상학을 공부하고 홍대 산업미술대학원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급작스런 남편과의 사별로 인해 오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부재, 죽음에 대한 사유의 과정과 어느 특정한 순간에 느끼는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도구로 남편의 유품들과 자신의 신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Monologue 시리즈로 2023년 벨기에 문화원에서 Who am I ? 전시를 시작으로 2023년 중국 Dali 국제사진전수상, 2023년 헝가리 Bifa포트폴리오 fine art 동상수상, 2023년 부산국제사진제 우수포트폴리오 수상과 전시등 해외 전시와 개인전등 그리고 3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하고 있다.
곽풍영
TV-CF와 기업홍보 영상을 제작 프로덕션에서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상 감독을 시작하면서 사진과 영상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1999년 소형항공기 면허를 취득하고 항공사진을 시작하였다. 한국의 산하를 누비며 촬영한 항공사진들은 하늘에서 바라본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모습을 아름다운 색상과 기하학적인 형태미로 표현하며 신비롭고 조화로운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2020년 2년 연속 한국공항공사 캘린더 사진가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 프랑스, 일본, 중국, 미국, 한국에서 50여회의 그룹전과 13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참여작가
이정희(기획), 최재중, 정옥영, 정석호, 이종경, 이경환, 신은주, 서동훈. 백명자, 김춘숙, 김미경
콜라보레이션 작가
최영귀, 곽풍영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