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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폐쇄병동 / 양안다, 시해설2
나의 작은 폐쇄병동 / 양안다 첫 감기에 시달리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듯 너는 나를 쓰다듬지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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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폐쇄병동 / 양안다첫 감기에 시달리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듯 너는 나를 쓰다듬지 초점 풀린 눈을 감겨 주려고길지 않은 휴일 내내 너는 네가 그린 그림에 섞이기 위해 영혼을 기울였고 종종 길고양이가 울었어 나는 웅크린 채로 금단의 터널 한가운데에 있었지 달이 뜬다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적시고 사라졌지만 나는 너의 메마른 입술만 바라봤어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숨을 내쉬는 모습이 고요했고청력이 쏟아지는 밤, 우리의 내부보다 컴컴한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지 나의 편지와 너의 그림 속에서 죽어 가는 인물들의 비명이 불협화음을 내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물을 참는 일이라서주먹을 움켜쥐고새벽마다 너는 목도리로 얼굴을 뒤덮고 산책을 나섰지상자에 작은 새를 담아 두는 마음으로 너를 이끌었어 너에게 말하지 않았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회복자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었지 *때때로 아침이면창가로 날아온 새들이 지저귀고잠든 너에게로 햇빛이 쏟아진다나는 이 느낌을 사랑해지난밤이 벗어 두고 간 허물을 정리하는 일탄산 빠진 병을 잠그고우리 중 누군가가 흘렸을 술을 닦는다샌드위치 봉지에선 악취잠든 너의 곁을 지날 때는 까치발로,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몇 시냐고 물으면조금 더 자요 조금만 더,너에게 필요한 잠을 부르고젖은 수건에서 개 냄새가 난다향초에 불을 붙이고담배를 문다너의 가슴은 고요하게 떠올랐다가가라앉는다필터가 축축히 젖을 때까지너의 얼굴 위로 햇빛이 떨어지는 장면누가 오전의 귀를 잡아당긴 듯이점점 느리게나를 관통한다 *그러나 견딜 수 없었다고 뒤늦게 고백하는 밤이면 꿈에서 모진 돌만 골라 주머니에 넣은 채 강가로 뛰어드는 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미열 속에서 나는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현기증을 지문에 가두고 있었던 걸까요창문을 열어 줘, 우리에게 소량의 바람이 필요한 것처럼 양들은 자신의 이름을 외우려 애쓰고 있습니다 사소하고 허무하고 시시한 농담으로 세상을 웃길 수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목을 매어도 좋겠지요 한겨울에도 비가 쏟아집니다 우리가 흘린 술은 증발되어 어디로 가는 거죠?눈을 떠, 오래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감길 때눈을 떠, 내가 너를 바라보려 애쓸 때모든 계절을 반으로 나누어 우리가 여덟 개의 계절을 갖는다면이불로 감싸도 나는 내 몸을 쪼갤 듯 주체할 수 없었지만네가 두 눈을 뜨자두 개의 달이 뜬다 *너에게 원했던 건 투명하고 둥근 병과 알약을 나의 손 안에 안겨 주는 것 나는 모든 것이 타 버린 숲의 잔재 속에 있어 열이 오르는데 온 세상이 정지한 듯 얼어붙고 있어피가 나도록 손등을 물어뜯었지 이 밤 어디선가 새 울음이 들리지만 너는 꿈속에서 들려오는 선율이라 단정하고오래된 꿈에 두고 온 작고 작은 생물이 문득 떠올라 버려서질끈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현기증이 흩날리고네가 침 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불가해한 감정을 요구할 때 수백 그루의 벚나무눈송이처럼 조각난 칼날을 떠올렸어 예쁜 피, 예쁜 마음, 중얼거렸지양안다 시집 『숲의 소실점을 향해』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