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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의 건축
왕상 7:1-12
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2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4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6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8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9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12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왕상 7:1-12 / [솔로몬의 왕궁 건축] 솔로몬은 자기가 살 왕궁도 건축하였다. 이 왕궁을 완공하기까지는 무려 13년이나 걸렸다. 2) `레바논 숲의 궁'이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은 모두 송백으로 되어 있었다. 이 건물의 규모를 살펴보면 길이가 45미터, 너비가 22.5미터, 높이가 13.5미터였다. 이 건물의 천장은 네 줄의 송백 기둥이 받치고 있었고, 그 기둥 위에는 송백 들보가 얹혀 있었다. 3) 천장 바로 위층에는 45개의 다락방이 있었는데 그 위에도 송백 판자로 덮었고, 판자는 한 줄에 15장씩이었다. 4) 이 궁전의 양쪽 벽에는 긴 쪽으로 세 줄의 창문들이 서로 마주 보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5) 그리고 좁은 쪽의 양쪽 벽에는 세 개씩 마주보는 문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문들은 모두 네 단계를 이루면서 점점 좁아지는 모양이었다. 6) 솔로몬은 또 `레바논 숲의 궁'에 대어서 주랑을 만들었는데 그 길이가 22.5미터, 너비는 13.5미터였다. 이 주랑 앞에는 또 다른 주랑이 있고 그 앞에는 차양이 있었다. 7) 솔로몬은 또 `레바논 숲의 궁'에 대어서 보좌를 놓고 앉아서 재판하는 주랑을 만들었는데, 이런 주랑의 마루와 천장은 모두 송백으로 되어 있었다. 8) 솔로몬이 거처할 궁전은 집무실 뒤의 다른 뜰 안에 건축하였다. 이 궁의 건축 양식도 `레바논 숲의 궁'과 똑같았다. 솔로몬은 아내로 맞이한 애굽의 공주를 위해서도 자신의 궁전과 똑같은 궁전을 지어 주었다. 9) 이 모든 건물은 가장 좋은 네모난 돌로 지은 것인데, 이 돌들은 네 면을 모두 톱으로 자른 것이었다. 성전에 사용된 돌에만 톱을 대지 않고, 이렇게 세속적인 용도의 건물에는 모두 톱으로 일정하게 자른 돌을 사용하였다. 10) 이런 건물의 기초에는 엄청나게 큰 돌을 썼는데 보통 4.5미터나 되는 긴 돌이 사용되었다. 고르지 않은 땅에 기초를 놓기 위하여 필요한 바윗돌이었다. 11) 이런 건물의 둘레에는 또 네모지게 다듬은 돌로 높은 성벽을 쌓았다. 이 돌들은 송백 들보로 조여 가며 쌓은 것이었다. 12) 다시 말하면 솔로몬의 왕궁 둘레에는 넓은 뜰이 있었다. 이 뜰을 둘러싼 성벽에는 다듬은 돌 세 층에 송백 들보가 한 층씩 쌓여 있었다. 성전 안뜰의 성벽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쌓여 있었다.
7년 동안 성전 건축을 마친 솔로몬은 곧 이어서 13년 동안 자신을 위한 궁전을 건설합니다. 이는 자신의 40년 통치기간 중 절반인 20년을 성전 및 궁전을 건설하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건축 기간(1) 솔로몬 궁전 건축이 성전 건축 기간보다 6년이 더 걸린 13년에 걸쳐 완공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레바논 나무의 궁(2), 낭실(6), 재판정(7), 솔로몬이 거처할 궁(8), 바로의 딸을 위한 집(8)까지 포함되어 성전 규모보다 궁전 건축 공사가 훨씬 규모가 컸기 때문입니다. 또한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성전 건축을 위해서는 다윗 때부터 미리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궁전 건축에서는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건축에 동원된 인원보다 궁전 건축에 동원된 인구가 적었기 때문이며, 이미 7여년의 성전건축 공사에 이어 진행된 궁전 건축 공사였던 만큼(대하 8:1) 일꾼들이 지쳐 의욕 상실로 인하여(12:4) 공사 진행이 더디었기 때문입니다.
건축 내용(2-8) 솔로몬의 궁전은 레바논의 궁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레바논 나무인 백향목과 귀하고 큰 돌을 다듬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궁은 무기 창고로 사용하였기에 일명 솔로몬의 무기의 집(왕상 10:16)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또한 재판하는 주랑(여러 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운 복도)을 지어 이곳에서 재판을 하였는데 이 주랑은 기둥 주랑과 달리 전면만 트여있고, 다른 3면은 견고한 벽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재판 주랑 뒤에는 왕이 거처하는 집이 있는데 궁궐과는 구별되며, 솔로몬이 정략적으로 결혼한 바로의 딸을 위하여서도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호화스럽게 지어졌는데 그것은 솔로몬 왕의 재산이 풍부했음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10:23).
건축 재료(9-12) 큰 뜰의 모든 건물들은 궁의 복합건물로 결합시켰습니다. 지붕을 제외하고 모든 집들은 돌로 지어졌으며 기초석 위에 놓여졌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암석은 석회 성분이 많아 상당히 무른 편이어서 처음 캐어 내었을 때에는 톱으로 켤 수가 있으나,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단단히 굳어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궁전 건축에 쓰인 돌은 이런 돌을 이용한 것으로 일정한 규격으로 다듬어진 것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궁전 건축에 쓰인 재료들은 모두 귀한 돌을 다듬은 것과 백향목으로서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적용: 솔로몬의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 건축은 언약의 성취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축복하심이었습니다(3:11-13).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는 얼마나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영국 한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한 소녀의 학부모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두 분의 아이는 수업 중에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아닌지 의심이 되는데 아이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라도 검사를 받아보고 특수학교를 생각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놀란 부모가 소녀를 데리고 찾아간 곳에서 소녀에게 특이한 테스트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켜놓고 소녀가 혼자 있도록 했습니다. 놀랍게도 춤을 배워 본 적도 없는 아이가 음악에 맞추어 근사한 몸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놀라는 부모님에게 상담사가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춤에 재능이 있는 아이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게 한 것이 도리어 이 아이에게는 고통입니다.” 이 소녀가 바로 뛰어난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인 ‘질리언 린’(Gilian Lynne)입니다. 2018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에 의해서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과 같은 멋진 작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열왕기상 7:1~22
그레그 로리 목사님이 쓴 “7가지 중요한 포인트‘라는 책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7가지 조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❶ 하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❷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을 사용하신다 ❸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❹ 하나님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인내로써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❺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서 염려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❻ 하나님은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❼ 하나님은 타인과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저는 그레그 로리 목사님이 제시한 이 7가지 조건 하나 하나가 너무나 합당하다고 봅니다. 역사의 주인이시 하나님은 아무나 역사의 주역으로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역사의 무대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어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아예 처음부터 등용하지도 아니하고 쓰지도 아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등용하여 쓰시다가 합당치 않아서 중도에 타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 시대에 사울과 솔로몬과 여로보암이 그들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 부름 받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귀하게 쓰임 받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엘리야가 그들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시대마다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위해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역사의 무대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할 인문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조건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관찰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21세기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아름답게 쓰임 받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명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 대한 조건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레그 로리’ 목사님이 제시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7가지 조건에다 세 가지를 더 첨부해 드리고자 합니다.
❽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앞 장에서 솔로몬 성전의 건축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7장은 성전에 필요한 기구의 제작 장면에 대해서 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7:13~51절). 그런데 7:1~12절은 성전 건축 장면의 삽입 부분으로 솔로몬의 왕궁 건축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솔로몬의 왕궁 건축은 성전 건축의 기간인 7년보다 무려 6년이 긴 13년에 걸쳐 완공되었습니다. 그만큼 솔로몬의 궁전은 성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컸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보면 왕궁 건축에 대한 기사가 성전건축보다 더 상세하고 폭넓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솔로몬이 왕궁 건축은 단순히 열 두 절로 아주 간략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솔로몬의 왕궁이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성전에 부속됨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았던 솔로몬도 성전 건축에 먼저 심혈을 기울이고 그 다음에 자신이 거할 왕궁을 건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솔로몬이 자신의 궁전을 짓는데 13년이 걸리고 성전 건축하는데 7년 6개월이 걸렸다는 내용을 대하면서 솔로몬의 신앙이 이기적으로 변질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왕궁 건축이 더 오래 걸린 이유는 먼저 성전 건축을 위해서는 다윗과 솔로몬이 미리서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완공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성전 건축에 동원된 인원보다 왕궁 건축에 동원된 인원이 더 소규모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전건축에 온 힘을 쏟았던 인부들이 많이 지치고 피곤했던 탓에 일의 진척이 더디였다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성전 건축보다 자신의 왕궁 건축에 더 관심을 쏟은 탓에 공사 기간이 더 오래 걸렸다는 해석은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솔로몬은 먼저 성전 건축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열왕기서 저자도 성전건축에 대해서는 자세히 길게 기록했지만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한 왕궁 건축에는 간단하게 축약시켜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의 중심에는 먼저 그의 나라의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순위임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왜?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사용하신 것입니까? 솔로몬의 중심에는 항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이 되고나서 가장 먼저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부터 올렸습니다. 솔로몬의 중심에 예배 중심의 삶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알았던 그래서 꿈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백지수표를 내밀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면서 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만큼 초기 솔로몬의 마음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중심이 서 있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내각을 구성할 때도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내각에는 제사장이 첫째 자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왕궁에서 하나님을 제일 높은 자리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이렇듯 번영하는 솔로몬 왕국은 사람의 뜻과 의지보다 하나님께서 앞서 다스리도록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삶의 우선순위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의 질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을 사랑의 질서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최우선 순위의 대상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 대해서 한 가지 단어를 더 첨가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30)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최고의 대상 가장 우선순위의 첫 번째 사랑의 일 순위는 항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이 우선순위가 확실하게 정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역사의 주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첫 조상 아브라함도 신앙의 최고의 성숙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꼭 알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는지에 대한 그의 마음 중심에 대한 테스트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렇게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독자 이삭을 어느날 찾아와서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장작을 패고나서 이삭을 데리고 삼일 길을 가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받치고자 이삭을 묶고 칼을 빼서 심장을 찌르려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황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22:11~12) 하시면서 합격 통지서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늘 달아보십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최우선순위로 사랑하고 잇는가? 우리 마음이 항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우리의 중심을 달아 보십니다. 그리고 이 중심이 흔들림없이 서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일을 맡기십니다. 축복의 통로로 쓰시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펼치는 역사의 주역으로 배역을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받은 사람도 이 중심이 변질되면 곧바로 경고하시고 징계하시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역사의 무대에서 끄집에 내리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이 원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솔로몬도 초기에는 하나님께 드린 이 중심 때문에 아름답게 쓰임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중심이 변질되자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경고하셨고(왕상11:9),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대적자들을 일으켰습니다. 에돔 사람 하닷과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이 솔로몬에게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솔로몬 사후에 나라는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도 분열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질서가 무너지면 모든 삶의 축복도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 영적 원리가 우리의 삶 속에도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❾ 하나님은 전문가적인 실력을 준비한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다음에는 13~47절까지 나오는 히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의 놋기구들을 만들기 위하여 특별히 두로에서 당대 최고의 기술자인 히람을 모셔옵니다. 14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의 모든 공사를 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히람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❶ 그는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탁월한 자라고 소개합니다. 놋을 만드는 일에 관한 한 그의 지식과 경험과 기술이 완벽했다는 의미입니다. ❷ 유대인 어머니와 두로 사람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라고 소개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혼혈아에 대한 시선은 그리 환영받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히람은 뛰어난 기술로 혼혈아에 대한 차별을 이기고 마침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이랗는 영광은 안았다는 것입니다. ❸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혼혈아인 것도 서러운데 과부의 아들로 자랐으니 가난한, 그야말로 사회의 소외 계층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조건 중에서 전문가적인 실력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가 혼혈아라는 사실일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과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난한 환경에 자라면서 극빈층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력입니다. 두로 사람 히람은 자기의 전공 분야인 놋 기술 연마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과부의 아들이며 혼혈아라는 설음을 딛고 일어나 왕의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열정을 최선을 다해서 다듬고 실력을 키웁시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 자신만이 가진 위대한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환경 탓, 부모 탓, 운명 탓 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낸 버린 분이 많이 있습니다. 성실하게 자기를 절제하면서 훈련하고 연마했더라면 엄청난 재능이 나타 날 것인데 자기 할 일을 성실히 안하고 운명만 탓하면서 술에 절여 불평 불만하다가 세월을 잃어버린 분이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소중하고 고귀한 재능이 희미해지고 썩어져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서 아무런 역할도 못해보고 죄만 짓다가 사라지는 인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한 홍 목사님이 쓴 “순간을 위해 평생을 준비한다”는 책에 보면 마카아벨리의 잔략론에 나오는 인용구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준비를 시작하면 이미 늦다. 행운이 미소 짓기 전에 준비를 갖추어 놓어야 한다. 이것만 게일리 하지 않으면 좋은 기회가 찾아오자마다 즉각 움켜 잡을 수 있다. 좋은 기회는 당장 붙잡지 않으면 달아나기 마련이다”(마키아벨리의 전략론에 나오는 글)
준비된 자만이 하나님께 쓰임받습니다.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다 놓치는 것입니다. 왜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쓰임 받았습니까? 오래전부터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쓰임 받았습니까? 80년 동안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다윗이 신정왕국의 대리자로 쓰임 받았습니까? 광야 훈련을 통해서 철저히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준비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사람입니다. 유명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피눈물 나는 세월 속에서 절제와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준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갑자기가 안입니다. 준비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역사의 무대에 오른 것입니다.
우리도 왜? 하나님께서 나를 밀어주지 않으신지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준비하십시오. 전문가적인 실력을 키우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다듬고 연마하십시오. 때가 되면 역사의 무대에 오를 날이 있을 것입니다.
❿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성전 낭실(현관) 앞에 두 기둥을 세웠습니다. 이 두 기둥은 히람이 놋으로 만든 기둥입니다. 이 두 기둥은 높이가 8.2m 가량 되고 둘래가 각각 5.4m 되는 큰 규모의 기둥으로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야긴이란 뜻은 “그 분이 세우신다”는 의미이고, 보아스라는 뜻은 “그분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을 의뢰하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들은 성전의 목적을 잘 보여줍니다. 즉, 인간의 마음과 생활을 안정시키고 견고케 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뿐이며 살아갈 능력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뿐이신데, 그분을 성전에서 뵈옵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중심에는 항상 성전 현관 앞에 있는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나를 세우셨고 하나님의 나를 지탱시킨다는 신앙고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의 성격, 체질, 형질, 외모 등을 결정하시고 때가 되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해 정한 날이 하나로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시139:16)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인생 계획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인도되고 있음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성전의 모든 식양을 친히 계획하고 세우셨듯이,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와 예정 가운데 친히 계획하시고 세워나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세우십니다” 라는 ‘야긴’의 신앙고백을 우리가 날마다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계획은 내게 있을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불어서 ‘하나님이 나를 지탱시키시는 힘이 십니다’라는 보아스의 신앙고백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나라와 개인은 흥하였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과 개인은 망하였다는 사실을 수 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내 삶도 내 뜻대로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겸비함과 함께 내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전 된 자신의 인생의 입구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을 세우고 늘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을 쓰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야긴’과 ‘보아스’라는 신앙의 두 기둥 사이를 쳐다보면서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내 인생을 세우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나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앙고백이 늘 살아 있는 자들을 사용십니다. 이 고백이 사라지면 우리가 세우는 모든 인생의 계획도 열매도 무너집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아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영화롭고 가장 축복된 삶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도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자의 목적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스러운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인생은 빗나간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목적의 과녁에 꽂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감독자 되는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다못해 조연이라도 감당해야 합니다. 정 아니면 엑스트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 의미를 알았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10~12) 그렇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의 의를 위해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서 하루라도 쓰임 받다가 죽는 인생의 영화롭습니다. 아무리 세상속에서 영광의 날을 천년을 누려도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헛되고 헛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결단합시다. 주여!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라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받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비밀을 알았던 김구 선생님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찾아가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안 총장 저를 임시 정부의 문지기로 써 주시오” 깜짝 노란 안창호 선생에게 이것이 자신의 진심이라면서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말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그 곳 마당을 쓸고 유리창을 닦고 할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빌었었소! 제발 우리나라의 정부가 서서 그 정부 청사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게 해 달라고 말이오” 우리가 백범 김구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문지기라도 좋사오니 나의 인생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