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마르코 복음 4장 1~20절
마음에 품은 말씀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말씀을 삶으로 살아냅시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
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스쳐지나간 모습과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그분이 마음에 품었던 말씀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시다시피,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인 톤즈에서
선교활동을 하셨습니다.
남수단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 중에서도 더욱 가난한 나라라고 하는데,
신부님이 계시는 동안 그곳은 많은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식량 부족으로 배고파하는 이들이 먹을 것을 얻게 되었고,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아이들이 노래와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워 밴드부도 만들고 연주회도 하게 되었고,
작은 치료를 받지 못해 죽거나 크게 불구가 되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낸 이태석 신부님이 평소에 마음에 품었던 말씀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라고 합니다.
평소에 마음에 품었던 말씀이 삶으로 열매를 맺은 것 같지요?
저는 묵상을 하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그러면 다른 신부님들도 사제가 되면서 평생 마음에 간직할 성구를
정하는데, 그 말씀이 열매를 맺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을 좀 해 보다가 떠오른 분은 송봉모 신부님이었습니다.
송봉모 신부님의 성구는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의 친척들이 그를 붙잡으로 나갔다.’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미쳤다는 조금 특별한 말씀(?)을 선택하셨는데,
그 사연이 이렇습니다.
【신학생으로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
나는 수도회의 허락을 받아 불교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수도회는 종교간의 대화를 위해서 불교 공부를 허락했지만,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깊이 체험하지 못했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교 세계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특별히 선종의 하나인 조동종과 그 선사인 도원 스님의 사상에 심취되어
로마로 신학 공부를 하러 떠날 때에도
조동종과 도원 스님의 책만 10여 권을 가지고 갔을 정도였다.
그러고는 자주 영적독서(?) 삼아 그 책들을 읽었다.
이렇게 불교 사상에 젖다 보니,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물건너간 셈이 되었고,
구도적 관심이나 열정을 성서와 성교회 전통에서가 아니라 불교 세계에서 길어내게 되었다.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서도
성서나 성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대신 불경이나 선사들의 말을 인용했다.
한번은 가르멜 수녀님들에게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필자를 아끼는 한 수녀님은
강의를 듣고 나서 이런 말로 질책을 하셨다.
“수사님, 성교회 안에 그렇게 성인들이 많은데 어떻게 불교 스님들 이야기만 하십니까?
그러려면 차라리 스님이 되시지 그러세요.”
그러던 나에게 사제 서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부가 되고 나서도 지금 처럼 살 것인가?
신부로서 교우들에게 강론을 할 때에 지금 처럼 불교 얘기나 할 것인가’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제서품 기념 상본에 적어 넣을 성서 구절로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친척들이 그를 붙잡으로 나갔다.”
라는 말씀을 택했다.
나도 예수에게 미쳐보고 싶어서였다. ...
서품날 이후 나는 예수께 미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그 후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성서에 대한 사랑,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용솟음치게 된 것이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송봉모 신부님은 성서에 관련된 좋은 저술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냥 많이만 저술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써주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신자 분들도 송 신부님의 글에 좋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송 신부님에게서도 마음속에 품었던 말씀이 열매를 맺고 있는 모습이 보이시지요?
오늘 하루, 마음에 품을 성경 구절을 고민해 보고 정해 봅시다.
그리고 그 말씀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 봅시다.
인천교구 밤송이(김기현 요한) 신부님