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t Will Kill You First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길어지는 농한기로 무너지는 옥수수 공화국. 상업용 작물 가운데 더위에 가장 취약한 것을 꼽으라면 아마 옥수수가 아닐까, 한다. 옥수수도 나름의 강점이 있다. 대부분 식물은 햇빛을 양분으로 변환할 때 이른바 C3 광합성을 활용한다. 옥수수의 조상은 ‘테오신테’라고 불리는 풀로 1만 년 동안 멕시코 중남부의 ‘발사스’강 계곡에서 무성하게 자랐다. 이 지역은 기온이 26.6℃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온이 38.8℃인 것은 천지 차이다. 세상이 더워질수록 옥수수는 적응 온도의 한계치에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더위 속에는 꽃가루관 발달이 잘 이뤄지지 않아요. 화분에서 발아하는 이 관이 정핵을 암컷 식물의 밑씨로 날라주는 역할을 하지요.” 식물학자 ‘도널드 오트’의 말이다.
농부들은 땅에 목화나 수수 같은 작물을 심기 위해 한 차례 큰비가 내리길 기다리는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열을 이기는 유전자 조작 식량. 그냥 선인장 유전자만 옥수수 게놈에 집어넣으면 1,000개의 태양이 내뿜는 불볕더위도 견딜 수 있는 슈퍼 옥수수가 탄생할 테니 말이다. 기후변화 속에 단백질 공급도 문제가 된다. 소와 닭은 온실가스 발생의 주범인 동시에 더위에 지극히 취약한 동물이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동물들을 기르는 일은 더욱더욱 힘들고 돈도 많이 들게 된다. 단백질을 곰팡이와 귀뚜라미를 이용하여 생산할 수도 있지만, 인구 100억의 뜨거운 행성에서 먹거리를 귀뚜라미와 실험실 단백질로만 충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양 폭염. 바다의 사막화는 가장 치명적인 시나리오다. 물의 온도가 6℃ 이상 치솟았던 지중해의 폭염 사태는 수중 세계의 산불 그 자체였다. 바다의 동식물 군은 불에 타기라도 한 듯 그대로 죽어 나갔다. 기후 체계를 움직이는 바다. 물이 열을 받으면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우선 열을 받으면 물은 팽창한다. 물이 움직이는 방향이 달라진다. 찬물은 아래로 가라앉고 따듯한 물은 위로 올라간다. 목욕할 때 욕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별일 아니다. 하지만 이런 행성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그때는 ‘별일’이 된다. 물은 꽁꽁 얼어붙은 소행성과 혜성을 타고 우주공간의 차갑고 깊은 데서부터 지구 표면에 도달했다. 지난 몇백만 년 쉴 새 없이 지구로 날아 들어온 것이다. 이후 지구는 내내 물기를 가득 머금은 세상이었다. 지구는 물의 97%가 바다에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다. 인간의 혈장은 바닷물과 비슷한 양의 소금을 함유하고 있다. “우리 손은 물고기 지느러미가 변형된 것이고 우리의 기본적 신체 구조를 이루는 유전자들은 벌레나 물고기와 공통된 부분들이 있다.” 인간은 바다를 아득히 먼 생성처럼 생소하게 여겨왔다. 바다는 괴물이 사는 혼돈의 세상이라 여겨왔다. 그래도 인간은 해변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바다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참으로 많았다.
문제는 바다가 빠른 속도로 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다 표면으로부터 1.6킬로미터 정도로 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바다가 기후 위기를 버티게 해주는 영웅이었다. “지금도 이미 덥지만 바다가 없다면 대기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뜨거웠을 겁니다.” 모든 바다 생물의 서식지 역시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따듯해지는 바다가 날씨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2023년 초 캘리포니아를 강타해 이 지역에 홍수와 산사태 등의 이류가 일어났던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가 뜨거워지면 하늘에 생긴 이 하천들의 흐름은 더욱 거세질 뿐이다. 태풍은 ”바다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열을 품은 직접적 결과“ 였다.
땀의 경제. 더위는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기온이 40.5℃였던 날, 한 노동자가 10시간 내내 포도를 따다가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을 딴 법령이 2021년 의회에 상정되었지만, 이는 아직 표결에 부쳐지지도 못했다. 온열 질환과 사망 방지법. 집배원과 택배 기사들은 상황은 위험하다. 배달 차량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농장 일꾼은 더 위험하다. 엘살바도르와 코스타리카 사탕수수밭 일꾼들은 2002년 이후 죽은 사람이 2만 명에 달하고 신장 투석을 받은 사람도 수천 명에 이른다. 캘리포니아 법령은 고용주는 노동자들이 1시간에 약 1리터의 물을 마실 수 있게 하고, 5분씩 휴식을 갖게 해야 한다. 그늘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더워도 쉴 수 없다. 이주 증명서가 없는 모든 불법이주 노동자가 그렇듯 언제 미국에서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떨었다.
세상 끝의 얼음. 우리가 오늘날 삶에서 만들어 내는 열은 어딘가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열은 세상 모든 것에 가닿는다. 극단적인 더위는 맥락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기후학자들에게는 그린란드 역시 걱정거리다. 그린란드는 지구상의 그 어디보다도 빨리 더워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빙하가 녹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매년 여름 빙상의 표면이 달아오르면서 물이 거대한 파란 물줄기를 이루어 바다로 쏟아지는가 하면 일부는 빙하 구멍을 통해 바닷속으로 흘러든다. 2002년에 놀랄 사건이 터졌다. ‘라스센 B 빙붕’(남극 반도 위에 떠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얼음덩어리) 이 무너졌다. 빙붕이 자취를 감추자, 그 뒤에 있던 빙하들이 바다로 흘러드는 속도가 전보다 8배 빨라졌다.
모기라는 매개체. 더위는 우리 행성 위의 질병 알고리즘까지 다시 쓰고 있다. 코로나19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의 미리보기에 불과하다. 모기를 매개로 한 질병은 인류 역사상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빼앗은 것으로 꼽힌다. 암컷 모기만 피를 빤다. ‘뎅기’는 악력이 일으키는 경련성 발작을 의미하는 ‘스와힐리’어로 뎅기열에 걸리면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단다. 이 뎅기열이 심각하게 유행한 나라는 9개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10배가 늘어 100개국에서 뎅기열이 풍토병으로 자리를 잡았다. 더위는 지금 자연 세계의 틀을 다시 짜고 우리 행성 위에 질병 알고리즘까지 다시 쓰고 있다. 미생물은 새로운 기회를 맞은 셈이다.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생물학적 땅으로 탐험을 나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만 해도 일곱 종이나 된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는 동물 숙주로 들어갔다. 인간에 전파되었다. MERS는 낙타에서 사람에게 옮아왔다가 사라졌다. 코로 나19는 박쥐에서 인간의 몸으로 들어왔다. 이 작은 미생물이 인간에게 가한 고통은 헤아릴 수가 없다. 지금 북극에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지난 수만 연간,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얼음에 갇혀 있던 병원체들이 자유롭게 풀려나고 있다.
감염병의 온상. 호주의 말 훈련장에서 말들이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며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고 콧구멍에서 피가 섞인 거품이 흘렀다. 말을 키우던 인부는 독감인 줄 알았는데 중환자실에서 죽었고 해부하니 그의 폐에 액체가 그득했다. 원인은 목초지의 ‘황금 볏과일 박쥐’였다. 이것은 종간 감염 사건의 전형인데 코로나19도 닮은 구석이 많다. 살인 진드기. 진드기는 곤충이 아니라 거미강의 동물로 거미나 전갈과 같은 과에 속한다. 기다란 다리가 달린 ‘히알로마진드기’는 스피드광이다. 이 진드기는 포식자다. 이 진드기가 미국인 삶에 전례 없는 위험을 가하고 있다. 라임병이다.
값싼 냉기. 에어컨의 안락함에 중독된 세계는 에어컨이 안락함의 상징이었고 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타인과 다른 종, 그리고 주변 세상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리하여 안락한 생활은 클릭 한 번으로 미래를 점점 망가뜨린다. 에어컨은 ‘헤럴드 굿맨’이 발명한다. 1926년생인 그는 1950년대 에어컨 사업을 시작한다. 현대는 에어컨에 의존의 악순환 도시에서는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더 많이 태워서 발전한다. 결국 온실가스 오염이 더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지구는 한층 더 뜨거워지고 있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에어컨은 절대 냉방 기술이 아니다. 에어컨은 단순히 열기의 위치를 바꿔주는 도구일 뿐이다. 더위에 에어컨을 컸다. 정전은 곧 죽음이다. 이는 훌륭한 지혜를 잊어버리는 기술이다. 에어컨 냉방이 세상에 남긴 질긴 유산은 결국 쾌적한 시원함과 끔찍한 더위 사이의 분열이 아닐까. 날씨가 더워질수록 둘 사이의 틈은 더 벌어질 것이다. 이는 기술의 실패라기보다 차라리 문화적, 심리적 문제라고 하겠다. 여기 담긴 진실은 단순하다. 20세기 후반 삶이 풍부해진 미국인들은 안락함에 목을 매게 됐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안락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종 혹은 주변 세상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거의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독은 전 세게 수백만 명의 사람에 퍼져나가 이들도 어느덧 값싼 찬 공기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폭염 경보 극한 실체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 누구도 폭염 속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죽는 건 그들이 혼자이기 때문이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고, 또 도움을 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없어서, 무더위 쉼터를 찾지 못해서, 열탈진과 열사병의 징후를 몰라서, 폭염이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죽는다. 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4.06.09.
폭염 살인-2nd
제프 구델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